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본 고려 : 승자의 역사를 뒤집는 조선 역사가들의 고려 열전

조선이 본 고려 : 승자의 역사를 뒤집는 조선 역사가들의 고려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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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려·조선·현대 역사가들의 시선을 넘나드는
새로운 고려 인물 비평
만부교 사건은 태조의 성공한 외교인가 실책인가, 광종은 무도한 왕인가 개혁군주인가, 우왕과 창왕은 신씨 혈통의 가짜 왕인가? 다른 시대에 비해 사료가 적은 고려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고려, 조선, 현대 역사가들의 기록과 평가를 살펴 잊히거나 왜곡되었던 고려 인물들을 삶을 복원했다. 고려 당대 사료는 물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같은 조선 전기 관찬사서, 《성호사설》, 《동사강목》, 《여사제강》 등 조선 후기 대표적 학자들의 역사서, 그리고 현대 역사학자들의 평가까지 아우르며 인물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한 인물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의 평가들로 고려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인물 평가를 통해 역사해석의 즐거움을 맛본다.

저자

박종기

저자:박종기
0년넘게고려사연구라는한길을걸어온역사학자.전통과현대의접목,역사와현실의일체화를통한새로운역사상을수립하는데깊은관심을가지고고려사연구를하고있으며,‘고려다원사회론’을통해잊혔던고려왕조의개방적이고역동적인역사를되살리는작업을해왔다.
서울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같은학교에서고려시대부곡인과부곡집단에관한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국민대학교교수,한국역사연구회및한국중세사학회회장을지냈으며,현재역사저술가로활동하고있다.지은책으로는《새로쓴오백년고려사》(2020),《고려열전》(2019),《동사강목의탄생》(2017),《고려사의재발견》(2015),《고려의부곡인,〈경계인〉으로살다》(2012),《안정복,고려사를공부하다》(2006),《지배와자율의공간,고려의지방사회》(2002),《고려시대부곡제연구》(1990),《왕은어떻게나라를다스렸는가》(공저,2011)등이있으며,옮긴책으로는《고려사지리지역주》(2016)가있다.

목차

책을펴내며:고려,조선,현대를오가며역사인물비평을생각한다

1부고려전기인물론
1장태조왕건:만부교사건과거란전쟁
2장광종:개혁과입현무방
3장인종:실리외교와사대외교

2부무신정권기인물론
1장의종:의종을위한변명
2장이공승포폄론과공과론
3장명종:역사적평가와도덕적평가
4장조위총:충성과반역의갈림길

3부고려후기인물론
1장정세운·안우·이방실:홍건적침입과정세운피살
2장최영:요동정벌과최영의음모
3장이숭인:개혁과탄핵정국의희생양
4장권근:권근의행적과절의론

4부폐가입진론에연루된인물론
1장이색Ⅰ:탄핵의늪에빠지다
2장정도전:이색처형을주장하다
3장이색Ⅱ:이색을위한조선역사가의변론
4장우왕:조선왕조판‘역사바로세우기
5장창왕:왕과폐가입진

5부조선에서부활한고려인물론
1장최치원:고려와만난최치원
2장김득배:정몽주의스승김득배
3장길재:조선에서주목받은길재
4장원천석:신화처럼다가온인물

맺음말:조선역사가들의‘고려열전’,그특징과의미

본문의주

출판사 서평

1.조선역사가들의시선을빌려복원한새로운고려인물론
―사료속에박제되어있던고려인물을역사의무대로소환하다

새로운나라를개창하고‘승자의역사’를기록하게된조선역사가들은역사속으로사라진고려의인물들을어떻게평가했을까?또현대역사가들의평가와는어떻게다를까?30년넘게고려사연구와저술활동을이어온역사학자박종기의신작이출간됐다.고려사분야대표교양서《새로쓴오백년고려사》,《고려사의재발견》이500년고려사를통사적으로다뤘다면,전작《고려열전》에이은《조선이본고려》는역사를움직이는주체로서‘인간’에집중해고려사를서술하는이른바역사인물론이다.이번《조선이본고려》가특별한이유는그저인물을매개로당대역사를살피는데그치지않고,고려인물에대한후대역사가들의평가를망라하여각각의인물을다각적으로바라본다는데있다.다른시대역사가들의생각을경유하고종합하여고려인물들의삶을복원하는시도이자,고려사와역사인물을조망하는새로운방법론인셈이다.
태조왕건,정도전,최치원,이색같은고려의대표적인물뿐아니라,가장오해받거나잘못평가되어온우왕,창왕부터새로이주목해야할김득배,원천석까지.저자는고려당대부터조선,현대를넘나들며역사가들의시선을교차해살핌으로써,사료속에박제되어있던고려인물들을역사의무대로불러내생명력을불어넣는다.시대에따라변화하는역사를보는다양한관점과한인물을둘러싼겹겹의평가를그대로드러내고견주며고려사에대한이해의폭을넓히고,역사를움직이는‘인간’의삶을입체적으로이해하게한다.

조선역사가들은인물에대한평가를주로사론(史論)으로남겼고,따라서사론에언급된내용을중심으로그평가와견해를정리했다.이에그치지않고조선역사가들의평가와고려당대의평가,현대역사가들의평가를비교·검토해각인물의삶과그가살던시대를가능한한충실하고객관적으로살려내려했다.……다른시대역사가들의생각을통해또다른시대와그시대를산인물들의삶을복원하려는방법은지금껏역사서에서는볼수없던새로운시도이다.―‘책을펴내며’중에서(6~7쪽)


2.선과악의잣대를허물고인간의입체적인면모를살피다
―고려인물을바라보는다층적인시선

저자는조선후기역사가성호이익이저술한《성호사설》을기본텍스트로삼고,이익이소환한약20명의고려인물에대해각기다른시기,관점에서부여되어온평가들을덧붙인다.《고려사》,《고려사절요》같은조선전기의관찬사서,《성호사설》,《동사강목》,《여사제강》같은조선후기대표적학자들의역사서뿐아니라,최승로,서필등고려당대인물의평가부터저자본인을비롯한동시대역사학자들의‘현대판사론’까지아우른다.나아가‘시로쓴역사’로서우리역사에서는희귀한역사책인원천석의《운곡시사》와이색이남긴시편등,투철한역사의식으로당대의사건과현실을반영하는사료라면형식을가리지않고담아냈다.
다양한역사가들의해석이겹겹이쌓이면서,하나의사료로바라봤을땐알수없던고려인물의입체적면모가드러난다.예컨대고려의관리이공승은환관출신정함을관료로임명하려는의종의완강한요청에동의한이유로조선전기역사가들로부터비난일변도의평가를받았으나,조선후기이익은이공승이자신의결정을번복한사실에새롭게주목한다.이익의시선은인물을선과악의잣대만으로평가하는전근대유교사관의하나인포폄론에서벗어나있었다.
한편광종개혁을바라보는현대역사학계의긍정적인시선과달리,고려당대를살았던최승로와서필은광종에대한강한불만을숨기지않았다.광종대에이미기존질서에깊이안착해기득권을지키는것이중요했던이들의눈에정국의변화를꾀하는광종은견제해야할대상이었기때문이다.오히려800여년이지나고서야,광종은조선후기의학자이종휘에의해정치적이해관계로부터무관하게평가될수있었다.
이처럼한인물에대한역사적평가가일관된경우는찾아보기힘들다.이는역사가역시한시대에속박된개인으로서자신이속한사회의이념과가치관에서벗어나기어렵기때문이기도하고,혹은평가하는사람과평가받는인물이놓인상황의변화때문이기도하며,때론사건을보다객관적으로바라볼수있는충분한시차가생겨서이기도하다.무엇보다도핵심은인간이본래입체적인존재라는사실에있다.이로써우리는그간알고있던고려인물의새로운모습을,혹은선악으로납작하게평가되었으나다시주목받아야마땅한인물을새로이발견하게된다.

이익의인간관은인물의행적을각각공과과로나누어객관적으로평가하려는근대역사학의평가방식인공과론을연상시킨다.18세기조선의역사가이익의역사학에서그러한단서가보인사실은주목할만하다.이익은인물을오로지선과악의어느하나의잣대로평가한전근대유교사관의하나인포폄론에서벗어나있었던것이다.……이익은공과론의입장에서인물이가진공과과를두루살펴인물을입체적이고객관적으로평가하려했다.이익의공과론은오늘날우리에게역사와인물을어떻게평가해야할지새로운통찰과상상력을더해주고있다.인물평가의어려움과즐거움이공존한다는사실자체가역사학의또다른매력이다.―2부2장〈이공승:포폄론과공과론〉중에서(78~79쪽)

가까이에서보아야잘보이는경우가있고멀리서보아야잘보이는경우가있다.역사평가가그러하다.가까이서목격하고기록한사실은당대의시대성을담고있지만,평가와해석은한발물러선뒤에서볼때더객관적일수있다.광종사후800여년뒤의역사가이종휘의안목에서역사해석은시효성과관계없이살아움직이는생명체임을깨닫게된다.서필과최승로가광종이등용한귀화외국인을‘남북의어중이떠중이’,‘신참’,‘귀화한중국사람’으로비하하면서광종의등용책을비판했다.그러나이종휘는친소와귀천을가리지않는공정한인재등용책이광종개혁이성공한원동력이라고긍정적으로평가했다.이종휘의광종평가는광종치세로부터800여년이지난뒤의평가이지만,역사해석의다양성을보여주는좋은예가된다.―1부2장〈광종:개혁과입현무방〉중에서(38~39쪽)


3.승자의관점에서벗어나다시읽는고려사
―경합하고,수용되고,때로는뒤집히는역사평가와해석의현장

저자박종기는고려부터현대에이르기까지시대를넘나드는역사가들의평가를통해,고려인물에대한하나의서술이나관점을채택하기보다여러겹의평가를있는그대로제시한다.바로여기에서《조선이본고려》의미덕이드러난다.종전의평가를의심없이답습하는대신다시의문을던지고재해석하는것이역사가들의태도라면,이책이야말로역사학이지녀야할바로그태도를견지하고있기때문이다.독자는단선적으로매끄럽게서술된‘유일한’역사를암기하듯이받아들이기보다저자가역사가들의평가를견주고고민하는과정을좇음으로써,고려사에대한무수한해석이서로경합하고,수용되고,때론뒤집히면서현재에당도했다는사실을이해하게된다.
‘폐가입진론’을둘러싸고조선역사가들의평가가변화해온과정은이를보여주는가장흥미로운대목중하나이다.고려망국과조선건국이라는전환점의시기,우왕과창왕이신돈의아들이라는소문은신씨인가짜왕을폐하고진짜왕씨를세워야한다는‘폐가입진론’으로발전해두왕을죽음으로내몰았다.역사의주역이된조선건국세력은이일련의흐름을조선전기역사서《고려사》,《고려사절요》에기록했고,이는오래도록부정되지않는‘정사’로자리매김했다.하지만‘승자의역사’도결국은역사적진실을추구하는용기있는역사가들에의해뒤집히곤한다.300여년이흘러조선후기를대표하는성호이익,안정복등이이에의문을제기한것이다.
역사와그역사를움직인인물들에대한평가는이처럼시대에따라변화한다.이는역사학이지닌본질적인난점이기도하지만,동시에끊임없이역사를다시들여다보고재해석할수있다는뜻이기도하다.결국《조선이본고려》는역사는하나의모습으로고정될수없으며관점을초월한온전하고객관적인평가는불가능하다는지고의사실을새삼깨닫게한다.나아가지금이순간에도새로이해석되고만들어지고있는동시대의역사에대해고민하고사유할실마리를제공한다.

《고려사》,《동국통감》이편찬된15세기까지는우왕·창왕신씨설은거스를수없는것이며,그것을부정하는것은조선왕조자체를부정하는일이었다.그러나조선중기이후조선건국의이념과명분이약화되고,정치·사회·경제의변동에따라정치세력간대립과분열이나타나기시작했다.그에따라시대과제와시대정신에대한인식도변하면서신흠,이덕형등조선중기역사가들이‘신씨설’에의문을제기하기시작했다.이익역시조선건국명분의하나인우왕신씨설을공개적으로부정한용기있는역사가의한사람이었다.이익의제자안정복이저술한《동사강목》은신씨설을부정하는내용을공식적으로기록한첫역사책이었다. ―4부3장〈이색Ⅱ:이색을위한조선역사가의변론〉중에서(193쪽)

역사는과거와현재의대화다.역사해석에는과거보다현재가더크게작용한다고할수있는데,역사를쓸때역사가의사관이나그가살던시대의시대정신과가치에크게영향을받기때문이다.조선건국의정당성과명분이되었던우왕·창왕신씨설은건국당시에는부정할수없는진실처럼중요한가치를갖는듯했다.그러나조선후기에들어서면서신씨설은흔들리기시작했다.시대의변화에따른사관의변화일까?은폐되고왜곡된사실이베일을벗고진실의모습을드러낸것일까?어느쪽도배제할수없는가능성을지니고있지만,분명한것은특정시대의가치와이념이역사적진실을영원히묻어둘수없다는사실이다.
―4부4장〈우왕:조선왕조판‘역사바로세우기’〉중에서(204~205쪽)

조선의역사가들은자기시대의가치관과기준으로명종을평가한측면이있다.도덕적가치를기준으로역사를평가하는도덕적평가는당대의시대조건이나역사배경을고려하지않아추상적이고주관적일수있다.그런데역사를서술할때특정한이념이나가치를강조하는현상은꼭전근대역사학에서만일어나는것은아니다.현대역사학에서도언제든나타날수있다.
―2부3장〈명종:역사적평가와도덕적평가〉중에서(81쪽)

역사에서선과악의절대적기준이적용될수있는사건과인물은없다.또가치평가의기준은시대와역사조건에따라변한다.도덕적평가의가변적이고유동적인한계를성찰하지못하면,역사는도덕에게그지위를빼앗기게된다.이념,가치,도덕을강조하는역사학의위험성이바로이러한점에있다.
―2부3장〈명종:역사적평가와도덕적평가〉중에서(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