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의식 민족주의 :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

$33.00
Description
자신을 희생자로 포장하는 가해자
이에 맞서 희생자의 기억을 ‘세습’하는 피해자
가해자에게 빼앗긴 희생자 지위를 재탈환하려는 21세기 기억 전쟁

고통의 경쟁을 넘어 기억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지구적 기억의 윤리를 탐색하다!
우리가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76년째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식민 지배의 희생자로 굳게 믿어왔다. 그래서 아시아의 전쟁과 학살에 책임이 있는 일본의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가 참배하는 것을 볼 때마다 크게 분노한다. 하지만 참배 같이 노골적인 행위보다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히로시마 원폭의 기억을 통해 ‘피해자’ 일본이 부각될 때다. 히로시마가 반핵평화운동의 상징이 될 때, 전쟁의 책임이 흐려지고 가해자의 희생자성만을 강화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우리가 일본의 후안무치함을 비판할 자격을 갖춘 ‘정당한’ 희생자라고 믿을 때 나타난다. 저마다 자기 민족이 정당한 희생자라고 강변하는 시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21세기 기억 전쟁의 위험하고도 유력한 이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폴란드와 독일, 미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세계적인 기억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는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을 통해 21세기 기억 전쟁의 복잡한 풍경을 선명하게 포착한다. 수백만의 유대인이 희생된 홀로코스트 앞에서도 자신들의 고통만을 강변하는 독일과 폴란드의 우익,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영원히 세습함으로써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주의적 억압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의 명예를 더럽히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극우파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하게 지구적 기억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홀로코스트,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희생과 고통의 기억을 줄 세움으로써 누가 더 ‘우월한’ 희생자인지를 다투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자신의 과거를 정확하게 반성하지 못하게 만들고 민족 사이의 갈등만을 부추긴다. 고통과 희생을 혐오와 적대가 아니라 이해와 연대를 위한 마중물로 삼는 기억 연구가 절실한 이유다. 임지현 교수가 국경을 넘나들며 다년간 진행한 기억 연구를 결산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기억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지구적 기억의 윤리를 탐색하는 데 필수적인 길잡이다.

저자

임지현

저자:임지현
서강대학교사학과교수겸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소장.유럽지성사·폴란드근현대사·지구사연구자.전세계의트랜스내셔널히스토리연구자들과함께초국가적역사의관점에서일국사패러다임을비판하는작업을주도해왔다.현재는역사에서기억으로관심을이동하여인문한국프로젝트인‘지구적기억의연대와소통:식민주의,전쟁,제노사이드’를주도하며기억의연대를통한동아시아의역사화해를모색하고있다.
100편이넘는논문을국내와미국,일본,영국,독일,폴란드,프랑스등지의저명저널과출판사에서출간했다.최근작으로는《기억전쟁》(휴머니스트,2019)과MnemonicSolidarity:GlobalInterventions(편저,PalgraveMacmillan,2021)가있으며,2022년미국의컬럼비아대학출판부에서GlobalEasts:Remembering-Imagining-Mobilizing을출간할예정이다.
독일의MovingtheSocial,미국의Global-e를비롯해여러국제저널의편집위원으로있으며,팔그레이브출판사의기억총서‘EntangledMemoriesintheGlobalSouth’의책임편집을맡고있다.2015년‘글로벌히스토리국제네트워크(NOGWHISTO)’의회장으로선출되었으며,‘세계역사학대회(CISH)’,‘토인비재단(ToynbeePrizeFoundation)’,‘기억연구학회(MemoryStudiesAssociation)’등국제학회의이사및자문위원으로있다.최근에는기억활동가를자처하며홀로코스트집시희생자사진전〈이웃하지않은이웃〉(2019)을기획·전시하고‘메모리액티비즘’에대한기획강연등기억연구와풀뿌리역사의실천적접목을시도하고있다.

목차

들어가며―기억의지구사를향하여

Ⅰ.기억
민족주의의지구사
지구적기억구성체의형성
내면적지구화와기억의헤게모니
역사서사와기억문화
길찾기

Ⅱ.계보
도덕적원죄와희생의그늘
당당함과부끄러움사이
예드바브네학살과카인의후예
원거리민족주의

Ⅲ.승화
죽음의민주화와사자의기억
숭고한희생자와순교의국민화
시민종교와전사자숭배
탈영병기념비와대항기억

Ⅳ.지구화
탈냉전과기억의지구화
일본군‘위안부’와반인륜적범죄
검은대서양과홀로코스트
68혁명과기억의연대

Ⅴ.국민화
히로시마와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의기억전쟁
동아시아의기억과홀로코스트의국민화

Ⅵ.탈역사화
패전의우울과희생자의식
공습의기억과원리적평화주의
실향민·전쟁포로와가해의망각
희생의기억과역사의면죄부

Ⅶ.과잉역사화
집합적무죄와예드바브네
B·C급전범과조선화교포그롬
세습적희생자의식과이스라엘

Ⅷ.병치
나가사키의성자와아우슈비츠의성인
‘우라카미홀로코스트’와사랑의기적
반서구주의와반유대주의
풀뿌리기억과순교의문화

Ⅸ.용서
용서의폭력성과가톨릭기억정치
폴란드주교단편지와화해의메타윤리
독일주교단의답서와수직적화해
가톨릭형제애와동아시아평화

Ⅹ.부정
부정론,제노사이드의마지막단계
부정론의스펙트럼과담론적지형
국경을넘는부정론
증언의진정성과문서의사실성

?.연대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서양과동양의불평등한학문적분업체제를깬
임지현교수의역작《희생자의식민족주의》

‘일상적파시즘’,‘대중독재’,‘국사의해체’등민족주의정서에균열을일으키는개념을잇달아제시하며세계학계에신선한자극을불어넣은역사학자임지현교수.그는지구적기억공간을떠돌면서인문사회과학의설득력은연구자자신의개인적이고역사적인삶의경험에뿌리박은고유한문제의식과그경험을추상화할수있는이론적힘에있음을깨달았다.‘서양’이이론을제시하고‘동양’은경험자료를제공하는불평등한학문적분업체제가아닌,지구적근대의주변부인동유럽과동아시아의경험에천착한독자이론을제시했다는점에서이책의발간은큰의미가있다.‘대중독재’로해외학계의민족주의연구에큰반향을일으킨임지현교수는‘희생자의식민족주의’라는개념으로21세기민족주의를적확하게포착하며기억연구의새장을열었다.《희생자의식민족주의》는영어판으로도출간될예정이다.


1.누가‘숭고한희생자’의자리를차지할것인가
―국가의정당성을확보하는수단으로전락한희생의기억

오랫동안폴란드와독일등을넘나들며연구해온임지현교수는희생자의식민족주의가적나라하게드러난현장으로먼저폴란드의기억전쟁을살펴본다.1987년한문학평론가가제2차세계대전당시나치에게끌려가는유대인을방관했던폴란드인의행동을반성하는에세이를발표하자,에세이에공감하는목소리와나치독일에끈질기게항거했던폴란드가절대그럴리없다는항변이팽팽하게맞부딪혔다.폴란드의공식기억에서배제되고억압되었던풀뿌리기억이표면으로올라왔을때나타난격렬한반응은그만큼희생자라는자리가도덕적으로얼마나편안한것인지를드러냈다.폴란드인의죄의식을건드린사건은여기서그치지않았다.2000년폴란드인역사학자가‘예드바브네학살’을다룬책《이웃들》을발표하면서폴란드전체가뜨겁게달아올랐다.1941년7월폴란드동부변경의작은마을에서1600여명의유대인이학살당한이사건은학살의주체가다름아닌폴란드인이웃이었다는점에서큰충격을주었다.나치의희생자이자유대인을구출한정의로운저항자라는폴란드인의이미지는산산조각날수밖에없었다.

폴란드의‘세습적희생자의식’에서발생한균열은희생자의지위를세습했다고믿어의심치않는우리에게도나타났다.2007년미국에서출간된《요코이야기》가좌우를막론하고국내언론의맹비난을받은사건이대표적이다.일제의침략을통해조선과만주에살던일본인은제2차세계대전말기에대규모로피란을떠나야했다.어린시절피란행렬에끼어온갖고생을한저자는당시조선인의험악한분위기는물론수시로나타나는폭력을증언했다.저자의기억에서역사적맥락을소거한채피해의경험만부각한것은문제이지만,국내언론도재미교포사회도오로지‘희생자한국인’만을강변하면서개인의피해경험을지우려한한계가드러났다.

이처럼폴란드와한국의희생자의식민족주의는희생자라는위치를부각한다는점에서21세기민족주의의새로운모습을보여준다.전사자를‘숭고한희생자’로숭상하는국민국가는민족주의라는시민종교를통해정당성을확보해왔다.여기에고통받은희생자들의기억이덧붙어도덕적권위의근거가‘영웅’에서‘희생자’로바뀜으로써,지구적기억공간에서민족주의의모습은훨씬복잡해지기시작한다.


2.희생의기억은어떻게국경을넘나드는가
―기억의지구화와홀로코스트의국민화로보는기억전쟁

탈냉전을맞아기억도국경을넘나들며지구화시대에들어선다.특히2000년은지구적기억문화의‘0년’이라고해도지나치지않을만큼중요한해다.2000년1월에열린‘홀로코스트에대한스톡홀름국제포럼’은홀로코스트의교육과기억보존을의제로삼았다는점에서상징적이다.그리고그해12월‘일본군성노예제에대한여성국제전범재판소’가도쿄에서열렸다.‘위안부’문제에제국주의와성적폭력이동시에얽혀있음을분명히드러낸국제전범재판은일본군‘위안부’가결코한국만의문제일수없다는것을보여준다.미국의아르메니아제노사이드기억활동가들이‘위안부’희생자들과연대하고,아르메니아제노사이드생존자와‘위안부’희생자의증언을함께전시한기획이성사되는것은고통과희생의기억이국경을넘나들며갈등과연대의가능성을함께품고있음을드러낸다.

물론기억의연대가언제나매끄럽게이뤄지는것만은아니다.1963년일본의반핵평화활동가들은폴란드의아우슈비츠를찾아가‘히로시마-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평화행진’을진행했다.장장3만3000km에이르는긴여정끝에행진참가자들은“아우슈비츠는다시없게!”와“히로시마는다시없게!”를동시에외쳤다.원폭으로고통받는히로시마의기억과인간에게벌어져서는안될참혹한아우슈비츠의비극이포개지는순간이었다.평화행진은냉전의논리속에서이리저리휘둘리는등여러어려움을겪었지만,그중가장난감한순간은평화를갈망하는‘순수한’의도로행진을기획한평화활동가들이싱가포르에서일본제국주의의만행을맞닥뜨렸을때였다.희생자로나선이들이자기나라의가해자성을마주할때,기억의지구화는기억의국민화로이어지기도한다.

1950년대일본에서안네프랑크의일기가베스트셀러에오르고홀로코스트의비극을증언한빅토어프란클의책이출판시장에서선풍적인인기를끈것은홀로코스트의국민화를대표적으로보여주는일화다.홀로코스트에희생된유대인과원폭에희생된일본인사이의유비가일본독자들을끌어모으는동력이었음은물론이다.홀로코스트의국민화는일본에서만나타나지않는다.한국에서도‘위안부’문제를홀로코스트에빗대는데서단적으로드러난다.문제는홀로코스트의국민화가희생의기억을탈역사화할때빚어진다.희생의경험을곧바로홀로코스트에비유하고어느쪽이더큰희생자인지를가려내는기억의경쟁이사태를더욱복잡하게만든다.


3.가해의기억은어떻게손쉽게망각되는가
―기억의탈역사화와과잉역사화라는동전의양면

우리는독일이일본과비교할수없을정도로전쟁과학살의책임을받아들이고깊이반성하고있다고생각한다.그러나패전직후의독일은그렇게성찰적이지않았다.반성을강조하는점령당국의교육은독일인에게열패감만을안겼고,상당수의독일인이유대인등의절멸은어쩔수없었다는인식을완고하게지니고있었다.한마디로독일의탈나치화는신화였다.자신을희생자로인식하는것은일본도마찬가지였다.희생자신화가집권당과우익뿐만아니라평화헌법의지지자와평화활동가들사이에도널리퍼졌던것은물론이다.

역사적으로실재하는가해의경험이소각된채희생의기억만강조되는현상은피란민과전쟁포로에게도마찬가지로나타났다.노벨문학상수상작가인귄터그라스는《게걸음으로》에서빌헬름구스틀로프호의비극을묘사했다.1945년1월,1만여명의피란민을태우고동프로이센에서출발한배는소련잠수함의공격을받고침몰했다.독일이통일되면서우익들은빌헬름구스틀로프호침몰을거리낌없이내세우며독일의희생자성을강조했다.하지만그라스가종래의우익과다른점은희생의경험을일방적으로강변하지않는다는데있었다.빌헬름구스틀로프호가나치에복무했으며동프로이센피란민의상당수가나치지지자였음을드러낸것은가해와희생의기억을얼버무리지않고정확하게직시하려는노력의결과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가해의기억을탈색하려는무의식적욕망은사라지기는커녕더욱강해지고있다.예드바브네학살의가해자들이자신들은무고한피해자이고모든잘못은‘유대인빨갱이’가저질렀다고주장하거나,한국사회가일제의동남아침략의선봉에서다B·C급전범으로처형된조선인군무원들을‘일제에어쩔수없이복무한불쌍한조선청년들’로규정하는것이대표적이다.희생자민족은모두무고하다는‘집합적무죄’의식은학살의기억마저가려버린다.1931년7월만주에서벌어진조선인과중국인농민의갈등이언론의오보로조선인이각지에서중국인을학살하기에이른‘완바오산(만보산)사건’은사실상‘화교포그롬’이라불릴참극이지만,해방이후한국인은완바오산사건을슬그머니덮어두었다.홀로코스트의기억을무기로팔레스타인에대한식민주의적지배를정당화하는이스라엘도마찬가지다.희생자지위를영원히소유하고자하는희생자의식민족주의가위험한것은바로성찰을포기한채도덕적정당화에만골몰하기때문이다.


4.고통의기억을어떻게기억의연대로바꿀것인가
―복잡다단한기억을직시함으로써구축하는지구적기억의윤리

기억의지구화와더불어두드러지는현상은기억의병치다.나란히선기억은서로를참조하면서희생의고통을부각시키고사람들로하여금희생자와더욱쉽게동일시하도록만든다.1945년8월원폭투하당시나가사키의대학병원에입원해있던나가이다카시는죽기직전에기적적으로살아났다.그는성모마리아가마실물을주는환상을보았고,나가사키에체류했던막시밀리안콜베신부에게기도를드리라는음성을들었다.잠시‘아우슈비츠의성인’콜베신부를만나기도했던나가이는이후나가사키원폭의기억과홀로코스트의희생을적극적으로연결했다.나가이는공교롭게도우라카미천주당에서미사가있던그때그곳에서원폭이터졌다는데서우라카미가하느님께바쳐진제물이라는발상에이르렀다.나가사키가세계평화를위해제물로바쳐졌다는서사는종교적으로강렬한만큼정치적으로크게문제적인것이라고하지않을수없다.

일제의전쟁책임을종교적으로승화된기억으로덧칠하는기억정치의맞은편에는종교적으로승화된용서의윤리가있다.1966년폴란드가톨릭주교단이서독주교단에게보낸사목서신은희생자인폴란드인이가해자인독일인을용서한다는내용을담고있어폴란드에서엄청난파장을불러일으켰다.비록서독주교단의소극적인대응으로폴란드주교단이기대했던만큼국경을넘은반향을일으키지는못했지만,희생자가먼저가해자를용서한다는전복적인내용은탈냉전시대동유럽각지에서낭독되면서사람들이서로를보복학살하는비극을반복하지않겠다는다짐을이끌기도했다.폴란드주교단의사목서신은동아시아에서일본제국이벌인전쟁과학살의책임을받아들이고희생자민족들에게용서를구한다는일본주교단의결의로이어졌다.여전히국가의사과라는틀에서벗어나지못하는우리에게폴란드주교단과일본주교단이보여준화해의제스처는동아시아의초국가적화해와용서를위한아이디어를제공해준다.

지구적기억공간에서용서와화해를가로막는장애물은또있다.바로부정론이다.특히실증주의적부정론은‘물적증거’를강조함으로써생존자의증언을무력화하고희생의기억을자기들에게유리한쪽에묶어두려한다.희생자의개인적인기억은희생자의식민족주의의자양분인동시에,진영의유불리에따라억압되고배제되는것이다.이때기억활동가에게필요한작업은얄팍한‘팩트’를붙잡는것이아니라희생자/생존자의‘깊은기억’을끌어내고이를세심하게서사화하는것이다.

다년간국경을넘나들며기억연구를진행해온임지현교수는진정한기억의연대를만들어내기위해서는희생자의식민족주의를희생하는것이절실하게필요하다고강조한다.희생의경험을일방적으로내세우고서로다른희생의기억을줄세워국가와민족의정당성을강변하는데그치는희생자의식민족주의는국가간의장벽을더욱높여다른존재에대한혐오와적대만을양산하기때문이다.《희생자의식민족주의》는21세기민족주의를포착하는가장적확한개념인희생자의식민족주의를정확하게통찰함으로써지구적기억의윤리를모색한다.기억의성찰성과잠재력을탐색하는이책은혐오와적대가더욱더심해지는이시대를돌파하는데큰도움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