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저자

강혜빈,김승일,김현,백은선,성다영,안미옥,오은,주민현,황인찬

시인강혜빈은2016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밤의팔레트』가있다.

목차

강혜빈
희망없는산책
다가오는점심
익선동
불꺼진집들
검은문

김승일
점심
점심으로의잠
만나서시쓰기
21세기에
총비

김현
잔설
겨울밤

점심
영혼곤란구역

백은선
만나서시쓰기
향기
마음의점

낮잠

성다영
저속한손
희생없는세계
점심산책
실종
주엽나무

안미옥
알찬하루를보내려는사람을위한비유의메뉴판
만나서시쓰기
공중제비
구즈마니아
넛트

오은
우리

그것
그들
그들

주민현
또다른정오
빛의광장
미술수업
한강
오늘의산

황인찬
철거비계
대추나무에는사람이걸려있는데
저녁이있는삶
만남의광장
하해

부록
혼자점심먹고나서그냥하는질문

출판사 서평

“점심은빛과어둠이나란한페이지
펼칠때마다눈을감았다”
점심의고유한시간성과다채로운풍경들,
점심이라는렌즈를통해들여다보는시적세계

강혜빈시인은한낮에산책하는화자를내세워점심시간의풍경을이루는사람과사물,공간을시의무대로올린다.김승일시인은특유의재치있는어조로낮잠때문에놓친중요한약속과낮잠때문에꾼기묘한꿈,동료시인과만나카페에서시쓰는점심에관한이야기를들려준다.김현시인은‘마음에점을찍다’혹은‘마음을점검하다’라는점심의본래의미를일깨우며할머니가부지런히살아낸시간을햇볕처럼따스하게감싼다.백은선시인은아침과저녁/밤의중간지대이자,하루의시작과끝을체감하지않아도되는시간으로서의점심을다룬다.성다영시인은주중과주말을불문하고카페에앉아점심이풍기는주황색냄새를맡으며시쓰는삶을차분하고쓸쓸하게노래한다.안미옥시인은식사와디저트가일상에끼치는영향과그의미를발견해가상의메뉴판에새겨넣는다.오은시인은경쾌한리듬감과말장난으로지인과의점심만남을묘사한다.주민현시인은시간의흐름을정오에서다른정오로의이동으로감각하는순간에주목한다.마지막으로황인찬시인은점심시간에야비로소숨돌릴수있지만화창한날에공원을잠시배회할뿐또다시회사에묶여있어야하는직장인들의속삭임에귀기울인다.이렇듯각양각색의시선이돋보이는시인들의점심세계에당신을정중히초대한다.

Q.작가님에게점심은어떤의미인가요?
○강혜빈:점심은나와친해지는시간.나를대접하는시간.재택근무할때는어떤음식이든근사한접시에담아플레이팅하고,손님에게내어주듯한상을차립니다.식사에진심인편이라사랑하는사람들이끼니를거르면제가스스로를돌보았던것처럼챙겨주려고해요.
○김승일:제게있어점심은직장인들이점심을먹기바로직전의시간입니다.제게있어점심은직장인들이점심을먹는시간입니다.제게있어점심은직장인들이아주잠깐앉아서쉬었거나테이크아웃으로커피만가지고떠난카페입니다.점심은텅비었고요.잠깐분주했고요.다시텅비었고요.그래서글을쓰기에아주좋은시간입니다.모두가열심히삽니다.나는게으르고카페는조용합니다.
○김현:점심은마음을점검한다는뜻이기도하지요.때론어쩌면자주그렇습니다.
○백은선:자주늦잠을자기때문에점심은하루의시작이자아침인것같아요.
○성다영:점심은저의기상시간에따라있기도하고있지않기도한어느시간의점같습니다.아침에일어나면점심은가볍게지나가는시간으로느껴지지만,늦잠을자서아침과점심사이에하루를시작하면점심은아침처럼느껴지고점심이랄것도없이어느하루는지나가기도합니다.
○안미옥:하루중유일하게자유로운시간.
○오은:저는아침을먹지않습니다.커피를한잔마시는게다예요.그래서점심을먹는일은하루의시동을거는일입니다.점심을먹고나서야머리가돌아가는게느껴질정도로요.
○주민현:맛있는음식을먹고주변을산책하며충전하는시간,뉴스기사를읽으며새로운이야기를찾는시간이에요.
○황인찬:낮에잠시숨돌릴수있어고마운시간입니다.그러나하루는이제겨우시작되었을뿐이라는것을깨닫는시간이기도합니다.




<본문에서>
오늘참쾌청하지요
공연히날씨이야기만하게되어도
저절로믿어지는사랑이있다

뒤돌아보지않고떠나는사람과
다만빈집으로두는사람

“아무도되지않아도괜찮아요”
_강혜빈,〈익선동〉,23쪽

여러분지금이점심이에요.우리세사람은만나서시쓰기고요.우리가여기서다같이시를쓰고있으면,우리가같이있으면,그게점심인거예요.아시겠어요?
_김승일,〈만나서시쓰기〉,41쪽

할머니와점심먹고할머니가머리를빗겨주고
할머니랑잤다

머리카락이하얘지고
쌍바라지를열면

할머니베개에는꽃새사슴
볕든다

할머니손잡고
노란나비따라갔다
_김현,〈점심〉,57쪽

지나갈거야오늘밤도
매일아침에해가뜬다는거
어쩐지기적같지않니

어젯밤엔
어김없이아침이찾아오는게지옥같다고
적어놓고
오늘은네게그런말을했다
_백은선,〈향기〉,70~71쪽

점심을다먹은사람들이주기적으로문을연다
무릇문이기때문에열어야한다는듯이
점심의주황색냄새와함께들어온다
창밖의활엽수는흔들리고
나는주제도없이무언가를쓰고있고요
사람들속에서레몬주스와커피를주문한다
_성다영,〈주엽나무〉,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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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잠은샌드위치처럼쉽게흩어진다9.0
너의신년계획은김밥처럼위태롭고무모하다4.5
너의허기는들깨미역국처럼불어난다8.5
너의앞날은두유크림파스타처럼뿌옇고고소하다13.0
너의오후는아보카도롤처럼속이편하다9.0
오늘기분은김치찌개처럼중간이없다7.5
오늘의할일목록은설렁탕에먹는깍두기처럼제멋대로다10.0
_안미옥,〈알찬하루를보내려는사람을위한비유의메뉴판〉,95쪽

한낮에기우는사람들이있었다.그때만큼은사이가좋았다.“‘사이좋다’라고붙여쓰는이유가뭔줄알아?사이가좋으니까.”실없는농담에도실실웃음이났다.“실이두개나있네?”듣고바로이해하지못해도넘어갈수있었다.아까는배고프다는핑계로,지금은배부르다는이유로.
_오은,〈우리〉,109쪽

점심의산책이란길을잃기에좋아서
춤도없이구름이구경꾼처럼모이는
정오의골목을사랑해
뾰족한담장과장미는경적을울리고
정오의식사
정오의살인
정오의텔레비전
정오의앰뷸런스를타고
어디선가멈춘…어디선가텅빈
골목길이있다면
정오는자정의다른말
빛은어둠과같은말
_주민현,〈또다른정오〉,119쪽

요즘위가안좋아요저는허리요사람들이모여서건강을묻고있었는데다들건강을비는것말고는할수있는것도없었다

사람들은어디먼곳에가고싶다고했다
모두가정말맞는말이라고도했다

그러나점심에는모두가묶여있죠잠시어딘가로떠났다가또금방돌아오죠식당과공원은너무가깝고공원은회사와너무가까워서다들정신이없었어요
_황인찬,〈만남의광장〉,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