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행의기록으로18세기유럽을생생히그려내다
―서양사학자설혜심이수많은사료에서건져올린살아있는역사
‘일상의모든것을역사학의주제로탄생시키는사학자’라는수식어에걸맞게서양사학자설혜심교수가최초의교육여행그랜드투어를통해18세기유럽을생생히그려냈다.교양과지식을쌓기위해더넓은배움터로향한,소수엘리트만이누릴수있던이특별하지만생소한여행을따라가다보면근대유럽의교육과여행의면면은물론지성의탄생을목도하게된다.
그랜드투어는유럽을뒤흔들던종교갈등이누그러진17세기후반,정치적안정과경제적풍요가찾아온영국에서시작되었다.케임브리지나옥스퍼드로대표되는대학교육이시대의변화를따라가지못하자영국의상류층들은어린자식들을유럽대륙으로보내외국어와세련된취향을배우며경험을쌓게했다.이여행은귀족뿐아니라토머스홉스와애덤스미스,볼테르,괴테등유럽최고의지성들도동참하며‘엘리트교육의최종단계’로자리매김하기에이른다.
그랜드투어는국경을초월한거대한인적교류와예술과건축의발달,계몽사상의전파등근대유럽의토대를마련했다는점에서역사적으로중요한의미가있지만,한국에서는물론해외역사학계에서도오랫동안주목받지못했다.저자설혜심은당대의여행지침서와교육서,신문사설은물론이고여행자들의일기,부모와주고받은편지,동행교사와하인의기록같은개인이남긴문서까지치밀하게파헤쳐그랜드투어와근대유럽의탄생과정을입체적으로펼쳐낸다.
또이책에서는역사상최초로‘교육을위한여행’을표방한그랜드투어를오늘날의유학,조기
유학,어학연수,그리고해외여행의시발점으로서조망한다.특히그랜드투어열풍이일었던18세기유럽에서어린자녀를해외로보내는일의득과실에대한논란이일었던것처럼,이‘교육여행’의역사를통해오늘날해외유학의가치를돌아보게한다.
우리에게익숙한근대초유럽의위인들대다수가그랜드투어를떠났다는사실을알아가는과정은참으로흥미로웠다.그들이왜떠났고무슨마차를타고다녔으며어떤여행지침서를읽었고친구와어떻게놀았는지에대해읽을때마다마치내가18세기로돌아가그들과함께여행하는것같은느낌도들었다.옛것에대한묘한취미라고해도좋고,일종의엿보기가주는즐거움일수도있다.……나는그랜드투어의정형을도출하기보다는실제로그랜드투어를떠난사람들의경험에초점을맞추고자했다.여행자개개인의족적을되살리고그시대의맛을살리기위해당시문헌의일부분이나마가능한한있는그대로많이싣고자했다.그과정에서구조나인과관계에함몰되어잃어버렸던‘이야기로서의역사’가얼마나재미있는가를새삼깨닫게되었다.―〈프롤로그〉중에서(10쪽)
18세기영국에서는상류계층을중심으로젊은이들의해외여행열풍이불었다.우리가역사책에서만나는위대한인물들과이름모를수많은사람들이영국해협을건너대륙으로향했다.당시유럽대륙에서는몰려드는사람들을보며‘영국인의대륙침공’이라고부를정도였다.그리고그열풍은곧영국뿐만아니라다른나라로도퍼져갔다.엘리트교육의최종단계로여겨진이여행은‘그랜드투어’라고불렸다.……투어에그랜드가붙은데는돌아다니는지역이넓고여행기간이길다는점이외에도사회적으로높은계층의근사한여행이라는의미가숨어있다.
―〈Chapter1그랜드투어의탄생〉중에서(19~20쪽)
영국젊은이들이해외여행을택한이유에는경제적인여유뿐아니라당시대학교육에대한불만도있었다.17세기말부터옥스퍼드나케임브리지대학등주요대학에대한비판과불만이점차고조되었다.18세기초대학은텅비고그위상은한없이추락했다.1733년케임브리지대학의크라이스츠칼리지는신입생이겨우세명이었다.대학의인기가하락한가장큰이유는바로진부한커리큘럼이었다.
……옥스퍼드나케임브리지대학에보내면라틴어나그리스어를조금배우고,고대로마나다른도시들에관해조금배우는것이고작이었지만,그랜드투어를보내면해당나라의지리,역사,정치,예술,건축,사회에대해많은것을배우리라고기대했다.
―〈Chapter1그랜드투어의탄생〉중에서(37,40쪽)
18세기유럽전역에서는코즈모폴리터니즘이두드러지게나타났다.……영국의그랜드투어리스트는물론이고프랑스나독일그리고이탈리아의지식인은넓은세상을여행하며많은사람과교류했다.……사회전반에서‘유럽’이라는어휘가보편적으로쓰이기시작한것도이때부터였다.17세기후반부터18세기초까지유럽을하나의단위로생각한인쇄물이갑자기많이출간되기도했다.……예술적차원에서도활발한교류가일어나서유럽이마치하나의무대처럼생각되었을정도였다.이렇듯범유럽주의적세계관이유행할수있었던데는계몽주의가한몫했다.유럽에이성의힘을앞세운새로운권력체들이등장하고국가들이저마다존립을위해서로를비교하는움직임이나타나는한편,일부계몽주자들은통합적인유럽에대한열망과구상을구체적으로표현하기시작했다.결국통합적인유럽에대한
관심,즉코즈모폴리터니즘이훗날유럽연합의탄생에영감을주게된것이다.유럽은이제거대한국가들의연합체로여겨졌고,거기에는국경을초월한시민주권이나인류애,힘의균형같은개념들이자리잡았다.―〈Chapter7코즈모폴리턴으로거듭나기〉중에서(293~294쪽)
2.그랜드투어리스트의여행의기술
―여행의준비부터여행에서꼭해야할일그리고귀국후처신까지
그랜드투어의열풍은다양한여행지침서를만들어냈다.18세기영국의베스트셀러여행지침서인토머스뉴전트의《그랜드투어》는국가의정치·경제등을개관하고명소를수록했으며,비용정보도구체적으로써두었다.지금의여행안내서와같은역할을했던것이다.여행자를위한경고나위기시대처방법도중요했는데,전염병,마차사고,강도등흔히일어나는일들은물론돈을빌릴수있는곳까지적어두거나자국인을더조심하라는내용이담긴것도있다.시간이지나면서여행지침서는점점진화해갔다.게으른여행자를위한워크북형식의지침서가있었는가하면,들고다닐수있는포켓여행안내서,오늘날의여행에세이처럼고전문학작품을인용해장소를설명한조지프에이슨의《이탈리아의여러곳에대해서》같은책도등장했다.
그랜드투어는사실여행준비만으로도힘든여행이다.평균2~3년이걸리니가져가야할짐도상당했다.화려한옷과장신구는기본이고,목욕통과위생을위한침구,아플때를대비한약상자와음식에넣을향신료도가져갔다.포크와나이프는꼭챙겨야하는물건이었는데,프랑스에서는이것이없으면저녁을먹을수없었기때문이다.여행지침서에는이런준비물목록만있었던게아니다.요즘여행안내서처럼여행에서돌아올때도시마다꼭사야하는기념품목록과자세한상점정보도포함하고있었다.
그랜드투어의최종목적지는대부분이탈리아로마였지만,여행자들은꼭프랑스파리를들러야했다.여행자들은파리에최소6개월은머물렀는데당시파리는유행을선도하는도시로,특히프랑스궁정은상류층이몸에익혀야할우아함을직접체험할수있는최고의학교이자유럽정세를한눈에파악할수있는곳이었다.나중에도움이될만한인간관계를만들기위해서는꼭만나야할사람도있었다.18세기유럽을여행한영국인여행자들에게가장인기였던사람은볼테르다.스위스제네바에정착한볼테르의저택에는볼테르스스로‘유럽여관주인’이라고칭했을정도로많은이가찾아왔다.
여행에서맺은인간관계는영국에돌아와서도계속이어져상류층의인맥을두텁게했고,일종의클럽이형성되었다.그랜드투어당시엽기적이고독특한행동으로악명높았던프랜시스대시우드는샌드위치백작과함께이탈리아여행의추억을공유하는‘딜레탕티회’를결성했다.이모임은장차미술품과유적에대한취향을발전시키면서영국예술사에매우큰역할을하게되었다.
여행자들은파리에도착하자마자새옷을사입었다.그것은필수적인절차였다.토비아스스몰렛은“영국인이파리에오면완벽한변신을하기전에는모습을보이지않았다”고말했다.프랑스식으로버클도
바꾸고,러플도새것으로손봐야했다.만년에그랜드투어에올랐던새뮤얼존슨박사마저파리에도착한당일에갈색무명으로만든옷을벗어던지고실크와레이스로만든옷을입었다.도시에영국인여행자가도착했다는소문이들리면곧온갖상인들이몰려들었다.재단사,이발사,검장수,모자만드는사람,향수장수,구두장이,심지어와인장수까지몰려와자기에게주문해달라고굽실거렸다.프랑스에서는토박이하인한명을고용하는것이바람직하게여겨졌는데,그들은곧바리바리물건이든가방을들고손가락끝에는주인의새러플을끼운채주인을따라다닐터였다.당시여행자에게파리에서돈을어디에가장많이썼는지묻는다면분명옷값이라고대답했을것이다.
―〈Chapter3여정〉중에서(102쪽)
근대초영국에서진정한지배계층의일원이되기위해서는재력과공직타이틀그리고상류층의교양이필요했다.그랜드투어를떠난젊은이들은프랑스어같은외국어뿐아니라해외문물에대한직접적인경험과대륙의세련된매너를습득해야했다.체스터필드경은아들에게이런편지를보냈다.“타고난장점과교양은너를어느자리에나올라갈수있게해줄것이다.지식은사람을소개하게하고,교양은최고의사람들에게귀염을받게해준다.내가자주말했듯이정중함과교양이야말로다른모든자질과재능을장식하는데절대적으로필요한것이다.……교양없는학자는현학자에불과하고,교양없는철학자는냉소가일뿐이며,교양없는군인은짐승이다.”
―〈Chapter4상류계층만들기〉중에서(154~155쪽)
그랜드투어는대륙의진기한물건들이영국으로들어오는중요한통로역할을했다.여행자들에게쇼핑의중심지는파리,로마,암스테르담이었다.파리는패션의중심지였기때문에젊은이들은파리에비교적오래머물면서옷과가발을맞추었다.화려한자수가놓인천도꼭사야하는물건이었다.고급벨벳과실크,다마스크천은상자에넣어영국으로보냈다.그런비싼천은옷을만들거나집안을장식하는데쓰였다.황금으로된코담배통,홍옥수와마노로만든도장,금박으로치장한대리석시계,다이아몬드가박힌회중시계,세브르자기같은화려하고세련된사치품도파리에서사야하는물품이었다.파리는여행자들이이탈리아다음으로미술품을많이구입하는곳이었다.《젠틀맨의가이드》를비롯한안내서들은파리에서살만한쇼핑목록을자세히안내하고있다.
―〈Chapter5예술과쇼핑〉중에서(227쪽)
3.애덤스미스부터괴테까지,그랜드투어를떠난위대한지성들
―여행으로연결된유럽최고지성들의거대한네트워크
우리가익히알고있는유럽최고지성들도이특별한여행에등장한다.이들은자신이직접여행을하거나귀족자제의여행에동행교사로함께했다.위인이지만이여행에서보여주는그들의너무나도인간적인모습이놀랍다.
위대한사상가존로크는옷을무척좋아한나머지파리에서유행하는옷을사들이느라여행경비를모두써버리고,영어사전편찬자로잘알려진새뮤얼존슨박사는너무가난해서66세라는늦은나이에친구가족을따라프랑스에가게되는데,여느젊은이보다열정적으로파리를둘러보았다.
애덤스미스는동행교사로따라간여행이지루한나머지책을쓰기시작했는데,그책이바로《국부론》이었다.이탈리아를여행한괴테는《이탈리아기행》을남겼고,에드워드기번은처음방문한로마에서《로마제국쇠망사》를쓰기로결심한다.
이여행자들이서로얽히고얽혀거대한네트워크를이루고있었다는사실은더욱흥미진진하다.볼테르의저택은자유사상가,귀족정치가들의성지와도같았다.에드워드기번과디드로,카사노바등유명인사들이볼테르를방문했다.루소는그랜드투어를하면서데이비드흄의집에머물렀고,애덤스미스는그랜드투어중흄에게따분함을토로하는편지를썼다.새뮤얼존슨박사의전기를쓴제임스보즈웰은여행중루소와볼테르를방문해깊은이야기를나누었고,숭고미를발견한고고미술학자요한요하힘빈켈만의안내로로마를구경했다.이러한유명인사들의교류는계몽사상이유럽전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