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문명세계가만든‘유대인신화’
유대인에게는하나의신화가따라다닌다.고대팔레스타인땅에이스라엘통일왕국을세워영광을누렸지만,로마에의해추방된뒤낯선땅에흩어져살면서많은차별과박해를당하고,2000년만에마침내고향으로돌아와‘유대국가’를건설한민족이라는신화다.
이책은유대인에대한이런신화들을낱낱이해체한다.성서에기록된다윗과솔로몬의이스라엘통일왕국은궁벽한산악부족국가에불과했고,로마가생산자이자납세자인유대인들을대거추방할이유가없을뿐더러이를뒷받침할증거도없으며,유대인들이흩어져사는것은애초에다양한지역에살던토착주민들이유대교로개종한결과다.이처럼역사적사실과부합하지않는신화는,기독교문명세계가유대인을박해하는과정에서만들어졌다.“만약유대인이존재하지않는다면,반유대주의자가유대인을고안해낼것이다.유대인은반유대주의가만든다”라는철학자장폴사르트르의말처럼,기독교문명세계는‘우리’기독교도를더욱단단히결속할목적으로유대인이라는타자를발명했다.기독교문명세계는유대인을‘예수를거부한죄로저주받고,천한신분으로떨어진자들’로규정했고,그들에게예수의재림과세상의구원이라는기독교교리의승리를목격하는증인의역할을부여했다.
유대인들도자신들이고향에서‘유배’됐다고주장했다.그들은기독교세계내의소수자로겪는고난에종교적의미를부여하기위해,유배를“여호와께서그사랑하는자들을징계”(잠언3:12)하는것이자자신들의‘선택된’지위에대한확인이라고믿었다.“예루살렘에서추방된사람들의후손임을주장하는것은아브라함,이삭,야곱의자손에속하는것이고,이는‘선택된백성’의일원이되는데에필수적이었다.”(94쪽)
차별이가져온유대인해방,해방이불지핀반유대주의
주로종교적차원에서이뤄지던분리와배제는기독교세계의사회경제적변화에따라새로운양상을띠게됐다.‘유대인=고리대금업자’라는이미지가이를단적으로보여준다.유대인들이고리대금업에종사한데는크게두가지이유가있다.첫째,중세기독교는이자수익을부정한것으로간주했기때문에‘기독교세계내의타자’인유대인들이이역할을맡았다.둘째,유대인공동체가소수자의생존전략으로채택한율법교육때문에문해력을갖추게되면서유대인들은자연스럽게금융,교육등의분야에진출했다.
‘유럽의기독교봉건세계는유대인을배제하는차별을했으나,이는사실유대인을그속박에서해방시켰다’는역사학자맥스디몬트의지적은의미심장하다.유대인은게토에유폐되어군중속에모습을드러낼수없고,기독교도가혐오하는직업만가질수있는등봉건체제에서차별받고배제되는존재였으나,역설적으로그랬기에기독교도농민들이겪던봉건체제의억압에서벗어나도약할수있었다.차별과멸시속에서도일부유대인은유럽의궁전에서재정과군수조달을책임지는‘궁정유대인’으로성장했다.나폴레옹전쟁당시유럽각국의채권발행과인수업무를맡았던로스차일드가문은막대한부를쌓은것은물론이고,유럽의‘6왕조’중하나로불릴만큼정치적으로도막강한권력을행사했다.
하지만소수유대인의성공이뿌리깊은유대인문제를해결할수는없었다.오히려비천한존재여야할자들이현실에서는부와권력을쥐고있다는기독교도들의반감을불렀다.경제공황,혁명,전쟁등이세계지배를위한유대인들의음모라고주장하는《시온의정서》가널리유포됐다.
민족주의와인종주의도반유대주의에불을지폈다.통일전후로민족주의가고양된독일은게르만민족의우월성을강조하기위한비교대상으로유대인을선택했다.1차대전에서진이유가유대인이‘등에칼을꽂아서’라는주장이퍼졌고,‘열등한인종’유대인을말살하려는홀로코스트까지벌어졌다.러시아에서도유대인40명이사망하고,3000여명이다친오데사포그롬을시작으로민스크,바르샤바,엘리자베트그라드등에서유대인박해사태인포그롬이연달아발생했다.
피해자였던유대인,가해자가되다
반유대주의의기승은유대인들에게‘현지동화는불가능하다’는생각을심어줬다.테오도어헤르츨등의유대인은팔레스타인으로귀환해‘유대국가’를세워야한다는시오니즘운동을전개했다.팔레스타인을식민화해자신들의세력권으로만들려던영국은유대인이자신들의중동지배에유용할것으로판단해시오니즘운동과손을잡았다.특히영국은밸푸어선언을통해팔레스타인에서의유대국가건설을지지했는데,이는서구기독교세계가만든유대인문제를중동으로수출하는일이었다.
우여곡절끝에완성된‘유대국가’이스라엘은오랫동안인종주의의피해자였던자신들이인종주의를내세워팔레스타인주민들을차별하는모순에봉착했다.이스라엘시민권을가진아랍계주민들의축출을공식적으로요구하고,인종주의범죄로유죄선고를받았던이타마르벤그비르가치안장관으로임명되는곳이오늘날의이스라엘이다.유대민족주의와함께사회주의적이상을내세웠던건국의주류들은1970년대부터팔레스타인과의평화협상을추진했지만,이에대한내부반발로실각했다.
그후로진행된팔레스타인과의평화협상시도는큰성과를거두지못했고,‘이스라엘은유대인의국가’라고선포한베냐민네타냐후총리의재집권으로이스라엘의우경화가완성됐다.벤그비르와네타냐후가손을잡은지금의이스라엘은팔레스타인과의평화협상을추구할의지도능력도없다.
“인종주의광기때문에집단수용소에서죽어간이들의피와뼈로세운이스라엘은인종주의범죄경력이있는인물이치안장관이되는현실에직면하고있다.유대인과이스라엘을둘러싼역사는잔인한역설이다.”(444쪽)
‘인종차별의원형’으로한국사회의차별을읽다
‘역사상가장오래된증오’이자‘인종차별의원형’(철학자크리스티앙들라캉파뉴)인유대인문제를들여다보는일은인류사에서항상존재해온차별이왜탄생하고어떤논리로작동하는지,차별을해소하려면무엇이필요한지를이해하는일이다.
이책이시의적절한것은한국에도다양한소수자차별과혐오가존재하기때문이다.‘유대인’을여성,장애인,성소수자,이주노동자등의단어로바꾸면유대인문제를낳은타자화의논리,‘우리’와‘저들’을구분짓고차별하는행태는그대로한국사회의현실이다.특히외국인,타문화에대한차별은반유대주의처럼인종주의로나타나기쉽다는점에서한국사회에도의미하는바가크다.당장대구에서는이슬람사원건립을둘러싼갈등이2년동안이어지고있으며,일부주민들은이슬람에서금기시하는돼지머리를골목에두거나바비큐행사를벌이기도했다.“한국사회에는지금‘우리’와‘저들’의구분이없는가?”(18쪽)라는저자의질문이아프게다가오는대목이다.
‘혐오’가가장뜨거운화두인시대에발간된《유대인,발명된신화》는한국사회에존재하는‘우리’와‘저들’의이분법을넘어서려는이들에게좋은지침서가될것이다.
책속에서
이스라엘건국은서양기독교문명세계가낳은유대인문제의파생품이다.서양기독교문명이성립된뒤계속된차별과배제의상징인유대인에대한박해는전후이스라엘건국으로귀결됐다.이스라엘건국은박해받은유대인이라는‘민족’혹은‘집단’의자구책이겠으나,이는팔레스타인주민이라는‘민족’혹은‘집단’에대한또다른차별과배제를낳았다.유대인은자신들의이스라엘건국정당성을찾으려다가,자신들을박해한나치독일의인종주의와민족주의를닮아갔다.
차별과배제,박해를당한유대인이자신들의고난과는아무상관이없던다른집단을배제하고차별하는방식으로자구책을찾았다는게현대세계에서유대인과이스라엘문제의본질이자모순이다.이를유대인들의책임으로만돌릴수는없다.유대인문제는서양기독교문명이만들었고,현대이스라엘문제역시영국·미국등기독교문명에입각한패권국가가만든국제질서의산물이기때문이다._5쪽
유대인문제는기독교세계가자신들의정체성확보를위해타자를만들어내는과정에서발생했다.‘우리’라는개념은‘저들’이있어야성립한다.뚜렷한영토적경계도없이여러언어가뒤섞여존재하는유럽의주민들에게자신들과구별되는가장가까운타자는그들과뒤섞여살고있던유대인이었다.차별과배제는‘우리’와‘저들’을가르는수단이다.…기독교도는유대인을창조했고,유대인은팔레스타인인을창조했다.한국사회에는지금‘우리’와‘저들’의구분이없는가?_17~18쪽
추방,유배,유랑,이산,박해,귀환….
유대인과그역사담론을관통하는상징어들이다.유대인은로마정복자들에의해팔레스타인땅에서추방돼,낯선땅으로유배되어,전세계를유랑해,뿔뿔이이산돼,현지에서박해를받다가,결국팔레스타인땅으로귀환해이스라엘을건국했다는것이유대인과이스라엘역사의중심내러티브이다.
과연유대인은고향팔레스타인땅에서완전히뿌리뽑히고후손들이2천년간낯선땅들로이산했음에도그혈맥이면면히이어지다가팔레스타인땅으로귀환한것일까?이는유대인문제와역사담론의핵심이지만,역사적사실로객관화하는작업은무의식적으로,혹은의도적으로회피되어왔다.이를그저당연시했을뿐이다._84쪽
유대인=고리대금업이라는등식과이미지는어쨌든근대로갈수록유대인의정체성과박해로이어지는중요한요인이됐다.이는과연기독교세계가유대인에게강제한것이고,유대인은단순히기독교세계의강제로‘기생충’이되어서박해를받은피해자일뿐인가?
유대인문제에서중요한이사안은기원이후유럽과중근동의역사속에서생존하려는유대교공동체의대응이라는관점에서도살펴야한다.유대인이중세시대때봉건체제의주산업인농업에종사하지않고,금융업이나상업등중계적인직역에종사하게된것은기독교세계의배제와차별의결과도있지만,유럽과중근동의역사속에서유대교공동체가진화한결과라는측면도있기때문이다._141쪽
기독교도에게유대인은타자였으나,내부의타자였다.유대인이기독교세계에살고있기도했고,기독교서사의역사적증거물인구약의백성이었기때문이다.유대인은성서에서말하는대로여전히하느님의‘선택된백성’‘특별한백성’으로남았다.그들은하느님의섭리를드러내는선택된백성이기는했다.예수그리스도를거부함으로써저주받고비천한상태에처하고,예수의재림과함께그들도해방되는역할로신의섭리를드러내는선택된백성이었다._142쪽
유대인에대한차별과박해는그들에대한기독교세계주민들의양가감정으로촉발된다.유대인들은자신들보다비천한존재여야하는데,세속세계에서는자신들이아쉬워해야하는처지였기때문이다.멸시와열패감이라는양가감정이었다.이는유대인이기독교봉건세계에서농노등주민들을상대로세금을징수하거나,재산을관리하면서지배층과피지배층을연결하는중간숙주계급역할을했기때문이다.
따라서영주등지배계급에게유대인들은자신들의부와권력을일구고관리하는데필요한존재였다.하지만동시에,비천한지위에있어야하는혐오스러워야할존재였다.이는필요하면유대인의재산을빼앗는명분이됐기때문이다.주민들에게도유대인은영주를대신해세금을징수하는대리인이거나,돈을빌려주는대금업자였다.유대인은고혈을빨아가는착취자로각인될수밖에없었다._157쪽
유덴가세게토를둘러싼담장에그려진벽화는이곳에사는주민들이감옥의죄수만도못한존재임을말해준다.벽화에는암퇘지를둘러싼유대인세명이그려져있다.한명은돼지의젖을빨고,유대교성직자인랍비복장을한또다른한명은돼지의꼬리를들어주고있으며,다른한명은돼지오줌을받아먹고있다.…주변지역의성직자와직업조합인길드의요청에따라서,게토의유대인에게는오직기독교도주민들이경멸하는직업만허용됐다.서부와중부유럽의유대인중4분의3은노점상과행상,거리의대금업에종사했다.일부유대인은작은가게를차리기도했으나,대부분은그렇지못했다.거지,칼잡이,뚜쟁이,심지어도둑등의상당수가유대인이었다.이는유대인은비천하고비열하다는기독교도의편견을강화했고,다시유대인을박해하는악순환을만들었다._164~166쪽
이런지독한차별과천시도당시의시대적맥락에서파악할필요가있다.유대인은도시의기독교도주민보다는권리가적었지만,당시유럽의농촌대중보다는의무도적었고혜택을누렸다.…유대인들이해가뜨면게토에서나와주변마을을돌아다니다해가지면게토에다시갇혔다면,농촌주민들은해가뜨면가축우리같은집에서나와농토에서묶여일하다해가지면그가축우리로돌아와갇혀지냈을뿐이다.…유럽의농민이왕이나영주에게징집되어생업을박탈당하고목숨을잃는동안유대인은이곳저곳을돌아다니면서세상의변화를깨닫고그에맞춰변신을할수있었다.‘유럽의기독교봉건세계는유대인을배제하는차별을했으나,이는사실유대인을그속박에서해방시켰다’는유대역사학자맥스디몬트의지적은유대인의역사를이해하는열쇠이다._167~168쪽
유럽에서교역과제조업이발흥하면서전통적인직업조합인길드의영역을넘어서자,유럽각국절대왕정의중상주의는국제적인거래를감당할수있는이들이필요했다.특히수많은전쟁을치른유럽각국의절대주의왕정에는군수품조달이중요한과제였다.군수품조달자는거의예외없이유대인이었다.유럽각국뿐아니라신대륙과중동에흩어진유대인사업가들은전쟁에필요한물자와그재정을조달하는광범위한경험과네트워크를가지고있었다.특히유대인상인들은17세기전반부에유럽중앙에서벌어진30년전쟁와중에교전당사자들의자산을인수하거나팔면서부를축적해그기반을닦았다._175쪽
열등한종가운데에서,독일우생학자들이게르만족혈통에대한명확하고유일한위협으로지목한것이유대인이었다.유대인이게르만족사이에섞여있기때문이었다.우생학자카를스트라츠CarlStratz는“유럽유대인들은주변의다른민족들보다장애인비율이가장높다”며유대인들이안짱다리,평발,곱사등,새가슴,그리고무엇보다도신경쇠약등다양한유전적질병에시달린다고주장했다.독일우생학은유대인의이런생리적특성을그들의사회적행태와연관시켰다.…20세기에접어들면서,유대인은이제종교적신념이문제가아니라인종적유전에문제가있는존재로바뀌게된다.타락한인종인유대인은타락한행태를보일수밖에없다는근대의반유대주의는이렇게완성됐다.19세기중반이후자본주의전개가부르는다양한사회경제적위기는반유대주의와결합하면서유대인에대한박해로귀결되어갔다._224~225쪽
밸푸어선언에서“팔레스타인의기존비유대인공동체들의시민적,종교적권리를(…)손상시킬수있는일이행해져서는안된다”는표현은향후팔레스타인에서벌어질갈등과대립을예고했다.
이는서구기독교세계가만들어낸유대인문제를중동으로수출하는것이었다.…밸푸어선언은지금은익숙해진‘2천년동안계속된아랍민족대유대민족의대립’이라는표현의시발점이기도하다.하지만,‘아랍대유대민족의대립’이라는개념은기껏해야20세기이후성립된것이다.중동에서팔레스타인분쟁은이렇게서구의기독교세계가유대인문제를이슬람권에수출함으로써기원했다.서구의유대인문제에서피해자이자약자는유대인이었는데,중동으로수출된유대인문제에서가해자이자강자는유대인이었다._312~314쪽
팔레스타인현지주민과유대인사이의대립과갈등은유대인입식의필연적결과물이었다.팔레스타인주민들도이방에서온유대인이그땅에서새로운집단으로출현하자그에맞서는정체성을형성했기때문이다.…유대인들이팔레스타인에서국민국가를건설하려는움직임으로가속화되자,이로인해소외되고배제되는팔레스타인주민들역시타자화된정체성을가질수밖에없게된것이다.유대인의도래는팔레스타인주민에게자신을‘팔레스타인지역에서살던아랍주민’에서‘팔레스타인인’으로서인식하게하고,더나아가‘팔레스타인민족’으로서여기게했다.팔레스타인주민을본격적으로그땅에서내몰아난민으로만든이스라엘건국은팔레스타인주민의대항적민족화를더욱재촉하게됨은물론이다._334~335쪽
건국이후의이스라엘은생존이급선무였다.주변의아랍국가들사이에서살아남기위한투쟁이우선시될수밖에없었다.그과정은1973년까지아랍국가들과벌인4차례의중동전쟁이었다.이스라엘은4차례의전쟁에서모두승리했다.…이집트등아랍국가들은이스라엘을무력으로제거하는일은불가능하기에공존을선택할수밖에없다고생각했고,이스라엘과의협상에들어갔다.
1973년이스라엘-아랍의마지막중동전쟁이끝나고협상이시작되면서,이스라엘의내부도변하기시작했다.이스라엘도주변아랍국가및팔레스타인과협상에나서야했다.이는양보를의미했다.양보한다는것은이스라엘내부의이해관계가걸린문제였다.이스라엘이생존의위험에서벗어나고양보를할때가오자,건국때의이상과이념보다는국내세력들의이해관계가국내외정책을좌우하게됐다.협상에따른양보를반대하는보수우파정당인리쿠드당이4차중동전쟁전후로창당돼,나중에이스라엘정치를주도하게된다._402~4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