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서양 의학과 고등 교육의 개척 및 정착으로 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올리버 R. 에비슨은 131년 전 미국 북장로교회의 의료 선교사로 내한하였습니다. 에비슨은 조선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제중원에서 의학 교육을 재개하였고, 후에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 및 의학교로 발전시킴으로써 일제가 주도한 의학과 대별되는 한국 서양 의학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특히 1908년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7명을 배출한 후, 1913년 여러 교파가 힘을 합쳐 운영하는 연합의학교로 명칭을 바꾸었고, 1917년 전문학교로 승격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한편 여러 교파의 선교사들이 서울에 종합 대학을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았을 때, 이미 토론토 대학교 의학부와 약학대학의 교수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에비슨이 큰 역할을 맡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에비슨은 이 연합 기독교 대학이 1917년 연희전문학교[Chosun Christian College]로 조선 총독부의 승인을 받자 제1대 (정규) 교장에 취임하여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와 함께 양교 교장을 18년 동안 겸임하면서 일제가 주도한 고등 교육과 대별되는 한국의 고등 교육을 정착시킨 주역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번에 출간하는 『올리버 R. 에비슨 자료집 VII』은 에비슨의 노력으로 여러 교파가 세브란스의 의학 교육에 참여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1908년 6월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한 후, 다시 안식년을 갖게 된 에비슨은 세브란스 씨로부터 외래 진료소 및 의학교 건물의 신축을 위한 건축비를 기부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세브란스에는 한국인 의사의 배출을 목도하고 새로운 의술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의학도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에비슨은 세브란스의 의학 교육에 여러 교파가 연합할 적기라고 생각하고 주요 교파에 교수진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머리말 中)
한편 여러 교파의 선교사들이 서울에 종합 대학을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았을 때, 이미 토론토 대학교 의학부와 약학대학의 교수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에비슨이 큰 역할을 맡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에비슨은 이 연합 기독교 대학이 1917년 연희전문학교[Chosun Christian College]로 조선 총독부의 승인을 받자 제1대 (정규) 교장에 취임하여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와 함께 양교 교장을 18년 동안 겸임하면서 일제가 주도한 고등 교육과 대별되는 한국의 고등 교육을 정착시킨 주역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번에 출간하는 『올리버 R. 에비슨 자료집 VII』은 에비슨의 노력으로 여러 교파가 세브란스의 의학 교육에 참여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1908년 6월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한 후, 다시 안식년을 갖게 된 에비슨은 세브란스 씨로부터 외래 진료소 및 의학교 건물의 신축을 위한 건축비를 기부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세브란스에는 한국인 의사의 배출을 목도하고 새로운 의술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의학도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에비슨은 세브란스의 의학 교육에 여러 교파가 연합할 적기라고 생각하고 주요 교파에 교수진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머리말 中)
올리버 R. 에비슨 자료집 7 : 1908~1913 세브란스 연합의학교로의 발전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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