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셔니즘 (선택은 어떻게 세상의 가치를 창조하게 되었는가? | 양장본 Hardcover)

큐레이셔니즘 (선택은 어떻게 세상의 가치를 창조하게 되었는가? | 양장본 Hardcover)

$15.16
Description
『큐레이셔니즘』은 독특한 예술사 서적이다. 이 책은 독자가 읽어야만 하고, 읽기에 편한 책이다. 볼저는 큐레이셔니즘의 역사와 오늘날의 헤게모니를 추적한다. 그것은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나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복음을 설파하는 목사처럼 행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행태이다. 알면 불편할 내용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읽어봐야 할 책이다(데이브 히키 추천사).
저자

데이비드볼저

저자데이비드볼저(DavidBalzer)는『빌리버TheBeliever』,『모던페인터ModernPainters』,『아트포럼닷컴Artforum.com』,『글로브앤메일GlobeandMail』등에기고하고있으며,단편소설집『컨트리번스Contrivances』의작가이다.현재『커네디언아트』지의부편집자이며,위니펙에서태어나현재토론토에서활동한다.비평가,편집자,그리고교사로도일하고있다.

목차

여는글
프롤로그HUO라는인물

제1부가치value
제2부작업work

감사의말

출판사 서평

선택은어떻게세상의가치를창조하게되었는가?
점심메뉴까지도‘큐레이팅’하는세상이다.현대문화에서코너서connoisseur란어떤역할을하는가?
‘큐레이팅’이라는유행어는뮤직페스티벌에서고급수제치즈에이르기까지안쓰이는곳이없게되었다.예술계에서큐레이터는고급취향의단체전이나비엔날레를대표하는얼굴이되며개인작가의기여는그로인해가려지기도,흡수되어버리기도한다.큐레이터학과교육은갈수록번창하고,비즈니스계에서는큐레이션을통한콘텐츠가치의증대를꾀한다.누구나큐레이터가된것같은세상이다.
하지만도대체큐레이터란과연누구인가?큐레이팅에모인폭발적관심이시사하는우리의문화,취향,노동그리고아방가르드의관계는무엇일까?데이비드볼저는강렬하고예언적이며독창적인이책을통해예술사부터전지구까지를넘나들며,잘시간도없는큐레이터계의슈퍼스타한스울리히오브리스트의치열한삶에서부터지하철의‘샌드위치예술가’에이르기까지큐레이션이라는컬트적문화를탐구한다.톰울프의『회화가된언어』와존버거의『보기의방식』등문화비평사의명저들과마찬가지로,데이비드볼저의『큐레이셔니즘』은독자가세상을바라보던시각을,그리고나아가스스로를바라보던시각을바꾸게될지도모른다.

추천사
“이책은독특한예술사서적이다.이책은독자가읽어야만하고,읽기에편한책이다.볼저는큐레이셔니즘의역사와오늘날의헤게모니를추적한다.그것은혜성처럼갑자기나타나글을모르는대중에게복음을설파하는목사처럼행동하는인테리어디자이너들의행태이다.알면불편할내용도있겠지만그럼에도읽어봐야할책이다.”-데이브히키

[책속으로추가]
18~19세기박물관큐레이터들은자유로운행위자로보기어렵다는것이다수의의견이다.1960년대후반에서1970년대전반까지뉴욕구겐하임박물관의겸임큐레이터였던에드워드프라이EdwardF.Fry는원조박물관큐레이터를국가의도구로묘사했다.여러박물관컬렉션이,특히파리의루브르가그러하듯정치적혼란과제국주의의치세가원인이되어발달했기때문이다.호기심의방과마찬가지로,1793년에개관한루브르도상징성에서벗어날수없는,신체의정치가문자그대로시전된곳이었었다.프랑스혁명후에개관한이곳은생겨난초기에새로부상한공화정의지시적목표를과시하기위한발화점이되었으며,이후나폴레옹의치하에서는전쟁의잔해가모인프로파간다성‘보편박물관UniversalMuseum’으로변했다.그당시황제의지명을받은큐레이터는춘화春?작가이기도했던도미니크비방드농DominiqueVivantDenon이었다.학자이자갤러리스트인카르슈텐슈베르트KarstenSchubert에따르면그는“역사상최대의박물관소장품”(물론약탈한것들)위에군림했다.드농은누가봐도카리스마가넘치는인물이었지만그가관장한업무는카탈로그의정리와약탈물관리였다.워털루전투가끝난후,영국도이모델을가져와대영박물관에적용했다.전시실은연대기순으로구성되었지만명판이없었고정돈도되지않았다.슈베르트는“큐레이터가혼자만의방식으로관람자를상상했다”고한다.이상상은활기가없고,현학적이고,보수적이고,관료적인것이었다.이곳의큐레이터는도서관사서나학자와더비슷했다.“박물관은정치지도자를세계문화의수호신처럼내세웠다.실상박물관은제국주의의시녀가되었다”고슈베르트는말한다.-55쪽

19세기말과20세기초예술가들의전시전략은이념가치와상품가치모두를추구하였는데,이는아방가르드개념과뗄수없는관계였다.이용어는군사용어인밴가드vanguard(돌격부대의전위부대)로부터파생되었으며,1910년의예술과관련하여런던의우익신문『데일리텔레그래프DailyTelegraph』에서처음사용되었다고알려져있다.예술사학자폴우드PaulWood에따르면,1910년은또한예술가겸비평가이자현대큐레이터의원조격인로저프라이RogerFry가런던에서고갱,쇠라등의작가와함께런던에서후기인상파전을개최하여논란을점화한해이다.“아방가르드”는이런전시들을일컫는용어였는데그것은별로좋은의미가아니었고,특히세기말-세기초의영국은더욱그러했다고우드는이야기한다.프랑스의정치와예술이모두여전히“내란과불안정을의미”했기때문이었다.-60쪽

큐레이터가보편화되기에앞서먼저일어난일은예술가의증가였다.이일이실질적으로시작된것은1960년대와1970년대였으며,이시기아방가르드는바쁘게탄력을받고있었다.그것은서구가누린전후의경제호황속에서자라난베이비붐세대가보헤미안주의와실험성을전례없이한껏껴안았던이유가크다.후기회화추상,컬러필드회화,옵아트,팝아트,액션아트,행위예술,대지예술,비디오아트등등끝없이장황한예술운동이펼쳐졌는데,만약이들모두를바Barr식의흐름도로표현하면꽤나촘촘할것이다.1975년『회화가된언어ThePaintedWord』에서톰울프는이런운동을비웃었는데,20세기초에는발음도괴상한‘이즘’들이(포비즘,퓨처리즘,큐비즘,익스프레셔니즘,오르피즘,수프레마티즘,볼티시즘)줄줄이탄생한것도물론사실이지만그들모두는‘하나의전제를공유’했고,그것은바로예술을위한예술이라는것이었다.그와달리1960년대와1970년대의운동들속에서는대체로오늘날개념주의로알려진방향으로의식화된분열이일어났다.울프는아이디어(개념)가오브젝트(형태)를압도하면서오브젝트들이눈에띄게추해져간과정을격하게비난한다.-68쪽

큐레이터는동시대를규정하는조건이다.1960년대와1970년대에이루어진아이디어와작품확산은1980년대의양상에비하면아무것도아니다.이시기에와서야1960년대에비평가아서단토ArthurDanto가바로“예술세계theartworld”라고명명한시기가완전히도래했다고볼수있다.비평가제드펄JedPerl은1980년대의뉴욕을이렇게표현했다.“예술현장의규모가굉장히커졌다.(단,규모가확대되었다고해서질적변화가함께한것은아니다.)그래서1980년대에는1950년대만큼이나좋은작품이많이탄생했지만,개인적신념을좇아열심히작업하는작가를찾아내기란어지간히갤러리를돌아다니지않고서는불가능했다.”이를연구한브루스알트슐러BruceAltshuler에따르면1949년미국에현대미술갤러리가약20개,‘진보적작품’에투자하는컬렉터의수가십수명에불과하던것이1984~1985시즌엔뉴욕에서만1,900건에육박하는개인전이열렸다.해럴드폴큰버그HaraldFalckenberg의2014년『파이낸셜타임스』기사에따르면,1980년대에매매된예술품의수는“지금까지모든세기를더한”것보다많았다.-83쪽

오늘날,스타큐레이터는한명의작가처럼자기만의스타일을보인다고할수도있겠지만,이를순전히자기중심성이라고폄하한다면그것은지나친단순화이다.오브리스트의사례를보더라도,스타큐레이터들은자신의약점을인지하고있으며유명세앞에서는자신의몸을낮추는모습도갖춘다.그럴만도하다.기관속에서그들의역할은독보적이지만애매하기도해서이다.그들은정확히무슨일을하는가?외계인처럼나타나우리에게초이론적예술을주입시키는사람인가?실력가비즈니스컨설턴트로서국제고위권력문화조직에서일하는초전문요원인가?아니면예술가와관람자사이에서다리가되어현대문화의열매를엄선하고사람들이그것을실제로먹을수있게해주는번역자인가?이마지막가설은너무이상적이고,앞의두가지는너무폄하적이라고하겠다.분명한것은,동시대의스타큐레이터들모두가유연한지성과학식을갖추고있으며,승부에능하고,자신의지위에따르는문제적상황을회피하지않는다는점이다.실제로,특히기관의상황에서발생하는현대의큐레이팅에대해,심지어그이면의위선앞에서도모순을피하지않고논쟁하려는의지야말로스타큐레이터가겸비한가장큰특징이될것이다.-94쪽

오늘날미술컬렉션의대표주자는JP모건체이스가아니라도이체방크DeutcheBank이며,1979년이후60,000점에육박하는작품을소장하게되었다.많은금융계컬렉터들이그렇듯이곳도큐레이터를두고있는데,뉴욕큐레이터인리즈크리스텐슨LizChristensen은1994년,큐레이셔니즘이시작되던초창기부터여기서일했다.그러나그녀가설명하는자신의업무는로열아카데미의로버트후크라던가분더카머및쿤스트카머담당자등,원조큐레이터들과더가깝다.그녀는2003년도이체방크가발간하는예술지에이렇게적었다.“이곳은매층마다특정한작품이전시되어있으며,매우다른사람들이그속에서생활합니다.나는가교역할을수행하는데,한손에는매우어렵고때로는심지어까칠하기도한현대미술이있고,다른한손에는고객과직원으로여기서일하는‘일상’속의사람들이있습니다.우리는투어도실시하고,로비갤러리와컬렉션속의작품을전시하는내부웹사이트도운영합니다.우리직원들에게지식과예술에대한이해를전달하는것은우리의당연한업무입니다.-138쪽

1990년대는미술혹은미술사학과들도마찬가지로경전화된역사가주관적이고,억압적이며,심지어시대에뒤진것이라는비판을강하게받는형국이었으며,다양성을확보하라는압박도강하게받고있었다.한때도상파괴로간주되었던행동들이이제제도에흡수되게되자,동시에예술가들은석사학위를취득해야한다는압력을느끼게되었다.과거에는소수의작가들만이취득해온예술학석사MFA과정에대한관심이커져갔고,특히그것은회화,평면,그리고전통적조각이아닌여타의분야에서더욱심했다.뉴미디어혹은행위예술로도석사학위를받을수있었으며,그것은비록자동적으로성공을보장해주는것은아닐지라도이론적바탕,실험과성장의기회,그리고동료와의교류와네트워킹기회를약속해주는것으로받아들여졌다.그래서1970년에는새로생겨난로스앤젤레스의칼아츠CalArts나핼리팩스의노바스코시아예술디자인대학NSCAD등실험적미술프로그램들이고개를들었고,1990년대중반에는학교교육에서오히려개념주의적실천이적극권장되는역설이완전히자리잡게되었다.그것은기관과학교에서공통으로일어난현상이었다.(그중에서도대학들은이시기에새로미술관을설립하기도하고기존의것을재건축하기도했다.)예술가들이큐레이터의눈에들기위한방법으로자신의교육과정을큐레이팅하는법을배운것이다.복수의학위는자신의자아와작업을실현시키기위한과정이되었다.그결과오늘날현대예술가들에게MFA는필수학위가되었으며,같은이유로이제까지는더이상전문화되기힘들것으로만생각되었던예술분야에서도박사과정이등장하여석사프로그램위에군림하기시작했다.-158쪽

인지경제cognitiveeconomy혹은정보경제의영역에서는이와다르게,예컨대큰회사를위해트윗을생산하는일을소액또는무보수로수행하는경우도보인다.그것은예술계의큐레이터직업시장과마찬가지로디지털큐레이팅업계에서도봉건적양분화가진행되고있음을뜻하며,차이라면엘리트계층이훨씬더큰규모로사업을구사한다는점이있다.이들은새로운유형의설계자인경우가많다.게임디자이너는물론플레이어모집이라는큐레이팅행위에친숙하며깊이관여한다.하지만그는동시에은행이나기타기업이그렇게하듯게이머를섭외하고큐레이팅을위탁하여그가자신의경험을관리하도록요청할수도있겠다.게임에서인터랙티비티가차지하는중요성이계속해커져가고있기때문이다.(이런섭외는앱의설계에있어서도유익한수단이다.)큐레이셔니즘의시대에솟아난새롭고성장중인분야로,체험디자이너experiencedesigner가손꼽힌다.작가,교사,그리고양적연구자를겸업하는패이밀러FayeMiller는오스트레일리아웹사이트<컨버전TheConversion>에대한기고문에서그서두를다음과같은빈칸채우기로시작하였다.“그것은○○○가아니라오로지체험입니다.”여기서밀러는‘체험경제experienceeconomy’혹은‘엑스포노미ex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