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해방의 괴물 (팬데믹, 종말,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철학적 사유)

좀비, 해방의 괴물 (팬데믹, 종말,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철학적 사유)

$18.32
Description
평범한 재난으로 가득한 이상한 세계,
좀비가 되어 ‘해방된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하다
재난 이후의 세계, 새로운 윤리를 위한 선언
코로나19의 맹위가 꺾이면서 우리의 일상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듯 보인다. 사적 모임의 인원 제한은 없어졌고,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방역패스를 찍지 않아도 되며,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매일 많게는 2만 6천여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되고 있고, 3월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40년 만에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일상의 회복’을 말하기에 앞서 코로나19을 다시 돌아봐야 할 이유다.

이 책은 좀비라는 렌즈로 아직 진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을 들여다본다. 코로나19 자체인 ‘감염병 괴물’이자 사회적 흐름에 따라 진화해온 ‘대중의 괴물’인 좀비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팬데믹의 근본 원인을 성찰하고, 반복되는 재난을 끝장내기 위한 윤리를 모색한다. 이렇게 좀비는 인간의 살과 피를 탐하는 괴물에서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나아가 재난 이후의 세계를 열어갈 주체, ‘해방의 괴물’로 거듭난다.
저자

김형식

KimHyeongSeek

문화연구자.중앙대학교문화연구학과에서문화이론과영상이론을공부했으며,2014년《문화/과학》으로문화평론활동을시작했다.지은책으로《좀비학》(2020),《재난과영화》(2022,공저)가있다.
절망에빠지지않고희망을간직하기위해절망을탐구하고자한다.빛의희미한궤적을추적하려면어두운장소로들어가야한다고믿는다.현실과불화하며세계에충격을선사하는것들,이를테면파국의위태로운힘이나괴물들의전복적가능성에관심을두고있다.
《좀비,해방의괴물》은재난과일상,좀비와인간,종말과유토피아,철학과대중문화를아우르는횡단적사유의결과물이다.팬데믹을둘러싼사회현상,담론,장르영화와소설등을비판적으로검토하고,반복되는위기를끝내기위한근본적이고급진적인대안을모색한다.

목차

서문:좀비가‘일상의폐허’를끝장내는방법

재난의시작
일상을있게하는영웅?
좀비는종말을꿈꾸는가?
이상한일상,평범한재난

1.종말:대안적세계를향한급진적사유

종말이후의세계
세계종말시나리오
초자연적종말
자연적종말
반자연적종말
종말의쓸모

2.세계:사유의종말에서사유의책임으로

세계란무엇인가?
새로운인류와범죄의세기
철학적사유의종말
근본악의유혹과사유의책임

3.자본주의:곤경에빠진탈영토화된괴물

자본주의의종말은가능한가?
벌거벗은리바이어던
좀비와자본주의
뱀파이어의몰락
포식자와전염병
영토화된괴물과탈영토화된괴물
탈영토화된재난

4.팬데믹:지극히매끄러운세계에닥친필연

종말100초전
초월적비합리주의와세속적비합리주의
페스트의교훈
재난의원인
모빌리티와좀비
전염병의정체화
방역인가,시장인가
얼굴과인간
생태주의와바이러스
재난의시대

5.좀비:몰락한아버지의세계를폭로하는타자

좀비의유행
외재적재난과내재적재난
아버지는무능하다
아버지는부재한다
아버지는괴물이다
아버지는반성한다
종말의종말,아버지의법을위반하라

6.유토피아:우리가‘미처’도달하지못한세계

세계는어떻게유지되는가?
일상과영웅
유토피아의그림자
불가능한유토피아
니체적종말
내재하는예외

7.자유:기입된선택지너머를욕망하기

복고주의적열망
양치기소년의역설
스피노자와자유
자유로운세계

8.미래:소진된가능성의끝에도래하는것

베케트의방식
가능성의소진
종말과사건
미래가능성

미주

출판사 서평

‘감염병괴물’로‘감염병재난’을돌아보다

“좀비에대한본격적인좌파문화비평을수행한국내첫저서”(문학평론가복도훈)인《좀비학》을썼던김형식작가는이번에는좀비를통해우리가맞이한재난,즉코로나19팬데믹을분석한다.좀비는인간을숙주로자신을복제하는‘감염병괴물’이라는점에서코로나19팬데믹에대한은유다.전세계적으로선풍적인인기를끌었던〈지금우리학교는〉,관객380만명을동원한〈반도〉등의좀비물이코로나19팬데믹시기에유행한것도,‘감염병괴물’이불러오는파국이‘감염병재난’을맞은우리의현실을환기했기때문이다.따라서좀비는“위기에빠진현세계를적확하게분석하고진단해,치료하고회복시키는일을돕는흥미롭고유용한길잡이이자우화”다.

좀비물이다른재난영화와차별화되는지점은좀비가철저하게‘내재적재난’이라는것이다.여타재난영화에서재난은지구로날아오는소행성이나외계생물의침략,혹은거대한자연재해등의형태로외부에서온다.하지만좀비는대개인간이만든바이러스에서탄생한존재로,외부가아니라내부에서온재난이다.또한좀비가갖는‘감염’이라는속성은내부와외부의경계를불분명하게만든다.인간도언제든지좀비가될수있기때문이다.따라서좀비를문제삼고격리하는것으로는사태를해결할수없으며,좀비를탄생시킨세계자체를근본적으로성찰해야한다.

좀비,몰락한아버지의세계를폭로하다

사실좀비는재난의원인이아니라결과다.재난의진짜원인은좀비가폭로하는“몰락한아버지의세계”다.수많은좀비영화에서아버지는무능하거나,곁에없거나,심지어는괴물그자체다.〈살아있는시체들의밤〉에등장하는아버지는아무런계획이나근거없이지하실로숨었다가자신은물론가족까지죽음으로몰아넣는다(무능한아버지).〈#살아있다〉의아버지는자녀와멀리떨어진곳에서어떤도움도주지못한채“아들!꼭살아남아야한다”라는무력한말만남긴다(부재하는아버지).〈28주후〉의아버지는좀비가된뒤악착같이자신의아이들만을쫓아다닌다(괴물이된아버지).죽는순간“미안해.이런세상에서살게해서,미안…”이라는말을남긴〈반도〉의아버지조차좀비로득실대는지옥을바꿀의지도,힘도없는무기력한존재다.그는달콤한말로아이들을위로한뒤그들을다시지옥속으로돌려보낸다(반성하는아버지).

좀비물이집요하게고발하는“몰락한아버지의세계”는아버지로상징되는기존질서,즉자본주의다.무한히팽창하는자본은생태계를파괴하며야생동식물들의영역을침범했고,인간과이들이접촉하면서새로운병원체에감염될가능성이커졌다.도시에인구가밀집되면서바이러스가빠른속도로퍼져나갈수있게됐고,자본의‘매끄러운’유통을위해구축한물류운송시스템과교통수단은바이러스를함께실어나른다.이모든것이‘감염병괴물’좀비가번성하기좋은조건이자코로나19팬데믹을낳은근본원인이다.“어떠한예외도없이모든지역과존재자에도달해기어이착취하고야마는글로벌자본주의의무분별한팽창과끝없는탐욕이야말로문제의핵심이며,팬데믹의본질이다.”

자본의탐욕스러운팽창을수행하며이세계를지옥으로만든존재가바로아버지다.〈부산행〉속아버지는회사의이익을위해죽어가는기업을살려냈는데,이기업에서좀비바이러스가만들어지고유출되었다.결국좀비를번성시킨것은괴물이된자본주의이고,좀비가불러오는종말을막기위해서는우리가맞이한재난의근본원인,자본주의를넘어서야한다.

소진된가능성의끝에떠오르는유토피아

하지만대체어떻게?“자본주의의종말을상상하는것보다세계의종말을상상하는것이더쉽다”(마르크스주의비평가프레드릭제임슨)의말처럼,이미세계의지배원리가된자본주의의외부를사유하는것은금기가됐다.‘우월한아리아인이지배하는세상’과‘계급이철폐된세상’이라는유토피아를꿈꿨던20세기의거대한두실패,나치즘과공산주의의악몽은유토피아를상상하는일이곧‘전체주의적범죄’로이어질것이며,‘지금의세계,자본주의야말로현실에서가능한최선’이라는주장을지배적인견해로만들었다.그러나이책은유토피아는“우리가‘미처’도달하지못한세계”일뿐이며,유토피아에대한상상없이는반복되는재난과위기를끝낼수없다고목소리를높인다.

여기서좀비는자본주의의모순을고발하는타자를넘어서자본주의가아닌다른세상,‘해방된세계’의가능성을내재한주체로거듭난다.저자는종말에서달아나기위해오히려종말을향해나아갔던작가사뮈엘베케트처럼,종말을가져오는존재인좀비를통해새로운세계의가능성을탐색한다.이책에따르면좀비는“소진된인간”(철학자질들뢰즈)이다.자본주의가‘자유’라는명목으로내미는선택지,그러나모든것을자본주의적생산과소비로포섭할뿐결코자본주의의외부는포함하지않는앙상한선택지를모조리소진해버린존재가좀비다.그리고이모든가능성을폐기할때만비로소선택지너머에있는잠재성-숨겨져있던유토피아가희미하게그모습을드러낸다.“좀비의뒤틀리고꺾인기형의몸은무엇으로든변신할수있는배아적신체다.”

‘종말을결단하라’…재난이후의세계를위한윤리

오랫동안우리의일상을송두리째바꿨던코로나19팬데믹의기세가수그러들었고,많은이들이‘일상의회복’을꿈꾼다.자유롭게친구들을만나카페에서수다를떨고,시간에구애받지않고술을마시며,힙한맛집탐방을다니던‘일상’으로돌아갈수있을거라고기대한다.

그러나좀비는재난의원인이우리가이제껏누렸던‘자본주의적일상’이었으며,이‘자본주의적일상’의종말없이는코로나19팬데믹과같은재난이반복될것이라는진실을폭로한다.우리는‘평범한재난’으로가득한‘이상한일상’을살았고,이미망가져버린‘이상한일상’이쌓인결과가바로코로나19팬데믹이다.따라서지금우리에게필요한것은‘일상의회복’이아니라‘일상의종말’이며,과감히일상을포기하고종말을결단하는것이야말로재난이후의세계에요구되는윤리라고,이책은역설한다.

팬데믹사태는우리에게시급하고중대한변화를요청하고있다.…윤리란나자신과타인,그리고세계를위해편안하고친숙한것들을기꺼이포기하는결단이다.윤리는위험을무릅쓰며낯선준칙과도덕을받아들이는용기와행동의과정안에있다.우리의목표는일상의수호나유지가아니라일상을끝장내는것이어야한다.일상의폐허위에서다른시작을예비해야한다._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