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의 씨

석류의 씨

$13.00
Description
《순수의 시대》의 작가 이디스 워튼이 초대하는
위험하지만 매혹적인 진홍빛 공포의 세계
이디스 워튼은 《순수의 시대》, 《기쁨의 집》, 《이선 프롬》 등의 작품으로 세계문학사에 분명한 이정표를 새긴 작가이자 국내에도 수많은 고정 독자를 가진 작가이지만, 그가 꾸준히 고딕소설을 써오며 고딕소설사에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워튼의 고딕소설 세 편과 대표작 한 편을 담은 이 책은, 위선적인 미국 상류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했던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스터리와 그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긴장감 넘치고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그려낸다. 표제작인 단편 〈석류의 씨〉는 결혼과 함께 집 안이 유일한 활동 영역이 되어버린 여성이 의문의 편지에 담긴 비밀을 밝혀나가며 여성에 대한 금기와 혐오, 불안과 대면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이디스 워튼이 일상과 가정이라는 안락하지만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시공간 위에 열어놓는 공포의 세계는, 위험하지만 매혹적이다.
저자

이디스워튼

저자:이디스워튼EdithWharton
1862년미국뉴욕의명문가에서태어났다.유복한집안에서성장한어린시절의경험은이후유한계급을생생하게묘사하는작품을쓰는데큰도움이되었다.상류층여성에대한억압적이고관습적인교육방식에거부감을가져학교에가는대신가정교사를통해배웠다.1885년자산가인에드워드로빈스워튼과결혼했지만,결혼생활은대체로불행했다.남편은워튼의문학적관심사에전혀공감하지못했고,결혼이듬해부터우울증을앓았다.평탄치않은결혼생활은워튼에게도신경쇠약과우울증을발병하게했지만,여성의삶에서결혼이영원한족쇄가되는공포를그린단편소설을탄생시키기도했다.남편과는오랜별거끝에1913년이혼했다.제1차세계대전이일어나자일자리를잃은파리의여성들을구제하기위한활동을펼쳤고,프랑스정부로부터이에대한공로를인정받아최고훈장인레지옹도뇌르를수여받았다.주요작품으로는평단의찬사와대중적인성공을동시에안겨준《기쁨의집》(1905),집단적인억압에맞선내면세계를섬세하게그린자전적인작품《이선프롬》(1911),여성의성적열정을다룬《여름》(1917),대표작이자퓰리처상을수상한《순수의시대》(1920)등이있다.1927년부터세차례에걸쳐노벨문학상후보에올랐던워튼은,1937년프랑스파리에서심장마비로사망했다.

역자:송은주
이화여대영문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런던대SOAS에서번역학을공부했다.현재이화여대인문과학원학술연구교수로재직중이다.2014년유영번역상을수상했다.옮긴책으로는《순수의시대》,《선셋파크》,《시스터캐리》,《시대의소음》,《마녀의씨》,《침묵》,《우리가날씨다》,《웃어넘기지않는다》등이있고,지은책으로는《당신은왜인간입니까》등이있다.

목차

편지_007
빗장지른문_073
석류의씨_147
하녀의종_201

해설|말할수없는것을말하기_239

출판사 서평

결혼이라는감옥에갇힌여성의불안과공포를담아내는
섬세하고설득력있는문장

《석류의씨》의인물들은모두불편한진실과마주한다.이진실이란새로운것이라기보다는알면서도애써외면해온것,마지막몇조각이맞춰지며그림이완성되는퍼즐에가깝다.단편〈편지〉의주인공‘리지’는이해심많은아내,현명한엄마로서헌신과희생이사랑의본질이라여기며살아가지만,결혼전자신이남편에게보냈던연모의편지가뜯기지도않은상태로외면당했다는사실을알게된다.그러나남편에게느끼는실망감이나혐오감보다최악인것은“갑자기드러난사실에그녀가정말로놀라지는않았다는사실”이다.리지는자신이사랑하는남자가어떤사람인지는짐작하고있었지만,누군가의아내,누군가의엄마라는역할에서벗어난자신은상상해본적없었다.남성이없는여성의삶은미완이라여겨지는시대였기때문이다.리지는기만에가까운남편의비밀을알게된뒤에도선뜻남편을떠나지못한다.애초에‘누구의무엇’이아닌자기자신으로존재할가능성에대해생각해보지못한탓이다.리지의조력자인또다른여성‘앤도라’가“우리여자들마음을믿지요?”라며리지를이해해보려하지만,누구의무엇이아닌채살아도괜찮다는자명한사실만큼은앤도라역시깨닫지못한다.

이렇게삶의범위가확장되었음에도결국은그너머개인적삶의공허한여백만을더절실히의식하게되었다.새로운생활이준여유를갖고나서야비로소무엇이사라져버렸는지깊이깨닫게된것이다.이런공허함때문에그녀는이를순간적인감정들로채우려애썼다.그녀는되는대로넣은가구가있고,‘일단보고마음에들면’사기로한장식품들이끝없이들어오는정리가덜끝난집의소유자같았다.(〈편지〉,39쪽)

〈석류의씨〉의‘샬럿’또한얼핏남편인‘디어링씨’의사랑을받으며만족스러운삶을사는듯보인다.그러나신혼여행에서돌아온날부터날아든의문의회색편지는점차일상에균열을일으키고,샬럿의위태로운삶의실체를낱낱이드러낸다.샬럿은회색편지를받을때마다남편의태도가차갑게바뀐다는사실을눈치채고도그의심기를거스르지않는것이행복을지탱하는일이라고믿는다.하지만회색편지는점점더샬럿의행복을잠식하고편지의발송인이누구인지알고있는듯한시어머니마저이에대해함구하면서,샬럿은“비겁한인간들이가장두려워하는것이진실”(소설가최은영추천사)이며“‘거짓말위에세워진’행복은언제나”무너진다는씁쓸하지만외면할수없는삶의진실에다다른다.

그녀가여태껏읽은모든소설의법칙에따르면,그녀를이미한번속인적이있는디어링씨는반드시계속해서그녀를속일것이다.(〈편지〉,67쪽)

이디스워튼은어려서부터글쓰기를즐겼지만그의어머니는딸이작가가되는것을원치않았다.워튼의남편역시문학적관심사에전혀공감하지못하면서워튼은훗날자신의결혼에대해“감옥의자물쇠가잠기는소리를들었다”라고회고한다.역설적이지만불행한결혼생활은여성의삶에서결혼이영원한족쇄가되는공포를그린인상적인고딕소설을탄생시켰다.나아가워튼은작가로서의인기와명예를누리게된이후에도여성에게관습적역할을강요하는가부장제사회의압력을견뎌야했지만,여성의불안과공포를표현하는수단으로고딕소설의장르적특성과형식을효과적으로차용했다.“고딕소설의정신은말할수없는것을말하는것”이라는그의말은,여성작가로서고딕소설의잠재력과폭발력을얼마나적확하게인식하고있었는지를잘보여준다.
이디스워튼이현대의여성들에게전하는
여전히유효한삶의진실

이디스워튼의단편은다소뒤틀리거나독자의예상을거스르는결말이특징적인데,《석류의씨》에실린고딕소설은특히더무한히열려있다.삶에대한기대가사라진남자‘그래니스’가과거에저지른살인을고백한뒤자신의유죄를입증하기위해안간힘을쓰는과정을그린단편〈빗장지른문〉에서도그래니스의유죄여부는명백히드러나지않는다.끊임없는실패로점철된삶을살아온그래니스에게살인은유일한성공의기억이지만,그마저도사람들의비웃음을사며부정당한다.워튼은자신의존재를증명받고자하는그래니스의간절한욕망을확실하게이루어주지않으면서소설을끝맺음하지만,아이러니한그의분투를속도감있는문장으로풀어내며독자로하여금어느새그의이야기에귀기울이게만든다.어떤진실은‘말할수없는것’이되어끝내감추어져야한다는삶의비의와모순을마법처럼드러내는이러한작가적재능은결코흔한것이아니다.워튼의가장잘알려진고딕단편이기도한〈하녀의종〉또한유령이야기의외피를쓰고있지만,소설의중핵에는사랑없는결혼생활과폭력적인남편에게갇힌여성의처지가담겨있다.‘브림프턴부인’은남편의친구이자이웃인‘랜퍼드씨’와교류하는것을유일한기쁨으로삼아살아가지만,이마저도남편에의해좌절된채미스터리한죽음을맞는다.〈하녀의종〉은작가가숨겨둔복선을단서로삼아양가적이고알쏭달쏭한마지막장면을복기해볼수있는흥미로운작품이다.워튼의인물들이끝내어느방향으로걸어가는지는알수없지만,어쩌면어떤삶은감추려했을때더선명하게드러나는것인지도모른다.이것은100여년전을살았던한여성작가가현재의여성들에게전하는여전히유효한삶의진실이다.


<책속에서>

그러나이렇게삶의범위가확장되었음에도결국은그너머개인적삶의공허한여백만을더절실히의식하게되었다.새로운생활이준여유를갖고나서야비로소무엇이사라져버렸는지깊이깨닫게된것이다.(〈편지〉,39쪽)

그녀는음모라는(누군가가편지를‘숨겼다’는)앤도라의생각을비웃었다.비밀을푸는데엔어떤외부의도움도필요없었다.디어링씨를3년간겪어본바로충분히알수있었다.그러나조금전까지만해도자신이완벽하게행복하다고믿어의심치않았다!지금그녀를괴롭게하는것중최악은갑자기드러난진실에그녀가정말로놀라지는않았다는사실이었다.그녀는어떻게된일인지너무나잘알았다.편지들은그가바쁠때도착했고,그는다른일에정신이팔려언젠가나중에읽어볼생각으로밀어두었던것이다.절대오지않을나중의어느때로.(〈편지〉,62쪽)

쇠고리같은의식은그들또한붙잡고있다.모두가자신의끔찍한자아에수갑으로채워져있었다.어째서다른누군가가되기를바라겠는가?유일한절대선은존재하지않는것뿐이다.(〈빗장지른문〉,120쪽)

걸어나오면서두려움은사라지고무기력함이다시그를찾아왔다.피터애스첨에게털어놓은후처음으로할일이없어졌음을깨달았다.지난몇주동안끊임없이뭔가해야한다는생각에끌려다녔다.이제한번더그의삶은고인물처럼멈추었다.그는거리모퉁이에서서이리저리쓸려가는차들의흐름을바라보면서,얼마나더오래느릿느릿제자리를맴도는자신의의식속에서부유하는상태를견딜수있을지절망적으로자문했다.(〈빗장지른문〉,134~135쪽)

그녀는혼자있는것이제일좋았다.케네스와함께있는또다른방법이었기때문이다.혼자있을때면남편이아침에집을나서면서했던말을다시생각해보고,그가계단을올라와혼자있는자신을보곤안아주면서무슨말을할지상상했다.하지만지금은그런상상대신한가지생각에만골몰했다.복도의탁자위에편지가있을까없을까.(〈석류의씨〉,150~151쪽)

문밖을나서기만하면바로기운이샘솟았다.촉촉한물기냄새나는헐벗은숲을지나산책할것이기대됐다.그러나집이다시눈에들어오면그순간부터또심장이우물에던진돌멩이처럼쿵하고내려앉았다.딱히음침한집도아니었건만,들어갈때마다우울한감정이나를덮쳤다.(〈하녀의종〉,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