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22.00
Description
“커피는 이 집이 아마 경성서는 제일 조흘걸요”

와인빛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식탁과
파리가 날리는 좁고 낮은 식탁 사이,

경성의 번화가를 수놓은 외식 풍경과
그 위로 드리운 식민의 그늘을 쫓다
박완서 작가가 숙명여고보 합격 기념으로 오빠와 방문했던 추억의 레스토랑, 이상이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고달픈 오후 시간을 보냈던 카페는 어디였을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경성에도 맛집이 있었다. 인기 메뉴를 맛보기 위해 온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고, 독특한 인테리어와 시설로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렸던 맛집들이. 하지만 현대의 우리에게 ‘경성’과 ‘맛집’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낯설게 느껴진다. 남아 있는 자료가 드물뿐더러, 관련된 연구 또한 깊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성 맛집 산책》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껏 소홀히 다루어진 근대의 흔적인 ‘경성의 맛집’과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외식 풍경을 풍부한 자료를 통해 복원해 낸 결과이다. 박현수 교수는 대한민국 유일 ‘음식문학연구가’로서 소설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식문화를 탐구했던 전작 《식민지의 식탁》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 근현대 소설에 등장한 음식점들에 주목한다. 각 음식점의 메뉴와 가격, 주요 고객층, 개성 있는 내·외관, 독특한 시스템뿐만 아니라 이들이 화려하게 탄생하고 스러지는 역사 또한 책 속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특히 당시의 풍경을 재현한 지도 일러스트와 다수의 사진과 기사 자료, 소설 삽화와 인용을 활용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최초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 ‘조선호텔 식당’, 이상, 박태원의 단골 카페이자 예술가들의 소일터였던 ‘낙랑파라’, 지금도 건재하게 영업 중인 김두한의 단골 설렁탕집 ‘이문식당’ 등 책에서 다룬 10곳의 음식점이 등장하고 번성한 시기는 식민지 시대였다. 따라서 이는 식민지 조선과 서양의 신문물이 만나고 충돌했던 첨병으로서 경성을 조망하는 일이자, 당대의 식문화에 드리웠던 식민의 그늘에 주목하고 이를 밝혀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경성 맛집 산책》을 통해 독자들은 경성 곳곳을 탐험하며 조선인들이 새롭게 등장한 풍경과 낯선 음식 앞에서 느꼈던 설렘과 즐거움을, 그리고 그 뒤로 견뎌내야 했던 삶의 무게와 식민의 멍에 역시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저자

박현수

저자:박현수
부산에서태어나고자랐다.성균관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한국근대소설의양가성에대한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같은대학교에서동아시아학술원연구교수를거쳐현재학부대학대우교수로일하고있다.식민지시대에새롭게등장한,또한편으로밀려나야했던음식,그리고경성에자리잡았던음식점들에관심이있다.문학속의음식을통해근대이전의상징적사고를해명해보려는계획도가지고있다.펴낸책으로《식민지의식탁》,《근대미디어와문학의혼종》,《일본문화,그섬세함의뒷면》이있고,주요논문으로는〈경성의명물과거친음식의사이,설렁탕〉,〈경성의선술집〉,〈감자와고구마의거리〉,〈소설에나타난식민지조선의물가:음식가격을중심으로〉,〈스쳐간만세‘전’의풍경1,2〉등이있다.

목차


1부본정

1장조선최초의서양요리점,청목당
1.경성의핫플레이스
2.신비로운청목당의명물들
전긔불술잔과나사못모양의칭칭대/따로마련된휴게실과클럭룸
3.이상야릇한음식을맛보다
오렌지술퀴라소로대작을벌이다/고급스러운혹은사치스러운메뉴들
4.마침내조선에상륙한‘양식’
더읽을거리:청목당이새롭게개장했습니다

2장화목한가족의나들이명소,미쓰코시백화점식당
1.본정백화점의왕좌
2.세련된신문물을마주하다
번쩍이는네온사인과또하나의명물엘리베이터/멜론과아이스크림플로트
3.글쎄,나는‘런치’를먹지
백화점식당의대표메뉴/미쓰코시백화점의단골손님들
4.백화점에드리운식민지의그늘
근대식백화점이탄생하다/일본인을위한출장소였던
더읽을거리:미쓰코시백화점의흔적을더듬다

3장경성제일의일본요리옥,화월
1.사랑을속살거리기좋은밤에는
2.아취있는연회와유흥의공간
옥상,이랏샤이마세!/후원과연결된고즈넉한팔조방
3.덴푸라로가장연조깊은집
입에짝짝붙는정종과계절메뉴/담백하고간드러진요리상
4.밀실정치혹은향락의온상
더읽을거리:경성의이름난일본요리옥

4장본정에서남국의파도소리를,가네보프루츠팔러
1.‘혼부라’의필수코스
2.모던보이와모던걸을유혹하다
커피는이집이아마경성서는제일조흘걸요/식민지시대의SNS,메신저
3.향기롭고이국적인과일디저트카페
모래위의비치파라솔/잊을수없는과일디저트의맛
4.달콤함속감춰진가네보의이면
더읽을거리:가네보서비스스테이션과메신저

2부종로

5장경성유일의정갈한조선음식점,화신백화점식당
1.조선인이경영한최초의백화점
2.화신백화점의비범한위용
종로를덮는초콜릿빛깔의그림자/세련됨과차가움이뒤섞인낯선공간
3.고상한조선요리의맛
식권을샀다면서또뭘골라요?/온종일줄을서서먹은‘조선런치’
4.조선인을위한?혹은조선인손님을끌기위한?
화신상회에서화신백화점으로/남촌의백화점들과다르지않은시스템
더읽을거리:화신백화점과동아백화점의경품경쟁

6장김두한의단골설렁탕집,이문식당
1.지금도정상영업중!
2.식민지조선인들의소울푸드
누린내조차매력적이었던/저렴한가격에소고기를맛보다
3.불결하고불편하기짝이없는
좁은식탁에낮은의자/파리가날리는쓰레기통같은내부
4.설렁탕의기원,신성하거나천하거나
더읽을거리:설렁탕의두얼굴
7장평양냉면에필적하는경성냉면,동양루
1.논쟁많은음식,냉면
2.경성곳곳에휘날리던갈개발
조선인들의또다른소울푸드/종로3정목의랜드마크,동양루
3.식민지의삶,그무게가아로새겨진
저육과배쪽,노란겨자를듬뿍얹은/식판을메고경성을누비던자전거들
4.김칫국물에서장국으로,국수에서냉면으로
더읽을거리:군침도는냉면의변천사

3부장곡천정과황금정

8장와인빛으로장식된동화의세계,조선호텔식당
1.조선에서가장호화로운식당
2.제아무리백만장자의외아들이라도
방값만하루에12원이라니/‘선룸’에서양코배기들과식사를
3.정통프랑스식코스요리를선보이다
화려한샹들리에와산진해미로가득한식탁/조선호텔식당의자랑,‘정식’
4.조선호텔의빛과어둠
정통서양요리와화양절충의음식/철도호텔과장곡천정이라는지명
더읽을거리:로즈가든대개장

9장고달픈예술가들의소일터,낙랑파라
1.일반다방과는‘무언가’다른
2.사무적소속없는이들의아지트
기다렸다는것처럼나를맞아줄지도/이상이남긴낙서와커피의향기
3.볼가의노래를들으며뜨거운우유를
이상이그린낙랑파라의메뉴들/커피값,담배값그리고모임들
4.‘낙랑파라’라는이름의그늘
더읽을거리:예술가들이모이는이국적인끽다점

10장고급승용차가즐비했던중화요리점,아서원
1.조선공산당의창립총회가열린곳
2.역사적격변속에서도번창하다
독립된방에서오리알과황주를/아서원의주방에서일하는영예
3.라조기,양장피,잡채,그리고맥주!
마라탕,양꼬치,훠궈는없지만/나무식함을든배달부
4.대표메뉴는우동과덴푸라
더읽을거리:동파육과팔보채를만들어보자

출판사 서평

술잔모양의네온사인이번쩍거리고,초콜릿향그림자가드리워지는…
소설을따라도착한화려한경성거리의한복판

이선희의소설〈여인명령〉의주인공숙채는종로네거리를뒤덮는거대한그림자에서풍기는초콜릿향기를맡는다.이는1937년종로에6층짜리건물을신축해개장한화신백화점에서느껴지던위압감과세련됨을표현한것으로,당시종로를거닐던조선인들의생각을엿볼수있는부분이다.
이처럼《경성맛집산책》은경성의맛집과당시의식문화를생생히살펴보기위해〈소설가구보씨의일일〉,《삼대》등한국근현대소설의도움을받는다.소설은그것이쓰인시기대중의생활양식과사고방식을가장잘드러내주는자료로,당대의문화를미시적으로그려내기에가장효과적인도구이다.낯선음식을처음맛본사람들의반응,손님들이식당에서나눈대화,식당을찾았던주된고객층등소설자료가아니었다면그려내기힘들었을흥미롭고구체적인문화사가눈앞에생동감있게펼쳐진다.
예를들어,염상섭의대표작《삼대》는조선최초의서양요리점‘청목당’의분위기를생동감있게묘사하고있다.세여자의긴장감넘치는술대작은그자체로흥미로우면서동시에오렌지로만든술‘퀴라소’를비롯해청목당에서판매했던다양한메뉴들을보여준다.또한조선호텔과그식당을배경으로하는《불사조》는조선호텔에서한달을생활하기위해지금돈으로4,500만원이필요했음을언급하는데,이를통해이곳을방문했던주된고객층이아주부유한소수의조선인,그리고한국에주재했던외국인이었다는사실이밝혀진다.또다른소설〈소설가구보씨의일일〉에는이상,박태원의단골카페이자예술가의소일터로알려졌던다방‘낙랑파라’가등장한다.구보씨의묘사를통해낙랑파라에흐르던독특한분위기와커피의맛을느낄수있다.이처럼그동안단편적인자료만으로유추할수밖에없었던경성의역사가마침내이야기를통해실감나게우리앞에재현된다.이는오랜시간문학을통해한국의식문화를탐구해온저자만의독보적인성취이다.

“매당은잔을성큼들어쭉마시엇다.조선의여걸도브란듸,휘스키는알지마는이런기린모가지가튼병의술은처음보는거라호기심으로마시기는하엿스나(…)이것을시초로매당과경애는정종으로달라부터서주거니받거니두술장수가내기를하는지판을차리고먹엇다.”(44쪽,《삼대》의인용)

“한달에900원이니100원이업는1,000원이다.제아무리조선서몃째안가는이른바백만장자의외아들인계훈이라도언제까지이비싼호텔에서양코배기들과어깨를겨루어가며생활을계속할는지의문이다.”(350쪽,《불사조》의인용)

소다수에아이스크림을풍덩,메신저를통해전한연애편지…
이상야릇한음식들과독특한시스템을엿보다

백화점1층자동판매기앞에서아이가아빠에게무언가사달라고조르고,에스컬레이터는쉴새없이손님을태워나른다.요즘백화점에가면흔히볼수있는풍경이지만,앞의묘사는식민지시대‘화신백화점’에관한것이다.이처럼지금우리에게익숙한시스템과음식중식민지시대부터이어져온것들이있다.지금과같이백화점식당입구에음식샘플을진열해두고메뉴를고른뒤금액을지불하고입장하는방식은경성의백화점뿐만아니라,‘가네보프루츠팔러’등의유명카페에서도마찬가지였다.또서양요리점‘청목당’에서는짐을맡기는클럭룸과대기실을운영했으며,중화요리점‘아서원’에서는나무식함으로짜장면을배달하기도했다.이처럼경성의맛집을살펴보는것은현재한국외식문화의뿌리와그역사를되짚어보는일이기도하다.
물론색다른풍경도있다.김말봉의소설《찔레꽃》은‘미쓰코시백화점식당’에서식사를하는가족의모습을그린다.이들은아이스크림과소다수를함께시켜이둘을섞어먹는데,탄산음료에아이스크림을빠뜨려먹는‘아이스크림플로트’가지금은생소하지만당시에는보편적인디저트였음을알수있다.또한식민지시대의SNS역할을했던‘메신저’의존재도독특하다.메신저는일정한돈을받고편지나물품을전달하던직업으로,유명한맛집에는늘이들이상주하고있었다.《화상보》의주인공경아가사랑하는남자에게‘가네보프루츠팔러’로나와달라는메시지를전한것도이들을통해서였다.이처럼책속에는경성의맛집을중심으로한,익숙해재미있거나낯설어흥미로운이야기들이빼곡히담겨있다.

“경애는‘소다-수’에아이스크림을넣어휘휘저어서먹는다.조씨도‘소다-수’에다아이스크림을텀벙너차‘소다-물’은부그르르흘러나와테블크로스를적셧다.(…)정순이한모금빠라드린‘소다-물’은목으로바로넘어가지안코코구멍으로조금올라왓다.그때문에정순의눈에서는금방눈물이핑그르르돌면서재채기가나오려한다.”(81쪽,《찔레꽃》의인용)

““장선생께서는저의마음을몰라주십니다.뵈옵고자세한말씀드리려하오니미안하오나이리로좀나와주시옵소서.가네보에서,경아올림.”가게에서종이와봉투를얻어간단한편지를써가지고메신저를불러시영에게로보냈다.”(165쪽,《화상보》의인용)

화려하고향기로운식탁이면에감춰진식민지의그늘,
삶의무게가아로새겨진식탁을주목하다

책에서다룬화려한맛집들과군침도는음식들.실제로이것을경험할수있는조선인은극히일부에불과했다.이책은와인빛으로장식된,산해진미가차려진식탁뒤감춰진고달픈식민지의삶과그멍에에주목한다.모던걸,모던보이의핫플레이스였던과일디저트카페‘가네보프루츠팔러’는내부를칸막이좌석‘로맨스박스’로꾸며연인들의발걸음을끌었고,외부는젊은이들이동경하던남국의해변처럼꾸며폭발적인인기를얻었다.하지만그달콤한향기의이면은구차하고어두웠다.가네보프루츠팔러는‘가네보방적회사’에서개장한카페로,유수의기업에서운영하는음식점의선두였다.가네보에서운영한방적공장에서일하던조선인여직공들은열악한근무조건과저임금에시달렸고,전시체제에들어서면서공장이군수공장으로탈바꿈해군수물품을만들었다.또다른예로‘조선호텔식당’은화려한내부와고급스러운코스요리로유명했지만,한끼저녁값이곤궁한서민들의한달식비에육박했다.예술가들의살롱으로여겨졌던‘낙랑파라’또한그이름의유래에‘대동아공영’이라는전쟁의명분과일본의정복욕이녹아들어있다.이처럼이책은당대의식문화와음식점의흥미로운풍경을묘사하는것에그치지않고,그곳에드리운식민의그늘과상흔역시성실히살핀다.
식민지조선인들의현실적인식탁은6장에서살펴본설렁탕집‘이문식당’과7장에서다룬냉면집‘동양루’에가깝다.설렁탕과냉면은저렴한가격으로평범한서민들이즐겨찾던음식이었다.그런데‘이문식당’은쓰레기통같은내부와좁고낮아불편한식탁으로도유명했다.심지어이곳에서팔았던설렁탕에는지독한쇠똥내가났지만인기가높았다고한다.이를통해더럽고불편한식탁에아로새겨져있던당대조선인들의삶의무게를엿볼수있다.값싼소뼈를재료로하고불결한식탁,낡은식기를사용해저렴했던가격,그리고흔히맛볼수없는고기의맛은설렁탕만의매력이었다.굶주림이일상이었던조선인들에게쇠똥내가나는것쯤은큰문제가아니었다.‘이문식당’은10곳의맛집중유일하게현재까지영업을하고있는식당인데,고상하고세련되지는않았지만서민들의마음을사로잡은이곳만이지금까지명맥을이어온것은단순한우연이아닐것이다.

“본정1정목에화려하고세련된모습으로단장한가네보서비스스테이션은위에서살펴본구차하고어두운모습과는거리가먼공간으로보인다.그곳에는혼부라를나온모던보이,모던걸들을유혹할세련되고고급스러운옷과소품만이가득했기때문이다.하지만정작그곳에전시된상품들은열악한근무조건과저임금에시달리는식민지조선의여직공들(…)의땀과눈물이어려있었다.”(188쪽)

“철저하게지저분한시멘트바닥,행주질이라고는천신도못해본상바닥,질질넘치는타구등등족히대규모의쓰레기통으로서손색이없다.수천마리의영양조흔파리가주인을대신하여손을영접하고,주위로방문을열어저친방방에서는삼년묵은때국이시꺼머케결은채,누더기가네활기를뻐치고코들을곤다.”(271~272쪽,《금의정열》의인용)

책이제시하는산책코스를따라‘본정’,‘종로’,‘장곡천정’,‘황금정’이라는당시경성의번화가곳곳을살피다보면,맛집10곳의풍경과이곳을방문했던손님들의얼굴이결코동일하지않다는걸깨닫게된다.깨끗하고화려했던식탁과더럽고구차했던식탁사이,그언저리를산책하며그둘의관계를살펴보는것이경성의맛집을가장현실적으로탐구하고복원하는방법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