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두지 (비운의 실학자, 조선의 국방 청사진을 그리다 | 양장본 Hardcover)

상두지 (비운의 실학자, 조선의 국방 청사진을 그리다 | 양장본 Hardcover)

$18.41
Description
정약용이 감탄하고 정민 교수가 되살린
우리 실학사의 숨겨진 거장, 이덕리
18세기 조선을 지킬 탁월한 국방 전략을 기획하다!
《상두지》는 근대 이전 조선의 국방 시스템과 안보 인프라를 구체적으로 설계한 보기 드문 실학적 저작이다. 두 차례의 왜란과 두 차례의 호란이 끝나고 전란 없이 지낸 지 약 200년, 당쟁에만 골몰한 조정과 안일에 빠진 벼슬아치들을 대신해 불운한 실학자 이덕리가 절박한 충심으로 국가에 닥쳐올 전란을 대비한다. 이덕리는 국제적인 차(茶) 무역을 통한 군비 재원 마련부터 둔전 조성, 병력 수급, 방어 시설 건설, 군사 전략·전술, 무기 제조법과 사용법까지 조선을 수호할 다채로운 제도와 방책을 《상두지》 한 권에 짜임새 있게 정리했다. 다산 정약용이 감복하여 자신의 저술에 인용했을 정도로 《상두지》는 치밀한 통찰과 기발한 상상, 폭넓은 원용을 자랑한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학자 정민 교수는 억울하게 귀양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한 이덕리를 최초로 발굴해 학계와 대중에 소개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세월의 무지에 묻혀 있던 이덕리 필생의 역작 《상두지》를 심혈을 기울여 되살려냈다. 국방 인프라 조성과 무기 체계 정비에 대한 실용적 비전을 담은 거의 유일한 전근대 저술인 《상두지》는 당시 주류 군사 전략의 한계를 날카롭게 꼬집고, 18세기 조선의 안보 현실에 맞춘 새로운 국방 정책의 틀을 대담히 제시한다. 더불어 이덕리의 국방 제도 기획에서 엿보이는 당대 실학사상의 발전 단계를 가늠케 하고,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전통 무기들의 기묘하고 범상찮은 자태를 눈앞에 소상히 불러온다.
저자

이덕리

李德履,(1725~1797)
조선후기의실학자.자는이중(而重),본관은전의(全義)다.그간정약용의저술로잘못알려진《상두지》와《동다기》의실제저자다.정조즉위직후형이덕사가사도세자신원상소문을올린사건에연좌되어진도에서19년간유배생활을했고,영암으로이배되어2년을더살다가73세의나이로세상을떴다.《상두지》와《동다기》를비롯해문집인《강심》을남겼다.

목차

서문
서설비운의실학자이덕리와《상두지》의국방기획

《상두지》권1
서문(序文)
둔전의제도[屯田制]
둔졸의모집[募屯卒]
둔졸의급료제도[制屯?]
성터마련하기[置城基]
성첩쌓기[築城堞]
둔전의설치[置屯田]
갈오로물을끌어오는법[渴烏引水法]
귀차설(龜車說)
맹화유(猛火油)와솔기름[松?]
소가죽[牛皮]
동선령(洞仙嶺)과청석동(靑石洞)
정장(亭障)
둔군(屯軍)의1년치비용
전지(田地)의비용
벽돌[?]
박서(朴犀)의옛벽돌
상진(尙震)의계책
이세재(李世載)의둔전경영
황신(黃愼)의대동법(大同法)

《상두지》권2
통론(通論)
요고성의제도[腰鼓城制]│길을닦고도랑을설치하는방법[開道設溝法]
은성의발막[隱城撥幕]
평지에함정을설치하는[平地設險]세조목
성둑[城塢]
거도(鋸刀)
요고포(腰鼓砲)
선자포(扇子砲)
분통(噴筒)
솔기름[松?]
무쇠검[水鐵?]
종이갑옷[紙甲]
주작포(朱雀砲)
사륜차(四輪車)
삼륜차(三輪車)
익호우(翼虎牛)
현조포(玄鳥砲)
괴자차(拐子車)
조교(弔橋)
화차(火車)
기이한제도세조목[三條奇制]
동포(銅砲)│연노(連弩)│설교(設橋)
일통제론(一統諸論)
빙차설과빙차도설[?車竝圖說]
빙차설(?車說)│도설(圖說)
형천(荊川)당순지(唐順之)의《무편(武編)》
철(鐵)
모기령(毛奇齡)의《후감록(後鑒錄)》초록
산보(山堡)로막아지킬때대처하는방법[山堡防護之法]│돌대포에주술을걸때막는방법[石?厭禳之法]│끈과기둥으로성을무너뜨리려할때막는방법[?柱?城之法]│불을뿜어성을공격할때대처하는방법[火?攻城之法]│뇌석(?石)과곤목(滾木)을쓸때막는방법[?石滾木之法]
《만사합지(蠻司合誌)》초록
쇠갈고리와파산호로낭떠러지를타고오르는방법[鐵?爬山虎緣崖之法]│줄사다리와갈고리,노끈으로원숭이처럼올라가는방법[?梯鉤繩猿?之法]│죽패,화준,속멸을쓰는방법[竹牌火?束?之法]│포석(?石)으로여공거(呂公車)를공격하는방법[?石呂公車衝擊之法]
곡식을헤아리는셈판[量穀數板]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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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토지제도부터건축과전술,무기제조까지
조선국방정책의근본을재창조한보기드문실학저작

《상두지》는조선후기의지리와기후,경제와군사정보에관한폭넓은식견을바탕으로평시와전시각각의방어체제와무기체계를정밀하게논한다.기존의국방관련서적들이병법서면병법,진법서면진법에관해서만기록했다면,《상두지》는한사람이전부집필했다고는믿을수없을만큼다양한분야의묘안을상세히설명하고,그실행방안을단계별로정리했다.조선을수호할국방기조의정형을새로짜고체계적인시스템을갖추고자한것이다.
이덕리가국방개혁의시작점으로꼽은둔전(屯田)조성에관한내용을예로들면,《상두지》는그저‘둔전이좋으니만들어야한다.’라는당위적인주장에그치지않는다.역대중국의둔전제도를살피고,조선에서둔전을운용할방안으로둔전설치지역과규모,둔전용토지를사들일재원마련책,산간지대의수리시설설치방안,둔졸의모집대상과운용비마련및급료지급방식까지빠짐없이서술했다.어중간한견문으로는넘볼수없는수준의자세한방책을제안함으로써실제로[實]쓸모있는[用]‘실용’의미덕을오롯이실현했다.
이러한방식으로《상두지》는군사요충지에무슨성(城)을어떻게지어야하는지,이성을지키기위해어떤전술로병사들을다루어야하는지,각각의전술에알맞은무기를어떻게만들고사용해야하는지마치DIY가구조립안내서처럼차례차례설명한다.마지막에는변방의이민족이나농민군과의공성전에시도되었던각종전법,그리고무기생산을위한제철과제련에관한내용까지종합했다.이런점에서《상두지》는전근대시기국방시스템의총체적혁신안을내보인희소한저작으로,그자료적가치가매우크다고할수있다.

성터를골랐거든구덩이를몇자깊이로파고돌로가득메운다.그뒤2장5척너비의얇은널빤지를성터위에가로질러놓는데,한쪽은성두께의기준으로삼고,다른한쪽은흙틀의골격으로삼는다.그양쪽끝을묶어널빤지사이에흙을채워쌓는다.하지만바닥에쌓는널빤지를많이가져와즐비하게잇대놓고뭇사람이힘을모아함께만드는데,일제히소리를맞춰달구질한다.(…)치첩(雉堞)바깥쪽은아래위가똑같아야하니너비를줄여서는안되고,치첩안쪽은줄을이루는것이좋다.《통전(通典)》의방법에위쪽너비를아래쪽의절반으로줄이라한것은내생각에반드시그럴것은아닌듯하다.
-〈성첩쌓기[築城堞]〉중에서(57쪽)

‘국제적인차(茶)무역으로재원을마련한다’
18세기조선의안보현실에맞춤한실용적국방담론

《상두지》는조선의안보현실을고려한정책방향설정과자신의국방구상안을실현할재원마련방법과같은거시적담론도과감히제기한다.조선초기,기병전중심으로짜였던군제와전술은임진왜란당시왜군의조총앞에무력화되며보병중심운용으로대폭수정되었다.하지만명나라군대가후금에대패하고,조선역시정묘·병자호란을겪으며북방의기마병이주적으로자리하면서기병전술의중요성이다시강조되었다.이덕리는이처럼국방전략의변수로작용하는상황변화를면밀히읽어내각종군사적조건에최적화된방어체제와이를뒷받침할특성화된무기체계를갖출것을건의했다.특히병자호란당시황해도와평안도의곧고평탄한도로를타고후금의기병이빠르게남하한데반해,조선의방어체계는산성위주여서속수무책으로당할수밖에없었던뼈아픈역사적사실을조목조목반영했다.
이덕리가자신의구상안을현실로옮기기위해국제적인차(茶)무역을제의한부분은《상두지》의백미라할수있다.이덕리는한해1만근의차생산에5천냥의비용을들여,포장·운송및인건비와창고물류비용을제하고도1년에순수익으로8만냥이상을얻을수있다고보았다.나아가해마다생산량을늘려100만근의차를채취하면1년에800만냥을얻게된다고했다.가난한백성의생계에도도움이되고국가는막대한수익을창출하게되므로,이를국방비용으로지출하면그야말로국방재정의기반을일거에바꿀수있는획기적인기획이아니겠느냐고역설했다.하지만이덕리의제안은안타깝게도조선사회에서아무런반향도일으키지못한채잊히고말았다.오히려130여년이지난1925년식민지조선에들어온일본인들이이가능성을재조명했고,1940년태평양전쟁당시보성차밭에서4만개의떡차를생산해몽골전장에납품하기도했다.조선에들어온지몇십년도되지않은일본인들이금방알아챌만큼조선의차가지닌잠재적부가가치가높았기에,이덕리의주장이공론에그치고만역사는더씁쓸히다가온다.

영남과호남에는곳곳에차가있다.만약한말의쌀을1근의차로대납하게하고,10근의차로군포를대납하도록허락한다면수십만근을힘들이지않고모을수있다.배로서북관의개시(開市)에운반해월차(越茶)에인쇄해서붙여둔가격과같이1냥의차에서2전의은을받으면10만근의차로2만근의은을얻을수있고,돈으로는60만전이된다.이돈이면한두해가못되어45개의둔전을설치할수있다.
-〈둔전의설치[置屯田]〉중에서(69~70쪽)

살아서는연좌제로귀양가고,죽어서는정약용으로오인된
비운의실학자‘이덕리’의이름을되찾다

이덕리의《상두지》는이제껏정약용의저술로잘못알려져왔다.더불어학계뿐아니라직계후손들조차‘이덕리’라는인물의존재자체를모르고있었다.수백년을이어온이오해와무지는이덕리의기구한운명에서비롯한다.이덕리는당대글솜씨로명성있던문사들의시문을엮은《병세집》에박지원,이용휴등쟁쟁한문인들과나란히이름을올릴정도로상당한문명(文名)을뽐냈다.그러나친형이덕사가정조즉위년에사도세자의복권을청하는상소를올렸다가대역부도에몰려사형에처했고,이에연좌된이덕리또한진도에귀양가서19년을지내다영암으로이배되어2년뒤쓸쓸히세상을떴다.자식셋도동시에함경도와전라도,경상도로뿔뿔이유배되어이후한번도만나지못한채세상에서잊혔다.외딴섬에갇힌처지에서도이덕리는나라에보탬이되겠다는충정을담아《상두지》를저술했다.그러나유배된죄인이라는신분을고려해자신의이름을의도적으로감췄기에살아생전그의뜻을알아준이는아무도없었다.

이《상두지》한권은부서진집,비가새는거처에서해진옷에이를잡으면서얻은것이대부분이다.농사짓는것도버리고직분너머의것을생각했으니,나를알아줄것도나를죄줄것도바로여기에있을것이다,여기에있을것이다.잠시가을바람이서늘해지고이른곡식을방아찧을만할때를기다려이책을소매에넣고가서먼저광범문(光範門)밖으로달려가그다음에는비변사의제공에게고하리라.만약혹칭찬만하고채택하지않는다면,곧장내년봄임금께서원행(園幸)하시는날에임금의수레앞을범하는죄를피하지아니하고배다리곁에서절하고이를올려,당나라대종(代宗)때남자순모(?模)가광주리와자리를가지고가서30글자를바쳤던고사를본받겠다.(…)공(公)이야인(野人)에이름을가탁하고자하였으므로권도(權道)로이서문을써서자신을감추었다.
-〈서문(序文)〉중에서(41~42쪽)

이덕리사후10년즈음,정약용이《상두지》를손에넣게된다.정약용은《상두지》를읽고난뒤그꼼꼼한주장에감복하여자신의저술에세차례나인용함으로써세상에이덕리의이름과이책의존재를처음으로알렸다.하지만이를계기로《상두지》가도리어정약용의저작으로잘못알려졌고,이덕리가세상을뜬지220여년이지난오늘날까지도그의존재는망각의저편에묻혀있었다.조선말기의문신김윤식은자신의시문집《운양집》에“근세에정다산이《상두지》를지어,관서의직로에성을쌓고보루를설치하고자했다.내가일찍이그정확한논의에감복했었다.”고쓴바있다.《상두지》저자에대한이와같은오인은조선최고의실학사상가정약용만큼이나이덕리가경륜과실력을갖춘위대한실학자였다는사실을방증하는셈이다.
지난15년간이덕리의생애와저술을추적해온정민교수는제자들과함께한해를꼬박몰두하여《상두지》를세심히교감하고온전히완역했다.생동감가득한관련도판을부지런히찾아수록했고,낯선전문용어에관한주석을상세히달아이해를도왔다.《상두지》는국방안보시스템을개혁하고병장기운용체계를쇄신하여장차의국가적환난을대비하자는충절과신의에서발아한이덕리의대표저술이다.이번완역을시발점으로《상두지》가지닌국방사적가치와의의에관한연구가한층활발해져그간우리의기억에서지워졌던실학자이덕리의위상에도변화가있기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