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 평범한 물건에 담긴 한국근현대사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 평범한 물건에 담긴 한국근현대사

$18.46
Description
“나는 사람들의 삶을 모으고,
역사의 흔적들과 대화하는 일에 빠져 있다”
평범한 물건이 역사가 되는 순간,
어느 컬렉터의 특별하고 가슴 뛰는 역사 읽기

30여 년 전,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우연히 찾은 토기 파편 하나가 열정적인 역사 수집의 시작이었다. 사진 한 장에서부터 일기장, 편지, 영수증, 사인, 사직서, 온갖 증명서까지 개개인의 삶과 일상이 담긴 물건들을 모으고 또 모았다. 자료에 숨겨진 역사적 코드들을 하나둘씩 추적하고, 그날을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면서 역사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시간은 희열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30여 년간 한결같이 컬렉터를 사로잡은 수집과 역사 읽기의 흥미로운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저자

박건호

저자:박건호
1969년경남밀양에서태어나고자랐다.서울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한국외국어대학교대학원정보기록학과에서기록학을공부했다.명덕외국어고등학교를시작으로지금은강남대성학원에서학생들을가르치고있다.
대학1학년때답사를가서우연히빗살무늬토기파편을주운것을계기로30여년간역사자료를모으며컬렉터로서의삶을살고있다.그에게‘수집’이란최고의즐거움이자휴식이다.그동안모은수집품의양을자신도정확히모를만큼방대한컬렉션을가지고있다.1990년대에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활동하며《국사수업자료집》,《주제별슬라이드수업자료집》,《노래와소리로보는우리역사》등다양한역사교육자료를만들어역사교사들에게신선한자극을주기도했다.최근에는수집품하나하나에담긴깊고오랜이야기를소개하는글을쓰고있다.‘역사컬렉터’로서자부심을느끼며,수집이야기를통해많은이야역사읽기의즐거움을나누고싶다.

목차

책을펴내며

MYCOLLECTION1독립협회보조금영수증
독립문과세번의독립

MYCOLLECTION2실종자조용익을찾는훈령
정미의병과사라진통역관

MYCOLLECTION3조선의영어교재,지석영이펴낸《아학편》
정약용과지석영이《아학편》을논하다

MYCOLLECTION4정읍청년김남두가고향에보낸엽서
오시오,경성자동차학교로!

MYCOLLECTION51936년베를린올림픽당시손기정사인
나는‘기테이손’이아니라손기정이다

MYCOLLECTION6다시만날동무들사진
사진한장에담긴전쟁과평화

MYCOLLECTION7신탁통치에반대하며쓴사직서
피로쓴사직서에담긴반탁운동이야기

MYCOLLECTION8콜레라창궐로인한학생귀향명령증명서
호열자,1946년해방조선을덮치다

MYCOLLECTION9한국전쟁중차영근의전시수첩
난중일기,치열한고지전의비극을담다

MYCOLLECTION10포로수용소에서온편지
청년권봉출은어떻게북한군포로가되었나?

MYCOLLECTION11한국전쟁중육상경기대회기념사진
전쟁도지우지못하는민중의삶에대하여

MYCOLLECTION12태극기가걸린결혼기념사진
결혼과출산,그리고국가주의

MYCOLLECTION13경기중학교3학년김장환의일기장
대통령생일이뭣이그리중헌디!

MYCOLLECTION14김유신장군기록화전시장사진
김유신은어떻게유신의아이콘이되었나?

출판사 서평

컬렉터의특별한역사읽기
―수집품과대화하며역사속평범한사람들의삶을되살려내다

흔히‘컬렉터’하면아주오래된유물이나값비싼예술품을수집하는사람을떠올린다.그런데여기사진한장에서부터영수증,일기,편지,사직서까지,평범한사람들의삶이묻어있는생활자료를모아그속에숨은역사의퍼즐을맞추는재미에흠뻑빠진컬렉터가있다.30여년간발품을팔아직접찾아낸이자료들은겉으로보기에사소하고평범한것같지만,수집품하나하나가가슴뛰는이야기들을품고있다.그래서그는새로운수집품을만나면어떤이야기와역사가담겨있는지추적하며끊임없이자료와대화를시도한다.
이책은컬렉터의방대한수집품가운데시대상이생생히드러나고거대한역사적사건의이면을들여다볼수있는14가지수집품을소개하며,평범하지만우리네삶의이야기를품고있는물건들을통해거대역사에가려져있던보통사람들의역사를생생히복원한다.독립협회보조금영수증에쓰인날짜를통해독립문이건립될당시사람들이생각하던‘독립’의의미를다시집어보고,한강다리를몇번이나오갔다는내용의눈물젖은엽서에서대한제국의청년이겪은생활고와취업난을떠올리며,일장기를재활용해만든태극기에서갑작스레찾아온독립의환희를느끼고,한고등학교의육상대회우승기념사진한장에서전쟁도지우지못한민중의삶을되살려낸다.
이처럼이책은컬렉터와수집품들의대화록이자역사속‘이름없는그들’과나누는대화이다.어디에나있을것같지만쉽게접할수없는컬렉터의수집품과그에담긴이야기를통해격동의한국근현대를살던사람들이느낀희노애락과욕망,좌절,그리고난관을극복하기위한도전들을오롯이마주할수있다.

나의수집은단순히옛날물건을찾아모으는행위가아니라,역사의흔적들과끊임없이대화하며역사의단편들을만나고이해하는과정이다.나는역사의흔적을간직한자료들을찾고또수집했다.일기장,팸플릿,신문,잡지,생활문서,사진자료만이아니라크기나재질에구애받지않고다양한형태의역사자료를수집했다.그자료들을가만히들여다보노라면어떤것은화난표정을짓고있고,어떤것은흥겨움과기쁨의감정을담고있다.또어떤것은하늘이무너지는듯한아픔과슬픔을간직하고있고,어떤것은삶의표정이그속에고스란히투영되어있다.―〈책을펴내며〉(7~8쪽)중에서

내수집품중에낡은태극기가한장있다.이태극기는사괘를먹으로대충그린것인데,태극은빨간색뿐이다.그런데자세히들여다보니빨간색위에파란색을덧칠한흔적이있다.일장기를가지고손수꾸며만든태극기였다.1945년8월15일,한국인들은느닷없이광복을맞았다.사람들은그기쁨에겨워태극기를흔들고싶었을것이다.그런데태극기를구하기가쉽지않은참에일장기가눈에띈것이다.그렇지!일장기위에태극문양과사괘만그려넣으면된다.태극기를일장기로만들기는어려워도,일장기를태극기로만들기는쉬웠을것이다.이처럼광복직후에사용된태극기는상당수가일장기를재활용한것이었다.……나는일장기를재활용한태극기에서일제강점기35년의세월을감내하고광복을맞이했던당시한국인들의감격과환희를느낀다. ―〈책을펴내며〉(7쪽)중에서

컬렉터가수집품과대화하는법
―물건에담긴이야기를추적해역사의퍼즐을맞추다

컬렉터가수집품과대화하는과정,곧물건에담긴이야기를추적하는과정은독자들에게새로운역사읽기의참맛을선사한다.이야기를완성하기위해서는역사의퍼즐조각을하나씩찾아내고맞춰야한다.이책에서소개하는‘한국전쟁중육상경기대회기념사진’(211쪽)은그과정을잘보여준다.
이사진은어느고등학교교사와학생들이찍은육상대회우승기념사진이다.사진에적힌날은1952년7월,한국전쟁중에찍은것임을쉽게알수있다.그렇다면장소는?어느지역의학교일까?컬렉터는사진에적힌‘영동학교육상경기대회기념우승’이라는문구에서‘강원도’라는조각을,학생들이입은운동복에새겨진교표모양으로‘삼척공고’라는조각을찾아낸다.이제가장중요한조각이남았다.전쟁중에어떻게육상대회가열렸을까?이조각을찾기위해서는한국전쟁중삼척일대상황을살펴야한다.익히알려진역사적배경과더불어삼척시역사까지찾아본컬렉터는,삼척이북한군치하에있던기간이길지않았고1·4후퇴이후북한군이삼척까지남하하지못했으며,1951년7월휴전회담이후전투는오늘날의휴전선근처에서고지전의형태로만일어났기때문에,사진을찍은시기는예전의일상을회복해가던시기였음을밝혀낸다.그러나이것이끝이아니다.사진속에서유리가없는창문과군경원호포스터등에주목하며,전쟁속일상을살아야했던사람들의불안한마음도함께읽어낸다.

전쟁에도삶은계속되었다.생필품을사고파는시장이열리고,노천천막아래에서도수업을하고,교회종소리와기도소리는평화를갈구하며예배당을가득채웠다.……수집한사진중에이런역사의속살을엿볼수있는사진이있다.어느고등학교교사와학생들이찍은육상대회우승기념사진으로,2017년4월에수집한것이다.사진에적힌연도가단기4285년7월13일이니서기로1952년,한국전쟁중에찍은것이다.전쟁때육상대회라…….쉽게이해가되지않는다.게다가대회가열린곳이전선과멀지않은지역이어서더욱그렇다.‘전쟁중에도일상이계속될수있을까?’이물음이내가이사진을수집한이유다.
―〈MYCOLLECTION11전쟁도지우지못하는민중의삶에대하여〉(214~216쪽)중에서

교과서가들려주는역사를넘어
―생활속자료들로만나는‘살아있는’한국근현대사

우리가교과서에서배우는역사는거대하고구조적이다.그것이역사의전부라면너무삭막하지않은가?컬렉터는“교과서에나오는역사는반쪽짜리역사”라고말한다.역사적인사건들이일어났을때도사람들은각자의일상을살며나름의방식으로자신들의삶을기록하고남겼다.
이책은조선이세계에문을열던19세기말부터유신체제가만들어진1970년대까지,시대상을보여주는역사적사건과더불어그시대를살았던평범한사람들의삶을고스란히담았다.컬렉터의수집품을남긴주인공대부분은이름이알려지지않은사람들이다.그렇다고해서그들이들려주는이야기가결코가볍거나가치없는것은아니다.오히려우리가알고있던역사너머의세계로우리를안내한다.그야말로온전히‘살아있는’,‘진짜’한국근현대사라할수있다.
해방직후콜레라창궐로학생들에게발급된귀향명령증명서,신탁통치에반대하며피로쓴사직서,한국전쟁중포로수용소에갇힌청년이부모님에게보낸편지,이승만대통령생일기념행사를의아해하는중학생의일기등.익히알고있는역사적사건이일어난당시를살았던사람들은무엇을느끼며어떻게살았는지,그삶의생생한모습이되살아난다.

나는오래전에독립문관련자료를몇가지수집했다.첫번째는1897년독립문건립을위한전국적모금운동당시밀양에사는안효응이란인물이성금1원을내고받은‘독립협회보조금영수증’이다.……두번째는해방후의독립문관련자료들로,첫번째소개한독립협회보조금영수증에비해희소성은떨어진다.먼저1955년에발행된광복절기념우표로태극기와독립문,그리고끊어진쇠사슬로광복10주년의의미를표현했다.1975년발행된광복30주년기념주화도비슷한데,앞뒷면에태극기를들고만세를외치는유관순열사와독립문을새겨광복의의미를담았다.그런데이첫번째와두번째자료에등장하는독립문은50여년의시차만큼이나다른의미를담고있다.독립문은세워질당시의의미와해방이후사람들이인식한의미가매우달랐다.
―〈MYCOLLECTION1독립협회보조금영수증〉(19~20쪽)중에서

나는손기정의사인을한장가지고있다.마라토너손기정의가슴아픈이야기를담고있는뜻깊은사인이라큰맘먹고어렵사리수집한것이다.내가수집한이사인지는식민지시기손기정의이야기를담기에는너무작다.고작가로10센티미터,세로3.5센티미터!여기에도손기정의한글이름(‘손긔졍’)과영어이름(‘KichungSon’)이적혀있다.영어이름도‘KiteiSon’이라고쓰지않았다.이름밑에는‘KOREAN’이라고썼다.‘KOREAN’이라고쓴글자가가장크다.손기정이의도적으로크게쓴것은아니었을까?……이작은종이조각에서우리는식민지시기를살았던‘고개숙인챔피언’의비애를마주하게된다.그리고그것이얼마나크고무거웠는지알기에1992년황영조가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우승했을때노쇠한챔피언이왜그렇게감격스러워했는지,그리고1988년서울올림픽개막식때성화를들고스타디움에들어서면서덩실덩실춤추듯이뛰었는지충분히헤아릴수있다.
―〈MYCOLLECTION51936년베를린올림픽당시손기정사진〉(108~110쪽)중에서

해방직후발급된증명서한장을수집했다.이낡은증명서는전남무안공립농잠학교1학년장상기학생의것으로,학교가무기휴교와함께학생들에게귀향조치를취하면서발급한증명서였다.발급시기는1946년8월29일,휴교이유는다름아닌‘호열자창궐’이었다.호열자는콜레라의우리식이름이다.……내가장상기의‘귀향명령증명서’에관심을가진것은1946년8월이라는시점때문이었다.해방후1년이지난그시기에대해내가아는것은주로정치사였지정치사너머그시대사람들의일상에대해서는아는바가별로없었다.……그런데그해창궐한호열자역시1946년8월을이야기할때빠뜨릴수없는중요한역사적사건이다.무차별적으로퍼져나간전염병까지아울러야그시대민중의삶을보다생생하게이해할수있지않을까?
―〈MYCOLLECTION8콜레라창궐로인한학생귀향증명서〉(156~157쪽)중에서

2016년‘권봉출’에대한자료여러점을한묶음으로수집했다.자료는각종상장과졸업장,성적표들이었는데,내가관심을가졌던이유는그속에섞여있던편지한통때문이었다.검열인이뚜렷이찍혀있는이편지는뜻밖에도한국전쟁중이던1952년1월북한군포로를수용하던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권봉출이고향인경북예천에사는아버지권주선에게보낸것이었다.포로수용소에서온편지라니!게다가북한군포로의고향이당시남한땅인경북예천이라니!권봉출에게는어떤사연이있었던것일까? ―〈MYCOLLECTION10포로수용소에서온편지〉(194~196쪽)중에서

지금이야개인들의자유로운의사에따라결혼과출산을선택하지만,처음부터그리고어디에서나그랬던것은아니다.매우사적인사랑·결혼·출산등도공권력의직간접적인정책과통제에서자유로울수없었다.……결혼및출산과관련한국가주의적발상을길게늘어놓은이유는내가수집한결혼기념사진들때문이다.이기념사진들을보면결혼식도유행을타서저마다특징이있다.결혼식복장의변화를살피는것도재미있지만,특히관심을끈것은배경을장식하고있는태극기였다.이런사진을여러장모아놓고보니태극기를거는것이한때유행한결혼식문화이거나특별한의미가있는듯했다.초대를받아간결혼식장에대형태극기가걸려있다면어떤느낌일까?게다가결혼식을시작할때국기에대한경례까지한다면?지금이야잘상상이되지않지만우리에게그런시절이있었다.
―〈12태극기가걸린결혼기념사진〉(237,240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