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 : 빛바랜 물건으로 추적한 한국근현대사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 : 빛바랜 물건으로 추적한 한국근현대사

$18.00
Description
“나에게 수집이란 역사 속 ‘이름 없는 그들’과 나누는 대화이다”

작은 물건에서 출발해 거대한 역사로 건너가는
역사 컬렉터의 추리극
호적 문서 속에는 111세까지 해방되지 못한 노비의 비밀이, 졸업 사진 속에는 3·1운동 중 행방이 묘연해진 소년의 사연이, 유언장 속에는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청년의 사정이 숨어 있다. 역사 컬렉터의 수집품들은 얼핏 빛바래고 사소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증거와 단서를 건져내자 시대의 놀라운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역사를 파헤치는 집요함, 공백을 채우는 상상력,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겸비한 역사 컬렉터 박건호!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에서 시대·사람과 깊이 교감하며 생동감 넘치는 역사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역사 탐정’이 되어 돌아왔다. 이번 책에서 그는 탐정과 같은 예리함으로 수집품에 담긴 역사를 더욱 밀도 있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좇아 나선다. 빛바랜 물건으로 추적한 한국근현대사 열 장면을 만나보자.

저자

박건호

대학1학년때답사를가서우연히빗살무늬토기파편을주운것을계기로30여년간역사자료를모으며컬렉터로서의삶을살고있다.그에게‘수집’이란최고의즐거움이자휴식이다.그동안모은수집품의양을자신도정확히모를만큼방대한컬렉션을가지고있다.최근에는수집품하나하나에담긴깊고오랜이야기를소개하는글을쓰고있다.

1969년경남밀양에서태어나고자랐다.서울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한국외국어대학교대학원정보기록학과에서기록학을공부했다.명덕외국어고등학교를시작으로지금은강남대성학원에서학생들에게역사를가르치고있으며,현재한국외국어대학교대학원정보기록학과객원교수,국가기록원민간기록물수집자문위원으로활동하고있다.1990년대에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국사수업자료집》,《주제별슬라이드수업자료집》,《노래와소리로보는우리역사》등다양한교육자료를만들어역사교사들에게신선한자극을주었다.지은책으로《컬렉터,역사를수집하다》와《역사,무엇을어떻게가르칠까》(공저)가있다.

목차

책을펴내며
#1죽지않는노파,갑덕의비밀
:신분제가무너지던시대의초상
#2“거지같은양반도양반아니오?”
:황혼기조선,양반의쓸쓸한몰락
#3영월에서울려퍼진원망소리
:구한말장부한권에담긴수탈이야기
#4사라진생도는어디로갔을까
:3·1운동이바꾼학교풍경
#5흰옷은사절합니다
:일제강점기우리옷은어떻게변화했나?
#6일제가빼앗아간크리스마스실을찾아서
:조선을사랑한선교사가족이야기
#7내이름은‘개새끼(犬の子)’
:성을갈고이름을바꿔야만했던시대
#8‘묻지마라을축생’태봉의유언장
:아시아·태평양전쟁의조선청년
#9인민군철모를쓴한국군
:한국전쟁과전쟁트로피
#10‘넘지않을수없는운명의해발구천미터’
:1960년대지독한가난이남긴흔적

출판사 서평

#1예사롭지않은사건의냄새,수집품속숨겨진이야기를뒤쫓다!
_집요한호기심과탐구심,행간을이어붙이는역사적통찰과상상력
_독자와동행하는색다른스타일의역사읽기

저자가우연히마주한130여년전호적자료엔기이하고도호기심을불러일으키는초고령의노비,갑덕의사연이담겨있었다.조선시대당시로는상상하기어려웠을나이인111세가되도록주인집에딸려있던것이다.노파가그토록오래신분적속박에서벗어나지못했던이유는무엇일까?아니,애초에그녀가실존인물이긴했을까?
저자는자료마다불쑥솟아나는질문을붙들고흥미로운추리를시작한다.“수집한자료를가만히보고있으면그속에있는사람들이자신의이야기를꼭남겨달라는애타는부탁,어쩌면절규”가들려온다는저자는증거물을그러모으는탐정처럼자료더미를파헤쳐나간다.풀리지않는의문을해결하고자경매에올라온문서를죄다사모으는가하면,힌트가있을만한곳이라면수소문해전국어디든달려간다.몇날며칠자료가뚫어질듯관찰하는건기본이요,혹시지나쳤을정보가있을까사진뒷면을칼로긁어해부하기에이른다.그의긴장어린호기심이이끄는곳엔언제나예사롭지않은사건의냄새가나고,예리한눈과집요한손으로포착한정보들은시대를추적하기위한단서가된다.
하지만파편적인자료들은스스로이야기를들려주는법이없다.서로무관해보이는자료들사이의연관성을발견해내고행간을이어붙이는건바로저자의역사적통찰과상상력이다.역사학과기록학을전공하고,수십년간학생들에게역사를가르쳐온선생님이기도한저자는해박한역사적배경지식을통해맥락을잇는다.그리고그의상상력은건조한자료속무표정의얼굴,낯선이름,추상적인숫자에생명력을불어넣는다.에피소드마다다채롭게전개되는이야기를통해그는자연스럽게독자를일제강점기도심한복판으로,1960년대초등학교교실로데려간다.
저자는“독자들에게역사자료를전지적관점에서설명하는대신,그자료들이가진흥미진진한이야기를독자와동행하며찾아”간다.그이야기의끝엔한국근현대사의중요한장면이,그장면을이루었던평범한사람들의사연이자리잡고있다.그리고추론의결론이불완전하면불완전한대로저자는해석의여지를남기며독자에게후속의추리를맡긴다.고유하고색다른박건호식역사읽기의미덕은바로여기에서빛을발한다.원하는결론을위해무리한해석을덧붙이거나섣불리넘겨짚는것보다“그것을도출하는역사학적사고의과정이중요”하기때문이다.이야기를따라가던독자는역사해석에있어가장까다롭지만그렇기에매력적인과정에능동적으로동참할기회를얻게된다.

사진인화지와는다른누런갱지가뒷면에붙어있었다.혹시이누런색종이안쪽에또다른정보가숨어있는것은아닐까?그렇다면그메타데이터를찾기위해사진뒷면을‘발굴’해보면어떨까?나는혹시나있을지모를새로운정보를찾아마치땅속에묻힌유물을발굴하듯이누런종이밑에있는글자를파헤쳐보기로했다.커터칼로종이를조심스럽게떼내기시작한지5분여만에첫글자가서서히모습을드러내기시작했다.
_223〈#9인민군철모를쓴한국군〉에서

신상덕은전당포를빠져나와집으로향했다.이15냥으로급한불은끌수있겠으나앞으로어떻게살지여전히걱정인상덕의발걸음은무겁기만했다.몰락한양반이라는자신의처지가한탄스러웠다.요즘나라상황도뒤숭숭하기이를데없는데,전당포에맡기는폐탕건은흡사망해가는나라처지같았다.만나는사람마다대한제국이곧일본에넘어갈것같다고수군거리고있었다.문득스치는봄바람에약간의열기가섞여있었다.이나라가이번봄,아니면이번여름까지는버틸수있을까?내가족은그때까지무사할까?온갖걱정을짊어지고터덜터덜걷던상덕은혼잣말을중얼거렸다.‘경술년나라꼴이나내꼴이나…….’
_61〈#2“거지같은양반도양반아니오?”〉에서

학생들에게무슨일이있었는지더는알수가없다.그러나3·1운동이가장뜨겁게전개되던시기에촬영한졸업사진속학생하나가보이지않는다면,그학생이3·1운동과연관되었을개연성을배제할수는없다.작은수집품하나에도이렇게많은사연과비밀이담겨있다.내가밝힌것은이만큼이다.나중에또누군가가사라진생도의행방에대한다른추론이나진실을들고나타날지모르겠다.그때를기다려본다.
_111〈#4사라진생도는어디로갔을까〉에서

#2가장사적이고미시적인이야기에서가장공적이고거시적인역사로
_평범한사람들의사소한하루가쌓여역사가되다

교과서에서배운굵직한사건,거대한정책,비범한인물로는다설명할수없는역사의빈칸들을떠올려보자.예컨대교실에서1960년대현대사를공부할때면‘경제개발5개년’,‘경부고속도로’,‘한일협정’따위의키워드를달달외운다.그렇다면이것이바꾼,혹은바꾸지못한실제삶의풍경은어땠을까?큰구조로시작하면평범한사람과일상의자리는사라지고,건조하고멀게느껴지는텅빈용어들만남게된다.박건호의역사이야기는거꾸로작은물건에서시작해큰역사로건너간다.하나하나모은수집품을통해그사진이찍힌시간으로,문서에담긴사람으로,사물이놓인공간으로접속한다.
위세를잃은지오래지만자존심을지키려궁리하는양반,3·1운동이한창이던때졸업사진을찍으러등교한소년,전쟁통에아내에게편지를쓰는청년…….저자의이야기에서는평범한사람들이역사의주인공이된다.“역사의구조만큼역사속개인들이가진개별성을중요하게생각”하는저자는“추상적구조뒤에가려진개개인의삶을찾는일”에본능적으로관심과마음을쏟는다.“구조가과거의모든역사를설명할수없고,구조가사람그자체일수는없다”라고말하며,가장사적이고미시적인이야기를통해가장공적이고거시적인역사를선보인다.그렇게저자는이야기곳곳에서‘평범한사람들의사소한하루가쌓여역사가된다’는깨달음,‘우리모두가역사의주인공’이라는감동을선사한다.

왜그한명의생도는졸업사진에등장하지않은걸까?그리고그는누구일까?이궁금증이쓸모없다여겨질수도있지만,꼭그런것만은아니다.하나의단서속에중요하고거대한사실이담겨있을수도있기때문이다.3·1운동이가장뜨겁게전개되던시기에촬영한졸업사진속학생하나가보이지않는다면,그학생이3·1운동과연관되었을개연성을배제할수는없다.작은수집품하나에도이렇게많은사연과비밀이담겨있다.
_111〈#4사라진생도는어디로갔을까〉에서

순진무구한아기라고해서역사의격랑에서비껴서있을수는없었다.모든사람은태어나는순간부터‘그시대의자식’이된다.그래서일제강점기아빠와아기의이별은가장사적인동시에공적인이야기이며,가장미시적이면서거시적인역사가된다.전체속에하나가있지만,하나속에또전체가있는것이다.일제강점기는부모와자식뿐만아니라남편과아내,친구나연인간의수많은이별이야기로촘촘하다.그래서이시대의이야기는슬프다.
_194~195〈#8‘묻지마라을축생’태봉의유언장〉에서

그들은신분제가붕괴해가던조선왕조의황혼기에양반의자존심을지키기위해노력했거나,최소한그시기의쓸쓸함과초라함을보여준다는점에서짠한인물들이다.시대의애잔함은개인의애잔함으로이어졌다.
_43〈#2“거지같은양반도양반아니오?”〉에서

#3시대를관통하는한국근현대사열장면
_신분제동요,3·1운동부터한국전쟁,1960년대경제개발까지

《역사컬렉터,탐정이되다》의열가지에피소드는신분제동요,3·1운동,일제강점기무단통치,창씨개명,아시아·태평양전쟁,한국전쟁,1960년대경제개발등한국사교과에서익히다뤄온주제들을시간순으로관통해나간다.학생들은학교에서배운역사의맥락을되짚으면서도심도있게파고들수있으며,성인독자들은익숙한줄로만알았던사건들의이면을생생하고풍성하게재구성할수있을것이다.
무엇보다도역사를대하는저자의충실한태도와인간을향한애정어린시선은남녀노소모두에게깊은울림을남긴다.30여년이넘도록역사컬렉터로살아온그의마음을빼앗는것은희귀하고환금성높은물건이아니라,언제나‘사람’과‘역사’가담겨있는물건이었다.“사소한자료는있어도사소한사람과사소한역사는없다”라고말하듯,그에게중요한것은수집품그자체보다그것이품고있는생명력이기때문이다.역사탐정의추리극을따라가다보면독자들은우리가왜끊임없이역사를되돌아봐야하는지,거기에서무엇을건져내야하는지에대해곰곰이되묻게될것이다.

우리역사는굶주림과늘함께했다.‘찢어질듯’가난해보릿고개를넘지못하고굶어죽는이들이부지기수였다.‘둘이먹다가하나가죽어도모를’정도로생존에급급한삶이었다.그러나이제우리는주변을둘러볼여유가생겼다.굶주림의역사를공부한다는것은그저조상들의배고픔과고난의삶을살펴보는것만을의미하지는않는다.더나아가현재우리주변에그런고통속에서도움을호소하는이들이없는지늘귀기울여야한다는의미이기도하다.역사학은공감과연민의학문이다.공감은연민의바탕이고,그연민은부조리한현실을개선하려는실천의출발점이된다.
_261〈#10‘넘지않을수없는운명의해발구천미터’〉에서

이렇게호구단자하나에도그시대사회상과역사가반영되어있다.교과서에서조선후기노비가도망하는일이많았다고간단히서술하고있다면,옛기록물은그이면에숨은이야기들을생생하게증언해준다.문서의맥락,역사의맥락을가지고자료속의사실을제대로읽어내는것은오롯이오늘날우리의몫이다.
_30~31〈#1죽지않는노파,갑덕의비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