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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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늘 점심엔 무엇을 먹었나요?
당신에게 점심은 어떤 의미인가요?
점심 메뉴 선정에 진심인 사람을 위한
꿋꿋이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점심시간을 틈타 딴짓하는 사람을 위한,
작가 10인이 점심시간에 써내려간 산문집

영화 〈패터슨〉에서 버스 기사인 주인공은 점심시간이면 작은 폭포가 바라다보이는 벤치에 홀로 앉아 시를 쓴다. 그가 매일 마주치는 사물과 풍경에서 시의 구절을 떠올리고 노트에 기록하는 순간,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은 사소하게 특별해진다. 그는 점심시간을 삶의 활력소이자 안식처로 여길 것이다. 점심시간은 단순히 점심 먹는 시간이 아니며,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직장인에게 점심은 하루 중 유일하게 오매불망 기다려지는 휴식 시간이자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일 것이고, 어떤 작가에게 점심은 창작욕이 샘솟아 끼니를 거른 채 글쓰기에 몰두하는 시간일 것이다. 강지희, 김신회, 심너울, 엄지혜, 이세라, 원도, 이훤, 정지돈, 한정현, 황유미 작가는 산문 다섯 편을 통해 매일 반복되는 점심의 시간과 공간에 새로운 질감과 부피를 더한다. 점심 식사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 글이 있는가 하면, 점심과 무관해 보이지만 점심때 쓴 글도 있는데, 점심시간을 활용해 식당이나 카페에서 읽기 좋도록 짤막한 길이로 쓰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당신의 점심에 이 산문집이 함께해 조용한 즐거움과 포근한 위로가 전해지길 바란다.
저자

강지희외

1986년서울에서태어났다.이화여자대학교국어국문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으며,2008년조선일보를통해평론을발표하기시작했다.현재계간『문학동네』편집위원이며한신대학교문예창작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강지희
미나리할머니와고사리할아버지
무수히많은이별과산책
점심이없던날들
베이징과불발된연애
엄마,스시,눈물

김신회
구내식당덕후
스몰토크란무엇인가
‘밥사줄게’라는말의뜻
씩씩한산책
효도점심

심너울
잔디된장찌개
책의문제
오늘점심은특이한까까에도전해요
교정용젓가락과가정교육
성탄절에성탄절이그립다

엄지혜
외로우니까점심이다
꽈배기같은점심
한낮,그리고수신확인
차마점심을먹지못한날
글감을허락한테이블

이세라
특기는오래매달리기
그런결혼은없다
명랑한은하수
Sometimesmakingsomethingleadstonothing
일을계속한다는것

원도
가파른맛
나는입과귀를열고서
다짜고짜뭐먹을거냐니
라쿠카라차!
마음이동하는한숟갈

이훤
거의점심
어느개인의점심변천사
볕이아직남아있는
9월
예약되지않은

정지돈
치과는부르주아의것
몸이예전같지않다
길티플레저
부도덕교육강좌
발톱의야인

한정현
떡볶이와의결별
점심의탄생과산책인의갈등
비커밍점심산책자
우리의점심은그곳에오래남아
멸종의시간

황유미
서른살버릇,마흔다섯까지
공간의용도
위기없는이야기
아직살아있다
어른의귀여움

부록
혼자점심먹고나서그냥하는질문

출판사 서평

“사람들은점심시간에정말많은일을한다”
직장인,프리랜서,산책자의시선으로읽는
점심의시간성과다채로운풍경들

강지희작가는시간강사시절여섯시간짜리강의를소화하기위해점심을굶어야했던경험을바탕으로,불규칙하거나존재하지않는비정규직노동자의점심을사려깊게들여다본다.김신회작가는직장동료와부모님을포함한타인과의점심식사에통용되는자기만의합리적인원칙을세워보며,혼자먹는밥과함께먹는밥의의미를탐구한다.심너울작가는내향인이자프리랜서로서점심을준비하는과정에대해진지한농담을풀어놓는다.엄지혜작가는회사의점심시간에맛있는메뉴를먹고자분투하며만족스러운점심을사수하려는간절한마음을전한다.이세라작가는서른다섯에정규직을그만두고(점심)시간에대한주도권을갖게된이야기를들려준다.원도작가는현직경찰관답게언제신고가들어올지모르는상황때문에,선배들의식사속도를따라잡기위해오늘도뜨거운국물로목구멍을지지고야마는직장생활을실감나게조명한다.이훤작가는점심시간을쪼개읽고싶은것을읽는짧지만달콤한순간을시적인문체로그려낸다.정지돈작가는점심을배불리먹으면글이써지지않아점심을거른다고말하며매복사랑니,운동,디저트에관해점심시간에쓴산문을선보인다.한정현작가는코로나19사태의장기화로집에서보내는시간이늘어나점심시간이생겼고점심을직접만들게된일련의연쇄작용을서술한다.마지막으로황유미작가는집중력을유지하기위해점심은거르고달달한후식만챙겨먹는슬프고괴상한습관을해명한다.이렇듯특색있고개성넘치는작가들의점심세계에당신을정중히초대한다.

Q.작가님에게점심은어떤의미인가요?
○강지희:길을가다흘러나오는노래같아요.제가선택하지않았고오래감상할수도없지만,예상치못한설렘과소소한기쁨을주는.
○김신회:일단잠에서깨하루를시작하자!는신호이자작업을앞두고에너지를비축하는일입니다.매일10시에서11시쯤점심을먹고바로책상에앉아원고작업을시작합니다.
○심너울:고통스러운식단관리의기간에서유일하게일반식을할수있는시간.
○엄지혜:60분을120분처럼써야하는시간.
○이세라:하루첫커피를마시며혼자있는시간.
○원도:출근의흔적입니다.저는쉬는날엔대부분점심을먹지않으니까요(하지만샤부샤부는즐깁니다).
○이훤:점심은반나절동안지연된나를차곡차곡모으는시간같아요.
○정지돈:회사를다닐땐피해야하는시간이었던것같아요.사람들을피해서,식사자리를피해서,혼자걷거나쉬거나했습니다.초코우유나크림빵같은걸로허기를달래고요.요즘은……존재하지않는다?점심을배불리먹으면글이잘안써지는것같아요.그래서잘안먹게되는것같습니다.
○한정현:사실원고에도썼지만자주반복되는멸종의시간이에요.이런단어를여기에써도되는지는모르겠지만,자주없어졌다가또나타나고그러다가없어지는시간이바로점심시간입니다.
○황유미:하루의중심.하루를점심전,후로나누는편입니다.점심전은나를위한시간,점심후는남과약속한일을하는시간.


<본문에서>
고사리를살짝데치고간소한양념으로볶아입안에넣으면사르르녹았고,국물에끓인고사리는오래삶은돼지고기처럼야들야들하게풀렸다.그고사리를먹을때면내삶도조금은부드럽게풀리는듯했고,크고따뜻한품에안기는느낌이들었다._강지희,〈미나리할머니와고사리할아버지〉,15쪽

많은비정규직이점심을거르기일쑤고불규칙한생활을한다.누군가는식사를챙기고몸관리를하는것역시사소하지만성실한자기관리라말할것이다.하지만점심시간에식사메뉴만을고민할수있는사람은생각보다많지않다.점심을거르는건그사람이나약한의지나낮은자존감으로자기관리를놓쳐서가아니라,그저그자리에가면그렇게되어버리는상황의문제일때가많다._강지희,〈점심이없던날들〉,26쪽

사무실막내였던나에게선택권은없었다.부장님이오늘은초복이니삼계탕을먹자고하면그날은입구에각종화분이잔뜩놓여있는삼계탕집좌식테이블에앉았다.이사님이특별히회를쏘겠다고하면대리님차를얻어타고도시중심가에있는회식당으로향했다.삼계탕이고회정식이고다싫었다.내가원하는점심메뉴는혼자말없이먹는구내식당밥이었다._김신회,〈구내식당덕후〉,42쪽

엄마는늘내게넘치도록주고싶어한다.다만그건내가원하는게아니어서늘사양하게된다.우리는서로가보고싶어만났으면서도정작그얼굴앞에서는내내투덜거리다가헤어지고나서는나의못남에잠을설친다.하지만다음날이면어김없이내밥상에는엄마반찬이올라오고,그걸먹으며만회라도해보겠다는듯나는문자를보낸다.“너무맛있네.잘먹을게요,엄마.”_김신회,〈효도점심〉,65쪽

나는음식을남길때마다미묘한죄책감을느낀다.두부를반모나썩혀서음식물쓰레기로만들면악몽을꿀지도몰랐다.마침된장찌개를해먹은지도오래되었다.마땅한재료가양파랑두부밖에없었다.근처에서애호박을사야겠다고마음먹었다.싸고맛있고칼질하기쉬운애호박!_심너울,〈잔디된장찌개〉,79쪽

살짝정직해지자면나는내가틀리게젓가락질을하는데대한자부심을가지고있었다.어떻게그럴수가있나,〈DOC와춤을〉에너무깊은인상을받은것이아닌가?“젓가락질잘해야만밥을먹나요…….”아니면내가교과서에나오지않는나만의방식으로이세상에서가장다루기힘든식기구를조작하는개척자였기때문에?_심너울,〈교정용젓가락과가정교육〉,85쪽

평일의점심은어쩐지쓸쓸하다.아무리맛있는메뉴를선택해도속도를내서먹어야한다.속을터놓고회사이야기를할수있는동료는없어진지오래.내가좋아하고신뢰했던이들은모두떠났다.가끔찾아와주는전동료,기꺼이속내를드러내도두렵지않은몇몇의사람,일로만났지만친구가된선후배들을만나지않는한,나의점심은여전히외로울전망이다._엄지혜,〈외로우니까점심이다〉,98쪽

나는아무래도한낮(낮의한가운데.곧,낮12시를전후한때)보다는대낮(환히밝은낮)이좋다.대놓고“나낮이거든?”말해주는것같아서.그래도단어는‘한낮’이예쁘다.그러니까책제목에자주등장하는것이다.“우리주말한낮에만나요”와“우리주말대낮에만나요”는얼마나어감이다른가?데이트약속을잡는다면무조건‘한낮’을추천한다.갑자기‘대낮’에게미안한마음이들지만,‘벌건대낮’이라는표현은또어떤가.괜스레불콰한느낌이다.벌거벗은것같기도하고._엄지혜,〈한낮,그리고수신확인〉,105~106쪽

내가살면서제일잘한일이있다면,이혼이다.조금의망설임도없이답할수있다.뒷일을수습하는건생각보다더고통스럽고긴여정이었지만그마저도값진경험이었다.선택하고,그선택에책임지며사는것이인생이라는진리를몸소체험했으니까._이세라,〈그런결혼은없다〉,130쪽

시간에대한주도권은내게정말중요한부분인데,회사를다닐때는별수없이내일과표가이미어느정도정해져있고나는그틀을따라야했다.그것이조직의기강이기에.그러나나는이따금궁금했다.대체어떻게전직원이12시부터1시까지,정해진시간안에만밥을먹지?왜그래야하고요?_이세라,〈일을계속한다는것〉,161쪽

외근업무를하다보면체력이금방소모되고언제신고가들어올지모르기때문에끼니를챙길기회가오면101퍼센트채워주는게좋다.저녁을적게먹었다가새벽에출동나가서졸음과도싸우고저혈당과도겨루며덜덜떨리는손으로일을하는경험은더이상쌓고싶지않다.일에제대로집중하고싶은마음에꾸역꾸역주어진몫을먹다보니소화불량과위염을달고산다.이게트라우마로남았는지,집에서는밥을(특히저녁)두시간에걸쳐먹는다._원도,〈가파른맛〉,170쪽

사실회사에서먹는점심식사는가장친하지않은사람들과먹는밥이라는점에서,때로는입안가득떠넣는한숟갈이참으로버겁게느껴진다.어떠한목적없이,저마다의밥벌이를위해좁고도넓은대한민국을돌고돌아만난각양각색의사람들끼리취향따위고려하지않고허기를달래기위해허겁지겁먹는식사는얼마나애석한가._원도,〈다짜고짜뭐먹을거냐니〉,178쪽

점심은읽기의시간이돼주었다.가장귀중한시간이된거다.점심에주어지는한시간을쪼개10분에서15분정도낮잠을자고남은40분은점심을먹으며읽고싶은글을읽었다.달콤했다.몇년전만해도점심은큰의미없이보낸시간이었는데.전부다시끌어모으고싶어졌다.삶은역시한치앞도알수없다.그렇게스물다섯부터서른사이의점심은들숨의역할을했다.절박했던내게그늘을구비해준시간이었다._이훤,〈어느개인의점심변천사〉,203~204쪽

침묵을하나둘수저로뜨며사람들이들어오고빠져나가는것을본다.분주하구나.우리는.이곳에서산다는행위는.숨과숨사이의간격을고루들으며식사를마친다.수저를내려놓는다.다먹은그릇의바닥을보며이어폰을귀에서뺀다.소리없던세계의볼륨이빠르게늘어난다.음악이사라지니이곳은다른속도로돌아가는듯하다.접시얹는소리.여기저기들리는수저와젓가락부딪치는소리.계산하기위해일어서는누군가의의자빼는소리.듣고싶지않을땐이런배경이전부소음같은데,이런날은내가혼자가아니라고해주는것같다._이훤,〈9월〉,216쪽

운동의문제는운동이스스로를노력으로변화시킬수있는개인적인매체라고생각하게만드는것에있다.운동을지속적으로하지않는사람은의지부족이니뭐니하는핀잔을듣는다.운동과신체만큼정직한게없다,노력한만큼결과가따른다따위의말이뒤따른다.이거봐,이거봐,내안의근육이이만큼자랐어!몸에관한이러한생각은좌파나우파,진보나보수할것없이공통적이다.과거에정신을찬양하고몸은경멸하는풍조가만연했다면어느순간몸은자신의자리를탈환하다못해거의최종심급이된것같다._정지돈,〈몸이예전같지않다〉,235쪽

오한기작가는소설을몰래본다는팬에게이렇게말했다.저도회사다닐때몰래소설썼어요.쉬는시간에,점심시간에몰래틈틈이.평생돈에쫓겨살며각종직업을전전한스위스의전설적인작가로베르트발저도일하는틈틈이,몰래책을읽고몰래소설을썼다고한다.왜그랬을까.그건그런행위들이사회에서일반적으로요구하는건전함이나올바름과거리를두고있기때문이다.가끔은체제전복적으로여겨지기도하고일탈로도여겨지는.그러니우리가욕망을느끼는건당연하다.그렇지만글을쓰고읽는길티플레저라면누구에게도해를주진않을것같다.그러므로내가하고싶은말은우리모두몰래읽고몰래쓰자.정지돈,〈길티플레저〉,237쪽

항상이동하면서김밥을먹거나시간을절약하고돈을아끼기위해샌드위치를사먹었다.점심시간이란것이내겐없었는데재택근무이후시간이늘어났고그늘어난시간에점심시간이끼어있게되었고더불어점심을먹어야하니점심준비시간이생긴것이다.그리고그점심준비시간에는음식뿐아니라늘어난시간만큼늘어난생각을정리하기위한정리해소용시간도포함되었다.나는최대한만들어야하는식사를준비하면서걱정과잡념을지워나갔다._한정현,〈떡볶이와의결별〉,254쪽

점심시간과엇비슷하게산책시간을갖게되면서나는점심을먹으러나온직장인들을주로마주하게되었다.그리고알게된사실은,점심시간에사람들이밥을먹는것외에도정말많은일을한다는거였다.병원에도우체국에도관공서에도사람들이많았다.한시간동안저렇게나많은걸하는구나,처음엔이런기분이들었고그다음엔……._한정현,〈우리의점심은그곳에오래남아〉,265쪽

집중력이흐려질때마다위급상황에비상벨누르듯간식부터찾다보니어느순간부터는당류를챙겨먹지않으면몸이먼저반응했다.머리가둔해졌고,손도느려졌다.중화반점도아닌데신속함이곧유능함의척도였던사회에서나는유능해지기위해서라도기꺼이밥은걸러도후식은먹었다.디저트섭취여부에따라발휘할수있는하루치몸과마음의힘이달라졌다.밥대디저트라는이상형월드컵에서별망설임없이디저트라는선택지를고르는편이었다._황유미,〈서른살버릇,마흔다섯까지〉,274쪽

올해가을엔점심시간에동네를산책하다지하철역근처에서부지런히걸음을옮기는직장인무리와마주친적이있다.같은명찰목걸이를찬채부지런히걸음을옮기는사람들과마주친그순간잠시몸이흔들릴정도로거센바람이불어왔다.(…)나뭇가지에서떨어진은행잎은회오리치는바람을따라나선형으로빙글빙글회전하며한참을공중에서맴돌았다.그순간“저것좀봐”라며누군가손가락으로하늘에서춤추는은행잎한무더기를가리켰다.감탄을숨기지않은귀여운어른덕에그옆에있던어른들도너나할것없이어른스러움을잠시내려두었다.은행잎의움직임에맞춰춤을추듯근처를서성이며여러각도에서은행회오리를관찰하는사람,그모든풍경을동영상으로담으면서마스크위로보이는눈매가기분좋게휘어지는사람,손을뻗어은행잎하나를낚아채주머니에넣는사람까지._황유미,〈어른의귀여움〉,294~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