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당 정순영은 경북 성주 출신이다. 그는 한주학파(寒洲學派)의 주문팔현(洲門八賢) 중 한 사람인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동향 출신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해사(海史) 김정호(金丁鎬) 등이 그의 동문이다. 그는 청년 시절 국권 회복에 뜻을 품고 구국 활동에 참여하였던 혁신유림이었다. 청장년 시절 대구와 만주 지역을 전전하며 달성친목회, 조선국권회복단, 광복회, 한성정부, 조선고사연구회, 인도공의소, 대한독립단, 조선민흥회 등 여러 독립운동 단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순영은 자신의 구국운동과 독립운동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장손 정하용(鄭河容)이 보관하고 있는 몇 가지 문건, 즉 대한독립단 재판 판결문, 서간문, 그리고 자필의 앙고문(仰告文)과 시문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나 사회 활동을 했던 유생들은 자신의 생애를 회고록 형태로 남겼지만, 그는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후손 집에는 그가 말년에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시문과 편지 몇 건만이 보관되어 있다.
정순영은 본명 외에도 3가지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6년 10월경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회의 남만주 연락책으로 활동했을 때, 정서웅(鄭瑞雄), 정현식(鄭鉉湜), 정호웅(鄭琥雄) 같은 이명을 사용하였다. 정서웅과 정호웅은 대한독립단의 심문조서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정현식은 한성정부의 평정관 명단이나 조선고사연구회의 발기인 명부에 나타나고 있다. 독립운동가였던 그가 이명을 사용하여 자신의 행적을 은폐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록은 정순영이 관여했던 독립운동 단체와 그의 활동이 언급된 기록을 모은 것이다. 1975년 인쇄된 『이당공약력』은 장남 정돈화가 부친의 행적을 정리한 것이다. 이 작은 책자는 정순영의 독립운동에 관한 행적과 그의 사상적 기반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밖에 재판 판결문과 신문조서, 그가 참여했던 독립운동 단체의 발기문, 앙고문, 그리고 그와 연관이 있는 신문기사를 수록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순영의 평생을 정리한 연보를 이 책 끝에 실었다. 이 연보는 《청주정씨문목공파세보》(2001), 〈(정순영)제적등본〉, 그리고 이 책 『이당 정순영의 독립운동』에서 발췌한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것이다.
정순영은 자신의 구국운동과 독립운동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장손 정하용(鄭河容)이 보관하고 있는 몇 가지 문건, 즉 대한독립단 재판 판결문, 서간문, 그리고 자필의 앙고문(仰告文)과 시문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나 사회 활동을 했던 유생들은 자신의 생애를 회고록 형태로 남겼지만, 그는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후손 집에는 그가 말년에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시문과 편지 몇 건만이 보관되어 있다.
정순영은 본명 외에도 3가지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6년 10월경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회의 남만주 연락책으로 활동했을 때, 정서웅(鄭瑞雄), 정현식(鄭鉉湜), 정호웅(鄭琥雄) 같은 이명을 사용하였다. 정서웅과 정호웅은 대한독립단의 심문조서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정현식은 한성정부의 평정관 명단이나 조선고사연구회의 발기인 명부에 나타나고 있다. 독립운동가였던 그가 이명을 사용하여 자신의 행적을 은폐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록은 정순영이 관여했던 독립운동 단체와 그의 활동이 언급된 기록을 모은 것이다. 1975년 인쇄된 『이당공약력』은 장남 정돈화가 부친의 행적을 정리한 것이다. 이 작은 책자는 정순영의 독립운동에 관한 행적과 그의 사상적 기반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밖에 재판 판결문과 신문조서, 그가 참여했던 독립운동 단체의 발기문, 앙고문, 그리고 그와 연관이 있는 신문기사를 수록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순영의 평생을 정리한 연보를 이 책 끝에 실었다. 이 연보는 《청주정씨문목공파세보》(2001), 〈(정순영)제적등본〉, 그리고 이 책 『이당 정순영의 독립운동』에서 발췌한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것이다.
이당 정순영의 독립운동 (양장본 Hardcover)
$2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