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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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제 내향형 인간의 시대가 왔다”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이제 ‘내향형 인간’의 시대가 왔다. 첫 산문집 《우아한 가난의 시대》(2020년 문학나눔 선정도서)에서 MZ세대의 만성적인 빈곤감과 우아한 삶을 향한 욕망에 관해 이야기했던 김지선 작가가 이번 책에서는 내향인의 거리두기와 내밀한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난 2년여간 코로나로 인해 생긴 물리적 거리두기는 사람 간의 심리적 거리두기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작가는 그 사이에서 묘하고 은밀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 ‘떳떳하지 못한’ 감정의 실체는 무엇인가. 내향인에게 거리두기란 ‘국가가 허락한’ 세상과의 거리이자, 자유로움이었다.
원만함이 최고 미덕이었던 한국 사회에서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기적인 사람’ ‘타인과 잘 못 어울리는 사람’ ‘유난한 사람’ 등으로 치부되어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고통스러웠던 팬데믹 상황에서 그간 무시되기 쉬웠던 개인의 시공간이 확보됐다. 공간의 밀도는 낮아졌고 관계의 점도는 떨어졌으며, 홀로 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워졌다. 집단주의의 관성이 일시적으로 해체되었으며, 개인의 선택이나 행동이 별스러워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열렸다.
작가는 빠른 속도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앞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최소한의 거리가 존중되는 세계에 관해 지속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혼자 점심을 먹으며 회복하는 시간’ ‘수치심을 처리하기 위한 장소 마련하기’ ‘안 웃긴 말에 무표정할 권리’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 활용하는 법’ ‘간장 종지 크기의 사랑일지라도 여러 개 품는 사랑’ 등 한정된 에너지 속에서 작가만의 내밀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을 통해 들려준다.

저자

김지선

1984년서울에서태어났다.대학에서국어국문학을공부하고영화지[프리미어]와패션지[마리끌레르][하퍼스바자]에서에디터로일했다.현재는출판편집자로책만드는일을한다.글을쓰는일을두려워하면서도내심좋아한다.다른사람이쓴글을읽거나만지는일은좀더산뜻한마음으로좋아한다.드러난것들과숨겨진것들사이에서,사라진물건을찾으며많은시간을보낸다.책『우아한가난의시대』를썼다.

목차

프롤로그

1부내밀예찬
점심이탈자
내밀예찬
재택의기쁨과슬픔
무표정의아름다움
말과시간의연주자들
어둠사용법
수치심을위한장소
걷기의예술
낄낄의중요성

2부숨고싶지만돈은벌어야겠고
숨고싶지만돈은벌어야겠고
스타벅스테이블라이터
간장종지크기의사랑
단골집의부재
고양이들의도시
이웃이라는낯선존재
예민한것이살아남는다
거울이다른거울을들여다볼때
이메일을보내며
파티션이있는풍경
술자리를추모하며

3부잃어버린정적을찾아서
3월2일의마음
누군가의집을방문할때
최선의솔직함
6인용식탁
잃어버린정적을찾아서
일머리가없다는말
의전의거리
오늘의메뉴
하지말아야할농담
몸에관한이야기
지루함의발명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추천의글>

에세이스트·《가벼운책임》저자김신회의말

함께함이미덕인사회에서굳이어려운길을택하는사람들이있다.흔히‘I’로일컬어지는그들은다말하지않는다.속을모르겠다는말을자주듣는다.하지만그안에는나를지켜내는힘이있다.자신과더깊이만남으로써세상으로나아갈용기를얻는다.그들의동력은자기안에서나온다.
이책은내향성이란연약함이아님을,모자람이나부적응이아님을알려준다.예민함으로부터시작되는배려,거리감이라는이름에가려진존중에대해이야기한다.있는그대로편안해지길원하는저자의진심은나처럼,E로보이려애쓰는수많은I들을위로한다.내가오해해온이들에게가만히이책을건네고싶다.그저,각자의모양대로자유로워지자고속삭이듯이.우리는모두어느정도내향적이고어느정도외향적이지않은가.

작가·《아무튼,잡지》저자황효진의말

‘나를혼자좀내버려둬’와‘아니,혼자두지마’사이에서자주갈팡질팡한다.나의우주를지키고싶은마음과우주의일부를나누고싶은마음은모순이아니라는걸,김지선작가덕분에알았다.혼자만의세계를가꾸고보살필줄아는사람은고립되길원하는게아니다.모든이에게지키고싶은고유한세계가있음을이해하고,각자가원하는정도와방식으로서로의세계에연결되기를바라는것이다.책을읽는동안김지선작가와의만남을상상했다.적절한표현을떠올리느라말을멈춰도,그러다잠시어색한공기가흘러도초조하지않을것같다.집으로돌아갈때같은지하철을타게돼도괜찮지않을까?그라면내가서서히나의우주로돌아가고있음을,이제그우주에는자신이나눠준조각도있음을애써설명하지않아도알것이기때문이다.


<본문중에서>

덜내뱉고덜뻗치고덜부대끼며살고싶은사람의소망이받아들여지기위해서는그사람이담긴사회의공기가희석되어야할것이다.아이러니하게도모두가고통스러웠던팬데믹상황에서잠깐그문이열렸던것도같다.집단주의의관성이일시적으로해체되었고개인주의자의선택이나행동이별스러워보이지않는세계가열렸다.빠른속도로예전으로돌아가는지금,우리앞에잠시모습을드러냈던세계에대해생각해볼필요가있다.우리에게필요했던사적공간과코로나이후에도유지되었으면하는최소한의거리에대해서말이다._7~8쪽

점심에사라지는사람들은홀로있는시간을해독제로여기는사람들이다.숨쉴틈없이몰아치는일과의한복
판에잠시호흡을고를수있는여백을만든사람들이다.일과중1시간이라도있는그대로의자신의모습으로돌아가에너지를비축할회복환경을구축한사람들이다.그리하여사라지는이들은결코외롭거나지루해보이지않는다.궁금하지만들여다볼수없는,결코들여다봐서도안되는그세계를즐거운기분으로상상한다.결국하고싶은말은하나다.1시간은너무짧다.우리에게는더긴점심시간이필요하다._19쪽

누가시키지는않았지만스스로오픈한개인SNS계정에서하루에도몇번씩무엇을노출하고,무엇을은폐하며,무엇을극적으로드러낼지를판단해야하는환경에서누구나어느정도는관종이될수밖에없는듯하다.우리는오로지타인의관심을얻기위해나의일상을전시하고,혼자아는편이나은진실을털어놓는다.이에대한해독제는역시나비밀이있는삶에있는것같다._25쪽

불면증이심해서잠을자지못하는날이많다는시인은평소에는무심히지나갔던감각들을예민하게감지하며밤시간을사용해보라고권했다.예를들면이불에맞닿는코의감촉,입안에서느껴지는맛,방안의온도,완전한검은색도아니고선명한파란색도아닌,밤부터새벽까지이어지며조금씩변해가는어둠의팔레트들을감상하면서말이다.…처음에는밋밋하게느껴지던시간이점점더입체적으로느껴진다.그리고깨닫는다.낮시간의나에게도이런시간이필요하다는것을말이다._43쪽

요즘나에게유용한것은에어플레인모드의시공간이다.정확한이유는모르겠지만부정적인감정을불러일으키는SNS포스팅을보지않기위해,이메일피드백에서잠시벗어나기위해,타인과직접적으로연결되지않고도균열이생기는멘탈을보호하기위해가끔비행기모양아이콘을클릭한다.평상시에걸려오는전화가많지않고,세상을향한소심한거부를해봤자알아차리는이도없지만일순간에모든것이차단된시공간에서안정감을느낀다.그리고다시에어플레인모드를해제할때쯤에는모든것이한결나아져있다._50쪽

다만이사실은기억해두기로한다.그것이우울한학교든,미래가없어보이는조직이든,어떤암담한환경에서도나를있는그대로보여주고낄낄댈수있는사람이한명씩은꼭있었다는것.그리고나는그를찾아냈다.함께낄낄댈수있는사람이단한사람이라도있을때,그곳은숨쉴수있는장소가된다.하찮고자잘하기그지없는행복과불행과기쁨과울분을나눌시간을확보하기위하여,오늘의할일을해치우고에너지를축적한다.나라는좁고편협한세계에서가장중요한가치인낄낄의힘에기대살아간다._60쪽

스스로내향인이라고생각하지만죽어도못하는것은없으며(세상에서가장두려운노래방에가서도책자를붙들고어떻게든버티는것처럼),받아들여줄것같은사람에게만본심을털어놓는,즉발디딜곳을보고발을뻗는사람정도로나자신을이해하고있다.아마도많은사람이그럴것이라고생각한다.그래서나는이러한모습이있고한편으로는저러한모습도있는사람들의의외성이흥미로우며,본성에맞지않는일을어떻게든해내는사람들의모습에서아름다움을느낀다._68쪽

내가가진사랑의총량에대해다시한번생각해본다.열자식은거뜬히거둬먹이는,퍼도퍼도솟아오르는,무한한어머니의사랑은환상이아닐까?쉽게지치고인내심은곧장바닥이나고하루종일허덕이다가잠시나마혼자만의시간을보낸후에야간신히찰박하게차오르는사랑도있지않을까?자기애로충만한모성도모성이지않을까?그러니까어떤사람의그릇은간장종지크기가아닐까?_77~78쪽

처음사용해보는무인시스템내부를두리번거리다창문에붙은메모를들여다보게되었다.다녀간사람들이붙여놓은포스트잇조각들이었는데,주로‘콘칩골드’나‘파워에이드큰것’을부탁한다는요청이주를이루었지만“완전싸고좋음!”이라거나“부자되세요”라는글귀도있었다.“여기,사람있어요”와같은느낌이랄까.가게에서만나볼수없는주인은쪽지에일일이답변을달아놓았다.아직까지는사람들이물건을사면서누군가와대화를나누기를원한다는것을증명하는,환대가조금씩사라져가는시대에잔존하는환대의조각들이었다._84~85쪽

내가아닌존재에대한최소한의관심과책임감을가져야비로소지켜지는세계가있다.전세계가파란색과노란색으로물결치고있는지금,우크라이나의이웃국가들은피난민들을돕기위해국경을허물고있다.평화로운한세계를무참히짓밟을수있는것도,지지와도움의손길을뻗을수있는것도이웃이라는당연한진실을절실하게깨닫는다.벽하나를사이에두고살고있는,가깝고도멀고,멀고도가까운사람들에게나는어떤환경일까?우리가유지해야하는적절한거리는무엇일까?_95쪽

코로나이후의시대에도유지됐으면하는것들이몇가지있다.무언가를하기전에잠시망설이는시간,누군가에게다가서는대신물러나는몸짓,관습을전복하고하던대로하지않아보는경험들이귀하다.무엇보다잊고싶지않은것은나라는존재가타인에게유해할수있다는사실의자각과그로인한배려의감각이다.원래우리에게필요했지만우리사회에절대적으로부족했던감각들이다.그것은정확히각자가가진예민함만큼의거리일것이다._99쪽

유행은바뀌고유행을둘러싼풍경은금세변한다.그런데몸에아로새겨진감각은잘변하지않는다.이러한유행을통해우리가잃어버리게된것은나의두눈을통해세상을보는감각일것이다.사물을,공간을,세상을피상적으로보는대신제대로감상하기위해서는당연하게도적절한거리와여백이필요하다.그러나우리는시시때때로나와세상사이의공간에카메라를끼워넣는다.스스로를주체가아닌객체로,그러니까타인의구경거리로만들고있는것이다._104쪽

파티션이사라진공동책상에서커피를손에들고훈훈하게대화를나누던동료들의책상에도한두권씩책이쌓이기시작했다.결국아슬아슬한책과서류의탑으로구획된각자의공간이만들어졌다.…어렵사리얻어낸자기만의공간에취향껏영역표시를해놓은사람들의책상이귀엽게느껴졌다.세상의모든파티션이사라진다면현대인의정신질환종수가훨씬더늘어날것이다.모두가벽을허물라고말하고있지만,사실우리에게는더많은벽이필요한지도모른다._112쪽

나는오래보아도알듯말듯한깍쟁이들을좋아하는편이다.…가끔은자신이한말을뒤엎는선택을하는사람들의복잡성을관찰하는일이흥미롭다.복잡한이해관계와단순하지않은아이러니를품은세상을설명하기위해서는복잡한언어가필요할때가있고,그들이라면그언어를구사할수있을것같다.그언어가지닌미묘한뉘앙스의차이를찬찬히곱씹으려면시간과마음의여유가필수적이니,너무발동동구르지않고살아가고싶다.언제든지나의삶에각색,은둔,은유의자리를남겨두었으면한다._136쪽

사실우리를끈질기게따라다니는것은이보다일상적으로요구되는의전이다.배달음식이주문되고도착하여포장재가벗겨질때까지우아하게자신의자리에서업무에열중하는자,자신의컴퓨터에문제가생겼을때당연한듯이신입직원을부르는자등은개체수가크게줄어들었을지언정현대의사무실에도여전히자리를보존하고있을것이다.신입직원시절의나역시이런상황을마주할때마다‘그래,어찌됐든저사람은어른이니까’하며스스로위계가아닌예의에의해움직이고있다는최면을걸었던것같다._155쪽

몰입할수있는일이있고,나에게만의미있는자잘한성과와실패가있으며,그에따르는만족감과아쉬움이있다면매일똑같아보이는하루도스스로에게는결코똑같지않다.내가통제할수없는고통과환희의드라마에휩쓸려떠내려가기보다는아주조금씩다르게변주되는일상의결을느끼며살아가고싶다.그결과가지루함에대해잘알지못하는지루한인간으로남는것일지라도말이다._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