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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마침내 『대종교항일투쟁인물사전』(김동환 저)이 도서출판 선인에서 출간되었다. (재)롯데장학재단이 지원하여, 20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100주년’을 계기로 시작된 지 꼭 5년 만의 결실이다. 내년이 광복 80주년이라는 시의성을 헤아린다면, 그 출간의 의미는 남다르다.
일제강점기 대종교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종교로, 그 자체가 항일투쟁 기관이었다. 대종교는 우리의 국시(國是·홍익인간), 국전(國典·개천절), 그리고 국기(國紀·단군기원) 등을 잉태시킨 집단이다. 또한 국교(國敎) 관념이나 한글 정착, 그리고 중화사관과 일제관학에 맞서 우리의 역사학을 개척한 것도 대종교였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에는 대종교에 입교하는 것이 곧 항일단체에 가담하는 것이며, 그 활동이 바로 항일투쟁이었고, 그 교인들 자체가 항일투사였다. 그들의 정체성 이식으로 식민지 완성을 꿈꾸던 일제가, 침략 직후부터 대종교를 항일단체로 규정하고 패망 때까지 초지일관 없애려 한 근본적 이유다.
이에 맞선 대종교의 대일항쟁 역시 모든 것을 건 투쟁이었다. 대종교인들의 항일투쟁이 무장투쟁을 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민족사회 전반에 총체적 저항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것은 대종교라는 에너지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바닥에 연면히 흘러온 단군신앙을 현대적으로 부활(중광)시켰다는 점과, 당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대종교를 국교적(國敎的) 정서로 인식했던 것과도 무관치 않았다. 이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 민족적 위기 때마다 고개를 든 단군구국론의 경험과도 같은 의미로, 대종교가 항일투쟁 본산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총체적 저항의 사표를 보여준 배경도 된다.
대종교는 「대동단결선언」이나 「대한독립선언(무오독립선언)」을 주도하는가 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모태가 된 집단이다. 만주 항일투쟁의 중추 역할을 한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만이 아니라, 흥업단·광정단·신민부 역시 대종교계 항일단체였다. 또한 일제에 의해 국내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비밀결사적 활동을 통해 그 맥을 끊지 않았다. 대동청년단·조선국권회복단·조선어학회 등이 그 실례다.
그러므로 나철·김교헌·서일·윤세복·강우 등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영역만이 아니라, 무장투쟁 방면의 현천묵·홍범도·이상룡·김동삼·여준·김혁·황학수, 정치외교 측면에서의 신규식·이상설·이동녕·조완구·박찬익·안희제·조소앙, 민족주의역사학을 개척한 박은식·신채호·정인보·안재홍, 한글투쟁의 일선에 섰던 주시경·김두봉·이극로·최현배·신명균·정열모·이병기 등등, 무수한 인물들이 모두 대종교의 기반 위에서 활동하였다. 더욱이 영화계의 나운규, 비행사 안창남, 북촌을 설계했던 정세권 등의 인물들만이 아니라, 권오설·안기성·김사국·김정기·박낙종·임태호·박순병 등등, 수많은 사회주의자들 역시 대종교적 정서를 품고 활약한 인물들이다.
실로 대종교(인물들)의 자취는 그 자체가 항일투쟁의 족적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큰 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이미 정리되었어야 할 당위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지금껏 외면되었다. 비록 민간부문에서의 정리지만 『대종교항일투쟁인물사전』 출간이 기념비적 사건으로 시선을 끄는 이유다.
한편 일제에 의해 대부분의 자료가 없어진 상황에서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이 사전의 가치를 더한다. 다만 동농 김가진이나, 우사 김규식, 빙허 현진건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이 1자료의 유실과 교차 검증의 어려움으로 부득이 제외되어 안타깝다는 것이 저자의 변이다. 향후 증보 작업이 불가피함을 시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대종교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종교로, 그 자체가 항일투쟁 기관이었다. 대종교는 우리의 국시(國是·홍익인간), 국전(國典·개천절), 그리고 국기(國紀·단군기원) 등을 잉태시킨 집단이다. 또한 국교(國敎) 관념이나 한글 정착, 그리고 중화사관과 일제관학에 맞서 우리의 역사학을 개척한 것도 대종교였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에는 대종교에 입교하는 것이 곧 항일단체에 가담하는 것이며, 그 활동이 바로 항일투쟁이었고, 그 교인들 자체가 항일투사였다. 그들의 정체성 이식으로 식민지 완성을 꿈꾸던 일제가, 침략 직후부터 대종교를 항일단체로 규정하고 패망 때까지 초지일관 없애려 한 근본적 이유다.
이에 맞선 대종교의 대일항쟁 역시 모든 것을 건 투쟁이었다. 대종교인들의 항일투쟁이 무장투쟁을 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민족사회 전반에 총체적 저항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것은 대종교라는 에너지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바닥에 연면히 흘러온 단군신앙을 현대적으로 부활(중광)시켰다는 점과, 당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대종교를 국교적(國敎的) 정서로 인식했던 것과도 무관치 않았다. 이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 민족적 위기 때마다 고개를 든 단군구국론의 경험과도 같은 의미로, 대종교가 항일투쟁 본산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총체적 저항의 사표를 보여준 배경도 된다.
대종교는 「대동단결선언」이나 「대한독립선언(무오독립선언)」을 주도하는가 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모태가 된 집단이다. 만주 항일투쟁의 중추 역할을 한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만이 아니라, 흥업단·광정단·신민부 역시 대종교계 항일단체였다. 또한 일제에 의해 국내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비밀결사적 활동을 통해 그 맥을 끊지 않았다. 대동청년단·조선국권회복단·조선어학회 등이 그 실례다.
그러므로 나철·김교헌·서일·윤세복·강우 등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영역만이 아니라, 무장투쟁 방면의 현천묵·홍범도·이상룡·김동삼·여준·김혁·황학수, 정치외교 측면에서의 신규식·이상설·이동녕·조완구·박찬익·안희제·조소앙, 민족주의역사학을 개척한 박은식·신채호·정인보·안재홍, 한글투쟁의 일선에 섰던 주시경·김두봉·이극로·최현배·신명균·정열모·이병기 등등, 무수한 인물들이 모두 대종교의 기반 위에서 활동하였다. 더욱이 영화계의 나운규, 비행사 안창남, 북촌을 설계했던 정세권 등의 인물들만이 아니라, 권오설·안기성·김사국·김정기·박낙종·임태호·박순병 등등, 수많은 사회주의자들 역시 대종교적 정서를 품고 활약한 인물들이다.
실로 대종교(인물들)의 자취는 그 자체가 항일투쟁의 족적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큰 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이미 정리되었어야 할 당위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지금껏 외면되었다. 비록 민간부문에서의 정리지만 『대종교항일투쟁인물사전』 출간이 기념비적 사건으로 시선을 끄는 이유다.
한편 일제에 의해 대부분의 자료가 없어진 상황에서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이 사전의 가치를 더한다. 다만 동농 김가진이나, 우사 김규식, 빙허 현진건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이 1자료의 유실과 교차 검증의 어려움으로 부득이 제외되어 안타깝다는 것이 저자의 변이다. 향후 증보 작업이 불가피함을 시사하고 있다.

대종교 항일투쟁 인물사전 (양장)
$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