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를 읽었다 (이명지의 나를 사로잡은 문장)

그리고 나를 읽었다 (이명지의 나를 사로잡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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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열심히 산 것도, 열심히 살지 않는 것도 어느 게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달려왔든, 걸어왔든 모두 지금의 자리에 다다랐다. 그 자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절대 결과치는 아니다. 인생은 상대 평가다. 그 대상에 따라 자신의 행, 불행을 스스로 매길 뿐. 누구는 좀 더 행운이 따랐고 누구는 그렇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여기까지 온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어떤 인생도 의미 없는 생은 없다.
후회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느냐 틀리냐보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겠다 보다 행복한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방향타가 되어준다. 후회의 쓸모다. (책 본문, 11쪽)
저자

이명지

저자:이명지
경북영천에서태어나동국대학교문예대학원문창과(문학석사)를졸업했다.1993년《창작수필》로등단하여다년간《국민일보》‘여의도에세이’,《디지틀조선일보》‘힐링에세이’,《데일리한국》‘나를사로잡은문장’을연재하며독자층을넓혀왔다.신문기자를시작으로발행인,방송진행자를거친언론생활20년,대학강단에서10년을끝으로40년서울생활을접고양평‘수풍재’에서읽고쓰는일,더러가르치는일을하고있다.
한국산문문학상(2024),조연현문학상(2023),동국문학상(2019),창작수필문학상(2002)을수상했다.
저서로수필집『중년으로살아내기』,『헤이,하고네가나를부를때』,『육십,뜨거워도괜찮아』,그림수필집『낮술』,논문집『전혜린수필연구』가있다.

목차

작가의말/그리고나를읽었다

1부비뚤어져도괜찮은나이

육십은비뚤어져도괜찮은나이
나이들면왜색(色)이좋을까
내가가장나다울때
그지켜야할것들이나를지키더라
감정에도속도가있다
남자바꾸는것만큼용기내는일
잠깐멈추고돌아보는건내생에대한예의
잘헤어져야사랑이익는다
늙은매화등걸같은사내와매화꽃같은아내
실연마저사치인나이,가슴이잃어버린것

2부아름다움의크기

그알싸하고달콤하던엄마의손매맛
엄마의연애에간섭할생각은마라
내어린시절의키다리아저씨윤택이아재
엄마안에엄마,그안에또엄마
땅이끝나고바다가시작되는곳리스본
“얘야,거기서나오너라!”
울음이이토록달다는사실
막태어난산이연두옷을짓고
“너도그래?나도그래!”
당신의툇마루에슬쩍놓아주고싶은책

3부일상의소중함,별것아닌별것

가장듣고싶은말,밥먹어라!
내인생에난호젓한오솔길에판석깔고꽃도심어야지
장마당같은내삶속에심는꽃
우리마을에는우렁각시들이산다
일상의성스러움
아름다움에도크기가있다
백년간시름잊을딴스홀을허(許)하라
세상의비위를맞추려애쓰지말아야지
무게를감당하는일은그만한힘이있어야한다
함께걸으며딴짓하기좋은곳

4부사랑과관능,양날의검

늙은어머니의정욕은죄악인가
가끔어디선가돌이날아오는관능
내그리운사연까지왜데려와서는
‘참을수없는’질투를느끼게하는
누구에게부재를안기고당신은떠났나
내삶에등불을들어준문학
그기억하나로일생을견딜것같은저릿한사랑
돌아와서야알게된후회의쓸모
쓸쓸함조차낭만적허용인가을
누군가를사랑하고있는내모습을사랑하고싶은걸까

5부외로움과고독,그리고

외로움은타자만이어루만져줄수있는쓸쓸함일까
한없이자유롭고싶어한없이외로웠다
나보다더외로운강이우는소리
살아있음의먹먹한외침,인식의자유로움
생을가다듬을그우아한시간을누가허락해준단말인가
혼자라는결핍을어루만져줄보약
류시화도내글을읽는지모르겠다
어린왕자가사는행성에선모두가관대하다
그렇다고어찌바람을탓하랴
초경하는딸같은삼월

6부이토록단울음

직면한다는것은해소하는일
시련이키운나의문학
그러니단풍나무야잘자!
못가본아득한그길
그녀가마지막으로듣고싶은말
너의삶은어땠니?
하느님이네이마를짚어주시려고오지
텍스트에서극으로살아난수필극<낮술>
지향하는한방황하는인간
몽클라르,당신을잊지않겠습니다

에필로그/문장이삶과만날때단물이배더라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열심히산것도,열심히살지않는것도어느게옳고그르다고말할수는없다.인생에정답이어디있을까.달려왔든,걸어왔든모두지금의자리에다다랐다.그자리가지금까지살아온절대결과치는아니다.인생은상대평가다.그대상에따라자신의행,불행을스스로매길뿐.누구는좀더행운이따랐고누구는그렇지못했을수는있지만,여기까지온그자체만으로도성공한인생이아닐까.어떤인생도의미없는생은없다.
후회는앞으로가야할길을알려준다.내가가는길이맞느냐틀리냐보다,무엇을위해살아야겠다보다행복한가아닌가를가늠하는방향타가되어준다.후회의쓸모다.-11쪽

색(色)이란다른면에서섹슈얼리티를연상한다.정염에불타는여인을색스럽다고한다.나이가들면빠지는것이컬러만이아니다.생기와활력,정염도줄어든다.생명을향한본능,그것이색이다.그색이빠지면니맛도내맛도없어지는걸까?하지만색이빠졌다고다안좋은것은아니다.“늙으니좋다.두고갈것만남아서좋다”고한박경리선생의말씀이아니라도적당히물이빠지고편안해진지금이나도좋다.-15쪽

살다보면바구니에담긴채강물에떠내려오는아기바구니를받아안을때가있다.문학은내게비껴갈수없는숙명같은아기바구니다.육아는고통도따르지만조금전에무엇으로힘들었는지금세잊을만큼해사한아기웃음소리도있다.수상의소식은그웃음소리같다.글이,일용할밥도술도되지않을때가더많지만,마침표를찍을때의그짜릿함으로기꺼이고뇌의숲을걷고헤매고몸부림친다.
“우리는올리브열매와흡사해서,짓눌리고쥐어짜인뒤에야최상의자신을내어놓는다”는탈무드구절이있다.작가의삶이이와같다고생각한다.운좋게도운전하다가,산책하다가얻어걸리는영감이있다.그러나이게어찌공짜로얻어진것이랴.온종일쉼없이가동되고있는올리브공장의결과가아니겠는가.-21쪽

어이없게도그토록찾아헤맨나는내안에있었다.내안에있는나를찾아천지사방으로헤매고다녔다.내마음에귀를기울여야했었다.가슴의소리를들었어야했다.그랬다면아,나는지금지쳐있구나,마음이아픈거구나하고알아차렸을텐데그저외부의힘을빌려일거에해결하려허둥대고다닌거였다.인디언들은말을타고황야를달리다가가끔멈춰서서뒤를돌아다본다고한다.내영혼이잘따라오고있는지살펴보느라고.나는그때멈추지않고달렸다.아니멈출수가없었다.멈추면쓰러지는팽이처럼살고있었으니….-32쪽

언젠가부터나는오월에떠나면좋겠다는생각을한다.장례식장에가득한꽃대신온천지에흐드러지게핀꽃들이내생을애도하고,심장모양을한라일락잎사귀가손을흔들어주는오월에….
오래되어도퇴색되지않은그리움은힘을쓸때툭불거지는힘줄처럼무시로돋아난다.내등뒤로꽃이진다거나빗물에둥둥꽃잎들이떠내려갈때,햇빛이너무찬란해서마당에내려설엄두조차안날때거나,창너머로보이는강풍경이너무아름다울때도그렇다.너무아름다워어떤말로도형용하기어려울때울컥가슴에서무언가가치민다.
창밖은오월인데….-36쪽

한때나는울지못하는병에걸렸었다.어떤희로애락을직면해도울거나눈물이나지않았다.울지못한다는것은배설하지못하는것만큼이나고통스러웠고감정의정체는몸도마음도망가뜨렸다.세상과의소통은물론글을쓰는일도할수없었다.안으로안으로만침잠하는마음은온통웅크려엎드린채자신만을할퀴고있었다.운다는것은숨을쉴수있을때야나오는것,울수있다는것이얼마나축복인지나는그때알았다.-72쪽

하지만다벗었다고모두아름다운것은아니다.적당히가린모습이훨씬매혹적이듯,어디까지보여줄것인지는작가의몫이다.그래서‘수필문학에서상상력의허구성을수용해야하느냐?한다면어디까지해야하느냐?’는수필문학의화두다.
‘자신의내면을오랫동안들여다보고섬세하게풀어낸일기장’같은작품은작가자신에게가장먼저위로를준다.칼융은“사는것이버거운이유는자기자신이되지못하기때문”이라고했다.치유란자기자신이되는것이다.자신과화해하고자신을위로한문학작품은세상으로나아가독자들을위로한다.“너도그래?나도그래!”서로껴안고토닥인다.그것이문학의궁극적역할이다.-81쪽

우리에게남은시간이얼마나될까?내일이온다는보장은누구에게도없다.매일현재를살아지금에이르렀고,어제의내일이었던오늘을살고있다.오늘을산다는것은내게잘해주는일이다.내가편안하면주위사람들도편안해진다.나이드니더그렇다.나를잘돌보는것이자식들걱정을안끼치는일이란걸깨닫는다.외롭다고말하는대신나를한번더안아줘야겠다.
건축가안도다다오는집을짓고정원에길을낼때미리판석을깔지않는다고한다.처음2년은잔디만심어놓고그집사람들이다닌길에자연스레길이날때를기다려그선에판석을깐다는것이다.-93쪽

말에도때가있다.아름다움에도크기가있는것처럼말도효용의크기가있다.제때하지못한고맙다는말,사랑한다는말,미안하다는말들….때를놓친말들은쪼그라들고빛바래영원히기회를놓치는일이한두번이아니다.돌아보니흘려버린언어들이불현듯자갈돌이되어가슴에서달가닥거린다.제때한따뜻한말은어느순간내게로돌아와괜찮다괜찮다며등을토닥인다.속을알수없는나의술병에남은술이얼마일지모르지만,마지막한방울이다할때까지사랑하는사람들과행복하고싶다.그들의술잔에한방울내향기보탤수있다면무얼더바랄까.-107쪽

나로산다는것은경계에서는일이다.어느것에도갇히지않고끄달리지않고내욕망의주인으로사는일이다.장자는‘천하를따르지않고나의즐거움을따르겠다’하고,노자는‘자신을천하만큼사랑하는사람한테천하를맡기겠다’하였다.자신을사랑하지않는사람이어찌천하를사랑하겠는가.그런데어리석은나는남이만든기준이내것인양칭찬에목마르고,내글을쓰기보다남의글을읽는데더많은시간을소비하고있다.박제된지식을곁눈질하느라생생하게살아꿈틀대는나의하루를허비하고있다.-114쪽

서구문학에서는이미오래전부터관능을자연스럽게다뤄왔다.D.H.로렌스의『채털리부인의연인』이나헨리밀러의『북회귀선』,아나이스닌의『비너스의델타』까지여성의성적주체성과다양한욕망을탐구한예술작품으로평가받고있다.우리문학도김동인의『감자』에서부터시작해서최근의여성작가들까지관능을중요한소재로다뤄왔다.
하지만우리사회에는관능을금기시하는문화가여전히남아있다.나역시나이가주는자유로움때문일까?자주사랑과에로티시즘을주제로삼는다.즐겁다.그런데가끔어디선가돌이날아온다.관능은해로도,달로도뜬다.그는대체무얼상상했길래?치명적사랑을못해본열등감인가?-130쪽하지만떠남과머무름,그사이를장자는“무릇사람이세상에태어나는것은잠시머무는것일뿐”이라고했다.모든존재는필멸의숙명을안고태어난다.본질적으로떠남을전제로하는것.우리는이세상에잠깐머물다가는나그네일뿐이다.그럼에도떠남은언제나힘들다.죽음이나이별을받아들이기가쉽지않다.부재가주는의미는단순하지않다.때로해방이기도하고,때로는절망이기도하다.사랑하는이의부재는그리움을낳지만,동시에새로운가능성의공간을열어주기도한다.비어있는자리가있어야새로운것이들어올수있다.-140쪽
수필이신변잡기라는말은문학적당위성이없다는질타다.수필이자신의경험담으로끝날때듣는말이다.수필이문학이될수있으려면‘그래서뭐?’가있어야한다.이이야기를왜썼는지가있어야한다.그래서나는수필을‘그래서뭐?’의문학이라고말한다.그것이의미부여이며관조다.
수필을쓰다보니인생의관점도그리됐다.수필가의삶이되었다고나할까.매순간의미를찾으려는노력을한다.어떤일이내게일어났을때이건어떤의미일까?인생이내게무슨말을하려고이일이일어난걸까?하고생각하는습관이랄까.일상의소소한사건도그냥흘려보내지않고그
안에서보편적진리를찾으려한다.-143쪽

여행은풍경과사람을만나러가지만늘좋은것만있는것이아니다.더러는상처로남기도한다.내가얼마나작은존재인지부끄러운모습을마주하게되면후회스럽기도하다.하지만그후회가나를겸손하게만들고,다시사랑할수있게한다.인생은거대한호수다.문학이그런것처럼.다만
거기서사랑을,사람을읽기위해나는또떠나게될것이다.
돌아온뜰에서깨닫는다.떠나지않았다면알수없었던지질한내마음의속살을,다시돌아와서야알게된후회의쓸모를.-153쪽

정말외로움은타자만이어루만져줄수있는쓸쓸함일까?외로움은사랑의그림자다.누군가를사랑하지않으면외롭지도않다.‘보고있어도보고싶은’열정은이제없지만함께있으면편안해지고바라보면안정감이드는사랑,그것도사랑아닌가.그렇다고외로움이두려워사랑하지못하는바보는되지말아야겠다.사랑없는인생은꽃없는정원과같다.외로움을감수하고라도사랑해야하는이유다.그것이살아있다는증거이니까.
고독을두려워하지않는사람만이진정한사랑을할수있다.혼자서도충분히행복할수있는사람만이타인을진정으로사랑할수있다.고독은나약함이아니라힘이다.사랑할수있는힘.‘외로움이사는곳’을찾아낸이상더는외로움이아니다.-164쪽

인간은필멸의존재다.어떻게살다가어떻게죽을것인가의문제만있을뿐이다.“삶과싸워이기고떠나는것,그것이진정한죽음”이라고니체는말했다.그런데옹이를빼고생을가다듬을그우아한시간을누가허락해준단말인가?어떻게살아야할지가확연해지는느낌이었다.
나는지금이순간을살고있는가.매순간을‘생동’으로채우고있는가.“밀어도열리고당겨도열리는문”을늘반갑게맞이할준비가되어있는가….-178쪽

나에게도못가본길들이있다.첫사랑처럼아린그길들.문득선생님이못가본그길이내길만같아아득해진다.못가본길이주는아름다움은그리움이아니라가능성이다.아직늦지않았다는희망이다.비록같은길은아닐지라도또다른길이있다는믿음이다.한쪽이닫히면다른한쪽이열리는삶의이치는언제나희망을준다.
오늘도나는여전히갈래길에서있다.하나를선택하고하나를포기해야한다.그러나더는두렵지않다.포기한길도내안에서또다른길을낼것이란걸경험으로알기때문이다.못가본길이더아름답듯이,앞으로가지않을수많은길들또한아름다울것이라믿으며오늘걷는이길을끝까지걸어가려한다.선생님처럼….-212쪽

“너의삶은어땠니?”
어느날다정한목소리가이렇게물어온다면그냥털어놓는것이좋을수도있겠다.그건정상참작하겠다는의지가담겨있는물음이다.우리는모두정상참작이필요한존재들이다.완벽하지않고,실수투성이고,때로는길을잃는다.하지만그것이바로인간이다.쇼펜하우어는인간을“의지의노예”라고했다.우리는욕망에이끌려살고,그욕망때문에고통받는다.하지만그고통조차우리를인간답게만드는것이아닐까.-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