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배(큰글자도서) (이혁진 장편소설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누운 배(큰글자도서) (이혁진 장편소설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32.00
Description
“이런 소설을 남들보다 먼저 읽을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한다.” _장강명(소설가)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누운 배》 개정판 출간!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장강명의 《표백》,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 등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한겨레문학상의 스물한 번째 수상작이자, 우리 곁에 일들을 보다 사실에 가까운 언어로, 세밀하게 그려내는 작가 이혁진의 데뷔작인 《누운 배》가 개정판으로 다시 찾아온다. 출간 당시 “새로운 시대의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을 자아내며 회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현실감 있게 다가간 《누운 배》는, 우리가 몸담은 조직의 실체와 모순을 매섭게 포착하며, 조리 있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색해져 버린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하루가 멀다고 거대 조직의 잘못된 행각이 드러나고, 일선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는 2021년 오늘날, 소설 《누운 배》를 통해 나타난 부조리한 사실들은 여전히 소름 끼치는 진실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큰글자도서 소개
리더스원의 큰글자도서는 글자가 작아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선정 및 수상내역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저자

이혁진

2016년장편소설《누운배》로제21회한겨레문학상을수상했다.장편소설《사랑의이해》를썼다.

목차

1부
2부

작가의말
추천의글

출판사 서평

진수식을마친배가누웠다.
그배를다시일으켜세울수있을까?

《누운배》는중국의한국조선소에서진수식이끝난배가갑자기쓰러지며시작한다.‘배가눕는다’는압도적인상징으로다른후보작들과의차이를만든다.그건어떤이미지나문체가가진미적인차이가아니다.그저‘사실’의차이이며‘사실의언어’의차이다.‘누운배’가상징하며이야기하는거대한사실은,누워버렸고방치되어우리의눈밖에있는우리의손과발이닿지않는곳에있는어떤사실을자꾸만떠올리게한다.심사를맡은황현산평론가의추천의말서두가“삼풍백화점이무너지고성수대교가내려앉고세월호가침몰하였다”로시작할수밖에없었던건아마그사실이가진힘때문이었을것이다.《누운배》는소설은미적인것과경쟁하는것이아닌,사실적인것과경쟁해야한다고말한다.
하지만,《누운배》가단지‘사실을다루기만한’흔한리얼리즘계열의소설인것은아니다.이소설이가진디테일의정확함과정교함은단지리얼리즘소설이라고만부르기에는뭔가아깝다.《누운배》는앞선어떤리얼리즘소설보다차갑고,단단하며,무겁다.소설가김별아는“새로운시대의리얼리즘이비정한모습으로돌아왔다”고평했고,평론가정홍수는“사실의자리에서인간진실에대한끈질긴열정과상상을읽었고감동했다”고말했다.다른소설과의차이는여기서그치지않는다.《누운배》의세상이그려내는풍경은우리의눈을가리고있던검은장막을벗겨내고,우리가애써외면해왔던무서운진실을코앞으로들이밀어그진실에서풍겨나오는지독한냄새를맡게한다.이야기가진행되고진실이축적되며이윽고누운배가일으켜세워지는장면에도달했을때,소설은최근의한국소설에서보기힘든어떤거대한광경을만들어낸다.우리는그장관을바라보며압도당한다.어쩔수없이지금의한국을,관료주의와계급구조의모순이가득한한국사회가가진부조리를떠올리고야만다.소설가백민석은이런사실의축적이“일그러진진실”을드러내고“우리인생이누운배와같다는,우리사회가누운배와다름없다”는보편성을획득하게한다고말한다.그리고우리는그보편성을마주한채묻지않을수없다.누운배는어떻게되었을까?누운채방치된무수히많은진실들은다어떻게되었을까?

배가누웠다.하지만,우리는살아간다.
:기업은어떻게작동하는가?

주인공문대리는‘배가쓰러졌으니어서회사로돌아오라’는오팀장의전화를받는다.멀쩡히서있던배는왜쓰러졌을까?하지만소설은‘왜’에집중하지않는다.배가쓰러졌다는사실을말할뿐이다.누구도책임지지않는,누구도책임을지고말하지않는진실을비켜이야기는거대한배처럼의심을뚫고흔들림없이나아간다.선가피해액을보상받기위한보험팀이꾸려지고,해상사고전문가인홍소장이한국에서중국으로넘어온다.그리고?배가진짜쓰러진이유야어떻든문서와협의와회사간의이익에의해,무엇보다힘에의해서,배는천재지변이란단어로정리되어문서위에서최종적으로쓰러진다.

누운배한척이그렇게됐듯사실이라는것은,참이나거짓이라는것은힘으로쥐고흔들수있었다.세상은성기고흐릿한실체였다.그것을움켜쥔힘만이억세고선명했다.힘은우스운것이아니었다.아무리우스운것도우습지않게만드는것이힘이었다.

배가쓰러졌지만변하는건없다.아마쓰러지지않았어도변하는건없었을지모른다.원칙을뭉개고규칙을악용하며회사는돌아가고,소설속인물들은월급을받아가며고리타분하고지루한저윗자리로올라가려아등바등한다.보험팀의모든성과는실무자들이아닌정이사와양이사를비롯한임원들이나눠갖는다.

“회장님이배를일으켜세우실거라던데?”

술자리에서들었다는,출처도없이떠도는이야기는새해시무식에서회장의입을통해진짜가된다.하지만그일을누가책임질수있을까?책임을온전히질수있는사람은아무도없다.보험사에서는보험금지급을미루고,회사는어려워진다.사장이바뀌고,새로운사장인황사장이와서회사를바꿔보려하지만,조상무를비롯한회장의사람들에게가로막힌다.모든상황이점점나쁘게굴러간다.그리고결국,배를일으켜세워야지만회사가다시돌아가고월급이나오고승진을할수있다는사실을사람들이인정해야하는때가오고야만다.

어쩌면저배가회사의유일한희망일지도몰랐다.

그런데,누운배가모두의유일한희망일지도모른다는사실은좀이상하지않은가?괴상하지않은가?누운배를일으켜세우기위해애쓰는장면들은부조리극의한부분처럼아무희망도보람도느낄수없다.매일굴러떨어지는시시포스의바위같다.누워버린채몇년이나방치된배가희망이라면애초에희망따윈없었는지도모른다.다른희망은없을까?다른진실은하나도없던걸까?어쩌면그희망과진실을찾는건소설을읽는우리의몫일지도모른다.

“회사좋아하세요?”
:우리는무엇을위해노동하는가

《누운배》는사회소설인동시에기업소설이다.회사에다니는사람이라면누구나공감할이야기다.“회사생활다그런거아이겠나?”라는말로대변되는문대리,오팀장,정이사,양이사,조상무,황사장등의말과행동에서우리는쉽게우리가몸담은회사의모습을발견할수있다.소설은치밀하게직조하고치열하게밀어붙여소설속회사를현실의회사위로일으켜세운다.그렇기에우리는소설곳곳에서언뜻언뜻비치는자신의모습을쉽게발견하고,과거에했거나지금하고있거나미래에할지도모를행동을대신하는인물들을마주하게된다.우리가부인하든부인하지않든,소설속의그무수한모습들은모두우리의모습이다.
오늘도우리는의자에궁둥이를붙인채새로온직원을환영하고,떠나가는직원을환송한다.불의에맞서의롭게나서기도하고,자리를지키려비겁하게물러서기도한다.무탈하게함께웃고떠들고일하며,어느날은서로언성을높이며싸우고언제그랬냐는듯술잔을부딪치며풀기도한다.하지만,정말그게다일까?사실우리는칸막이너머동료직원의배가누웠건,같이점심을먹은다른동료의배가누웠건,어떤사람의배가누웠건아랑곳하지않고회사에서살아가는지도모른다.아니,혹여내배가누웠다고해도그모습을보지않으려애쓰며회사사람으로살아간다.그게회사생활이라면우린잘살고있다.
월급을받는달이많으면많을수록젊음을잃고나이들어간다는걸알면서도,가능성과원기를잃는다는사실을알면서도우리에겐다른선택지가없다.주인공문대리또한회사내부의모순과불합리한권력구조앞에절망하면서도어쩔수없이회사에남을수밖에없다.

내년이면서른하나였다.다시시작하기에너무늦은나이였다.우선은붙어있을수밖에없었다.버티고견뎌서대리,과장이돼이직이라도하는것이내가할수있는유일하고현명한선택이었다.

우리는남아늙고쭈그러드는,희미하게옅어지고사라지는자신을바라볼수밖에없다.대부분이그렇고,우리대부분은그대부분에서벗어날생각이없다.값싼노동력을제공하는것외에,말단직원으로서상사의지시에잘따르고열심히일하는것외에,회사내에서벌어지는온갖부조리한일들을보고끊임없이회의를느끼는것외에우리가할수있는건없다.그것이좌초된진실이라는걸알면서도말이다.문대리의고민도우리와다르지않다.하지만그런고민속에서문대리의생각은우리와는조금다른방향으로,스스로에게무모하고무책임한곳으로나아간다.그는다른선택을하게될까?

배를끌어올릴때그랬듯,운명에맡겨야할것은운명에맡겨야했다.내가해야할것은내가하고,나머지는담대하게기다리는것뿐이었다.

그런데,다른선택을하지않은우리를기다리는게고작“내가뭐라고그자리까지올라가면다르겠어?다르게살지않으면다똑같아지는거야.몰라,아직다안살아봤으니.하지만정말그럴것같아.다똑같은사람이되는것”밖에없는걸까?그게우리의미래인가?그렇지는않을것이다.다만,그렇지않기위해서는스스로에게한가지질문을해야만한다.

“회사좋아하세요?”

그질문을마주하며우리는비로소소설의처음으로돌아가게된다.저차가운시멘트바닥에누워있는배를가만히바라보게된다.누운건정말배였을까.누운건내가아니었을까.그렇다면우리는너무오래누워있는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