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서양 의학과 고등 교육의 개척 및 정착으로 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올리버 R. 에비슨은 130년 전 미국 북장로교회의 의료 선교사로 내한하였습니다. 에비슨은 조선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제중원에서 의학 교육을 재개하였고, 후에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 및 의학교로 발전시킴으로써 일제가 주도한 의학과 대별되는 한국 서양 의학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특히 1908년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7명을 배출한 후, 1913년에 세브란스를 여러 교파가 힘을 합쳐 연합으로 운영하고, 1917년 전문학교로 승격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한편 여러 교파의 선교사들이 서울에 종합 대학을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았을 때, 이미 토론토 대학교 의학부와 약학대학의 교수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에비슨이 큰 역할을 맡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에비슨은 이 연합 기독교 대학이 1917년 연희전문학교[Chosun Christian College]로 조선 총독부의 승인을 받자 제1대 (정규) 교장에 취임하여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와 함께 양교 교장을 18년 동안 겸임하면서 일제가 주도한 고등 교육과 대별되는 한국의 고등 교육을 정착시킨 주역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번에 간행되는 「자료집 VIII (1914~1916)」은 에비슨이 여러 선교본부들이 공식적으로 선교지 한국에서의 연합 의학 교육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호주 장로교회를 제외한 다른 교파의 연례회의와 총무를 만나 연합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 결과 6개 교파가 연합 의학 교육에 참여하기로 승인하였고, 1916년 4월 세브란스 연합의학교 이사회의 첫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렇게 세브란스가 연합으로 운영되는 데에는 부친의 뜻을 이은 존 L. 세브란스와 더들리 P. 알렌 부인의 후원이 큰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입니다. 이와 별도로 에비슨은 북장로교회 서울 지부와 미국 감리교회 한국 선교부가 추진하던 서울의 연합 대학 설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1915년 12월 임시 부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머리말 中)
한편 여러 교파의 선교사들이 서울에 종합 대학을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았을 때, 이미 토론토 대학교 의학부와 약학대학의 교수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에비슨이 큰 역할을 맡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에비슨은 이 연합 기독교 대학이 1917년 연희전문학교[Chosun Christian College]로 조선 총독부의 승인을 받자 제1대 (정규) 교장에 취임하여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와 함께 양교 교장을 18년 동안 겸임하면서 일제가 주도한 고등 교육과 대별되는 한국의 고등 교육을 정착시킨 주역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번에 간행되는 「자료집 VIII (1914~1916)」은 에비슨이 여러 선교본부들이 공식적으로 선교지 한국에서의 연합 의학 교육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호주 장로교회를 제외한 다른 교파의 연례회의와 총무를 만나 연합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 결과 6개 교파가 연합 의학 교육에 참여하기로 승인하였고, 1916년 4월 세브란스 연합의학교 이사회의 첫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렇게 세브란스가 연합으로 운영되는 데에는 부친의 뜻을 이은 존 L. 세브란스와 더들리 P. 알렌 부인의 후원이 큰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입니다. 이와 별도로 에비슨은 북장로교회 서울 지부와 미국 감리교회 한국 선교부가 추진하던 서울의 연합 대학 설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1915년 12월 임시 부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머리말 中)
올리버 R. 에비슨 자료집 8: 1914∼1916 (세브란스 연합의학교의 재단 이사회를 조직하다 | 양장본 Hardcover)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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