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반양장)

봄비 (반양장)

$12.00
Description
처음부터 시집을 완성하겠다는 다짐이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내가 시집을 완성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한 우연으로부터였습니다.
나의 책장을 정리하던 중, 종잇장들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너덜너덜해진 공책이 왠지 눈에 밟혔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한번 펼쳐 보니, 투박한 글씨체로 쓴 나의 초등학생 시절 일기였던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이민 올 때 엄마가 나의 일기를 가지고 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참으로 예상 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 나의 담임선생님은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페이지 한쪽이 깜지가 되도록 일기를 쓰게 하는 것은 좀 가혹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우리에게 긴 일기 대신 동시를 써오는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일기는 짧게 짧게 쓰여진 동시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꼬맹이가 쓴 동시는 역시 별 의미 없는 끄적임이었지만, 그중 몇몇은 지금의 나를 놀라게 할 정도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심하게 과찬하자면 시인의 브레인스토밍용 공책을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순수한 꼬마의 시각으로 자연을 의인화해 쓴 시들도 있고, 사춘기를 겪은 10대의 연애 감정들을 담은 낯간지러운 시들도 있는 조금은 두서없는 시집이 될 것 같지만, 책을 낸다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번역하는 작업에 많은 애를 먹었지만,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나의 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어 번역 버전도 같이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