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쟁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와 세계의 길 사이에서)

왜 전쟁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와 세계의 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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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일본이 전쟁의 길로 나아가며 경험한 세 번의 교섭을 돌아보며 선택의 지혜를 배우다!
『왜 전쟁까지』는 일본의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2015년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된 책으로, 전전戰前 일본이 직면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풀어내고, 학생들은 질문을 통해 강단의 연구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역사의 가정을 확장시킨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에서 청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까지 이어진 일본의 근현대 50년을 탁월한 시각으로 분석해 관념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역사를 구축했다고 평가받은 가토 요코는 이번 책에서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기까지 10년간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검토하고 결국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를 면밀하게 추적한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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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가토요코

1960년일본사이타마현에서태어났다.도쿄대학대학원에서「징병제와근대일본徵兵制と近代日本」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야마나시대학조교수,스탠퍼드대학후버연구소방문연구원등을거쳐현재도쿄대학문학부교수로재직중이다.
전공은일본근현대사이다.대학원에서보수적역사학자인이토다카시伊藤隆의지도를받았으나지도교수와는정반대로아베신조총리의역사인식,집단자위권등에반대하는진보적연구활동을하고있다.
2010년『그럼에도일본은전쟁을선택했다それでも,日本人は‘戰爭’を選んだ』로고바야시히데오상을수상했다.
주요저서로『1930년대의모색摸索する1930年代』『징병제와근대일본徵兵制と近代日本』『전쟁의논리戰爭の論理』『만주사변에서중일전쟁으로滿州事變から日中戰爭へ』『NHK거슬러올라가는일본사2쇼와-멈출수없었던전쟁NHKさかのぼり日本史2昭和-とめられなかった戰爭』『쇼와천황과전쟁의세기昭和天皇と戰爭の世紀』등이있다.

목차

머리말5

1장.국가가역사를쓸때,역사가태어날때
역사의렌즈로세상보기19
사료와데이터대조하기24
역사를쓸때54
역사의시작은63

2장.선택을할때무슨일이일어날까-리튼보고서
세계의길81
선택의길은어떻게만들어지는가123
위정자는무슨생각을했을까150

3장.군사동맹이란무엇인가-20일만에맺어진삼국군사동맹
군사동맹이란173
왜독일과일본은시간을재촉했을까192
버스를놓치게될까봐동맹을맺은게아니다227

4장.일본이전쟁에진이유는무엇일까-미일교섭의함의
전쟁전야,적국이마주앉다265
사료에남은흔적290
일본은왜미국의제재를예상하지못했나311
국민은이길만가도록배워왔다338
절망때문에전쟁을시작한것은아니다355

5장.패전과헌법
강의를마치며373

맺음말404
감사의말409
옮긴이의말411
주417

출판사 서평

만약그때일본이다른선택을했다면?
역사에‘만약’은없지만,이가정과다른선택지를살펴보는것은미래의길을묻는일이다
1932년국제연맹조사단,1940년삼국동맹,1941년미일교섭
태평양전쟁으로나아가기까지일본에주어진세번의기회와결정

그들은무엇을보고있었고,우리는무엇을보게될것인가
E.H.카가그유명한『역사란무엇인가』에서“역사란과거와현재의끊임없는대화다”라는교훈을남긴이래로,많은이들에게역사란응당그래야하는것이되었다.대학에입학하면전공을불문하고모든신입생은저유명한책을읽으라고강요받아딱저한문장만기억에남을독서를시작하게된다.그런데또한많은이들에게‘역사’란1884년갑신정변,1894년동학농민운동,1904년러일전쟁,1910년한일병합등앞서일어난사건의순서를외우는일이다.학창시절,연도뿐아니라날짜까지외우라는요구를받고역사에흥미를잃은이들을도처에서찾을수있다.
이렇게우리에게‘역사’란교훈과재미(있는혹은없는)사이에갇힌채덕후들의놀이터가되거나정치가들의싸움터가되는것으로그역할이쪼그라들었다.그런데일본도쿄대학의가토요코교수는조금다른이야기를들려준다.역사란기울어진운동장을바로세우기위해필요한것이라고,이미정해진과거에‘만약’을가정하고실제결과와는다른선택지를살핌으로써앞으로의변화를예측하기위한것이라고말이다.

게임의규칙이불공정하거나심판이불공평하다는사실을알아챘을때우리는어떻게해야할까요.개인이국가와맺은사회계약이깨졌다고절망하지말고,게임의규칙을공정하게바꾸거나심판을공평한사람으로바꿔야합니다.그방법을역사에서배우는일,그일이지금우리에게절실합니다.…때로는사소한우연이세상을크게바꾸기도합니다.지금우리는그런거대한변화앞에서있습니다.일본이전쟁의길로나아가며경험한세번의교섭을돌아보며‘선택의지혜’를배울수있기를바랍니다._8~11쪽

낱낱의장면을들추어라
전작『그럼에도일본은전쟁을선택했다』에서청일전쟁에서태평양전쟁까지이어진일본의근현대50년을탁월한시각으로분석해“관념적이지않고현실적인역사를구축했다”고평가받은그가,이번에는일본이진주만을기습공격하기까지10년간어떤상황에서무엇을검토하고결국어떤선택을내렸는지를면밀하게추적한다.『왜전쟁까지』는저자가일본의중고교생들을대상으로2015년12월부터2016년5월까지여섯차례에걸쳐진행한강의를바탕으로집필되었다.강의에서가토요코교수는전전戰前일본이직면했던상황을생생하게풀어내고,학생들은질문을통해강단의연구자는생각하지못했던방향으로‘역사의가정’을확장시킨다.책안에서학생과선생이서로의나침반이되어역사의장면장면을재현해나가는모습을지켜보는재미가대단하다.그문답의리듬을따라가며일본과세계가나누었던대화를,그들이검토했던계획을,그리고최종결정의순간을들추어보는사이에군사대국화를추진하는지금일본의모습이우리앞에모습을드러낸다.

만주사변(1931)과리튼조사단(1932)

“일본에게만주가중요하다는것은안다.하지만세계평화의길로돌아올수는없는가?”
1931 9.21 중국이만주사변을일으킨일본을국제연맹에제소
1932 1.28 상하이사변
2.29 리튼조사단방일.9월까지중국,만주시찰후10월1일보고서발표
3.1 만주국건국
9.15 일본,만주국을승인(일만의정서조인)
11.21 국제연맹이사회,리튼보고서를바탕으로만주사변심의개시
1933 3.12 일본,국제연맹탈퇴

1941년일본의진주만기습은전세계를충격에빠트렸다.미국은역사상처음이자유일하게본토를공격받았고,유럽에는아시아-태평양일대에서도전쟁을견뎌내야하는부담이더해졌다.이사건은모두가알고있듯이1945년8월히로시마와나가사키에떨어진두발의원자폭탄과일본의무조건항복으로막을내렸다.그런데가토요코는이보다앞서일본제국이전쟁이아닌평화를선택할수있었던세번의기회에주목한다.그첫째가만주사변-리튼조사단-일본의국제연맹탈퇴로이어지는순간이다.
중국장제스정권의제소로만주사변을조사하게된국제연맹조사단(단장인빅터불워리튼의이름을따‘리튼조사단’이라칭한다)은만주에서벌어진일본관동군의군사행위는자위권의발동이아니지만그렇다고타국에대한침략행위도아니라는중립적인결론을내린후,중일양국은교섭을통해만주의자치를보장하는신질서를구축하라고제안한다.만주에얽힌중국,일본,러시아의갈등을전쟁없이봉합하고세계의평화를유지하기위한방책이었다.
리튼조사단은만주에관동군을주둔시키는것보다만주를자유로운시장으로개방하고그안에서경제적이익을구하는것이일본과세계에유익하고안전하다는논리로일본을설득했다.그러나이소식은일본내부에‘보고서는중국의이익만을우선한다’라고왜곡된채전달되었고,그결과일본은괴뢰정부인만주국건국과국제연맹탈퇴를선택하게된다.

2차세계대전발발(1939)과삼국군사동맹(1940)

“일본은정말로독일이세계를제압할것이라고믿는가?”
1939 9.1 독일,폴란드침공.2차세계대전발발
1940 6.14 독일,파리에무혈입성
7.12 일본,‘일?독?이제휴강화에관한육군?해군?외무3성실무회의’개최
9.7 독일,영국본토에폭격개시.독일특사스타머도쿄도착
9.27 베를린에서삼국군사동맹조인
11.5 루스벨트미국대통령3선당선

일본에게주어진두번째기회는일본이추축동맹에가담을모색하고있을때제시되었다.삼국군사동맹은유럽에서시작된2차세계대전과1937년7월에극동에서시작된중일전쟁에미국이개입하지못하도록견제하기위해일본,독일,이탈리아가체결한조약으로2차세계대전이시작되고1년이지난1940년9월27일베를린에서조인되었다.일반적으로나치독일이유럽의전쟁에미국이본격적으로참전하는것을저지하고신속하게영국을제압하기위해극동의일본을포섭했다고알려져있다.그러나저자는동맹의이면에는독일의승리를예상한일본이전후구독일의식민지였던남양군도를비롯한‘대동아공영권’에대한지배권을확보하기위해내린결정이있다고설명한다.그리고이계획은천황과내무각부의결정권자들이아니라,육군성?해군성?외무성의과장급실무자들에의해입안되었음을밝힌다.당시일본내부에서‘이동맹을맺으면미?영등의세계와적대관계가되고결국전쟁을피할수없게된다.중일전쟁이장기화되고있는현시점에서일본은확전은버틸수없다’라는반론이제기되었지만,눈앞에서벌어진독일의승세는다시한번일본을오판으로이끌었다.

미일교섭과진주만공습(1941)

“미국은미일양국의상호존경에기반한신뢰와협력의신시대개척을희망한다”
1941 3.8 노무라주미대사,코델헐미국국무장관회담
4.16 미일,미일양해안을바탕으로교섭개시
7.28 일본군,남부프랑스령인도차이나로진주
8.1 미국,일본에석유전면금수조치실시
8.9 영국처칠과미국루스벨트,대서양회담개최
11.26 미국,일본에‘헐노트’(미일교섭최종제안)제시
12.8 일본,미국에협상결렬을통고하는동시에진주만공습

1941년12월8일새벽에기습적으로시작된일본의진주만공습에관해70년이더지난오늘날까지도수많은연구가진행되고있다.그중에는미국국내의반전여론을꺾기위해루스벨트와미군이일본군의공격을유도했다는설명도존재한다.가토요코는일본군제로센전투기가진주만을덮치기전까지약9개월간진행된미일교섭의과정을차근차근뒤따라가며긴박했던순간을재구성한다.
1941년3월8일교섭이시작된이래로양국은수차례대사를파견하고회담을열고외교문서를교환하며전쟁으로치닫던상황을되돌리려했다.유럽에서독일을상대하던영국전시내각의처칠총리또한일본의마쓰오카요스케외무상에게친서를보내독일과의동맹을파기하고영미와제휴하자고권고하기도했다.저자는놀랍게도당시미일교섭이양국의정상이하와이호놀룰루에서만나는것으로까지발전할수도있었다고전한다.
그러나교섭이진행되고있던그해7월일본군이남부프랑스령인도차이나지역을기습점령하자미국은일본에대한석유수출을전면금지했고,그사이에서양국의주전파와주화파의내분이심화된다.마지막까지평화의끈을놓지않았던루스벨트는12월6일오후9시에쇼와천황에게타협을제안하는전보를보냈지만,불과30분뒤워싱턴에일본의선전포고가도착한다.

역사의‘만약’을살펴봐야하는이유
18세기의철학자루소는전쟁을‘상대국사회의근간을이루는기본질서,즉헌법원리를파헤쳐헌법을바꿔놓는행위’로정의했다.태평양전쟁에서패배한일본은그렇게새로만들어진헌법의세계에서전후70년을보내며경제대국으로성장했다.

일본이라는국가와사회가‘세계의길’이내거는이념에패배한구체적형태가바로태평양전쟁입니다.…일본은전쟁에서패배한결과헌법이바뀌었습니다.평화헌법이라고말하는데,교전권(국가가전쟁을수행하는권리)까지부인하는데에회의적인사람들은흔히연합국최고사령부의군인이겨우8일만에영문초안을정리해만든헌법을70년동안이나애지중지껴안고있어도괜찮은가라고반문합니다.하지만누가만들었는지는그다지중요하지않습니다.점령군으로들어온국가가미국이아니었어도,소련이었어도영국이었어도중국이었어도그들역시헌법을바꿔썼을것입니다._388쪽

2015년8월15일,아키히토천황은전국전몰자추모식에서“과거의전쟁을깊이반성함과동시에앞으로전쟁의참화가두번다시반복되지않기를간절히바란다”라고말했다.불과한달후인9월19일,일본참의원이안보법제개정안을통과시켰다.이로써일본자위대는‘자위’의개념을넘어해외에서군사활동을벌일수있는군대로성격이바뀌었다.아베내각은여기에서멈추지않고‘군대를보유하지않는다’라고적힌이른바‘평화헌법’에자위대의존재를새겨넣기위한작업을꾸준히추진하고있다.
이런상황을마주하며,이책은일본과세계에질문을던진다.지난세기의오판을벌써잊어버렸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