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우 강우규 평전 (한의사에서 교육자)

왈우 강우규 평전 (한의사에서 교육자)

$23.00
Description
올해는 광복 80주년, 강우규 탄생 1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럼에도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잊혀진 전설이 되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에 그동안 절판되었던 졸저 『강우규의사평전』(선인, 2010)을 수정·보완해 보았다. 이 책의 간행을 통하여 강우규 의사의 진면모가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깊은 감동을 주는 조그마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책을 내며 중)
저자

박환

경북청도출생
서강대학교사학과에서한국독립운동사를전공(문학박사)하였으며,고려학술문화재단이사장으로재임중이다.수원대학교사학과교수,한국민족운동사학회회장등을역임하였다.
주요저서로는『동방김세환평전』,『필동임면수평전』,『문창범평전』,『대한민국임시정부의현장을가다』,『100년을이어온역사가의길』,『한국독립운동사의반성과과제』,『신흥무관학교』,『만주독립전쟁』,『독립군과무기』,『독립운동과대한적십자』,『한국전쟁과국민방위군사건』,『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사진으로보는3·1운동현장과혁명의기억과공간』,『페치카최재형』,『근대해양인,최봉준』,『간도의기억』,『잊혀진민족운동가의새로운부활』,『사진으로보는만주지역한인의삶과기억의공간』,『만주벌의항일영웅김좌진』,『만주지역한인민족운동의재발견』,『박환교수와함께걷다,블라디보스토크』,『잊혀진혁명가정이형』,『사진으로보는러시아지역한인의삶과기억의공간』,『민족의영웅,시대의빛안중근』,『김좌진평전』,『강우규의사평전』,『박환교수의만주지역한인유적답사기』,『러시아지역한인언론과민족운동』,『박환교수의러시아한인유적답사기』,『시베리아한인민족운동의대부최재형』,『경기지역3·1독립운동사연구』,『식민지시대한인아나키즘운동사』,『대륙으로간혁명가들』,『재소한인민족운동사』,『러시아한인민족운동사』,『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등이있다.

목차

책을내며

제1장강우규의민족의식은어떻게형성된것일까
이동휘를만나기전
이동휘를만난이후

제2장강우규,민족운동에뛰어들다
만주·러시아로의이주와1910년대민족운동의전개
노인동맹단에참여

제3장신임총독사이토,조선에오다
사이토의서울역도착과환영준비
조선인기자의시선으로본그날의모습

제4장65세의노인,조선총독을향해폭탄을던지다
강우규의폭탄투척과『매일신보』의보도논조
여러시점에서본의거의순간

제5장강우규의거의탄생비화
의거까지의전과정살펴보기
폭탄은어떻게구입하였는가
자금은어떻게마련하였나
의거에참여한인물들은누구인가
의거의‘숨은’배후는누구인가-이동휘,김규면,정재관

제6장의거후의이야기
의거직후에서재판에이르기까지과정
재판광경
남겨진가족들의아픔

제7장강우규의상고취지서분석
의열투쟁의배경
최자남의무관성주장
공의(公議)에따른심판요구
1,2심법원의처사에대한비판
동양평화론을주장

제8장강우규를의거로이끈힘
청년교육
기독교에바탕한독립사상
동양평화론으로평화론을주창


제9장강우규의사가남기고간것들
강우규의순국이후
민족운동사적의의

부록강우규의사의손녀강영재증언

출판사 서평

우리에게‘윤봉길’,‘이봉창’이라는이름은너무나익숙하다.한번도직접만나본적은없지만,TV를통해익숙하게알게된유명연예인의이름처럼말이다.하지만‘강우규’라는이름은어떠한가?비인기연예인을우연히길을가다가마주쳤을때에느끼는애매함처럼대부분은어딘가에서한번쯤은들어본것도같고아닌것도같은낯설음을느낀다.이는참으로안타깝고아이러니한일이다.강우규는어찌보면위의인물들을우리가지금까지도익숙하게,또는영웅으로기억할수있도록만든인물이기때문이다.한마디로말하면,1919년사이토마코토(齋藤實)총독을향한강우규의의거는이러한의거가탄생되는데도화선역할을하였다고볼수있다.강우규의거는3·1운동이후최초의의열투쟁으로서,이를시작으로이들의의거를비롯한많은의거로이어지게되었기때문이다.
이와같이3·1운동이후의크고작은의거들에직간접으로영향을주게되는강우규의거는1919년9월2일오후5시서울역(남대문역)에서일어났다.3·1운동을시작으로타오른국내외의뜨거웠던만세운동에도일제는끝까지조선통치를포기하지않았다.이에만주·러시아등지의일부한인들은일제를우리땅에서몰아내기위해무장투쟁을전개하고자하였다.그들이세운계획중에는조선총독을저격함으로써한인들의독립의지를일본과세계만방에전달하자는것도포함되어있었다.그계획의실천자가바로한의사강우규였다.강우규는일제의삼엄한경계속에서도제3대조선총독으로부임하는사이토마코토를저격하기위해과감히폭탄을투척하였다.강우규가던진폭탄은안타깝게도목표했던사이토마코토에게는닿지못하였지만엄청난위력을발휘하여신임총독을환영나온일제관헌과그추종자들37명에게중경상을입히는성과를냈다.
강우규의거는단순히그가‘처음’이었기때문에주목되는것만은아니다.이는당시그의나이하나만으로도충분히주목할만하다.그가사이토마코토를저격한당시나이는65세.우리가잘아는안중근·윤봉길·이봉창의의거나이가각각20·24세·32세였다는점을감안한다면강우규의의거는노인에의하여이루어진사실이라는점에서도상당히흥미롭고대단한사건이라할수있다.
이렇게여러면에서의미가있는강우규의거는조선총독으로부임하는사이토에게큰경고가되었음은물론국내외한인들의민족의식고취에도크게이바지하였다.특히그는의거이후의재판과정과수형생활·처형과정에서도일제앞에끝까지당당한모습을보임으로써생을마감하는마지막순간까지한인들에게깊은감동을안겨주었다.
강우규의거는이와같이우리민족운동선상에서매우중요한위치를차지한다.따라서일반에는다소생소한이름이지만,학계에서는비교적많은주목을받아왔다.그결과그의의거에대해서는일정부분구체적인사실들이밝혀지기도하였다.하지만여전히한의사강우규라는인물과그의항일운동의전체적인모습이제대로조명되고밝혀졌다고는할수없다.따라서이책은강우규라는인물과그의의거를다각도로살펴봄으로써그동안제대로조명되지않고밝혀지지않았던부분들을드러내고자한다.즉그의의거를총체적으로살펴봄으로써학계나아가일반에도그의이름이제자리를찾아갈수있도록만들고자함이이책을쓰는작은목적이다.
구체적으로는강우규의민족의식형성,민족운동의전개·사상,그의의거와순국이끼친영향,그의활동이한국민족운동사상에서갖는역사적의미등에대해살펴보려한다.특히사상면에서필자는그의사상의핵심이기독교사상과동양평화론이라고생각하나,지금까지학계와일반에서는이점을간과하였다고본다.따라서한의사강우규는단순한활동가가아니라안중근과마찬가지로분명한시대인식을가지고활동에임했던인물임을부각시키고자한다.
강우규는필자개인적으로도큰애정과존경심을느끼는인물이다.이는비단그의의거가우리역사에서차지하는비중이크기때문만은아니다.인간적인면모와사회적인측면에서강우규는우리에게깨달음을주는바가참많은인물이기때문이다.사람은나이가들면들수록삶에대한집착이강해지는동물이다.말로는죽음을쉽게이야기하지만,나이가들수록죽음은더욱큰두려움으로다가오게된다.때문에젊은이가나라를위해목숨을내어놓는것보다노인이자신의목숨을나라를위해내어놓는것이훨씬더어려운일이아닐까.당시나이65세로서의학이발달한지금은60대가젊은노인축에속하지만,60대는이미평균수명을넘긴나이로생물학적으로죽음의기로에서있는나이였다.그는바로이런인간적인두려움을초월한인물이었다는점에서충분히조명되어져야한다고생각된다.
한편으로현재강우규가일반에낯선이름으로남았다는사실은우리사회의잘못된현주소를되돌아보게한다.강우규는그역사적위상에비해후대에크게조명을받고있지못하다고볼수있다.이는안타까운우리사회의일면탓이크다.역사적으로큰공헌을한인물의현위치는그후손들의유무와그들의경제적상황에따라더욱견고해지기도하고혹은약해지기도한다.이는참으로안타까운일이지만강우규의경우가그러한후자의예라고할수있다.여기에더해우리사회가가진‘성공’만을인정하는면이강우규의의거를더욱잊혀지게만든요인이된것이아닌가한다.강우규의거는총독암살이목적이었기때문에보통의잣대로는실패한의거이다.그러나총독을직접암살하진못하였어도그의의거가일으킨파장은성공한의거못지않게대단한역사적현실이다.그럼에도성공만을,1등만을중시하는우리사회의잘못된잣대가강우규라는인물을우리역사에서세월의흐름에따라조금씩지워왔다고생각한다.
이러한몇가지점들만보더라도지금우리가강우규라는낯선노인의이름을기억해야하는이유는더욱분명해진다.이책의마지막장을덮고난이후에는독자들의머릿속에우리가기억하는‘윤봉길·이봉창’앞에우리가잊고있던,그러나잊어서는안될그이름,‘강우규’가떠올려지길기대한다.
올해는광복80주년,강우규탄생170주년이되는해이다.그럼에도그의모습은우리에게잊혀진전설이되어있는것같아마음이아팠다.이에그동안절판되었던졸저『강우규의사평전』(선인,2010)을수정·보완해보았다.이책의간행을통하여강우규의사의진면모가모든이들의가슴속에깊은감동을주는조그마한계기가되었으면한다.

2025년11월문화당에서
청헌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