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에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은 1893년 제중원 의사로서 처음 내한한 후 세브란스병원의 원장과 의학교 교장으로 봉직하다 1917년부터 1934년까지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의 교장을 겸직하고 1935년 귀국하였다. 본 연세학연구소는 그가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기고한 잡지 기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8번째(Ⅷ)이고, 두 학교의 교장으로서 대외적으로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교육·선교 서한집”으로는 6번째이다. 자료집에 수록된 문서들은 1927~1929년의 서한 100건이다.
세전과 연전은 1920년대 후반에 재정뿐 아니라 학교 경영에서도 크게 도약하였다. 에비슨은 1924년 3월부터 1926년 8월까지 미국에서 두 학교의 운영자금을 위한 모금 활동을 한 바 있는데, 직무에 복귀한 후에 심각한 재정난 속에 있는 두 학교에 대해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폈다. 그런 기조 위에서 두 학교는 적자를 메우고 재정 흑자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세전은 최초로 한국인 교수들의 안식년 제도를 마련하였고, 연전은 원한경을 부교장으로 임명하였으며 새로 백낙준이 부임하여 문과와 신과를 활성화하였다. 두 학교의 교정에 언더우드, 에비슨 두 사람의 동상이 건립된 것도 이때였다.
자료집의 문서들은 필라델피아의 장로교문서보관소, 뉴저지주의 드류대학교 내 연합감리교회 문헌보관소와 캐나다 토론토대학 내 빅토리아대학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것이다. 대부분의 자료는 본교의 원로 동문이신 최재건 교수(성결대 석좌교수)께서 수집해 주셨다. 이 자료를 정리하고 번역하여 출판을 준비하는 일은 연세대학교 ‘총장정책과제’로 수행되었으며, 국학연구원 원장 겸 연세학풍연구소(현 연세학연구소) 소장을 지내고 퇴임한 사학과 김도형 교수(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실무 책임 아래 진행되었다. 수집된 문서의 정리ㆍ보완, 번역은 연세학연구소 전문연구원 문백란 박사가 맡았다.
세전과 연전은 1920년대 후반에 재정뿐 아니라 학교 경영에서도 크게 도약하였다. 에비슨은 1924년 3월부터 1926년 8월까지 미국에서 두 학교의 운영자금을 위한 모금 활동을 한 바 있는데, 직무에 복귀한 후에 심각한 재정난 속에 있는 두 학교에 대해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폈다. 그런 기조 위에서 두 학교는 적자를 메우고 재정 흑자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세전은 최초로 한국인 교수들의 안식년 제도를 마련하였고, 연전은 원한경을 부교장으로 임명하였으며 새로 백낙준이 부임하여 문과와 신과를 활성화하였다. 두 학교의 교정에 언더우드, 에비슨 두 사람의 동상이 건립된 것도 이때였다.
자료집의 문서들은 필라델피아의 장로교문서보관소, 뉴저지주의 드류대학교 내 연합감리교회 문헌보관소와 캐나다 토론토대학 내 빅토리아대학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것이다. 대부분의 자료는 본교의 원로 동문이신 최재건 교수(성결대 석좌교수)께서 수집해 주셨다. 이 자료를 정리하고 번역하여 출판을 준비하는 일은 연세대학교 ‘총장정책과제’로 수행되었으며, 국학연구원 원장 겸 연세학풍연구소(현 연세학연구소) 소장을 지내고 퇴임한 사학과 김도형 교수(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실무 책임 아래 진행되었다. 수집된 문서의 정리ㆍ보완, 번역은 연세학연구소 전문연구원 문백란 박사가 맡았다.
연·세전 교장 에비슨 자료집 8 (교육·선교 서한집(6) : 1927∼1929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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