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15.00
Description
“오직 사랑하는 것들만이 살아남는다”
/
나무, 도시, 새, 호랑이, 돌, 원숭이, 시 …
이 땅의 모든 존재를 향해 미술이 뻗어나가는 상상력
《태도가 작품이 될 때》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박보나 작가가 두 번째 미술 에세이《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을 출간했다. 현대미술작품을 작가의 ‘태도’로 설명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저자는 이번 책에서 오랫동안 쓰고 싶었던 주제인 ‘생명’을 통해 새로운 미술의 세계를 보여준다. 저자의 책을 차치하고라도 현대미술작품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여론은 여전히 우세해 보인다. 작품을 자유롭게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은 누군가에겐 ‘궁리’의 재미를 느끼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어렵고, 잔인한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그 과정은 건너뛰고 곧장 독자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책은 많다. 시간을 들여 작품을 바라보는 재미를 느끼게 하고, 그 시간을 더욱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책은, 외면당하곤 한다. 책의 배려가 곧 독자들에겐 인내심과의 사투가 되는 것이다. 박보나 작가는 이 양극 사이에서 독자들에게 해석에 대한 운신의 폭을 다정하게 내어주는 한편 본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작가의 태도, 창조성, 상상력에 빗대어 작품을 쉽게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수직적 관계보다는 공존과 연대의 관계에서 미술을 ‘옆으로’ 보도록 돕는다(《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역시 ‘미술과 생명이 옆으로 나누는 대화’가 큰 골자다). 그렇게 납작해진 미술에 대한 해석은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부풀고 떠올라 새로운 입자가 되어 독자를 향한다. 어렵고 잔인하지 않게, 따스하게 사유와 감각을 옮겨갈 수 있도록 작은 숨구멍이 되어 준다.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에게 ‘없는 이름’을 불러주려는 시도다. 더해 우리가 함부로 이름 짓고 부르는, 모든 것을 멋대로 규정하려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준다. 코로나19와 각종 환경위기로 ‘생’보다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좀 더 기울어지는 요즘, 생명을 소중히 여기자고 말하는 건 투박하다 못해 이상주의자들의 낡은 생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와 세대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해지려는 시도는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 오히려 윤리적 소비, 동물권을 향한 긍정적 변화, 차별적 시선에 대한 비판적 무브먼트 등 다채로운 움직임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책에서는 조은지 작가의 동물의 삶과 권리를 지지하는 행위 퍼포먼스(〈돼지는 잘 살기 위해 태어났을 뿐〉)를, 지미 더럼 작가의 순종과 혼종에 대한 구별 짓기를 어지럽히고 부수고자 설치한 미술작품(〈돌로 구분을 부수고〉)을 소개한다. 저자 역시 어둡고 그늘진 지금의 세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줄곧 생각했다고 한다. 글을 쓸 기회가 생기자마자 ‘지구 위의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결심하곤 이 책을 완성했다.

저자

박보나

미술가.영상이나사운드,퍼포먼스와텍스트를결합해예술과노동,역사와개인의서사에대한상황을만드는작업을한다.2019년아시아태평양트리엔날레,2016년광주비엔날레등국내외다수의전시에참여했다.지은책으로《태도가작품이될때》《이름없는것도부른다면》이있다.

목차

작가의말:이름없는것도부른다면

나무나풀처럼옆으로…혼프

새의소리를이어간다면…오스카산틸란

상상의맹수호랑이를키우고있지않은지…홍류

돌로구분을부수고…지미더럼

빛의상상력으로이야기를말할때…주마나에밀아부드

돼지는잘살기위해태어났을뿐…조은지

원숭이의눈에신성(神聖)이…피에르위그

선명한이미지뒤에감춰진…박보나

더잘들리는귀를갖게되면…크리스틴선킴

조용한풍경너머에는…민정기

도시와아파트에도사람이…김동원,김태헌,이인규

시적상상력이움직이는세계의미래는…정서영

사물에게도긴밀한연대감을가질수있다면…피슐리&바이스

좀더천천히,좀더가깝게…케이티패터슨

ImageCredit

출판사 서평

조은지,정서영,지미더럼,피에르위그,크리스틴선킴등…
부수고,자르고,던지고,칠하며‘없는이름’을부르기위한작가들의노력

이상을한낱판타지가아닌실재로그려가기위한움직임은미술계에서는꾸준했다.부수고,자르고,칠하고,그리고.책에등장하는미술작가들또한필요하다면빈병과흙을주물럭거리고던지며,자신들의이야기로또다른존재와의연결고리를찾아나선다.저자는미술이가진편협한꼬리표(어렵고,추상적인,저항적인)대신미술의세계에서존재자체를인정하고이해한다는것이무엇인지를알려주고자한다.더불어독자들이‘미술같은것’을찾기보다미술그너머에서작품을바라보고느끼기를바라며이책을썼다.먼지하나없는미술관,그곳의흰벽에걸린작품이미술이라고누구도규정한적은없다.그것이미술이아니라고한적도없다.저자는미술같은것이있다고믿는허구의세계에서,작가들의행위의목적이과연미술같은것을미술처럼보이게하기위한것인가하는의문을품기를바란다.그의문을사이에두고‘이땅의모든존재를향해미술이뻗어나가는상상력’에집중한다면,보다선명한실제세계를발견할수있을것이다.

책에는총14명의작가가등장한다.국내에서활발히활동하는작가조은지,정서영그리고저자(박보나)를비롯해혼프,주마나에밀아부드,지미더럼,피에르위그,크리스틴선킴등다소생소한국외작가들의작품도한데모았다.14인의작품속에서하나의키워드를뽑아내고이를다음장의주제와연결시키며생명의연결성과존재의자주성을은유적으로드러내고자했다.나무에서새로,새에서호랑이로이어지는유기적인체계내에서독자들은작가들의상상력을비롯해저자가말하는‘옆으로나누는대화’의가치를발견할수있을것이다.예를들면인도네시아창작집단인혼프가예술의가치를공존과도움의영역으로옮기며작업하는모습이꼭나무와풀같다.그이야기를이어받아에콰도르출신미술작가오스카산틸란이나무와풀이자라는공간이파괴되며자리를잃은새들의소리를찾아나서는식이다.그다음엔?새들의소리를찾아떠난미국에서우리는순종과혼종에대한구분을부수고자하는홍류,지미더럼의작품을만나볼수있다.피에르위그는원숭이(동물)의시선에서인간을살피는것에대한서늘한감각을,저자(박보나)는이미지에뒤에감춰진탐욕스러운거짓말을영상과사운드를이용한퍼포먼스로고발한다.저자는들리고보인다고믿었던모든것들의각도를조금만비틀어도진실을발견할수있음을이야기한다.거기에또다른현실이있음을.

마지막장〈좀더천천히,좀더가깝게〉에서미술가케이티패티슨은노르웨이숲에천그루의나무를심는퍼포먼스를펼친다.그나무가다자라면종이로가공해책을만든다고한다.그때는작가도우리도이미세상을떠난뒤다.패티슨은미래의세대에게무엇을남기고싶은걸까?한편패티슨은〈모든죽은별〉이라는작품을통해죽은별들이남기고간원소들이또다른생명의시초가되어우리몸속에새겨져있음을알린다.우리의피가수억년전에죽은별의원소에서비롯되었다면믿어지는가.책은인도네시아창작집단혼프의나무이야기로시작해스코틀랜드의작가케이티패터슨의나무와별이야기로끝을맺는다.우리모두는연결되어있으며,이미수억년전별의탄생과죽음에서부터인연이이어져왔음을,저자―그리고케이티패터슨―은말하고싶었다.“우리는이초록의행성에서만날수밖에없는사이였다.”(171쪽)

미술이잡은모든손(생명)…
그들과위아래가아닌‘옆으로나누는대화’

《이름없는것도부른다면》은‘미술이잡은모든손(존재)’에대한이야기다.그러니이땅위의존재에경계를짓고이름을맘대로부르려는모든행동을부수고깨트리는일에미술가들은겁을내지않는다.순혈(純血)에대한허황된믿음앞에돌을집어던지고,인간과동물을가르는무지앞에서무엇이자연이고무엇이미술인지모르겠는혼란스러운작품세계를선사한다.경계를짓는것이얼마나미련한짓인지를알려준다.

저자는현실적이지않다는이유로몇단어를지우자는편집자의말에꿈쩍하지않았다.지우지않은그단어들이곳곳에숨어서작은존재들의권리를더크게알리고있다.그들의맹렬한기운을살린건그단어들이다.저자를포함해수많은미술가의퍼포먼스는움직이고만들고행동하는진짜‘리얼리티’다.꿈꾸기보다행동하는이들의이야기만이,‘현실’일것이다.미술가들과그들이이루어낸퍼포먼스는진짜로움직여본적없는자의방만한생각이얼마나무지한지일러준다.이들과나누는‘옆으로의대화’가다시한번현대미술작품과독자들의거리를좁혀줄것이다.

“이세상에남아돌거나소외되어도괜찮은존재는하나도없다”는레오나르도보프신부의다정한말을곱씹으며이책을썼다.우리가함부로밀어낸다양한존재들을하나하나부르는미술작가들의작업을넓게읽고사회와유연하게연결시킴으로써,더늦기전에이땅위의생존문제를같이얘기해보고자했다.이름을빼앗긴자들과이름이없는존재들까지부르는작가들의손짓,그것을읽는나의목소리가당신과내가조금이라도더오래,함께숨쉴수있는시간을만들어낼수있기를바란다.”
_작가의말중에서




본문중에서

두해가까이코로나19의역병에시달리고,산불과홍수,가뭄같은재해가세계곳곳을집어삼키는것을바라보면서,제대로생명의위협을받고있다고느꼈다.마지막경종소리가울리기전에,어떻게해야더깊은수렁으로빠지지않을지,무엇을해야조금이라도덜후회할지줄곧생각했다.마스크의끈을잘라서버리거나,플라스틱병의라벨을떼어내고버리는정도로는무거운죄책감과무기력함을떨쳐버릴수없었다.그렇게고민하던차에,마침글을더쓸수있는기회가생겼다.그렇다면이번에는지구위의삶을좀더지속해나갈수있는방법에대해‘옆으로’얘기해봐야겠다고결심했다.(6쪽)

HONF는아름다운그림을그리거나조각품을만드는보기좋은미술에는별로관심이없다.하얀색벽으로막혀있는미술관의한구석을채우는것도이들에게는그다지흥미로운일이아닌듯하다.이창작집단은오로지미술관밖으로나가자연과문화,생활과미술,창작자와구경꾼의경계를흐트러뜨리고적극적으로뒤섞는데열심이다.다양한분야의사람들을연결하고아주작은생명과물질들까지작업속으로불러들이려애쓴다.이들은그렇게다른존재들을한자리에모아놓고,각자의경험과지식을나누자고제안한다.그리고어떻게같이사는삶이가능할지,어디서더촘촘하게만나고교차할수있을지진지하게묻는다.(17쪽)

미끄러운말이아니라공기와파동,움직임과연결을통해인간이아닌다른종과신호를주고받는과정은덜‘인간적’이어서오히려더많은감흥을불러일으킨다.그동안인류가자만심에가득찬협박과폭력의언어로소리를질러왔다면,오스카산틸란은새와인간의신호를섞음으로써,공존의순간을속삭인다.(32쪽)

더럼의작품중에는눈과입이그려진큰바위로자동차를폭삭찌그러트린정물화시리즈가있다.익살스러워보이는작업이지만,그것이가리키는것은가볍지않다.이설치작품에서아래에깔린자동차는기술과문명을상징한다.따라서얼굴의꼴을한돌이자동차를짓누르고있는형상은닫힌이성과논리따위는열린자연의발밑에두겠다는의미라고볼수있다.합리적이고효율적이라는핑계로행해지는모든계산적이고권력중심적인질서에동의하지않겠다는뜻이다.자동차와바위가희극적으로충돌하는그지점에서,경직된이성적개념과구조가와장창내려앉는바로그통쾌한지점에서,작가의한결같은목소리가다시굵게울린다.기존의원칙과기준들을구겨버리고,혼종의분열증적개별정체성을추구하겠다는굳건한선언이들린다.(52쪽)

눈을감고귀를막고있는동안땅에묻은돼지의침출수가흘러나왔다.우리가마시는물의상수원인임진강에서16킬로밖에떨어지지않은연천의흙에죽은돼지들의붉은피가비쳤다.그뉴스를본날조은지작가를만났더랬다.돼지는인간이얼마나어리석은지를가르쳐주려고이세상에온거같다는나의한탄에,조은지작가는“돼지는그냥잘살려고태어났지,인간을위해뭘하러온것이아니다”라고답했다.부끄럽게도나는여전히인간중심의잘못된교훈을읊조리고있었다.맞다.돼지는당연히우리를위해태어나지않았다.하나의생명으로서흠뻑살면서행복을느끼기위해태어났을뿐이다.(80쪽)

피에르위그작업의핵심은관객이이자연스러움을의심하는데서생긴다.작가의의도적인미학적배치가유기적생명체들의아름다운성장과뒤섞여,어디서부터가예술이고어디까지가자연인지그경계가모호하다.이혼란스러운현장에서,관객은이쪽과저쪽을임의적이고변덕스러운기준으로나눠보고모아본다.아까는자연이었던것을지금은예술로바라본다.지금은예술인듯하지만,좀지난후에는자연이었던것같다고생각한다.인간은과연,자연을제멋대로규정한다.피에르위그의예술적생태계앞에서관객은겸손해질수밖에없다.자연이예술보다덜아름답지않고예술이자연보다더구성적이지않기때문이다.자연과문명,자연과예술이라는인간중심의이분법적인분류가형편없이느껴진다.이나눔의경계가허물어지는지점에서관객은자신도작업의일부이고,자연의일부이며,생태계의구성원이라는것을문득깨달을수있다.(88쪽)

이미지는선명하고자세할수록우리를더쉽게홀린다.아프리카태양의색이붉게타오를수록,사자의코털까지상세히잘보일수록,사자가있어야할자리에는인간이들어앉는다.잘만들어진이미지들은눈에보이는게전부라며우리를속인다.모두봤다고생각하게함으로써,다른것을알려고하거나날선질문을하지않게만든다.〈코타키나블루1〉과〈1967_2015〉는눈을감으면더잘들리고,더잘들으려고하면새로운것을볼수있다는것을얘기하고자한다.보기좋은이미지를의심하면,모니터를넘어훨씬더먼곳까지갈수있다.야생이나열대의섬,기적의금광이아니라자연을대하는인간중심적태도와영화산업노동자들의존재,그리고독재의음흉한모의를발견할수있다.(101쪽)

정서영작가는“작업을통해전혀상관없는것들이만나서같은시공간을공유하는순간을만들어내고싶다”고말한다.여기서순간이란재료와대상과의조합일수도있고,작가와관객의관계일수도있으며,관객과작품의만남일수도있겠다.정서영의조각을둘러싼이다양한결합과해체는전혀필연적이지않다.엉뚱하게움직이면서우연히서로를스칠뿐이다.그런뜻밖의만남속에서,작가의헐거운언어는‘넓적한’**힘을펼친다.예술을기호학적으로또렷이해석하고,딱딱한담론안에서정답을찾고자하는기존의시도에다른물길을낸다.정서영의표현은시적여지를남기고,관객들은그속에서스스로생각하고해석할수있는기회를갖는다.작가가넉넉하게틔운공간안에서실컷숨쉴수있다.(147쪽)

모두가별의흔적을가지고있다고생각하면,주변의존재들이한층친밀하게느껴진다.케이티패터슨이죽은별을그린이유도그런길고도가까운끌림에서시작한것이아닐까생각해본다.오랜시간동안세계가만들어지고생명이탄생하고퍼져서,서로만나고이어지는길고도느린호흡이경이롭다.백만년혹은백억년의시간을반짝이다가,나와당신의사이를이어준별의그유구한나눔이눈부시다.몸에흐르는따뜻한피에서같은별과하나의우주를느끼며,둥근지구를생각한다.별이빛나기시작했던수억년전부터,우리는이초록의행성에서만날수밖에없는사이였다.혼자서만따로존재할수없는깊은인연이었다.그촘촘한연결안에서,우리는옆사람이내뱉은숨을다시마시며함께살고있다.(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