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와 달빛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8

여행자와 달빛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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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병적이고 어두웠으나 그립고 달콤했던,
덮어두었으나 결코 희미해진 적 없던 시절에 대하여
20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세르브 언털의 문제작이자 마지막 소설. 국내 초역.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 앞에 남편 ‘미하이’의 옛 친구가 나타나고, 급격히 과거의 기억으로 빨려 들어간 미하이는 한순간의 실수로 아내 ‘에르지’와 다른 기차에 오르는데……. 사라졌다고 생각한 어린 시절의 고통과 열망이 은밀하고 매혹적인 메타포들로 몸 바꿔 되살아나고, 유혹의 순간을 지나야만 닿을 수 있는 ‘자기만의 삶’ 앞으로 서서히 독자를 잡아끄는 기묘하고 독특한 소설. 작가이자 저명한 문학비평가였던 세르브 언털이 문학 세계의 정점에서 쓴 작품으로, 그의 인생 전체가 등장인물 설정, 동성애적 관점 등의 모티프가 되어 소설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작품 활동에 직간접적인 제약을 받았으나, 최근 몇십 년간 동시대 작가인 마러이 샨도르와 함께 재평가받고 있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고, 영화와 연극으로 각색되었으며, ‘꼭 읽어야 할 헝가리 소설’을 꼽는 설문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저자

세르브언털

1901년헝가리부다페스트에서유대인부모아래태어났다.여섯살에아버지와함께가톨릭으로개종했다.고등학생때부터시,단편소설,수필을습작했고,대학에서는헝가리어와독일어를전공하며영어와프랑스어도익혔다.이경험들을바탕으로작가뿐아니라번역가,고등학교교사등다양한직업을가졌다.1933년에는헝가리문학협회회장으로선출되었고,1934년에는학자로서집필한《헝가리문학사》와첫장편소설《펜드래건의전설》을출판하며자신의이름을각인시켰다.이듬해최고의문학상중하나인바움가르텐상을수상했다.《여행자와달빛》(1937)은그의두번째장편소설이자문학세계의정점에서쓰인작품으로,신혼여행지인이탈리아에서옛친구를만나급격히과거의기억으로빨려들어간남편의현재와,뜨겁지만암울했던청춘시절을환상적인문체로그려냈다.다양한언어로번역되었고,영화와연극으로각색되었으며,‘반드시읽어야할헝가리소설’을꼽는설문에서빠지지않는작품이다.이러한업적들에도불구하고그의문학적경력과삶에제동이걸렸다.제2차세계대전이발발했고,그는개종여부와무관하게유대인으로간주되어박해당했다.《헝가리문학사》는공산주의통치기간동안판금조치되었고,이는그의소설에대한평가에까지영향을미쳤다.1944년헝가리벌프의노동수용소로끌려갔고,1년뒤인1945년그곳의간수들에게구타를당해세상을떠났다.

목차

제1장신혼여행_007
제2권은둔자_108
제3장로마_220
제4장지옥의문_287

해설|되살아난꿈과절망의시절_383

출판사 서평

우연과선택,망각과기억,죽음과삶……
경계에선여행자들을위하여

신혼여행으로이탈리아에온‘미하이’와‘에르지’.서로의차이를감내한채얼핏평화로워보이는여행을이어나가는부부앞에남편의옛친구인‘세페트네키’가나타나삐딱한태도로자기들만아는이야기를늘어놓고떠난다.미하이는“그일들을알기전까지당신은내삶에서어떤의미로는항상신인(新人)일뿐”이라며고등학생시절의이야기를들려준다.자신을괴롭혔던발작증세,그때사귄‘터마시’,‘에버’남매와의야릇한관계,그들과함께한일탈과자살시도,무리의또다른일원이었던친구들과,정황을알수없는터마시의자살까지…….

미하이는친구들과뿔뿔이흩어진이후과거의기억은묻어둔채평범하게살아왔고,에르지와의결혼으로‘중산층의평범한삶’을완성하고자했다.그러나세페트네키와의만남이후과거의기억이다시그를휩싸기시작하고,미하이는다른도시로이동하던중한순간의실수로에르지와다른기차에오른다.우연인듯운명인듯혼자가된미하이는자신을찾는아내를뒤로하고옛친구들을찾아나선다.한편에르지는미하이를찾기를포기하고프랑스파리로떠나는데…….

가장중요한것은,인간은서서다니는동안은얼마나피곤한지알아채지못하며,앉았을때에만그것을안다는점이다.미하이가15년동안축적된피로에지배당하기시작한것은테론톨라에서원하지도,의도하지도않게다른열차에올라탈때였다.에르지로부터점점더멀어지고고독과그자신을향했던,그열차에오를때였다.(119쪽)

세르브언털은어둠을통해빛을이야기한다.과거와현재의장면들이교차하고,환상과현실을오가며,우연인지운명인지모를사건들로가득한이소설은언뜻꿈을꾸는듯한인상을주지만,마침내언털이우리앞에남겨두는진실은그어느때보다명징하다.환상이현실을,우연이선택을,죽음이삶을더욱뚜렷하게만들기때문이다.우연한사고로페르시아인과단둘이남겨진에르지가자신의본능을깨달아선택을내리고,미하이가죽음의공포를느낀다음에야비로소삶에의의지를확인한것처럼말이다.

‘혼자하는신혼여행’이라는아이러니한여정의끝에서두사람은그어느때보다분명한자기내면의목소리를듣는다.이과정역시둘의성격만큼이나다른데,미하이가끝까지가보지못해미련이남는길로되돌아가막다른곳까지다다른뒤에야거기에는더이상길이이어져있지않으며,앞으로나아가기위해서는몸을틀어야함을깨닫는다면,에르지는방향을틀어진입해본적조차없는길로얼마간가본뒤에야자신이걸어야할길을찾는다.함께떠났고,서로를향했으나혼자가되어서로를등진채계속해나간부부의여정이실패라고할수없는까닭은끝내자기자신을마주했기때문일테다.“떠난자리로돌아온것같지만실은아주달라진채로”(소설가김화진추천사).

폐허속의들쥐처럼그또한살아남을것이다.어떠한일이있어도살아남을것.인간은살아있어야항상뭔가가,여전히뭔가가일어날수있는것이다.(382쪽)

에버는미하이에게보내는마지막편지에서단몇마디로그의지난괴로움을정리한다.“너는터마시가아니야.터마시의죽음은오직터마시에게만해당되는거였어.모든이가자신만의죽음을찾기를.”뒤이은장면에서미하이는고향으로돌아가는기차에앉아다짐한다.살아남겠노라고.비록“폐허속의들쥐”같은모습이더라도“여전히뭔가가일어날수있는”삶을살아내겠노라고.미하이는마침내일상으로되돌아가지만,독자는이후로펼쳐질그의삶이이전과는다를것임을짐작할수있다.이제그는다른누군가가아닌자기내면의목소리를따를테니까.터마시의죽음과는별개인자신의삶을택했듯이말이다.죽음과삶,환상과현실,우연과선택,과거와현재가어지럽게뒤섞인여행길에서우리는무엇을이정표삼아걸어갈것인가.어스름한달빛을더듬어나아가는것은여행자의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