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퀴를 굴리며 (시와 문장을 잇는 이야기들)

달의 바퀴를 굴리며 (시와 문장을 잇는 이야기들)

$17.00
Description
삶의 켜를 굴려 담은 시와 산문의 교향곡
이 책은 ‘수필처럼 쓴 시작 노트’라는 작가의 말처럼, 하나의 제재를 시와 수필에 녹여내고 있다. 독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삶의 고요한 순환 속에서 피어나는 다채로운 감정과 사유를, 한 편의 시처럼 유려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엮어낸 특별한 여정에 동참할 수 있다. 마치 보름달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듯, 우리의 시간과 마음이 흘러가는 모습을 언어의 바퀴로 천천히 굴려가며, 삶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경험을 선사한다.
작고 연약한 존재들의 고독한 생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한없이 가벼운 것들을 통해 삶의 가장 무거운 의미를 길어 올리는 문장들은, 지친 당신의 일상에 작은 위로와 깊은 울림이 될 것이다.
또한 마음속 가장 조용한 곳에서 피어나는 시심(詩心)을 만나고, 잠들어 있던 감각들이 이 책과 함께 천천히 깨어나 다시 반짝이기 시작할 것이다.
저자

송은숙

저자:송은숙
2004년《시사사》신인상을받아시인으로등단하였고,2017년《시에》를통해수필가가되었다.
시집으로『돌속의물고기』『얼음의역사』『만개의손을흔든다』『열두개의심장이있다』,산문집으로『골목은둥글다』『십일월』이있다.

목차


작가의말

1부녹색광선
녹색광선
구두한짝
로드킬
살아남기
갈치
담쟁이의발
선천적결핍
희망
해바라기

2부시원섭섭,시원섭섭
더빙이
슈퍼문이뜨는밤이면
경계
명과
그리고그때
쌀바위

집을팔았네
눈,뜨고있는
예감

3부고요는보내고소란은걸러낸다
개옻나무저혼자붉어

물음표,느낌표
배롱나무
살구

작은검은꼬리박각시나방
다시듣고싶은소리
얼음의역사
고래가전한이야기
겨울산에서하늘과악수하기
화요문학이있었다

4부마침내지구에서가장중요한곳에도착했다
도요지
폐가와산수유나무
미황사
마침내지구에서가장중요한곳에도착했다
직립
목련편지
고원의바람
신의나라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신발,하면고흐의그림이떠오른다.고흐는구두를주제로여러편의그림을그렸는데,주로낡고흙이묻어더러워진농부의구두이다.구두는신발끈이풀렸거나,발이들어가는입구가늘어졌거나,바닥을위로하고뒤집혀있다.그림을가만히보면구두주인의삶의무게나노동의흔적이고스란히느껴진다.하이데거는『예술작품의근원』에서그구두그림을보고“우리는이구두를통해,농부여인의고단한삶,그녀의걸음,들판의땅,비와바람,외로움,생계의투쟁을느낄수있다.”라고하여,그림이단순한정물화를넘어서,존재의진리(Sein)가드러난다는철학적논지를끌어냈다.신발은우리몸의가장밑바닥에위치하며노동과이동을통하여우리존재를가장높은곳으로끌어올린다.-19쪽

하지만흙이되지못하는죽음도있다.아스팔트위에서가끔차에치여죽은동물을본다.고양이가눈앞에서치이는걸두번보았다.버스를기다리다가저앞에서검은물체가하늘로솟구치다떨어지던장면.그고양이는두어번뛰어오르다잠잠해졌다.그리고한번은내부주의로일어난일이다.길을가다깡통을머리에뒤집어쓴새끼고양이를보았다.아마깡통안에든찌꺼기를먹으려하다머리가낀모양이다.고양이는앞이보이지않아서위험한차도를이리저리가로지르며날뛰고있었다.마침,내옆에왔길래깡통을벗겨주었는데놀란고양이가찻길로뛰어들어그만차에치이고만것이다!찰나의일이다.그때깡통을벗겨주지말아야했나?모르는체하고지나가야했을까?물론고양이를꼭붙들고벗겨주어야했다.하지만그버둥거림과눈깜짝할사이의달아남.그사건은너무큰상처가되어서한동안그길로다니질못했다.-24쪽

무엇보다깜짝놀랄일은갈치가헤엄치는방식이다.나는갈치가당연히길게누워헤엄치는줄알았다.장어처럼꾸물거리며.어릴때그림책에서도그렇게본것같다.그런데어느날텔레비전에서보니갈치가서서헤엄치는것아닌가!서서지느러미를흔들며,아니떨며고요히움직여갔다.갈치가서있는모습은정말긴칼이세워진것같고,그렇게헤엄치는갈치떼는무사들이들고있는창검이햇빛에반짝이는것같았다.영화<반지의제왕>에서,곤도르를구하기위해출정하는로한기마대가떠올랐다.그영화의가장멋진장면,펠렌노르평원에서전투가있기전기마대가들고있는긴창에세오덴왕이자신의검을부딪치며격려하던모습도.-36쪽

어느날공터를지나다폐자재를붙들고간신히자라고있는나팔꽃을보았다.꽃철이지나서시든꽃아랫부분엔몇개씨앗이맺혔다.오랫동안비워둔공터는여기저기쓰레기더미가쌓여있고,나팔꽃주변도폐드럼통이며못이삐져나온각목이며플라스틱파이프등으로어수선했다.아,씨앗을떨군다면저씨앗은어떻게자랄까.땅에닿기도어려울것같고,땅에떨어진다고해도폐자재의척박한그늘에서제대로자랄까,걱정하다갑자기더빙이가생각났다.나팔꽃이어디에씨앗을떨구어야그나마잘자랄까기웃거리는것처럼,이밤에어디에서잘까,기웃거리던그부평의삶을떠올렸다.삶의중심에서지못하고늘주변에서기웃거리던,그러나순하디순한눈동자를.흙빛과다름없던매무새를.한없이걷고걸어서부풀어오른맨발을.-62쪽

미래를예견하는징조의하나로예지몽이란게있다.엄마는꿈이잘맞았다.꿈을꾼뒤누가아픈가보다,죽었나보다,오늘누가올것같은데,하면얼추맞았다.작은오빠가고등학교에합격했을때는마당에서내다보이는식장산위로용이날아오르는꿈을,외할머니가돌아가셨을때는외할머니가아무리불러도뒤도안돌아보고가시더라는꿈을꾸었다고했다.그래서우리는중요한일이있을때면엄마가무슨꿈을꾸었는지물었다.대개높은데서떨어지거나동전을주우면계속동전이나타나한없이줍게되는,소위개꿈을꾸는내게엄마의꿈은신기하고신비로웠다.-111쪽

갓뽑은무처럼속까지꽉차세상을바꾸고야말겠다고덤비던,순수한오기와열정이넘치던젊은날엔명치끝을날리는매운펀치처럼상대를가격하는직언을서슴지않았다.매운맛뒤에가려진삶의노곤함과팍팍함을그때는채몰랐다.나이가들며삶의매운맛은묵직한지혜가되고,달큼함은깊은연민으로변해간다.한때꽉찬무속처럼보였던자아가구멍이나서허술해진다.완벽하지않아도괜찮다는여유로움과상대를포용할줄아는너그러움도생긴다.시간이지나면서단단했던목질의틈이벌어지고헐거워지는나무처럼,팽팽했던종잇장이느슨해지고바람이드나드는창호처럼.-125쪽

배롱나무는흔히백일홍(百日紅)이라불린다.꽃이귀한한여름,7월부터피기시작하여가을이시작되는9월까지백일가까이꽃을피우는그끈질긴생명력때문이다.고려말학자이색은이러한배롱나무를보며“사시내내푸른소나무잎이라면/백일내내붉게피는선경의꽃이로다”라고노래했다.그리고“서리와눈을겪으며내마음더욱고달픈데/여름부터가을까지꽃모습여전히농염해라”하며백발의자신과대조되는배롱나무의붉음에쓸쓸한탄식을보냈다.백일홍이지고나면여름은확실히저물고가을이다가오기때문일까.꽃자체는늦게피어오래도록피어있지만,역설적으로그붉음은여름의끝과인생의절정은길지않음을알리는듯하다.-133쪽

소리도시각적즐거움이있어야더좋게들린다.장작타는소리를귀로만듣는것보다,불을직접쬐면서빨간불이날름거리며장작을삼키고장작이검게숯으로변해가는모습을볼때얼마나즐거운가.나는특히아궁이에불을땔때나는소리를좋아한다.뒷산에서해온나무는솔잎,갈잎,나뭇가지,나무둥치등제각각이라소리도제각각이었다.갈잎은하르르소리를내며빨리타들어가고,솔가지는느리게촉촉하게타들어간다.청솔가지가탈때는보글보글작은거품까지이는데,매캐한연기와빨갛게타들어가는나뭇가지의모습,그리고하르르,타닥타닥,치직치직하는소리가오케스트라처럼다양해서좋다.-151쪽

우리화요문학도말라르메의화요회에서영감을얻은것은아닐까.‘화요’에는타오르는불처럼무언가격정적이고열렬한,순수하고낭만적인이미지가있다.아마대학시절에만나서일까,담소보다는밤새워서하는토론과논쟁같은청춘의느낌이있다.성모다방구석에모여있던알코올과독서로눈이붉던선배들.그래서화요문학에들어오면세례수반에든청정한물처럼맑은소주로입교식을하고,나중엔저도모르게평생을시에,문학에복무하겠다는저엄숙하고도순정한맹세를하게된다.성경대신아끼는시집을들고.그때그시집이김명인의『東豆川』이었나,최승자의『이時代의사랑』이었나,황동규의『三南에내리는눈』이었나,엄혹했던시절이라몰래복사해서읽던신동엽의『錦江』과브레히트의『억척어멈과그자식들』이었나.-172쪽

옛물건을들고나와가치를매기는<진품명품>이란프로그램이있다.가끔대접이나사발같은그릇,협탁위에두는도자기가나오는데,이도자기의값이병풍이나민화,공예품등다른물건보다월등히높은편이다.도자기는깨지기쉬워서온전한형태로남아있기가어려워서일까?고려청자나조선백자가완전한상태그대로남아있다면그가치가상당히높을것이다.혹은,우리가고려시대의대표적예술품으로청자를들고조선시대에는백자를드는것처럼도자기는당대미의식의정점을나타내는기준일수도있다.그래서박물관에서도도자기는시대를가름하는중요미술품으로집중조명을받으며눈에잘띄는곳에전시되는편이다.-175쪽

사천왕문을나서니자하루가나타난다.자하루는미황사미술관으로이용되고있다는데그래서인지자하루편액의글씨도예술적이다.입구옆에는커다란달마상이미황사뒤에병풍처럼둘러선달마산을바라보고서있다.석상이지만퉁방울눈과커다란코,머릿수건과수염까지영락없이그림속의달마상이다.원래달마대사는남인도향지국의왕자로대단한미남이었다고한다.그런데이무기사체썩는냄새로고통받는마을사람을위해잠시영혼이몸을빠져나와이무기에게들어가있을때지나가던신선이그몸을차지했다.나중에달마대사를만난신선이다시몸을돌려주겠다고했지만달마는이대로됐다며받지않았다고한다.만약원래의몸을받았다면해학과개성이넘치는달마상을못볼뻔했으니천만다행이랄까.-189쪽니체의집정문안쪽에큰나무가있다.하늘이너무깨끗해서바라보다가나무에걸린커다란별을발견했다.멀리있어서무엇으로만든것인진모르지만,얼핏보기엔노란색지로접은것같다.대지와하늘의중간에걸린별.차라투스트라의핵심사상은어떤한계에도굴복하지않는초인,위버멘쉬에대한긍정이다.별은한계를벗어나고자하는갈망의표현일까,아니면대지에사로잡힌존재와초월하는존재의경계에서결국중력을벗어나지못하리라는인간한계의표현일까.“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당신은그냥거기계시옵소서.우리는땅위에남아살겠나이다.”자크프레베르의기도문처럼우리는대지에사로잡힌,땅위에남아살아가야하는존재인것을수긍한다면,나무에매달린별은그럼에도불구하고살아가야하는인간의숙명을떠올리게한다.네운명을사랑하라는니체의‘아모르파티(운명애)’를.-197쪽
초원에는야크와말,염소의배설물이여기저기흩어져있는데,흙의빛과비슷한갈색이나회색옷을입은사람들이바구니나갈퀴를들고배설물을모으고있다.모두느릿느릿한가하고여유롭게움직이는것같은데도배설물은금세커다란무더기를이루었다.지금눈앞에보이진않지만,아주많은가축과짐승들이있나보다.초식동물의분변은냄새도심하지않아,거름이나땔감으로사용되는순환의고리를이룬다.건조하고메마른땅위에놓인모든부산물은기어이대지의양분이되고,투박한손길로거두어지는그하나하나가다시따뜻한불꽃으로,혹은다음해싹터오를생명의씨앗으로돌아온다.이곳에서는흐르는시간마저느리고투명해서,모든존재가서로에게스며드는고요한우주를보는듯했다.-218쪽

네팔의신은축제에서도느낄수있다.우리가갔을때는마침티하르축제기간이었다.티하르는빛의축제이다.부의여신락슈미를초대하기위해집과거리를온갖촛불과등불로밝힌다.빛의축제라서그런지카트만두에도착한뒤부터건물과골목을밝히는온갖종류의전등을보았다.우리나라에선크리스마스때트리나거리를밝히는환한빛이여기에선티하르축제때이용되어축제의분위기를한껏돋운다.거리나골목이전등빛으로눈부시다면가정에선락슈미여신을모신작은신당주위에서촛불이타오른다.여신을집안으로들이기위해입구에아름다운만다라를꾸며두고신당까지꽃과발자국,빛으로장식한다.저빛과꽃의길을따라락슈미여신이집안으로들어와좌정하고한해의복과행운을가져다준다고한다.-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