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으로 간 성폭력 : 성범죄 가해자는 어떻게 감형을 구매하는가

시장으로 간 성폭력 : 성범죄 가해자는 어떻게 감형을 구매하는가

$21.00
Description
상품이 된 감형, 소비자가 된 가해자
성범죄 전담법인이 개척한 산업, 가해자 지원 시장을 고발한다!
오늘날 성범죄 가해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법적·감정적 혜택을 받고 있다. 성범죄 전담법인의 전략에 의한 기부나 지인들의 선처 요구 등으로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는 감형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각종 정보를 공유하며 불안감을 해소하는 가해자 온라인 커뮤니티도 존재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책은 남성 중심적인 사법 질서와 담론이 지배하는 법시장에서 성폭력은 어떻게 경제적 문제로 재구성됐는지, 가해자는 어떻게 소비자의 위치로 이동할 수 있었는지 살펴본다. 또한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이 논의되지 못하고, 피해자가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며 가해자와 자원을 경쟁해야 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저자

김보화

여성주의연구활동가.남성중심적인사법질서와담론속에서성폭력피해자의경험이타자화되는과정,성폭력가해자가행위를정당화하고스스로를피해자화하는논리,성폭력사건해결의의미와조건등을연구주제로삼고있다.성폭력피해자지원활동중가해자는납득할수없는감형과무죄를얻어내는반면피해자는역고소를당하는일이빈번해지고있음을확인했다.이같은현상에문제의식을갖고성폭력은어떻게시장화되었고성범죄전담법인은어떤방식으로가해자의감형사유를만드는지,가해자는어떻게법시장의합리적소비자가되었는지,피해자는피해를인정받기위해어떻게스스로고통과감정을관리하는지등을조사하고분석했다.이연구를정리한박사학위논문〈성폭력사건해결의‘법시장화’비판과‘성폭력정치’의재구성에관한연구〉는수많은언론의주목을받았으며,성범죄가해자지원법시장문제를세상에알렸다.이책은그의박사학위논문을수정·보완한것이다.
젠더폭력연구소소장.한국성폭력상담소부설연구소울림에서활동했고이화여자대학교여성학과에서석사·박사학위를받았다.지은책으로《누가여성을죽이는가》(공저),《페미니즘교실》(공저),《스스로해일이된여자들》(공저)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

Chapter1법시장,성범죄가해자를지원하다
#1성범죄전담법인의등장
#2성폭력법·제도의변화와성범죄전담법인의확산

Chapter2힘드시죠?감형컨설팅해드립니다
#1성범죄전담법인이발명한감형과무죄의기술
#2성범죄전담법인의가해자온라인커뮤니티운영

Chapter3성폭력피해자,법정에서다
#1권리에서책임으로재구성되는‘신피해자론’
#2피해자로인정받기위한‘재피해자화’
#3역전되는피해자의위치성과법적종속화

Chapter4성폭력사건의해결이란무엇인가
#1법·제도가관리하는성폭력
#2성폭력사건해결을둘러싼의미의재구성

Chapter5‘성폭력정치’의재구성을위한제안
#1이론적제안
#2실천적제안

에필로그
감사의말
부록

출판사 서평

1.성폭력감형패키지팝니다!
피해자,활동가,변호사인터뷰를통해분석한성범죄가해자지원산업의실태
‘반성문2부,탄원서2부,근절서약서1부,심리교육수료증(3일),상담사의견서(3일),소감문…’한감형컨설팅업체가만든55만원짜리패키지상품구성이다.방문이나상담없이기계적으로만들어지는이상품은온라인에서쉽게구입할수있다.문제는이것이법정에서성범죄가해자의감형사유로활용된다는점이다.피고인의반성및뉘우침을양형의요소로고려하는관행으로인해감형컨설팅및반성문대필업체가난립했고,가해자의반성은형식적으로만들어진다.
이같은성범죄가해자를대상으로하는서비스,즉‘성범죄가해자지원산업’이많은이에게충격을주며공분을불러일으키고있다.2010년대중반부터등장한성범죄가해자전담법인과가해자온라인커뮤니티,감형컨설팅업체등은가해자를위해각종감형및무죄팁을발명하며법조계에서거대한산업을구축했다.몇몇법인은전직대법관·대학총장·부장판사·검사등고위인사를자문위원으로임명하고한달홍보비를1억원이상쓰는등네트워크와자본을축적하며성장중이다.이책은이러한현실에문제의식을가지고성폭력피해자·여성단체활동가·변호사심층인터뷰와현장연구를통해성범죄가해자지원산업이어떻게등장하고확장했는지,가해자지원산업으로인해가해자와피해자의위치가어떻게변화했는지,그속에서성폭력담론이어떻게재구성되었는지를여러측면에서고찰한다.

어느날,나는지하철교대역에게시되었다는한법무법인의광고를보고아연질색했다.‘아동성추행,강간범죄,기타성범죄’등에대한‘부당한처벌을무죄,불기소,집행유예로이끕니다’라는내용의광고였다.(중략)해당광고판은당시여러시민의문제제기로철거되었지만,‘가해자전담변호사시장’,이른바가해자중심의‘성범죄전담법인’이형성되고있음을알리는신호탄이었다.그즈음인터넷에성폭력을검색하면법인들은‘성범죄전담/전문변호사’,‘무혐의,무죄받아드립니다’,심지어‘무고전문’등의문구를온/오프라인에홍보했고,패키지상품과같은형태로가해자방어와(역)고소건수를늘려가고있었다.스스로를성범죄전담법인이라자처하는법인들의홈페이지에는해당법인의변호사를선임하여성폭력가해자가무죄를받거나낮은형량을받았다는후기가‘성공사례’라는이름으로게시되어있고,일부법인은자신들을‘성폭력상담소’라고소개하기까지했다.성폭력가해자의법적대응과정은수임료가높더라도승소율이높고성공후기가풍부한업체를선택하면이길수있는것으로시장화되고있었고,법조시장에서성폭력가해자변호는그어느범죄보다돈이되는분야로선호되고있었다.
-〈프롤로그〉중에서(6~7쪽)

2.꼼수감형이오염시킨성범죄재판의풍경
봉사활동,헌혈,정신과치료,고도비만...납득할수없는감형이유들
성범죄가해자전담법인의감형및무죄전략을구체적으로살펴보자.이들은성범죄양형의감경요소중“진지한반성”에주목하여‘감형을위한’반성을만들어냈다.대표적방법은반성을명목으로사회봉사단체나여성단체에후원금을기부한후영수증을법원에제출하는것이다.후원금기부는성범죄가해자들이감형꼼수로널리사용하고있는데,이때문에최근여성단체들은기부하는사람이누구이고이유가무엇인지를꼭확인한다.또한가해자전담법인은“사회적유대관계분명”이라는성범죄집행유예기준에착안하여가해자가평소에는괜찮은사람이었다고주장하고,가족과지인의탄원서를활용하기도한다.이러한이유로가해자측이재판부에제출하는자료는봉사활동,헌혈,직장해고,정신과치료,음주치료,고도비만등에이르기까지다양하다.
‘꼼수감형’은피해자의의사와무관하게이루어지며,가해자를제대로처벌할수없게만든다는점에서큰문제가있다.그런데또다른문제는꼼수감형등가해자지원시장의거래가성범죄가해자를법시장의합리적소비자로탈바꿈시킨다는점이다.가해자는유리한결과를이끌어내기위해전문가에게법적정보와서비스를구매하는데,이는시장원리에맞는합리적행위로용인된다.피해자는가해자에게대응하기위해국가법률지원제도만이아니라자신의자원과역량을소모할수밖에없다.이로인해이제성범죄재판은사건의실체적진실을규명하는과정이라기보다,가해자와피해자가서로경쟁하고자본에따라승패가결정되는투쟁의과정으로전락했다.

최근여성운동단체들은가해자들의감형전략과홍역을치르고있다.반성의일환으로재판부에내기위한후원금납부와회원가입이증가했고,가해자임을숨긴채자원활동을신청하거나,자원활동가로활동하는남성이재판중인가해자라는사실이뒤늦게밝혀지기도했다.이처럼피해자의의사와무관하게그리고피해자들은전혀인지하지못한채이러한방식들이가해자의감경요소로적용되는관례로인해단체들은후원회원가입이나기부시어떠한이유와경로로이루어진것인지더욱꼼꼼하게살펴보게되었다.후원회원이나기부자에게환영과감사가아닌의심과검열의잣대를들이대야하는상황이된것이다.
-〈프롤로그〉중에서(8쪽)

위의판결문들에는반성문,기부,자원봉사,장기기증서약,성폭력예방교육이수뿐만아니라피고인의지인,직장동료들과가족,여자친구의선처요구및탄원,재발방지를위한노력등이유리한정상으로언급되고있다.특히한판결의경우피고인은피해자와합의하거나용서받지못했지만,가족과지인들의재범방지다짐,피고인누나의단체기부가감경사유로인정되었다.성폭력의법적해결과정에서피해자가합의에응하지않는가장큰이유는가해자의감형을원치않기때문이다.그러나위판결들은합의에대한피해자의의사와관계없이,심지어피해자가합의를거절한경우에도가해자의“사회적유대관계”및다른사유들로형을낮췄다.이것은성폭력재판과정에서가해자처벌에대한피해자의의사가고려되지않고있으며,억지로만들어낼수있는사유들로도가해자가충분히감형될수있음을보여준다.
-〈Chapter2힘드시죠?감형컨설팅해드립니다〉중에서(107~108쪽)

성범죄전담법인이운영하는온라인카페와법적정보의상품화및산업화되는전문가조력을통해성폭력가해자들은법시장에서의합리적소비자로이동함으로써성폭력은경제적인것으로재구성되고있다.성폭력의법적해결과정은성폭력이발생하는기반인성별권력과성폭력을용인하고사소화하는남성중심적사회에대한투쟁의과정이다.그러나수사·재판과정에서가해자에게유리한결과를이끌어내기위한법적정보의판매와전문성의상품화는성폭력이라는정치투쟁의장자체를자본에따라승패가결정되는문제로전환시킨다.(중략)신자유주의통치는시장원리를통해쉽게조작가능하고통치가능한주체,즉시장원리를내면화한주체를만들어내면서,공공성,윤리,책임의가치를삭제하고있다.이처럼소비자로서의가해자와시장화된성범죄전담법인,그리고산업화되는전문가그룹들이가해자카르텔을구성하면서성폭력은점차정치적인것에서경제적인것으로이동하고있다.
-〈Chapter2힘드시죠?감형컨설팅해드립니다〉중에서(138쪽)

3.재판에서피해자의진짜목소리를들을수있는가?
책임논리를넘어,피해자가주체가되는법적공간을꿈꾸다
성범죄가해자가법시장의합리적소비자로이동하는사이에피해자의위치는어떻게달라졌을까?가해자전담법인의전략이성범죄판례들을오염시키고법적판단기준을바꾸는동안가해자의억울함에과잉공감하며피해자를의심하는태도는점차확산되었다.저자는이같은흐름에서성별권력문제는외면한채피해자에게책임을묻는새로운피해자담론이강화되었다고말한다.예컨대충분히주체성이있으면서왜성적자기결정권을행사하지않았는지,성희롱예방교육을받았으면서왜제대로대처하지못했는지를피해자에게묻는식이다.또한의심에서벗어났다하더라도피해자는재판과정에서자신의피해를입증하기위해고통을내세우고피해자다운모습만을드러내야한다.이는한국의사법절차,나아가우리사회가여전히피해자를편견에찬시선으로바라본다는점을여실히드러낸다.많이늦었지만이제부터라도법정에서또사회에서피해자의목소리에충분히귀를기울여야한다.

정희(피해자):사실그렇잖아요.아무리아픈사람이어도계속아파보이는게아니라멀쩡해보일때도있고아파보일때도있듯이,피해입은사람도똑같잖아요.피해입은게불현듯찾아올때도있고잊어버릴때도있는데,맨날생각하면죽어요.근데검찰조사때는항상(아픔을)끄집어내야그쪽에서믿어주니까울지않으면안돼요.검찰,경찰조사때안울면뭐지하는눈빛으로쳐다봐요.그러면서질문이점점세져요.그게제가깨달은것중하나예요.아조사때피해자는울어야되는구나.저는제가만나는피해자들이경찰조사를아직안받았다면울라고해요.안울고싶어도울라고.근데솔직히그게무슨소용이있겠어요.그사람은계속아픈데,경찰서에서울어가지고제대로조사가되지도않고,제가봤을때는하나의쇼같아요.
-〈Chapter3성폭력피해자,법정에서다〉중에서(175~176쪽)

지난몇년간한국의미투운동에서목도한것과같이더이상피해자들은성폭력피해를수치스럽거나숨겨야할것으로만인식하지않는다.오히려적극적으로대응하고,말하고,요구할때그과정을통해힘을얻었다고느끼는경우가많았는데,피해자들은싸우는주체로서자신의위치를설정하고있으며,적극적으로자신과지지자의재판을모니터링하면서법적공간을투쟁의공간으로만들어가고있다.피해자들은싸울준비가되어있는데,현재피해자에대한법적권리보장의내용들은피해자의보호에초점이맞춰져있어적극적으로참여할수있는체계가부족한편이다.따라서일본,독일등일부국가에서시행하고있는피해자참가제도등을검토하여재판과정에서피해자가가해자에게직접질문하고가해자의책임을추궁할수있게함으로써말하는주체의위치로피해자를이동시킬필요가있다.
-〈Chapter5‘성폭력정치’의재구성을위한제안〉중에서(3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