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길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9

악의 길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9

$15.00
Description
황폐한 마음을 열고 들어온 악에 운명을 내맡긴 존재들,
되돌릴 수 없는 악의 길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진실
여성 작가로서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라치아 델레다의 초기 대표작. 국내 초역. 황폐한 마음에 싹튼 악, 거기에 운명을 내맡긴 존재들이 지은 죄와 죄책감의 내적 갈등을 다룬 소설로 이탈리아 본토와는 또 다른 사르데냐섬의 풍경과 문화도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리석음과 모순, 그리고 격렬한 열정에 굴복한 사람들이 걷는 악의 길. 그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진실을 포착하는 순간은 비윤리적인 사회의 공범으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델레다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1896년 처음 발표한 이후 1916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개작되면서 다면적이고 균형 잡힌 등장인물들이 사르데냐섬의 풍경과 문화 속에 녹아 있다.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각 인물이 겪는 내적 갈등이 극대화되며, 실제로 소리 지르는 사람은 없지만 결코 그치지 못하는 절규 속에서 각자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이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자

그라치아델레다

17세부터문학활동을시작하였다.중등교육도제대로받지못한채독학으로공부하며베리스모수법으로자연과소박한농민상을묘사하였다.또한,유혹과죄악이소박한인간들에게미치는비극적영향을다룬작품을주로썼다.『이혼후』,동생의신부와사랑에빠진전과자의이야기를다룬『엘리아스포르톨루』,사생아때문에자살하는어머니의이야기를다룬『체네레』,아들을신부로만들겠다는꿈을실현하지만신부가된아들이육체의유혹에굴복하는것을보고절망하는어머니의비극을그린『어머니』등델레다는거의50여편에이르는소설에서인간의정욕과죄악이라는주제를다루었다.1926년노벨상을받았다.수법상으로는뒤마의낭만주의에서출발하여진실주의(Verism)에이르러결정적영향을받고후기에는러시아자연주의로기울어졌다.대표작으로는『악의길』,『바람에흔들리는갈대』가있다.

목차

악의길007

해설|선과악의갈림길에서다353

출판사 서평

거친땅에뿌려졌다가우연히싹을틔운
거짓과배반,허영과기만의소용돌이

델레다는사르데냐섬의내륙지역인누오로시에서태어났다.정규교육을제대로받지못하고가정교사에게표준어인이탈리아어,프랑스어,라틴어등을배우는동안사르데냐농민들의삶과그들의도전적인정신에영감을받아단편소설을쓰는데관심을보였고,이후독학으로문학을공부했다.델레다는수많은작품에서독특하고신비한사르데냐섬의풍경과문화를다루었는데,이를단순히배경으로처리하지않았다.사르데냐섬은마치살아있는유기체처럼,등장인물들의삶과감정에대한적절한은유로쓰인다.1926년노벨문학상을받았을때도‘고향인외딴섬’에서의삶을맑은물속처럼보여주었다는평가를받았다.

“피에트로는갈아놓은흙속의씨앗처럼오래잠을잤다.그역시신비하고거친땅에아무렇게나뿌려졌다가우연히싹을틔우고변덕스러운날씨와운명에몸을맡긴씨앗이었다.그는한밤중에일어나초막으로들어갔다.잿빛안개가낀어둠이고원과계곡을덮치고해변의산들까지내려앉아있었다.해변에서는바다의포효같은거센바람이불어왔다.”(76쪽)

‘피에트로베누’는원초적이고말수가적으며주변풍경을자신의몽상이나순간적인열정에성급히이입하는청년이다.그는‘마리아노이나’의집에서하인으로일하는데,마리아는누오로시에서알아주는부유한농부의딸로허영심이있으며탐욕스럽다.일을막시작할때만해도피에트로는마리아의사촌인‘사비나’를사랑한다.하지만우연한엇갈림을매몰찬거절로여겨괴로워하고,그순간다른친구‘로사’가“피에트로베누.마리아는사비나를질투해요”라고던진농담에사로잡혀마리아를사랑하게된다.

마리아는비천한출신의하인들을경멸하지만피에트로의적극적인구애에생긴허영심이점점커져위험한열정에자신을내맡긴다.부자가되면마리아와결혼할수있다고믿는피에트로와달리마리아는처음부터그럴생각이없었다.오래전부터자신을좋아한,시의원이자부유한목동인‘프란체스코로사나’와결혼을결정한다.분노에휩싸인피에트로는프란체스코를죽여버리겠다며숙모집에서몰래권총을챙겨나오지만,그를향해방아쇠를당기기도전에억울한일에휘말려감옥에갇히게되는데…….

“그는권총을쏘았다.총소리가골짜기의불안한침묵을깨뜨렸다.곧이어사방이다시조용해졌다.그는격렬하게뛰는심장소리를들었다.벌써범죄를저지른것만같았다.불현듯정신을차렸고사악한꿈에서깨어났다.그리고다시길을걸었다.(……)그는구름이여기저기떠있는신비한하늘아래에서걷고또걸었다.때로는어두웠다가때로는도망치는달이남긴푸르스름하고희미한빛에모습을드러내는거친오솔길이었다.”(192∼193쪽)

결정적인순간마다“어디로가야할까,어디에서걸음을멈출까?”라고외치는피에트로.절망적으로방을서성이며“‘어떻게해야하나?어떻게해야하나?’”라고되뇌는마리아.선과악은어디서부터풀어야할지모르는실타래처럼엉켜있고,등장인물모두가부도덕의공범으로살아간다.미끄러운장대끝에스카프,치즈,가방,신발등을달아두고끝까지올라가기만하면모두차지할수있는장면에서,“낫날조각을발에”묶는반칙을저지른사람은높은곳에도달해원하는것을얻고,정직하게“맨발로기어오르려고애쓴”사람은미끄러지기만한다.사람들은반칙한사람을비난하거나그를닮으려하고,혹은그저관망할뿐이다.『악의길』에는주인공인피에트로와마리아뿐아니라아주잠깐등장하는목동들까지도자신들이지은죄가,혹은저지르고싶은죄가무엇인지정확하게알고있다.그래서누구는이상한논리를동원해자신의죄를정당화하고(“도둑질하지않는사람은사람도아니지요!”),누구는절망하며(“주여,그징벌이너무가혹합니다…….”),누구는침묵한다(“목동들은두려움과비겁함으로침묵했지”).

되돌아갈수없는한복판에서꽉쥔주먹
움켜쥐고있는건외면,혹은진실

소설말미.끔찍한진실을마주한마리아는발버둥치며괴로워하다끝내“피에트로의고통을자신의고통과연관”짓는다.떠올리는건예전에봤던죄수들의행렬이다.“함께사슬로묶인채둘씩둘씩”나아가던,“같은쇠사슬에묶여같은형벌의장소”로향해가던모습.델레다는이미너무멀리와버려서돌아가수없는길한복판에인물들을데려온후외면할수없는진실을알려준다.그상태로어디로든나아가라재촉한다.이지점에서『악의길』은단순히사랑과배신,분노와범죄이야기를넘어이책을읽는독자들의삶으로스며든다.사실오늘날을살아가는우리도부도덕의공범이아니냐고,내면에감추고있는거대한모순과욕망이있지않냐고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