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 (사회적 재난 시대의 고전 읽기)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 (사회적 재난 시대의 고전 읽기)

$18.00
Description
고립감과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해
재난 시대의 고전을 읽다

요양원에 고립된 이들을 돌보던 고전학자가 길어낸
사회적 재난을 넘어설 용기와 희망의 이야기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는 전염병을 다룬 문학 장르에 대한 헌사이자,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전하는 슬픔의 노래면서 질병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기쁨의 노래다.”
- 《랜싯Lancet》(의학전문저널)

코로나19가 퍼져나간 지 어느새 수년이 지났다. 조금씩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확진자는 발생하고, 코로나로 숨진 수많은 목숨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바이러스가 누그러졌다고 생각할 때 연이어 발생한 참사는 지금이 바로 ‘사회적 재난의 시대’임을 실감케 한다. 팬데믹, 전쟁, 홍수, 다중인파 안전사고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재난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이유는, 이와 같은 재난의 예방과 대응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몫이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 사회적 재난 시대의 고전 읽기》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2020년 초, 요양원에 고립된 이들을 위해 봉사에 나선 한 고전학자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자레츠키는 거대한 규모의 재난 때문에 감금되다시피 한 사람들의 고립감과 두려움을 실감했고, 사람들이 계속 목숨을 잃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꼈다. 정부 당국이 부주의할 때마다 희생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저자는 《페스트》의 한 구절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건강, 진실성, 순수 같은 것은 인간이 의지를 갖고 잠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16쪽)라고.

저자는 팬데믹이 안긴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재난의 시대에 쓰인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 대니얼 디포의 《전염병 연대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과 전쟁이 온 세상을 휩쓸던 시대에 태어났다. 재난 시대의 고전이 들려준 이야기는 한결같다. 재난은 인간에게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알려주며, 부조리 앞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바로 ‘주의력’이라고. 우리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삶이 품은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재난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을 보다 섬세하게 헤아릴 수 있다고. 우리가 나와 타인의 삶에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는 재난이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뒤흔드는 지금 꼭 필요한 책이다.
저자

로버트자레츠키

로버트자레츠키RobertZaretsky|휴스턴대학교근대고전언어학과교수.주로유럽의문화사와지성사를연구하며,실존주의와테러리즘,계몽주의의역사,파리와베를린의근현대사등을주제로강의하고있다.저서로《님의전쟁》(1994),《황소와수탉:폴코드바롱셀리와카마르그의발명》(2004),《알베르카뮈:인생의원리》(2010),《보스웰의계몽주의》(2015),《예카테리나와디드로:여제,철학자,계몽주의의운명》(2019),《전복적시몬베유:다섯가지주제로보는삶》(2021)등이있으며,국내에소개된저서로《카뮈,침묵하지않는삶》(필로소픽,2015)이있다.현재프랑스의소설가스탕달의전기를쓰고있다.《로스앤젤레스도서리뷰》역사부문편집자를역임했으며,《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보스턴글로브》,《휴스턴크로니클》,《포린어페어스》,《슬레이트》등에글을기고하고있다.

목차

들어가며

1장.투키디데스와아테네대역병
-사회전체를뒤흔드는질병앞에두려움없이서는용기

2장.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와안토니누스역병
-오염에맞서내면의왕국을다스리는지혜

3장.미셸드몽테뉴와가래톳페스트
-죽음이도사리는세계에서자유로워지기위한글쓰기

4장.대니얼디포와런던대역병
-통계의빈틈에놓인인간을세심하게포착하는이야기

5장.알베르카뮈와갈색페스트
-때가되었을때바르게행동할줄아는윤리

후기《최후의인간》부터《최초의인간》까지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1.재난앞에서왜고전을읽는가
-요양원자원봉사를하며깨달은고전의힘

저자는코로나19가미국전역을휩쓸기시작한2020년초텍사스주의한요양원에서자원봉사에나섰다.식당이폐쇄되면서치매나각종질환으로몸이불편한노인들이요양원에격리된채식사조차제대로할수없었기때문이다.직원들의단호한대처덕분에입소자들은무사히지낼수있었지만,그해10월주지사가가족의요양원방문을허용하면서각지의요양원에서사망자가속출했다.자신이직접밥을먹여주던사람들까지목숨을잃자,저자는큰충격과자괴감에빠졌다.너무나많은사람이정부당국의부주의속에서목숨을잃었던상황을지켜본저자는주의력이얼마나중요한지를절감했다.어떻게우리는고립속에서자신과타인을보다잘살피고돌볼수있을까.

며칠에서몇주로,몇주에서몇달로늘어난자원봉사기간동안저자는재난시대의고전을읽으며마음을달래고상황을보다명확하게이해하려애썼다.그는요양원에고립된이들을움츠러들게하는사망자통계와TV속에서거리낌없이거짓말을늘어놓는정치인들을지켜보며,거짓앞에서물러서지않는투키디데스의용기를떠올렸다.쇠약해질대로쇠약해져죽음만을갈망하는입소자를마주하면서는죽는날까지이성에따랐을때자유로워질수있음을자각한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지혜를생각했다.평범한치매환자라고생각했던한노인이부르는아름다운노랫소리에서는“노년이좀더부드럽게대접받기를바라며정신을온전히유지하고리라를벗삼아살게해달라”(152~153쪽)는몽테뉴의목소리를들었다.

이처럼고전은단순히옛날에쓰인책이아니라저자자신을비롯해고립된이들모두를세심하게살피는길잡이가되었다.저자는투키디데스의《펠로폰네소스전쟁사》부터알베르카뮈의《페스트》까지다양한시대의고전읽기를통해,거듭되는사회적재난에서다시금우리스스로를일으켜세울수있는힘을길어낸다.


2.사회전체를뒤흔드는재난에어떻게맞설것인가
-투키디데스의용기와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지혜

이책은투키디데스의《펠로폰네소스전쟁사》로시작한다.저자는수많은고전중에서왜이책을먼저이야기했을까.바로펠로폰네소스전쟁과더불어고대그리스의운명을바꾼아테네대역병때문이다.에티오피아에서시작해이집트를거쳐그리스전역에퍼진역병은기원전430년아테네를말그대로쑥대밭으로만들어버렸다.기원전426년까지아테네는수차례에걸친역병으로전체인구의1/3인약10만명이죽었고,그때까지국가를이끌었던걸출한지도자는물론중무장보병과같은핵심전력까지잃었다.아이러니는전쟁을대비해주민을도시에모아놓은바람에전염병이창궐하기아주좋은조건이만들어졌다는데있다.재난의대비가또다른재난의조건이된현실앞에서아테네사람들은절망하지않을수없었다.“사람들의저항력을떨어뜨려질병의손쉬운먹잇감으로”(34쪽)만드는절망은공동체전체에전염되면서“신들에대한두려움과인간이만든법”(36쪽)을무너뜨렸다.

저자는이토록가혹한현실을있는그대로기록하려했다는점에서투키디데스의탁월함을발견한다.투키디데스는철학자니체에게서“자신을통제했기에사물에대한통제력을잃지않는다”(44쪽)는상찬을받을만큼재난앞에서의연함을잃지않았다.재난을솔직하게대면하고예언을편의적으로이용하는것을가차없이비판한그의용기는,가짜뉴스를퍼트리며뻔뻔하게말을바꾸는지금의정치인들과선명하게대비된다.

사회전체를오염시키는재난은시대를넘어반복된다.로마제국의황제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는제위에오른지몇년되지않아안토니누스역병이라는대재난을마주해야했다.전염병으로인해로마는공동묘지에서“다른사람의묫자리를빼앗거나가족의장례를제대로치를형편이못되는빈민이구걸하는등일대혼란이벌어졌다”(83쪽).역병때문에산업이붕괴되면서세수가부족해지자황제는황실의물건을경매로팔정도로내몰렸다.적게는150만명부터많게는2,500만명까지죽었을것으로추산되는대역병앞에서황제는무슨생각을했을까.

우리는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가자신을위해쓴일기,《명상록》을통해그의생각을가늠해볼수있다.재위초에는제국한가운데를휩쓴역병속에서,말년에는변경을위협하는이민족과의전쟁속에서쓰인《명상록》에는오염으로부터내면의왕국을지키기위해분투한황제의지혜가담겨있다.《명상록》에서역병과전쟁이직접적으로언급된적은거의없다.하지만“마음의타락은우리가숨쉬는공기가오염으로변질되는것보다훨씬무서운역병”(101쪽)이라는구절에서,진짜재난은질병자체가아니라질병을대하는태도에서비롯된다는것을절감하게된다.거짓된인식에서벗어나충분히이성적으로생각하기위해노력하지않으면재난에대처하기는커녕더큰재난을불러올것이분명하기때문이다.


3.죽음이도사리는세계에서무엇을기억할것인가
-미셸드몽테뉴의자기탐구와대니얼디포의현실비판

비극의무대는16세기프랑스와17세기영국으로옮겨간다.1585년6월프랑스의보르도에가래톳페스트가퍼졌다.그해말도시의절반에해당하는14,000~15,000명이목숨을잃었다.우리에게《수상록(에세)》의저자로잘알려져있는미셸드몽테뉴는당시보르도시장이었지만,임기가얼마남지않아다음시장에게업무를막넘긴참이었다.역병이도시를휩쓸어사람들이떼죽음을당하는상황에서몽테뉴는자신의성과재산을버린채가족을데리고멀리달아났다.그렇지만몽테뉴와그의가족은가는곳마다잠재적보균자취급을받았고혹시나자신들이정말로감염된것은아닐까두려움에떨었다.힘겹게도피생활을이어가던그는6개월후에다시성으로돌아왔다.그이후의그는조금다른사람이되었고역병에서도피한이야기를자신에대한탐구인《수상록》에남겼다.

몽테뉴가자신을탐구하기로결심한것은불확실한현실때문이다.정신이발을굳건하게디딜발판이있다면아무런문제가없다.하지만“인간은태어난순간부터현상학적혼란에삼켜지며,끊임없이변화하는바다위에서섬처럼가만히떠있는것이아니라코르크처럼휩쓸리는처지에놓인다”(132쪽).사방이죽음으로가득차있을때몽테뉴가의지한것은글쓰기였다.가래톳페스트가보르도를휩쓸때도가혹한종교전쟁이프랑스전역을광기로물들일때도몽테뉴는글을쓰며죽음을숙고하고삶을존중하고자했다.그는“오늘날의병폐중에서도가장야만스러운것은우리자신의존재를경멸하는일”(151쪽)이라고선언하면서“이생애를자연스럽게잘사는법”(152쪽)을배워야한다고역설했다.우리존재에충실한것이고통에함몰된것보다언제나더낫기때문이다.

한편1665년런던대역병과1722년마르세유페스트는파국을반복하는인간의역사를압축해서보여준다.페스트가잠잠해진연말까지도시인구45만명중10만명이상이사망한런던대역병은영국국민모두에게큰트라우마가되었다.그런데1722년마르세유에서페스트가퍼지고영국에서가혹한새방역법이선포되는와중에,방역을명분으로무자비한정책을집행한프랑스정부의행태는많은이를충격에빠뜨렸다.마르세유인근의툴롱에도페스트가퍼지자,프랑스정부는군대로도시를포위했고그곳에서빠져나가려는주민을학살했다.《로빈슨크루소》의저자인대니얼디포는인명을구하겠다는정부가정작인명을살상하는부조리를접하며《전염병연대기》를썼다.사망자통계라는숫자에가려진,죽음의땅에서살아가는사람들의이야기를선명하게드러내기위해서다.

디포는H.F.라는가상의인물을주인공삼아페스트가퍼진런던한복판을배회한다.“평소같으면인산인해였을거리에는이제적막이가득했고,눈에보이는사람이라곤손에꼽을정도”(179쪽)로런던은죽음의도시가되어있었다.가산을챙겨간신히전염병에서도망친사람도있었지만,대다수빈민은도시에남아죽음을지켜볼수밖에없는처지였다.디포를분노케한것은격리자들에대한정부의가혹하고무감한통제였다.시당국이‘이상이없는자’와‘병자’를구별하지않았기에,아직확진되지않은사람까지확진자와같이산다는이유로전염병에노출되었기때문이다.디포는죽음의도시에서살아가는사람들의다양한모습을생생하게묘사한다.가족의시신이다른이들의시신에섞여구덩이에들어가는모습을보며통곡하는남자,페스트에걸린가족을있는힘껏부양하는가장,가장고통스러운시기에도가짜약을파는사기꾼들에,역병이물러가자언제그랬냐는듯다시사치를누리는위정자들까지,역병은인간의따뜻함과냉담함을모두드러냈다.디포의글은타인의삶에무감한방역정책은항상참혹한결과를낳을수밖에없음을명확하게보여준다.


4.우리는때가되었을때바르게행동할수있는가
-세계의부조리와알베르카뮈의사랑

우리는의학이전염병을다루기에는힘에부쳤던고대나중세와달리,과학이비약적으로발전한현대는다르다고생각한다.그러나《이방인》의작가알베르카뮈는생물학적인현상뿐만아니라인간의정신을무감하게만드는사상또한전염병이라고진단한다.제1차세계대전이끝난뒤유럽전역을휩쓸었던파시즘이바로새로운시대의전염병이었다.제2차세계대전초기,독일군이프랑스를침공하자군대가적군을잘막아낼것이라는사람들의막연한기대는산산조각났다.순식간에독일군에점령당한프랑스는우울과절망이가득했다.세계전체가죽음의도시나다름없는상황에서,카뮈는자신이살고있는세상이투키디데스나디포가묘사했던시대와아무런차이가없음을깨달았다.그의세상은이전의재난시대와마찬가지로부조리로가득했던것이다.

카뮈의대표작인《페스트》는그가살았던알제리의도시오랑을무대로전염병이창궐한세계에서살아가는이들의모습을생생하게담아냈다.소설은어느날수천마리의쥐가이곳저곳에서기어나와피를쏟으며죽어가는것으로시작한다.곧시민들은그들보다먼저죽어간쥐들처럼목숨을잃는다.이에의사베르나르리외를비롯한여러사람이자원보건대를조직해방역에나선다.이처럼병에맞서최선을다해싸우는사람도있지만,전염병의창궐을내심기뻐하며죽어가는이들을조소하는사람도있다.이때저항자와부역자는무엇이올바른지를아는가모르는가로나뉜다.소설의주인공리외는“2+2가정말로4가맞는지아닌지아는것”(229쪽)이가장중요하다고말한다.“객관적진실을인정하는순간,다른모든것이뒤따라오기”(229쪽)때문이다.페스트는결국물러가지만,주인공은전염병이언젠가돌아올것이고비극도반복될것임을예감한다.그러나우리는이소설을통해“페스트와삶의대결에서인간이얻을수있는것이라고는앎과기억”(247쪽)뿐이지만,때가되었을때바르게행동할줄아는윤리를되새기는한우리는다시금재난에서일어설것임을배울수있다.

저자는책을마치기에앞서인간을다시는일어설수없는재난으로밀어넣는소설한편을더소개한다.바로《프랑켄슈타인》의작가메리셸리가1826년에쓴《최후의인간》이다.셸리는가족과친구들을모두잃고우울감과절망감속에서쓴이책을통해전염병으로인류가소멸한2092년의미래를묘사했다.재난앞에서이성은정념의노예가되고,사람들을올바른방향으로이끌어야할정치인들은제한몸살겠다고도망치다결국목숨을잃는다.가장가까운사람들을모두잃은주인공이폐허를방황하는것으로끝나는이소설의디스토피아적인전망은재난앞에선사람들의일반적인감정을반영한다.

그러나저자는카뮈의미완성유고인《최초의인간》에서카뮈를침묵속에서지켜보는어머니의사랑을읽어낸다.우리는이토록황폐하고부조리한세계를살아가지만사랑이있다면견딜수있다.카뮈는말한다.“부조리는왕이지만사랑이우리를부조리에서구한다”고(265쪽).사랑은타인에대한깊은주의력의다른이름이며,사랑을할수있는한‘최후의인간’인우리는‘최초의인간’이될수있다는저자의메시지는재난이반복되는지금이순간더없이절실하게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