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채 평전 (북한 영화의 대부 | 양장본 Hardcover)

정준채 평전 (북한 영화의 대부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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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영화인 정준채는 남한에서 생소한 이름이다. 광주 출신인 그는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귀국한 뒤 해방을 전후해 2년 남짓 남한에서 활동했다. 그는 1945년 11월 서울 혜화동에서 열린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프로영맹) 결성식에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프로영맹은 불과 1개월 남짓 존속했다. 그해 12월 16일 개최된 전영화인대회에서 프로영맹은 조선영화건설본부와 함께 조선영화동맹으로 통합했다. 조선영화동맹 중앙집행위원인 정준채는 1946년 1월 기록영화 「민주주의민족전선」 촬영차 입북했다.
정준채의 북한 행적은 그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중앙위원회 선전부를 찾아가 ‘영화반’을 조직하자고 제의한 것에서부터 찾아진다. 이후 1949년 소련의 북조선 지원을 필름에 담은 기록영화 「친선의 노래」를 제작했고 이 영화로 1950년 제5차 체코슬로바키아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축전에서 기록영화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는 남북한을 통틀어 최초의 국제영화상 수상이다.
아울러 그가 연출한 「1950년 5·1절」(1950)은 북한 최초의 기록영화부문 컬러영화이고 1956년 최승희 주연의 무용극 「사도성의 이야기」은 북한 최초의 극예술영화부문 컬러영화이다. 정준채는 북한의 기록영화와 컬러영화를 개척한 선구자다. 하지만 정준채라는 이름은 1960년 이후 북한의 모든 문헌에서 사라졌다. (머리말 中)
저자

정철훈

鄭喆熏

시인.역사학자.러시아외무성외교아카데미에서역사학박사학위.현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역사연구소객원연구위원,(사)유라시아문화연대이사,도봉문화원편지문학관관장.
시집『살고싶은아침』,『내졸음에도사랑은떠도느냐』,『개같은신념』,『뻬쩨르부르그로가는마지막열차』,『빛나는단도』,『만주만리』,『가만히깨어나혼자』,장편소설『인간의악보』,『카인의정원』,『소설김알렉산드라』,『모든복은소년에게』,평전·탐사기『오빠이상누이옥희』,『백석을찾아서』,『내가만난손창섭』,『문학아밖에나가서다시얼어오렴아』,『알렉산드라페트로브나김』,『뒤집어져야문학이다』,『소련은살아있다』,『옐찐과21세기러시아』등이있음.

목차

머리말

1장충장로키드
1.광주의영화광
2.시인의아들
3.광주보통학교입학과광주학생운동
4.고모부김우진의죽음
5.떠나가는문학청년
6.소설『인적(人跡)』

2장동경잔류파의심상
1.음악다방‘에테르’와친구구鷗
2.영화감독박기채와의교유
3.발레리노백성규와의친교
4.최승희의신작무용관람
5.불타는동경
6.현장로케일지「린조기隣組記」
7.임옥순과의결혼

3장영화로무엇을할것인가
1.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서기장시절
2.평양국립영화촬영소제작부장시절
3.전장의포화속에서
4.?체코슬로바키아국제영화축전에서최고기록영화상수상-1950년
5.?제6차체코슬로바키아국제영화축전참가-1951년
6.「인민은승리한다」-중국장춘1952년
7.용정방면에서로케-연길1953년
8.「전우들이여잘가라」-1954년
9.「주르빈일가」더빙편집-평양1955년

4장수령의초상아래
1.「사도성의이야기」-모스크바1956년봄
2.형제의재회-모스크바1956년가을
3.「산매(山梅)」-주을1957년
4.당학교입교-평양1958년봄
5.동생정추의소련망명-모스크바1958년가을
6.「밀림아이야기하라」-평양1959년
7.「황해의노래」-평양1960년
8.정준채의숙청과그후과後果

맺는말

자료편
1.정준채기고문
2.기타관련문헌

정준채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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