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경우가그렇지않다해도어쨌든그건우리가서있는곳에대한이야기였다.그리고‘중독’이라는말은그런위치를드러내기에적합했다.(중략)내가다루고자하는문화주제들과,몇언론이나소비시장에서언급하는문화트렌드는상당수겹친다.다만나는중독된자로서,문화를중독의언어로쓰고자했다.”_11~12쪽
“내자리를더듬어보면,분명차가웠다”
환상을걷어내고핍진하게그려낸청춘의‘겨울’
청춘은그이름에서도알수있는것처럼,흔히봄에비유된다.햇빛을머금은씨앗에서꽃과새순이피어나듯청년은모든가능성으로가득한푸릇한존재로비쳐진다.특권과도같은그뜨겁고푸르른‘젊음’을알차게누리지못하면사회적으로‘직무유기’와맞먹는비난을받기십상이다.열정을상실한젊은세대,뭐든지쉽게포기하는청년,조직이나사회규범에녹아들지못하고혼자부유하는2030젊은이들은그자체로‘문제적’이다.
하지만도우리는과감히그청춘이라는은유를비틀고찢는다.애초에“봄의상징처럼눈부시고푸르른모습만이청년이아니라고”,“청춘인우리는단일하게푸르지않다”(12쪽)고말이다.오히려기회와가능성을빼앗긴채불평등한사회와궁핍한현실에아등바등홀로맞서는게오늘날청춘의모습에가깝다.청년의현실과동떨어져덧씌워지는허황된기대를문제제기하며,저자는자신역시‘자본없는자본주의인간’이자‘사수없는노동자’,‘집없는심미주의자’로서사회가제시하는‘정상적인’삶의지표를따르는것은마치환상을욕망하는것과다름없다고고백한다.
그렇다면과연진짜문제는무엇일까?푸르지않은청춘도,중독그자체도아니다.바로청춘주변의차디찬사회적토양이다.앞선비유를빌려,청년역시싹을틔우고뿌리를내리기위해햇빛이필요하지만,정작오늘날청년위에드리워진것은그늘뿐이다.《우리는중독을사랑해》는각장의중독문화분석을토대로사회의그림자를주목한다.구체적으로,경제적불평등·빈부격차·젠더이슈·주거빈곤·인력난·과도한효율만능주의·파편화등중독이면의다층적인사회내문제구조들이다.이처럼사회·경제적으로낙오되고방치되는불안한현실속에서중독문화는한줄기빛처럼환상적욕망을이룰,쉽고도유일한해결책이될뿐이다.도우리는자신을포함해‘겨울’을살고있는청춘-여성청년,아픈청년,빈곤한청년과퀴어한청년-을두루호명하며,청춘의겨울을담아낸이책이지금의다양한사회문제를바라보는새로운관점을제시하고사회적상상력을넓힐수있기를기대한다.기꺼이지금의“문화생태계를‘오염’시키기를”(13쪽)바라는마음으로.
“그럴때내가존재하는시공간의계절을감각하는건도움이됐다.눈을감고가만히내자리를더듬어보면,분명차가웠다.그리고가끔참지못하고가쁜숨을내쉬는또래들에게,나처럼희뿌연입김이보였다.미리주제를설계하기보다그입김의소리와형상들을따라가다보니갓생·배민맛·방꾸미기·랜선사수·중고거래·사주·안읽씹·데이트앱·좋아요라는주제가갈무리됐다”_13쪽
“나는자본없는자본주의인간이아닐까?”
욕망과불안,가난한현실사이달콤한선택지
“내가갖고싶은옷의가격은내옷서너벌을팔때가격과같다는것.이가격차이를메꾸다보니결국중고거래에서번돈보다쓴돈이더컸다.그래서내되팔기에는애초부터한계가있었다.내근로소득수준에서의류비로지출할수있는한계.(중략)문화에대한취향은단지사적인게아니고계급이첨예하게구별되는장이라고.어느순간부터는이런중고거래앱을구경하는게고통이되었던이유다.내가결코걸치지못할우아하고빛나는천쪼가리들은나의가난을훤히비췄다.”_123쪽
《우리는중독을사랑해》의1장〈갓생〉은신조어‘갓생’이신(god)의경지에오른충만한삶을표방하면서도비로소타인의인정이있어야만완성되는모순을지적하며시작한다.과도한생산성을강조하고천편일률적인미의기준을따라전시되는갓생을경계함과동시에,진정한삶의의미란무엇인지에대한사회적차원의고찰대신행복을볼모로잡는자본주의산업의꼬드김만이넘쳐나는세태를비판한다.이와같은극강의효율추구는식생활에도영향을미친다.2장〈배민맛〉에서는가짜리뷰서비스와배달노동자처우문제등배달앱플랫폼의구조적인문제를드러내며,기계처럼일하느라배달앱없이는성립하기어려워진,현대도시인의바쁘고척박해진식생활을분석한다.배달앱이반쪽짜리‘질좋은식사’를제공한다면,오늘의집등인테리어쇼핑앱은주거불평등에대한반쪽짜리해결책을제시한다.3장〈방꾸미기〉에서는집을사기어려워진시대에인테리어사치재만은점점더쉽고빠르게소비되는현상을포착한다.
이와같은,정보·통신기술의발전으로이제우리는조그만핸드폰으로음식,가구뿐아니라사람도살수있게됐다.4장〈랜선사수〉에서는노동현장에서일을가르쳐줄사수를만나지못하는신입노동자들이따로돈을내고‘온라인사수’를찾아나서는현상을통해노동환경의근본적인개선없이개인이발품팔아일을배우도록내모는현실을꼬집는다.이처럼개인에게다층적인역할을수행하고끊임없이‘노오력’하기를요구하는자본주의의입김은노동시장뿐아니라중고품시장에서도유효하다.5장〈중고거래〉에서는판매자가물건상세사진촬영부터구매자를응대하는감정노동,물건포장과택배배송까지오롯이책임져야하는기이한구조를비판하는동시에중고거래앱을통해알수있는한국사회의지평,물질만능주의와지역간경제·문화적불평등을설명한다.6장〈안읽씹〉에서는콜포비아에이은‘톡포비아’현상안팎을들여다보며인터넷내에서과도하게연결되는세상에서진정한대화란어떻게나눌수있을지에관한고민거리를던진다.
한편,저자는화두를확장해사회내만연한불확실성과불안속에서개인이무엇에마음을기대어살아가는지짚어낸다.7장〈사주풀이〉에서는명쾌하게미래를알려주고나름의원리와이유를설명해주는신점이나사주,타로가특히젊은세대에게‘K-심리상담’의역할을톡톡히해내고있음을보여준다.8장〈데이트앱〉과9장〈#좋아요〉는공통적으로,개인의요동치는외로움과불만족스러운현실그리고온라인에서비대해진자아사이의괴리를꼬집으며,관심을받고친밀한관계를맺고싶은욕망의실타래를풀어낸다.
“우리가손을내밀어준다.계속한번살아보자고”
중독,그너머의삶을상상하며
“이책에나의너무많은것을투사해버렸다”(225쪽)는저자자신의고백처럼,도우리는모두가공감할일상의사사로운풍경뿐아니라그누구라도비밀로숨기고싶을군색하고은밀한감정구석구석까지꿰뚫는다.그렇게명징한통찰에흠칫하다가도명랑한언어로쓰인저자의명쾌한진단들에서희망과용기를읽어낼수있다는점은이책의큰매력이다.도우리는얼룩지고울퉁불퉁한자리를똑바로응시하되욕망을쉽게매듭짓거나단념하지않는다.오히려차가운자리를툭툭털고일어나조금더따뜻한자리를함께만들자고,그곳에서계속해서다채롭게소망하고원하고시도하고살아가자고말한다.더나은미래로꿋꿋하게이어지는도우리의시선이책을뚫고나와세상의엉망을감각하며살아가는모든독자에게도전해지기를바란다.그렇게중독,그너머의삶을상상해볼수있기를.
“내욕망은번번이검열되었고나자신조차해석하려들기바빴다.데이트앱이라는플랫폼은문제적이나결국핵심은아니다.나는내욕망이제멋대로들끓고주제넘게굴도록둬보고싶다.때로,나는계속다양한방식으로외로울것이고나의친밀성은대체로너무차갑거나후덥지근하거나미세먼지와모래바람이몰아칠것이다.(중략)그랬거나그러고있는여자들의이야기를더들어보고싶을뿐이다.그렇게몸을기울이다문득전혀낯선세계에도달하면잠시어색해하다가,옆의다른존재들과함께기꺼이크게숨을들이쉬리라.”_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