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조선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또 하나의 조선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18.00
Description
밑바닥 여종에서 저 높은 왕비까지
산골 촌부에서 한양 마님까지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남성들의 나라에서 한평생을 살아내고
때로는 경이롭게 운명을 넘어선 여자들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조차 버거웠던 시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취를 남긴 52명의 조선 여성이 있었다. 《또 하나의 조선》은 신분상으로는 밑바닥 여종에서 왕비까지, 지역으로는 남녘 산골 촌부에서 한양 마님까지, 나이로는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정사(正史)라고 하는 실록이나 양반 남성의 문집으로 구성되는 조선 ‘너머’의 조선을 담았다. 조선이라는 역사 공간에서 여자로 살았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조선 여성들의 일반적인 삶’이란 착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렇듯 그들 또한 각기 다른 환경과 맥락 속에 놓인 감정과 욕망의 주체였다. 특정한 유형이나 이미지로 규정할 수 없는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존재였다. 장희빈, 대장금, 황진이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비롯해 ‘음란하고 아름다웠던’ 낙안 김씨, 당대에선 드물게 여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긴 성장기의 주인공 숙희, 마을을 돌며 근심을 위로했던 무녀(巫女) 추월, 상속받은 액수의 세 배로 재산을 불린 ‘자산 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등 시대의 한계와 인간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여성들의 다채로운 서사가 《또 하나의 조선》을 이룬다. 그 서사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조선이라는 사회의 정신과 만나는 동시에 도도히 흐르는 인간 근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저자 이숙인은 〈한겨레〉에 2년간 연재했던 [이숙인의 앞선 여자]를 묶고 보강한 이번 책을 통해 말한다. “자료가 남아 있어도 주목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사소한 기록 하나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었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책은 짧게나마 기록에 남은 자들을 통해, 소외되었던 여자들을 기억하려는 시도이다.”
저자

이숙인

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책임연구원으로,가족과여성중심의연구시각으로조선시대사상사를기획하고있다.성균관대학교동양철학과를졸업하고같은학교에서유교경전의여성사상연구로철학박사학위를받았다.동아시아학술원과한국학중앙연구원연구교수를지냈고,여러대학에서동양철학및한국철학을강의해왔다.근래에는전문연구의대중화에의미를두고다산연구소의〈실학산책〉,〈한겨레〉의〈이숙인의앞선여자〉등의칼럼을써왔고,시민을대상으로한동아시아문화와한국학강좌에참여하고있다.지은책으로《동아시아고대의여성사상》《정절의역사》《신사임당》이있고,공저로《조선여성의일생》《노년의풍경》《일기로본조선》《선비의멋규방의맛》등이있으며,옮긴책으로《열녀전》《여사서》《오륜행실도》와공역으로《역주묵재일기》(전6권)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는말

1.구체적으로살고입체적으로존재하다
피난길의담대한꿈,남평조씨
솔직한모성,신천강씨
평범했으나숭고한삶,김돈이
대적하는짝,송덕봉
가려진재능,신사임당의두손녀
칼대신붓을든이유,풍양조씨
근원적고통에대한유대,여비춘비
사랑으로쓴성장의기록,손녀숙희
마을을돌며근심을위로하다,무녀추월
유모의인생역전,봉보부인백씨
자산관리의달인,화순최씨
선비아내의내공,문화류씨
알수없는탁월함,송씨부인
다산의아내로산다는것,홍혜완
귀양지에서다산을되살리다,소실홍임모母

2.성녀와마녀의프레임을넘어
마음의주체가되다,허난설헌
시대를초월하는시대정신,황진이
임금의마지막을지킨어의녀,대장금
공동체를위한한줄기빛,논개
시련에도잃지않은예의,정순왕후
가부장권력을내편으로,소혜왕후
조선과중국의경계인,한계란
7개월만에‘구성된’죄,폐비윤씨
사실은평범한여인,장희빈
성공을향한몸부림,정난정
뒤늦게위로된슬픔,세자빈강씨
사랑이라는영원한주제,도미부인

3.닫힌운명에균열을내다
부당한이혼요구에맞서다,신태영
혈통의허상을드러내다,옥비
성범죄피해자의사적복수,김은애
사족여성의사생활,함안이씨
피해자에게돌을던지는국가,환향녀윤씨
감정과욕망의주인,여비돌금
죽음으로얻은명예의역설,박씨부인
집단광기의제물,신숙녀
열녀만들기프로젝트,배천조씨
아름답고음란하게,낙안김씨
임금의새벽잠을깨운촌부,윤덕녕
참을수없는희롱,여비향복
사족의민낯을까발리다,유감동

4.시대의틈에서‘나’를꽃피우다
보고느끼고기록하라,남의유당
가문의영광을만든여자,서영수합
사람을만드는교육,이사주당
집안일의지식화,이빙허각
삶의성리학자,임윤지당
퇴계학중흥의어머니,장계향
여성불교의적극적인힘,이예순
남편의스승이되다,강정일당
고통을글로치유하다,김호연재
낙방거사를품은여걸시인,김삼의당
천하를품에안은소녀여행가,김금원
대정벌판의따뜻한바람,정난주

출판사 서평

성녀도마녀도아닌‘한인간’의자취,
그다채롭고도도한힘을만나다

이책의1부‘구체적으로살고입체적으로존재하다’는자신의운명안에서나름대로개성있게살았으나‘시대가주목하지않았기에’상대적으로사소하게여겨진여성들에대한이야기다.일례로경북지역에서칠십여생을살다간신천강씨는딸에게보낸편지를통해‘점잖게박제된’양반가여성의이면을생생하게보여준다.첩을들인남편에대한울분을토로하고자신의처지를비관하는강씨의목소리는500년전을살던한여성의솔직하고인간적인모습을날것그대로전한다.

“뒤로갈수록편지의내용은과격해진다.‘오로지그년에게붙어서당신것을맡기니이것을어떻게해야할까싶구나.아마도나는오래살지못할것이니속절은없다.’강씨는또자신의서러운뜻을남편과자식이모르고있고,또늘용심이나서살수가없다고한다.울화가치밀어오르지만이사족마님은품위를지키느라무심한척애를쓴다.”_23쪽

사족이문건가의여비(女婢)였던춘비에대한기록도흥미롭다.35세전후에몸에종기가퍼지기시작해두달만에숨을거둔그녀를‘주인’이문건은살려보려애쓰며시시각각모든상황을세세하게적어둔다.사극에서노비들은그저충직하거나말이없고기록에서도보통소유주의물목에불과한데,이문건의시선에담긴춘비는투병중‘소고기’를먹고싶어하는동시에근원의고통과두려움을호소하는평범한인간이다.이문건의‘기록벽’덕에존재의흔적을남기게된여성들이이책에여럿등장한다.신분을넘어선인간유대의가능성을보여준춘비를비롯해또다른여비돌금과향복,이문건이30년간쓴일기의여자주인공인아내김돈이,‘단골’로거래했던무녀추월,애지중지하던손녀숙희등이다.이들을연결하는이문건이라는캐릭터자체가,우리가과거의인물을불러낼때‘하나의틀’에가두지않는시선이얼마나중요한지말해준다.사족남성이문건은자상한남편이자손녀·손자를살뜰하게보살피고훌륭하게길러낸조부인동시에,노비를부릴때는누구보다매정하고심지어어린여비를강간하기까지한사내다.“이러한이중성에더하여자기주변의다양한계층의여성들에관한가장진지한기록을남긴소중한자료원”(7쪽)이기도한것이다.

이렇게역사속인물을입체적으로해석하는작업은2부‘성녀와마녀의프레임을넘어’에서도돋보인다.허난설헌,대장금,논개등상대적으로우리에게친숙한여성들도낯선맥락속에배치될때기존의도식적인이미지에서벗어난다.“우리의삶이인과적순서를밟아계획대로펼쳐지지만은않듯,이들의삶도우연과필연의길항속에서어둠과밝음이교체되는시간의연속이었다.”(6쪽)황진이는남성의시각으로재단되어온‘사랑의화신’이나‘성녀(聖女)’같은상징을벗고새로운시대정신으로거듭난다.저자는또한우리에게폐비윤씨로더잘알려진제헌왕후가‘현숙한왕비’에서도저히중전자리에둘수없는악녀가되는데걸린고작7개월의시간을쫓아가며,‘구성된죄’의전후를살핀다.장희빈에게서300년넘은‘악녀’꼬리표를떼어낸뒤,그녀가냉엄한역사현장에서겨우열살남짓한아들의미래를기원했던평범한여자였음을설명하기도한다.정난정,정순왕후,소혜왕후등도복잡다단하고역동적인상황속에서섬세하게재발견된다.

“여성이지만‘여성’을넘어서야했던소혜왕후는시시각각모순된상황에직면해야했을것이다.남편에게순종할것을주장하면서남성을계도하여정사를행한역사속여걸들을소개하기도한다.자신의책이‘민간의우매한여자들에게까지’널리읽히기를바라면서그내용은주로남성‘영웅’들의이야기를담았다.일관성이없어보이는이러한서술은학식과정치적감각을두루갖춘이여성앞에펼쳐진세계자체가하나의역할만을고집하기에는너무복잡했기때문이아닐까.”_149~150쪽

역사는‘그들’로만기록될수도있지만
세계는‘그들’만으로구성될수없다

확장하고진화하는페미니즘과백래시(backlash,사회·정치적변화에반발하는심리및행동)의물결이공존하는오늘날,‘공식적인’가부장제사회에각자의방식으로균열을시도했던여성들의상처와성취를동시에들여다보는일은더의미깊다.3부‘닫힌운명에균열을내다’에서는주로그치열한분투를,4부‘시대의틈에서나를꽃피우다’에서는크고작은성취를볼수있다.성범죄가해자를직접응징하고자수한김은애,20세에과부가되어늙고가난한시부모를부양하던중‘음란하다’는헛소문에스스로목숨을끊은박씨부인,‘열녀’가당사자의뜻이라기보다다양한시선에의해주문되고제작됨을보여주는배천조씨등은지금의우리가과연그들로부터얼마나나아갔는지,또는얼마나겹쳐있는지를돌아보게한다.조정과재야의수많은남자와간통한혐의로투옥된유감동이지방으로쫓겨나종적을감춘데비해,그많은간부(奸夫)들은시간이지나자슬금슬금다시요직으로복귀해나라를이끌었다는사실에선결코낯설지않은기시감이느껴지기도한다.

“가련한처지의박씨를희롱하고능멸하여죽음에이르게한김조술,‘정의란무엇인가’를던져놓고간그의죽음도전혀의미가없진않았던셈이다.이역사적사례를통해다시우리주변을돌아보자.2백년전피해자박씨가그랬던것처럼성범죄피해에서는여전히자기파괴적으로피해사실을증명해야하는경우들이많다.성범죄피해자의명예는죽어야만회복되는것인가.죽어도회복되지않은명예는누구의몫인가.”_238~239쪽

한편,시대의한계와운명에기꺼이도전하는여성들의모습은언제보아도가슴벅찬울림을준다.여자들의외출이엄격히규제됐던사회에서‘여행’에승부를건두여성,남의유당과김금원이만들어낸풍경들은호쾌하고통쾌하다.‘밥이나하고옷이나만들던’여자들의일을지식의영역으로체계화한이빙허각,당시일반적이던도피로서의여성불교가아니라창조적이고적극적인여성불교의힘을보여준이예순,글과시로고통을치유하고존엄을회복한김호연재와김삼의당등은강하고명민한여성들의아름다운성취를보여준다.‘조선시대여자’였다는것을제외하면모두다르게욕망하고행동했던52명을통해오늘의독자는주위를둘러보고미래를고민하게된다.역사는누구를남기고누구를소외하는가.한사회를성찰하고그속의‘나’를발견한다는것은무엇인가.《또하나의조선》이존재했듯이지금이순간발견되지않은‘또하나의한국’은어디에있을까.

“남의유당은바깥세상에대한호기심이남달리강했고사람사는모습에관심이많았다.여염집과장터구경은물론달밝은밤이면망루에올라경관을즐기는데,마치관내를시찰하는장수처럼호방하게굴다가관아로돌아오곤한다.방안에널려있는침선(針線)거리를보고서야자신이규방여인이라는사실에박장대소한다.”_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