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80년, 송몽규와 윤동주

그 후 80년, 송몽규와 윤동주

$30.13
Description
올해, 2025년은 송몽규와 윤동주가 저 세상으로 떠난 지 꼭 8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해방을 앞둔 1945년 2월 16일, 윤동주가 먼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했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3월 7일, 송몽규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두 사람은 1917년, 용정 명동촌에서 불과 세 달 간격으로 태어났습니다. 같은 집, 윤하현 댁에서 태어났는데, 그 집 주인 윤하현은 윤동주의 친할아버지이자 송몽규의 외할아버지였습니다. 고종사촌으로 맺어진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생사고락을 함께한 둘도 없는 벗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닮은 만큼 다른 점도 있었습니다. 송몽규는 외향적이고 행동이 앞선 성격으로,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이 세워지고 통제가 심화되던 은진중학교 시절,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습니다. 1935년 5월, 그는 용정을 떠나 남경으로 가서 김구가 이끄는 학생훈련소에 입교하며 투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반면 윤동주는 조용한 성품으로, 신사참배 강요와 식민지 현실의 고통을 시로 받아내며 고뇌를 극복해 나가고자 하였습니다.
1937년 두 사람은 1년여의 이별 끝에 다시 만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함께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일본 유학길에도 함께 올랐습니다. 그러나 둘은 1943년 7월,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함께 체포되었고,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뒤 재판을 받은 뒤에 후쿠오카 형무소에 옮겨졌다가 그곳에서 옥사하였습니다. 해방이 겨우 반 년 남짓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광복 80주년이자, 두 사람의 순국 80주년을 맞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제1부에서는 두 인물의 생애를 다시 조망하고자 했습니다. 윤동주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시인이기에, 익숙한 삶의 궤적 속에 그의 시를 함께 배치하여 그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자 하였습니다. 반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송몽규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자 하였으나, 관련 자료가 매우 부족하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나마 용정에 계신 이광평 선생님의 증언과 도움으로 송몽규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특히 윤동주 묘소 곁으로 송몽규의 묘소를 이장할 당시 선생님이 촬영한 사진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귀중한 자료로, 빈틈을 메워주는 소중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제2부는 1945년 이후 2025년에 이르기까지 두 인물이 어떻게 기억되고 추모되어 왔는지를 국내뿐 아니라 중국 용정, 일본까지 범위를 넓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송몽규와 관련한 기록은 드물어, 결국 윤동주 중심의 기술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점 역시 아쉬움이 큽니다.
이 책은 2년에 걸쳐 준비해온 작업의 결실입니다. 처음 원고는 울퉁불퉁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거칠었지만, 선인출판사의 윤관백 사장님의 격려와 조언, 박애리 실장님의 세심한 교정과 편집 덕분에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그저 조그만 조각보 같은 기록일지라도, 윤동주와 송몽규, 두 젊은 영혼이 걸어간 길을 다시금 되새기고, 그들이 지켜내려 했던 자유와 조국의 의미를 새기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이 글을 맺습니다.


2025년
이계형
저자

이계형

국민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박사학위(문학박사)를받았다.국민대학교,중앙대학교,가천대학교등에서강의했으며,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규명위원회·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추진단전문위원으로활동했다.현재는국민대학교교양대학교수로재직중이다.
주요저서로는《숫자조선연구,식민지조선인의삶》(2014),《한국근대사》(2018),《최현배(우리말글을목숨처럼지킨)》(2019),《한줄로읽는한국근대사연표1863~1945》(2020),《한말‘한일조약’체결의불법성과원천무효》(2021),《끝내지못한독립운동가이야기,최명식회고록》(2022),《해방후김구의백범일지》(2023)등이있다.

목차

책을내면서

1부송몽규·윤동주,삶
용정에서의삶
한인첫동네,명동촌이세워지다.
윤동주집안,명동촌에자리잡다.
명동촌에명동학교와명동교회가들어서다.
간민회,사우계·농문계와대립하다.
송몽규부친,송창희가명동촌에들어오다.
송몽규와윤동주가태어나다.
명동학교교사를신축하다.
일본군이불태운명동학교를재건하다.
송몽규·윤동주,재건한명동학교에입학하다.
송몽규·윤동주,문학소년을꿈꾸다.
송몽규·윤동주,은진중학교에진학하다.
송몽규,동아일보신춘문예‘콩트’부문에서뽑히다.
윤동주,최초의작품‘초한대’등의시를짓다.
윤동주·문익환,숭실중학교로전학하다.
윤동주·문익환,숭실학교를자퇴하고광명학원중학부에입학하다.
송몽규,은진중학교재학중한국특무대예비훈련소에입교하다.
송몽규,대성중학교에편입하다.

서울에서의삶
송몽규·윤동주,연희전문학교에입학하다.
송몽규·윤동주,일제의민족말살정책을체험하다.
윤동주,시로서힘든시기를극복하다.
송몽규·윤동주,1학년첫여름방학을맞아귀향하다.
윤동주,2학년재학중동경하던정지용을만나다.
윤동주,일제의더욱가혹해진민족말살정책에절필하다.
윤동주,연희전문3학년재학중정병욱을만나다.
윤동주,기독교신앙에회의를느끼다.
1940년12월윤동주,1년3개월만에다시시를쓰다.
윤동주,4학년재학중종로구누상동마루터기에서하숙하다.
송몽규·윤동주,《문우(文友)》잡지를발간하다.
윤동주,정병욱과함께북아현동에서하숙하다.
윤동주,첫시집『하늘과바람과별과시』를내다.
윤동주,창씨개명에〈참회록〉을짓다.

일본에서의삶
송몽규·윤동주일본에유학하다.
윤동주,도쿄릿교대학에서교토도시샤대학으로옮겨가다.
송몽규·윤동주,일본에서비밀결사를조직하려다특고경찰에체포되다.
송몽규·윤동주,교토검사국에송치되어재판을받다.
송몽규·윤동주,후쿠오카형무소에투옥되어순국하다.

2부주검과추모그리고기억
고향용정에서윤동주를기리는사업
윤동주유해,고향에돌아오다.
윤동주유해,용정동산의중앙교회의묘지에묻히다.
송몽규유해,고향에돌아와장채촌뒷산에묻히다.
1985년5월,잊혀졌던윤동주묘소를찾다.
윤동주묘소를1차(1988.6),2차(2003.7)로정비하다.
송몽규묘소를찾아윤동주묘소옆으로이장하다.
윤동주생가를복원하다.
중국정부가윤동주생가를복원하고윤동주시인을‘조선족’으로공식화하다.
중국정부방침에따라‘윤동주생가옛터’표지석내용이바뀌다.
옛대성중학교에윤동주시비를건립하다.
윤동주,중국연변에알려지며각종기념사업이펼쳐지다.

국내에서의윤동주시집편찬과추모
해방직후윤동주·송몽규의첫추도회가열리다.
윤동주첫유고시집,『하늘과바람과별과시』발간하다.
윤동주여동생,윤혜원부부가월남하다.
1955년〈하늘과바람과별과시〉증보판을발행하다.

한국인이가장사랑하는시인,윤동주
윤동주,1950년대중반이후세상사람들에게주목받기시작하다.
저항시인으로자리매김하다.
윤동주시,외국어로번역되다.
윤동주시가낭독,작곡되고시화전이열리다.
1980년대초윤동주·송몽규생체실험사망설이불거지다.
1980년대윤동주시집출판이확산하고평전이출판되다.
윤동주시,1980년대다양한매체를통해전국민에게알려지다.
윤동주와그의시,소설로재탄생하다.

일본에서의윤동주
윤동주,일본에까지알려지다.
일본내윤동주의시비가세워지다.
일본내윤동주를기리는모임이탄생하다.
일본내윤동주시집번역서·평전이출판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