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양장)

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양장)

$28.22
Description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기쁨을 생각한다
다시 사랑의 마음을 기억한다
한 문장 앞에서 오랫동안 멈춘다

가장 단단한 손으로 적어 내려간 미덥고 나울나울한 조용한 날들의 기록
《아침의 피아노》 《이별의 푸가》 《낯선 기억들》 《상처로 숨 쉬는 법》 철학자 김진영 선생의 미발표 산문집이다.

술 먹지 말 것, 담배 피우지 말 것, 꽃을 꺾지 말 것, 잔디에 들어가지 말 것, 쓰레기 버리지 말 것, 음식을 가져와 먹지 말 것, 개에게 용변을 누이지 말 것…… 그러나 오늘 아침 공원의 경고판 위에는 하얗게 눈이 덮였다. 모두 지워지고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다. 금지의 문장들은 백지가 되었다. 아직 아무도 그 위에 문장을 쓰지 않았다. 그 앞에 선다. 그런데 무엇을 쓸 것인가. _본문에서

《아침의 피아노》가 나온 지 햇수로 5년이 지났다. 저자인 김진영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어간다. 그사이 철학자 김진영의 이름은 《아침의 피아노》라는 파란 희망 버스를 타고, 우리의 책장마다 오래 머물렀다.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무해하게 이야기되었다. 매년 한 권씩 이어서 출간된 《이별의 푸가》 《낯선 기억들》 《상처로 숨 쉬는 법》은 각각 “저 먼 이별의 끝에서 뒤늦게 도착한 별사(別辭)”(김연수 소설가)이고, “막막한 사막의 세계 앞에 수로를 터지게 하고”(이병률 시인), “혼곤한 세상을 사느라 우리 안에 깊숙이 은폐된 결핍을 마주 보게 하는”(김겨울 작가) 글들로 곁에 남았다. 이 모두 선생이 남긴 좋은 책이었지만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난 우리에겐 생활의 빗금 같은 캄캄한 갈증이 느껴지던 것도 사실이다. 《아침의 피아노》를 처음 집어 들었을 때 만났던, 순수하고 정갈한 마음을 많은 독자가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 했다.

김진영 선생의 미발표 글들을 엮은 이번 산문집 《조용한 날들의 기록》이 그 갈급을 조금은 달래주리라. 철학자로서, 필경사로서, 한 존재로서 더없이 깨끗하고, 정당하게 분노하고, “예민하고 무덤덤한” 아름다운 단어들로 삶 귀퉁이에 조곤조곤 들어앉던, 우리가 사랑했던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들로 꽉 채워진 채.

저자

김진영

고려대학교독어독문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하고독일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박사과정을밟았다.프랑크푸르트학파의비판이론과그중에서도아도르노와베냐민의철학과미학을전공으로공부했으며그교양의바탕위에서롤랑바르트를비롯한프랑스후기구조주의를함께공부했다.특히소설과사진,음악등여러영역의미적현상들을다양한이론의도움을빌려읽으면서자본주의문화와삶이갇혀있는신화성을드러내고해체하는일에오랜지적관심을두었다.시민적비판정신의부재가이시대의모든부당한권력들을횡행케하는근본적인원인이라고믿으며〈한겨레〉,〈현대시학〉등의신문·잡지에칼럼을기고했다.

대표작으로는《아침의피아노》,《이별의푸가》,《낯선기억들》,《상처로숨쉬는법》이있고,역서《애도일기》,강의록《희망은과거에서온다》,《철학자김진영의전복적소설읽기》,저서《처음읽는프랑스현대철학》(공저)이있다.홍익대학교,서울예술대학교,중앙대학교,한양대학교등에서예술과철학에관한강의를했으며,(사)철학아카데미를비롯한여러인문학기관에서철학과미학을주제로강의했다.(사)철학아카데미의대표를지냈다.

목차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출판사 서평

《아침의피아노》가나온지햇수로5년이지났다.저자인김진영선생이세상을떠난지도어느덧5년이되어간다.그사이철학자김진영의이름은《아침의피아노》라는파란희망버스를타고,우리의책장마다오래머물렀다.이마음에서저마음으로무해하게이야기되었다.매년한권씩이어서출간된《이별의푸가》《낯선기억들》《상처로숨쉬는법》은각각“저먼이별의끝에서뒤늦게도착한별사(別辭)”(김연수소설가)이고,“막막한사막의세계앞에수로를터지게하고”(이병률시인),“혼곤한세상을사느라우리안에깊숙이은폐된결핍을마주보게하는”(김겨울작가)글들로곁에남았다.이모두선생이남긴좋은책이었지만《아침의피아노》를읽고난우리에겐생활의빗금같은캄캄한갈증이느껴지던것도사실이다.《아침의피아노》를처음집어들었을때만났던,순수하고정갈한마음을많은독자가다시한번만나고싶어했다.
김진영선생의미발표글들을엮은이번산문집《조용한날들의기록》이그갈급을조금은달래주리라.철학자로서,필경사로서,한존재로서더없이깨끗하고,정당하게분노하고,“예민하고무덤덤한”아름다운단어들로삶귀퉁이에조곤조곤들어앉던,우리가사랑했던철학자김진영의마음들로꽉채워진채.
암선고전7년,1348편의단상
새의발자국처럼남겨진마지막선물

죽음앞에서삶의모습을단정한필치로기록한《아침의피아노》,이별에대한미학적성찰을담은《이별의푸가》,비판적통찰의시선으로우리사회를바라본《낯선기억들》,열여덟번의아도르노강의를엮은《상처로숨쉬는법》에이어김진영일기산문의마지막책으로출간된《조용한날들의기록》은2010년부터2016년까지암선고를받기전선생이블로그,페이스북,개인노트등에기록한글중1348편을모아엮은책이다.
《조용한날들의기록》에서선생은아침시간의사색과저녁시간의산책,골방에서의책읽기를통해서한국사회의여러모습안에자신의생활을투영시킨다.철학과문학의힘으로멂과가까움,안과밖,가난과부유,아름다움과결핍,침묵과소란사이의조용한일상을가볍게,때론진솔하게기록하고사유해낸다.

김진영이남겨둔마지막문장들은새의발자국같다.앙상하다.길게이어지지않는때가많다.그의사유가포로롱날아갈때마다발자국은거기멈춰있었다.0킬로그램의무게로꽉채운그의문장들에손을갖다댄다.그무엇에대하여단한번도장악하려하지않았던문장들.황홀하고관능적이다._김소연(시인)

우리는선생이어떤책을읽으며하루를보냈는지,어떤마음으로일어나어떤마음으로잠드는지,누구와만났고누구와헤어져결국혼자어디로걸어가는지를훔쳐보면서,어느날은늙어지기도어느날은젊어지기도할것이다.그렇게기쁨을생각하는법을,사랑의마음을기억하는법을,한문장앞에서오랫동안멈추는법을익힌다.사랑이야말로믿음을넓히는일이라는것도.

몰락은가깝고구원은멀다
어떻게할것인가?

《조용한날들의기록》속선생의모습은《아침의피아노》에서의모습과꽤많이닮아있다.아니,《조용한날들의기록》에서의모습이조금더인간적으로보인다.《아침의피아노》속선생이삶의고통앞에서도초연한바늘끝천사의모습이었다면,《조용한날들의기록》에서그는한낮의나태자이자슬픔이란이름의용기를알고있는멜랑콜리커(Melancholiker),행복과사랑의막역한인우(?佑)의모습으로등장한다.선생은때때로우울하고외로워보이지만,용기내어삶을이어가려는마음을결코잃지않는다.그모습은꼭오늘도출근길전철에몸을맡긴채힘없이흔들리면서도,온마음을다해꼿꼿이서있는우리의모습같다.
‘우리는하루를어떻게보내고있을까?’‘우리의날들은무엇으로이루어져있을까?’하고생활인으로서우리가늘궁금해했던질문들은《조용한날들의기록》을읽으면서점차바뀌어간다.새롭게우리발치에놓인질문은이렇다.‘우리는어떤날들로이루어져있을까?’선생의가장마지막책일이번산문집《조용한날들의기록》에그답이들어있지않을까?그리고그답을들고열심히살아간뒤엔,아주멀리서불어온바람처럼,선생의이질문에도선뜻답할수있지않을까.몰락은가깝고구원은멀다,어떻게할것인가?

추천사

김진영이남겨둔마지막문장들은새의발자국같다.앙상하다.길게이어지지않는때가많다.그의사유가포로롱날아갈때마다발자국은거기멈춰있었다.나는고개를들어먼허공을바라보았다.되도록더먼허공을보려했다.광활한저먼곳으로날아가는동안에그는문장을쓸이유가없었을것같다.거기에내가주워야할문장이숨어있는것만같다.다시시선을거둬새의발자국을바라보며걸어본다.0킬로그램의무게로꽉채운그의문장들에손을갖다댄다.그무엇에대하여단한번도장악하려하지않았던문장들.황홀하고관능적이다.그의갈구와그의혼란이더할나위없이침착해서나는더애통해진다.원하던예민함과원하던무덤덤함이내신체에고이기시작한다.이것이김진영이우리에게남긴마지막선물일것이다._김소연(시인)

책속에서

술먹지말것,담배피우지말것,꽃을꺾지말것,잔디에들어가지말것,쓰레기버리지말것,음식을가져와먹지말것,개에게용변을누이지말것……그러나오늘아침공원의경고판위에는하얗게눈이덮였다.모두지워지고아무것도읽을수가없다.금지의문장들은백지가되었다.아직아무도그위에문장을쓰지않았다.그앞에선다.그런데무엇을쓸것인가._23쪽

밤새내리던비는그쳤다.새벽공기는차갑다.두사람이자전거를타고지나간다.한사람은직선으로또한사람은지그재그로._47쪽

마석에서새벽을맞는다.새들이잠을깨운다.웃옷을걸치고마당으로나간다.나무들사이를걷는다.안개가발목에걸린다.마른잎들에서이슬이굴러떨어진다.이슬은거미줄에도매달렸다.밤사이직물을짜고웅크려잠든거미를오래들여다본다.거미는무슨꿈을꾸는걸까.들어와서라디오를튼다.기상캐스터의낭랑한목소리:온나라가하루종일맑을겁니다……_60쪽

한파.꽁꽁얼어붙은아침.멀리버스정류장.진하게찍은마침표처럼버스를기다리는사람들.초록빛버스가다가가서선다.그러자살아서움직이기시작하는마침표들.세상에영원히죽은것은없는걸까.때가되면모두들다시살아나는걸까._65쪽

멜랑콜리커들.슬픔이라는이름의용기를알고있는사람들._66쪽

‘몰락은가깝고구원은멀다.어떻게할것인가?’
다시이질문으로부터출발한다.그러나한줄을덧붙인다:‘……그런데빛이있다.아주희미한,그러나꺼지지않고반짝이는어떤빛이있다.이빛은무엇인가?’_79쪽

아침마다봄이걸어온다.점점따뜻해진다.등교하는아이들은더빨리뛰고웃음소리는더높이깨어진다.언제부터인가편의점에서찬커피를사서마신다.차안에서햇빛좋은풍경을바라보며스트로를빤다.그런데이좋은아침에어쩐까닭일까.갑자기가슴이펑젖는다._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