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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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실격당한 인생이라 불리는 이들도 그 자체로 존엄하고 매력적인 존재다!
1급 지체장애인인 변호사 김원영이 우리 사회에서 잘못된 삶, 실격당한 인생이라 낙인찍힌 이들의 삶을 변론하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는 소수자들이 삶에서 만나는 연극적인 순간들, 즉 차별과 배제, 수치와 모욕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노련하게 맞받아치고 우아하게 대응하는 태도가 놓인 딜레마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저자는 거짓된 연극을 집어치우라고 하기보다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과 인류학자 김현경의 논의를 빌려와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연극적인 상호작용이 인간의 존엄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홀로 고통을 감내하던 개인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존엄한 인간으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부모, 형제자매, 친구, 연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이 존엄한 인간임을 확인한 소수자들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변호사이자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관으로 일했던 저자는 법의 문지기로서 차별당하는 이들을 만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가 보호와 치료, 복지라는 이름으로 인간 존엄의 가장 기본적 전제인 개개인의 고유한 서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한 사람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온전히 지닌 채 써온 인생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지켜봐줄 수 있는 시선이 있다면, 그런 무대가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실격당한 존재들도 아름답고 매력적일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 책은 자신의 출생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특질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 속에 살지 않도록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매력적일 수 있는 증거들을 수집해 작성한 한 편의 긴 변론서다. 저자는 한 인간의 결핍과 차이와 비참이 개인적인 체험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으로, 법과 제도 속으로, 누구나 아름다울 수 있는 사회적 무대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정받기 위해,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강하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는 소수자들이 결국 이 모든 일에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만큼은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저자

김원영

골형성부전증으로휠체어를탄다.열다섯살까지병원과집에서만생활했다.검정고시로초등학교과정을마치고,장애인을위한특수학교의중학부와일반고등학교를거쳐서울대학교사회학과를졸업했다.서울대학교로스쿨을졸업하고국가인권위원회등에서일했으며,‘장애문화예술연구소짓’에서연극배우로활약하기도했다.현재서울에서변호사로활동하고있다.[사랑및우정에서의차별금지및권리구제에관한법률][인...

목차

추천의글
들어가며_잘못된삶과좋은만남

1장노련한장애인
1.8초?핵토와다리병신?퍼포먼스로서의삶:기호화된인간?노련함의딜레마

2장품격과존엄의퍼포먼스
최고존엄의기괴함/품격을만드는퍼포먼스?존엄을구성하는퍼포먼스

3장우리는사랑과정의를부정한다
푸른잔디회?연극적으로죽거나살기?피해자되기를멈추고

4장잘못된삶
“나를태어나게했으니그손해를배상하시오”?청각장애가있는아이를선택하기?장애를제거하기와선택하기?“그럼너도다리를잘라”

5장기꺼운책임
부모와자식?믿음과수용?장애를수용한다는것

6장법앞에서
폐쇄병동?정신질환자가되기까지?빠져나갈길이없다?법의문지기?인생을설명하는통합이론?망상에빠진작가?자기서사에위계가있을까?독해능력과공저자되기

7장권리를발명하다
오줌권?당신의잘못은아니다?법속으로?당신의고유함은정당하고정당하다

8장아름다울기회의평등
정치적으로올바른사랑??매력차별금지법?절단된당신의몸에끌려요?‘잘못된몸’과아름다움?초상화그리기?아름다울기회를분배하기?갖지못하는것들

9장괴물이될필요는없다
온전한사랑?개인적인체험?변론을종결하며

감사의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인간의존엄성은어떻게발견되고구축되는가

저자는소수자들이삶에서만나는연극적인순간들,즉차별과배제,수치와모욕앞에서아무렇지않은듯노련하게맞받아치고우아하게대응하는태도가놓인딜레마에서논의를시작한다.스스로를보호하기위해취한이런마음의태도는삶의모든순간을일종의공연(퍼포먼스)으로만든다.뜻밖에도이는자신을모욕했던이들,의전을기획하고장애인을동원하는이들의연극적인삶과어딘가닮아있다.그러나저자는거짓된연극을집어치우라고하기보다는사회학자어빙고프먼과인류학자김현경의논의를빌려와,사람과사람이주고받는연극적인상호작용이인간의존엄을구축하는방식으로전개될수도있다고말한다.
무더운여름날모든아이가계곡으로달려갈때“나피부관리해야돼”라며장애가있는친구곁에남는한아이와그연기를이해하고적당한말로친구를보내주는또다른아이가연출하는한편의무대.저자는이와같은‘존엄을구성하는퍼포먼스’를통해홀로고통을감내하던개인이타인과의만남을통해존엄한인간으로일어설수있는가능성을제시한다.

내친구가“피부관리해야돼”라고말할때,나는그가나를존중하기에거짓말을하고있음을알고그에게맞장구를쳐준다.나의맞장구에그는내가자신을존중함을알고,더더욱나를존중한다.그가나를존중하는모습에서나역시스스로를존중한다.결국나는그가실제로는가고싶어했던계곡으로그를마음편히보내주고,그는나의자존감을지켜주며만화책을건네고떠난다.우리는서로가욕망과자존심을가진하나의인격체라는점을깊이인정한상태에서연기를했고,이런퍼포먼스는우리의존재를더욱밀도있게만들어준다.(중략)
인간의존엄성이가장극명하게빛나는순간은서로가서로의연기를이해하고,상호작용하면서서로를존엄한존재로대우하는때이다.품격이상대방을적절하게접대하는연기에의해구성된다면,존엄은상대를환대하고그환대를다시환대하는상호작용속에서형성된다.우리가본래존엄한존재이기때문에그렇게서로를대우한다기보다는그렇게서로를대우할때비로소존엄이‘구성된다’고말할수있다._69~71쪽

부모,형제자매,친구,연인과의상호작용속에서자신이존엄한인간임을확인한소수자들은이제세상으로나아간다.변호사이자국가인권위원회장애차별조사관으로일했던저자는법의문지기로서차별당하는이들을만나온경험을바탕으로,법과제도가보호와치료,복지라는이름으로인간존엄의가장기본적전제인개개인의고유한서사를인정하지않는다고지적한다.

이들의복잡하고고유한삶의이야기,배경,몸의경험이무엇이든오로지법은(효과적이고강제적이지않은)서비스를받고싶다면정신질환자로스스로를인정하라고요구한다.법의보호와지원을받기위해서는바로그보호가필요한이유인‘속성’또는‘배경’안으로한사람의인격을온전히구겨넣으라는,즉지체장애와발달장애그자체로만존재를쪼그라트리라는요청이다.(중략)
헌법은개인이고유한저자성을갖기때문에존엄하고,그존엄성을보장하기위해자유권,평등권,인간다운생활을할권리등이필요하다고명시하고있지만,정작그권리보호의문안으로들어가기위해서는개개인이존엄의핵심인저자성을침탈당해야하는셈이다._189쪽

나아가저자는그러한고유성,자기삶의이야기를스스로써내려가는저자성authorship을보장받기위해‘이동권’과같은새로운권리를발명해나간장애인들,소수자들의오랜투쟁의역사를서술한다.타인과의상호작용을통해자신의존엄을확인하고,그것을법과제도에진입시키려노력해온소수자들은이제그럼에도불구하고남는아름다움의문제,‘나는법과도덕,교양,인권의식에의존하지않고도그자체로매력적인존재인가?’라는질문앞에선다.저자는‘초상화그리기’라는개념을통해한사람이자신의신체와정신을온전히지닌채써온인생의이야기를오랜시간지켜봐줄수있는시선이있다면,그런무대가모두에게주어진다면‘실격당한’존재들도아름답고매력적일수있다고말한다.

미국드라마〈왕좌의게임〉에서‘티리온’역으로등장하는배우피터딘클리지는연골무형성증을가진장애인이다.(중략)7년이라는시간동안시청자들은티리온의삶전체를따라가며스냅사진같은한순간이아니라그의연기가만들어낸오랜시간을캐릭터의외모에통합한다.그는이제극전체에서누구보다매력적인캐릭터로각인되고있다.물론그런연기자체가피터딘클리지라는배우가자기삶에서구축한‘서사’가구현된결과일것이다.티리온의매력은피터딘클리지라는배우의매력과결코분리되지않는다.(중략)
이모든실천은자기를표현하는데제약이많은사람들이인간이라는‘화가’들앞에자기초상화를맡길시간과공간을마련하는일이다.이렇게그려진초상화는한사람의인생이야기와신념,성향,몸의질량과부피,비율과신체의곡선,색깔과향기,목소리를모두종합할것이다.아름다울기회의평등이있다면적어도당신과나의신체도얼마간은아름다울수있다._276~285쪽

정체성을수용한다는것:
자신을온전히받아들이지못하는이들을위하여

로스쿨1학년민법수업시간,저자는수강생가운데유일하게휠체어에앉아‘잘못된삶소송’이야기를접했다.자신의질병또한유전자검사등을통해미리진단할수있다는사실을떠올린그는부모가자신의출생이손해라며의사에게손해배상을청구하는장면을상상해보았다.성장기내내붙들고있던‘나는추하고무가치하고열등한존재가아닐까?’라는질문이‘잘못된삶’이라는개념으로수렴되는느낌이었다.이후그는자신의삶이손해나잘못은아닌지,아니라면그근거는무엇인지,자신처럼차이와결핍을가진존재가그것을정체성으로받아들이기위해서는어떤인식과태도가필요한지를스스로납득하기위해분투하는삶을살았다.그과정에서모은법적,사회적,철학적,경험적근거들을엮은것이바로이책이다.
2001년미국에서한청각장애인레즈비언커플이5대째청각장애를가지고태어난남성에게정자를기증받아청각장애를가진아들고뱅을낳았다.아이에게고의로장애를물려준이들의선택은엄청난윤리적논쟁을일으켰다.저자는묻는다.나에게골형성부전증은,그리고고뱅에게청각장애는손해일까?골형성부전증이없는채로태어난아이는김원영이아닐테고,부모가청각장애를고의로선택하지않았다면고뱅은존재할수없었을텐데,세상에태어난것이태어나지않은것보다손해란말인가?그는장애든,추한외모든,다른성정체성이든내몸에완전히부착되어내존재의일부가된조건은결코손해나잘못이될수없으며,그렇다면우리는그것을하나의정체성으로받아들일수밖에없다고말한다.
한사람이‘잘못’이나‘실격’이라는사회적낙인에맞서자신의정체성을온전히수용한다는것은어떤의미일까?저자는특수학교에서다양한휠체어사용기술을연마하고,휠체어의색깔과디자인까지신경쓰는선배들과어울리며‘정체성을공유한다’는느낌을경험했다.나의장애를치료하거나나를‘정상’에가깝게만들어주려는부모세대와는결코나눌수없는‘수평적정체성horizontalidentity’을공유하며,자신을비정상이나결여된존재가아니라개별성을지닌존재로인식할수있었다.고뱅의부모는청각장애인으로서수화언어를사용하며형성해온자신들의문화,삶의양식을온전한정체성으로받아들였고,그것을아이와공유하려했다.장애를물려준것이아니라하나의정체성,하나의세계를전하고자했던것이다.즉정체성을수용한다는것은그러한속성을지닌채살아온사람들이삶의여러도전에맞서써온이야기,공통의경험을내자아의중대한부분으로삼겠다는의지이자내삶의전체적인기획을그에맞추겠다는윤리적인결단이다.

“샘이나줄리아나같은장애아는애초에부모에게선물이될운명으로태어나지않아요.그럼에도그아이들이우리에게선물인이유는우리가그들을선택했기때문이죠.”(중략)
루스가도저히버틸수가없어서,아무근거도없지만그아이가신의선물이라믿고있다고가정해보라.그런데어느날알고보니아이의장애는치료가가능했고,실제로약물치료를받아장애가사라졌다.(중략)이제루스는자기아이와같은장애를가진아이들에게관심을보이거나그런장애가선물일수도있다고생각하는것을포기할지도모른다.더이상자기운명을감당하기위한‘전략적’믿음이필요하지않기때문이다.하지만루스가장애그자체를수용했다면,루스의실천적선택은자신의아이가장애를치료받은이후에도달라지지않을것이다.루스가장애를수용한것은단순한전략적믿음이아니라자기인생의근본적인전제(장애가있는모든아이의삶은중요하고,존중받아야하며,어떤면에서는분명선물일수있다)를변경하는실천적선택이었기때문이다._140~143쪽


저항과투쟁의한가운데선이들에게
“우리는스스로를충분히돌보고아껴왔는가”

이책에는걷지못하는몸,장애인이라는정체성을온전히수용하기위해읽고,쓰고,싸워온저자의사유와경험이짙게녹아있다.오랜시간자신을받아들이기위해분투한저자는이제편안해졌을까,더이상흔들리지않을까?그는또한번어려운질문을던진다.정체성을수용하고,자기권리를당당하게주장하는강렬한투사가된당신은스스로를사랑하는데도성공했는가?자신을충분히돌보고아껴왔는가?그는인정받기위해,모욕당하지않기위해강하고단단해질수밖에없는소수자들이결국이모든일에실패하더라도자신을아끼고사랑하는일만큼은놓지않기를바란다.그의최종변론은우리에게실격을선고한이들에게로향하지않는다.그의마지막말에는우리가자신의어떤부분을끝끝내받아들이지못한다해도그런자신을보듬고사랑할수있기를진심으로바라는마음이담겨있다.

괴물이될필요는없다.당신의자녀나형제에게장애가있고당신이그를수용하기어려워하더라도,그들은어머니,아버지,누나,동생인당신을사랑할것이다.당신이장애를수용하고역경을돌파하는당당한삶을보여주지못하더라도당신의부모,형제,연인,친구,이웃은여전히당신을사랑할좋은이유를가질것이다.우리는서로의삶이존중받을만하고아름다울수있음을입증하기위해노력해야한다.하지만그러한투쟁속에서어느순간강인한투사의모습이아니라면결코스스로를사랑하지못하는외로운자신을발견할지도모른다.그러지않아도좋다.장애를,예쁘지않은얼굴을,가난을,차별받는인종,성별,성적지향을지닌채살아가면서도모든것을당당히부정하고,자신의‘결핍’을실천적으로수용하고,법앞에서권리를발명하는인간으로설수있는사람이과연얼마나될까?그렇게서야만우리가존엄하고매력적인존재가되는것은아니다.자신을수용하고돌보려노력하지만결코완전하지는못할이‘취약함’이야말로,각자의개별적상황과다른정체성집단에속해있는우리를하나로묶어주는공통분모일것이다._310쪽


주요내용

품격을구성하는퍼포먼스VS존엄을구성하는퍼포먼스
사람은누구나타인과의관계에서일정정도연기를한다.무대위의배우처럼자신에게요구되는배역을수행하며,그런자신을통제하고조율한다.이런능력을성찰성이라고한다.성찰성이고도로발달하면관계에서노련함을갖추게된다.“아이고,가엾어라.어쩌다몸이그렇게됐니?”라는물음에“장애인할인을받기위해서죠!”라고위트있게받아치거나,장애인자녀를위한특수학교설립에동의해달라며무릎을꿇은부모들에게“쇼하지마!”라고소리치며똑같이무릎을꿇는식의노련함.이런노련함은자아를보호하지만,동시에타인과의관계나자신이처한상황에완전히몰입하지못하게하는문제를낳기도한다.뜻밖에도저자는삶의이런연극적인면에서인간존엄의근거를발견한다.우리가인권규범이나법률에기대지않고구체적인일상에서모든인간이존엄한이유를찾는다면,바로이런일상의공연들이그발견의장소가될것이라고말한다.단,권력자를위한의전이나장애인을동원하는정치행사등‘품격을구성하는퍼포먼스’가아닌‘존엄을구성하는퍼포먼스’가여기해당된다.

존엄을구성하는퍼포먼스에서는그에참여하는모든행위자가실재(진실)를공유한다.그공유하는실재위에서서로가서로의연기에적극적으로반응하면서대등하게퍼포먼스에참여한다.아이를갖고싶어하지만아이가없는대학동기앞에서육아가화제가되었을때신속하고자연스럽게화제를돌리는친구,시한부선고를받은가족앞에서평소처럼대화를나누며저녁식사를하는가족들,카페옆자리에서시끄럽게소음을내는자폐아동에게무관심하다는듯아무렇지않게책으로눈길을돌리는대학생.이들은모두서로의연기가품고있는의도를공유한다.(중략)
서로를인격체로존중하는상호작용은실재를공유하면서그존중을강화한다.모르는척해주는익명의대학생이고마워서그를존중하며,자신을존중하려애쓰는자폐아부모의노력을아는대학생은더더욱무심한척책으로눈길을돌린다.타인이나의반응에다시반응하는존재라는사실을인정할때우리는타인을존중하게되며,나를존중하는타인을통해나자신을다시존중하게된다._66~67쪽

“우리는사랑과정의를부정한다”
_모든연극을거두고,무력한자신을선언하는힘
저자는‘품격을위한퍼포먼스’에동원되지않기위해노련해지려애쓰던자신을고백한다.내다리는조금이라도길어보이는가?나는빈곤하고우울한장애인같은가?단한순간도성찰의시각을거두기어려웠던그는어느날이모든연극적인노력을부정하는문장들을만났다.1960년대일본에서등장한뇌성마비장애인들의단체‘푸른잔디회’의행동강령이었다.

1.우리는우리가뇌성마비자라는것을자각한다.
2.우리는강렬한자기주장을행한다.
3.우리는사랑과정의를부정한다.
4.우리는문제해결의길을선택하지않는다.
5.우리는비장애인문명을부정한다._78쪽

문제를해결하겠다는의지,자신의가능성과실천능력까지부정하는이순수한부정의문장들앞에서저자는품격주의자들의연극에대응하기위해또다른연극을펼쳤던자신을돌아본다.자신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기위해서는한번은이렇게모든것을놓아버리고,무력한자신을선언해야하지않을까?

능청스럽고,유머러스하고,지적이고,신체적결함을보완하는정신적매력으로가득차있어야한다는압박.사무실의생수통을갈지못하는대신인사성바르고동료들의생일이라도잘챙겨주는사람이되어야한다는심적부담감.이모든것을놓아버리는일이다.(중략)
역설적인타인지향적연극을극복하는힘.때로무력하고별볼일없음을공개적으로선언하는힘.아무것도할수없고가진것이없다는부정을선언하는힘.거기서우리는타인지향성을넘어선진정성의한형태를본다.(중략)
타자의시선으로나를보는것을완전히부정하고오로지자신의눈으로자신을바라보는것은결국나의몸,운명,삶,실존에대한수용을전제로한다._91~92쪽

“그럼너도다리를잘라”
_〈조제,호랑이,그리고물고기들〉의조제
내아이가장애를가진채태어난다면,나는그아이를적극적으로환대할자신이있는가?저자는부모가자기아이의‘잘못된’부분까지환대하는것,우리가나자신혹은내가족이나연인,친구의‘잘못된’요소를진정으로환대하는것이야말로모든삶이존엄할수있음을확인하는마지막관문이지않을까라는질문을던진다.이전까지국가나사회가장애,질병,다른성정체성등을대하는방식은가능한한치료하고,교정하고,‘정상적으로’보이도록훈련하는것이었다.저자는자신의존재그자체이기도한이런특질들을‘어설픈정상인’이되기위해감추고바꾸려는노력을언제까지감내해야하는가라고물으며,영화〈조제,호랑이,그리고물고기들〉의조제가보여줬던태도를제안한다.

장애인인주인공조제에게남자친구츠네오를빼앗긴츠네오의전애인은조제를찾아와뺨을때린후말한다.
“나도차라리너처럼다리가없으면좋겠네.”
조제도상대의뺨을때린후무표정한얼굴로답한다.
“그럼너도다리를잘라.”(중략)
할머니는츠네오와의관계때문에괴로워하는조제에게“남들하는대로살려고하면안된다”고조언한다.할머니는조제의유일한보호자이자조제를가장사랑하는사람이지만,‘수직적’관계에서는그정도의조언이최선인것이다.우리를사랑하는할머니와어머니,우리를보호하는국가와공동체,우리를구원하려는종교지도자들과성서의가르침은결코“너의욕망대로살아라,만약남들이그것을문제삼는다면‘그럼너도다리를잘라’라고말하라”하고가르치지못한다.우리는수평적정체성을가진다른존재들과연결될때에만정상성의결여로서의내가아니라그자체로하나의‘존재’인자신을인식하는정신의스타일을구축할수있다._123~128쪽

법은개인의인생이야기를삭제한다
「정신건강복지법」에따르면가족두사람이입원을신청하고,의사가그필요성을진단하면누구든정신병원에강제입원될수있다.그렇게‘합법적으로’입원한이상그곳에서나갈수있는거의유일한방법은자신이정신질환자임을인정하고,자발적으로치료를받겠다고선언하는것이다.법은개인의이야기를들어주지않는다.나는정신질환자가아니라고아무리항변을해도사회복지사,판사,의사,경찰등법의문지기들은매뉴얼을따를뿐그들의인생이야기에귀기울이지않는다.아름답게꾸미고외출하고싶어활동지원서비스를신청하러온발달장애인에게심사관은“라면을끓일줄아나요?”같은질문을던진다.자신의신체적,정신적특성과반응하며수십년을살아온한사람의삶은철저하게삭제된다.저자는개인의고유성을무시하는법체계를다소나마개선할방법으로법학자켄지요시노가제안한‘논리적근거를강제하는대화reason-forcingconversation’를소개한다.

활동지원서비스를받고싶은장애인이의학적으로보았을때팔과다리를어느정도사용할수있어밥을먹거나용변을처리하는일정도는가능하다고하자.그렇지만그는“머리에제품을바르고넥타이에짙은회색슈트를입고외출하고싶어서”활동지원인을신청했다.그의손과발은넥타이를맬정도의작업을하기에는장애가심하다.법은의사와국민연금공단의입을빌려다음과같이물을것이다.
“아니,왜꼭그렇게넥타이에슈트를고집하십니까?그정도에활동지원인을제공하기는어렵지요.”
하지만‘논리적근거를강제하는대화’의원칙에따라우리는질문을바꿔야한다.
“왜활동지원인보조를받아넥타이를매고슈트를입겠다는게국민연금공단에게그렇게문제가됩니까?”_201쪽

장애인의오줌권,이동권은복지의문제인가,자유의문제인가
장애인학생이학교에장애인화장실이없어제대로공부할수없다면,지하철역에엘리베이터가설치되어있지않아목적지로이동할수없다면이는그의어떤권리가침해된것인가.과거에는국가나사회는물론장애인당사자도이를사회복지차원의문제로여겼다.국가권력이그가화장실에가지못하도록,혹은지하철을타지못하도록그의신체를붙잡고있거나위협하는것은아니었기때문이다.그러나민주화가진전되고,「장애인복지법」이만들어지면서장애인들은‘이동’이복지나배려의문제가아니라나를집안에가두고,내몸을계단에묶어놓는,즉신체의자유를침해하는일이라느끼기시작했다.이러한인식전환을통해장애인들은‘이동권’이라는새로운권리를발명해냈고,그것을법적,사회적으로인정받기위해헌법소송을제기하고지하철선로에휠체어를묶어전동차를세우는등치열하게투쟁했다.

장애인이자신의이동할권리를발명하고,이를법제도에진입시키기위해서는우선스스로이동해서거리로나와야했던것이다.이는권리가법제도안에서국가권력의힘을통해인정되어야만실질적의미를갖는것은아님을보여준다.권리를만들어가는과정자체,자신의신체나정신혹은처한사회적상황의문제를권리의언어로표현하고집단적으로공유하고법제도안으로진입시켜실질적인힘을갖도록정치적,도덕적,헌법적의미를부여하는활동자체가‘잘못된삶’들의존엄성이사회적으로승인되는과정이다._231쪽

“절단된당신의몸에끌려요”_디보티즘
법과제도,도덕과윤리가차별과불편,모욕없는사회를구축한다해도매력자원이부족한이들이소외되는것을완벽하게막아줄수는없다.늙고병든몸,걷지못하는다리,남다른외모를가진사람들은여전히깊은우정이나성적인결합등사회의비공식적인네트워크에진입하는데어려움을겪는다.역시나그런고민에서자유롭지못했던저자는우연히장애를가진사람들에게성적으로sexually끌리는이들,즉‘디보티devotee’에대해알게되었다.이들중다수는장애인의절단된신체에매력을느낀다.많은사람들이이를성적도착이나병리적수준의페티시즘으로이해하지만,어떤선입견이나모욕적인시선없이장애인의몸자체를욕망하는것은장애인에게일방적으로‘숭고미’를부여하는것보다차라리낫지않은가?

구세군에거금을쾌척하면서도막상그신체와5분도같이앉아밥을먹지못하고,그신체가버스에올라타는잠깐의시간을기다려주지못하고,그신체들이많이다니는학교를짓는일에반대한다면그자체로혐오이며다른해명이필요하지않다.근육병과골형성부전증에따라붙는거창하고낭만적인운명‘서사시’에매혹되어종교적감수성을느낀다고한들이는그존재에대한사랑과는관련이없다.몸을욕망해야한다.종교나도덕,정치가뭐라고하든너의‘신체’와함께하고싶다는선언이야말로타인을향한욕망이고,곧사랑이다._267쪽

그러나디보티즘은명백한한계를갖는다.신체에대한욕망이그신체를지닌채살아가는개별자에대한욕망,사랑으로나아가지않기때문이다.디보티들은장애인이직면한현실의어려움을성적인욕망의문제로만환원하고차별이나빈곤,이동의문제등을상상하지못한다.그저장애인들이‘디보티즘’을더잘알게되면모든문제가해결된다며,그런결핍있는타자를사랑하는자신에게도취될뿐이다.

혼자절망적으로파내려가던동굴이다른동굴과만났을때
저자는아무런사회적연결망도없이외롭게장애아를키우던1960년대일본의오에겐자부로와1980년대자신의부모를예로들며,이제는그런개인적인체험들이오랜시간을견뎌온소수자운동과인터넷을기반으로한네트워크덕분에서로조금씩만나게되었다고말한다.소수자들이단1도라도방향을튼다면,다른동굴을만나하나의세계를형성할수있는시대가되었다는것이다.

우리는누구나홀로아무런의미망과도연결되지못하는,도움의손길조차없어보이는수직의땅굴을파고들어가는듯한절망의순간을겪을때가있다.하지만수직으로만파고내려가는줄알았던굴속에서어떤사람은조금방향을트는데성공한다.그가각도를틀어수직방향을벗어나면이제각자의동굴은평행하기를멈추고,마침내두사람이상이특정지점에서만나는일이가능해진다.그렇게사람들이만나대화를나누고힘을합칠때(지하에서나마)비로소공동체가건설되는것이다.(중략)
수직으로만파내려가던동굴은이제힘을합쳐수평으로향한다.곧수직으로내려오던또다른동굴들과도만난다.격자무늬의동굴들이이제나름의구조를이루고세계를형성한다.한순간여러곳에난격자구멍들로햇볕이들기시작했다._300~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