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자리 (고민실 장편소설)

영의 자리 (고민실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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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직 1이 되지 못한 세상의 모든 0에게 바치는 조용한 응원,
고민실 첫 장편소설 『영의 자리』
한국문학의 새로운 발견, 고민실 첫 장편소설!
*
“유령이 되기로 했다. 배우가 되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취업 얘기다.”
*
설레면서 우울하고 혼란스러우며 버거운
그 지난한 0의 과정을 견뎌내면
우리는 마침내 1이 될 수 있을까?
*
아직 1이 되지 못한 세상 모든 0에게 전하는 조용한 응원

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고민실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등단작 〈쓰나미 오는 날〉에 관해 황종연 문학평론가와 김인숙 소설가는 “모더니즘 미학을 통과한 소설”이라 평한 바 있다. 《영의 자리》는 2021년 제26회 한겨레문학상 본심 최종 후보작이었던 두 작품 중 한 작품이다. 심사위원으로부터 “이런 문장을 쓰는 작가라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라는 평을 받은 《영의 자리》는 적막한 바다 위에 떨어진 조약돌처럼, 고요하지만 섬세하고 깊은 파장의 문장을 가진 소설이다.
세상에는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아직 그 무엇도 되지 못하고, 어느 곳에서도 자리 잡지 못한 채 어렴풋한 느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특별히 되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고, 남들만큼 평범하게 노력했지만 어째서인지 제 한 사람의 몫조차 지키기 어려운 삶. 이 책은 그렇게 아직 ‘1’이 되지 못한, ‘0.0000001’과 같은 존재들, 존재한다는 감각이 희미해지고 희미해져 유령에 가까워진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보다는 0에 가까운 사람들이 머무는 자리는 어디일까. “설레면서 우울”하고 혼란스러우며 때론 버거울지도 모르는 그 지난한 0의 과정을 견뎌내면 우리는 마침내 1이 될 수 있을까? 저자의 따뜻하고 차분하며 때때로 고독하고 관념적인 시선은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영(0)’의 세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영(靈)’이 되어버린 이들을, 위령제를 지내는 만신의 품처럼 조용히 또 조용히 어루만진다.

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게을렀던 건 아니다. 남들만큼은 노력했다고 믿었는데 부족했던 걸까. 더 노력한다고 달라지기는 할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들이 더 하찮아 보였다. _본문에서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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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민실

2017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저서로로장편소설『영의자리』,『홈가드닝블루』가있다.제11회교보문고스토리대상에서『잃어버린손가락』으로중장편우수상에선정되었다.

목차

1장
2장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세상은유령이살기에
더적합한구조로되어있는것같았다.”
덤덤하고세밀하게일상을관조하는유령의글쓰기

이름조차소개되지않는주인공‘나’는20대에정리해고를당하고,급하게이직한회사마저경영악화로폐업을하자돌연‘백수’가된다.학생,대학생,취준생……익숙했던‘생’의자리를박탈당한나는무엇이든되어야한다는위기감을느끼고채용사이트에서발견한한약국에취직한다.나이무관,성별무관,학력무관,경력무관이라는채용조건은누구라도할수있는일이라는뜻임과동시에누구라도대체할수있는일이라는뜻임을‘나’는알고있다.면접자리에서만난약국의국장김약사는대뜸“유령이또왔네”라며나를유령이라부르고,나는“상실에서벗어날수만있다면유령이되는것쯤은대수롭지않은일”이라생각하고또한명의유령같은인물,조부장에게일을배우며기꺼이유령이된다.
비슷한약의이름을외우고,처방전을입력하고,약값을계산하고,조제를돕는일상은다른듯다르지않게흘러간다.땅부자할아버지,문신토시를착용한남자,갈색푸들을데리고다니는할머니,치약값을깎는중년여자,판피린을사가는할머니등소설에는실제어느동네,어느약국에서나일어날법한상황이핍진하게묘사된다.그속에서나는사업실패로빚을지고이혼한듯한조부장과조금씩친밀해지지만역시그이상으로관계가발전하지는않고,자신의20대에깊은영향을끼진‘혜’라는인물과멀어지면서거스러미같은상실의날들을담담하게이어간다.그렇게결코아무일도일어나지않을것같은일상은,교통사고를당했지만멍자국조차남지않은나의모습이라거나,문신토시의남자가피를철철흘리며약국에찾아오거나,한중년의여자가김약사를향해화를퍼붓는상황속에서새로운국면을맞는다.

토시가피로물들면서검푸른색용무늬가지워져갔다.
─식겁하게저런걸입고다녀.다시는안왔으면좋겠네.
(…)남자가더듬더듬지갑을주워일어섰다.팔을타고흐른피가손목에고이다뚝떨어졌다.문을흔들어대는바람소리가황량하게들려왔다.비틀거리며걸음을옮기던남자의발에차인물건이계산대앞까지굴러왔다.장난감달린비타민이었다.
언제유령이됐는데요?
밀물이다가오듯얇게깔린물이순식간에차올라실내를가득채웠다.물속에서두개의빛이다가왔다.미지의생물이입을쩍벌리고내려와나를한입에삼켰다._본문에서

어렴풋한존재들,어렴풋한사건을관조하면서그이음새사이사이스파크가일듯벌어지는조그만환상들을놓치지않고표현해내는저자의화법을‘유령의글쓰기’로부를수있을까.한국문학의새롭고특별한발견이될고민실의서사는소설의주인공인‘내’가그리고독자인우리가살아온유령같은삶과대비되어더욱몽환적인매력으로다가온다.

“가끔사진을확대해볼때가있어.
어디선가한칸의자리를차지할수밖에없는작은픽셀이
모니터를꽉채우는걸보면위안이돼.”
아주작은존재들이모여이루는픽셀의바다

그렇다면1이되지못한0이할수있는일은아무것도없을까.0들의존재감은그렇게흐릿하기만한것인가.소설의2장에그실마리가담겨있다.나는열심히할의지도이유도없이다녀야하니까다니기로했던약국을그만두고회사에취직하기위해면접을보기시작하고,평소활동하던모임의사람들과함께주말집회에참석한다.이사회에서살아가는수많은0이한데모여같은곳을향해외칠때,그소리는분명어떤형태와목적을가진‘수’가될수있음을보여주면서소설은말한다.0은어떤값도나타낼수없는숫자이지만,“다른숫자뒤에채워넣기만하면얼마든지큰수를표기할수있다”고.픽셀처럼작은존재들이모이고모이면‘픽셀의바다’와같은무언가가될수있다고.
《영의자리》는과도화된경쟁과뛰어넘을수없는불평등속에서더좋은자리를점하기위해자신의모습을감추면서까지아등바등조급하게살지않기를바란다고말한다.작가의말처럼“아무리많이늘어놓아도영은영외에될수없”기때문에,그리고“다른숫자에기댈때영은우주의단위가될수있”기때문에.소설에나오는‘나’가무수한영의시간을지나회복의도약을시작할수있던것처럼,0도하나의삶의단위이자자리이고그자리를숨고르듯지켜내다보면뜻밖에기회나사건에서큰전환점을마주할수도있다.그러니까,지금의이이야기가있어야할자리는바로우리곁이아닐까.자신이불투명한삶앞에놓여있다고생각한다면누구나공감할수밖에없는,지금우리의이야기이므로.

영에어떤숫자를더하면영은사라지고그숫자만남습니다.영에어떤숫자를곱하면그숫자를영으로바꿉니다.아무리많이늘어놓아도영은영외에될수없습니다.다른숫자에기댈때영은우주의단위가될수있습니다.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