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사춘기 - 사계절 동시집 19 (양장)

바람의 사춘기 - 사계절 동시집 19 (양장)

$11.50
Description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작
저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어린이가 ‘문을 닫는’ 때가 찾아온다. 방문을 닫기도 하고, 말문을 닫는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어른들은 으레 사춘기라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 쉬운 단정은 자칫 어린이라는 존재, 어린이의 마음을 단순하고 납작하게 정의한다. 하지만 어린이에게 닫을 문이 생겼다는 것은 자기만의 세계가 생겼다는 의미다. 닫아건 문의 안쪽, 언뜻 고요해 보이는 그 마음속에는 수많은 말과 감정들이 가득하다. 『바람의 사춘기』는 한국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수상 작가인 박혜선 시인이 오랜만에 내놓는 동시집이다. 박혜선 시인은 십여 년간 전국의 어린이들이 보내온 동시를 읽고, 함께 읽을 작품을 골라 어린이신문에 싣는 일을 해 왔다. 그런 그가 보여 주는 ‘사춘기’ 언저리의 시적 화자는 종일 마음에 바람이 부는 듯한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위로하기도 한다. 또한 어른들이 구획한 일상 속에서도 오롯이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사는 존재들을 생각한다.

『바람의 사춘기』에는 수년간 어린이들을 바라보고 이야기 나누며 체득한 이해와 존중의 태도,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고르고 고른 시어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같은 경험을 가진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시에 공감하고, 그 시를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공감’이 얼마나 큰 위로와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가 나누는 말과 말 사이에는 수많은 감정이 있다. 어린이들의 말에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은 말과 말 사이에 수많은 생각과 마음을 넣어 본다. 기뻐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동화작가이자 동시인인 박혜선의 새 동시집은 행간을 짐작하고 예민해지는 사춘기 어린이를 시적 화자로 한 작품들이다. 온종일 바람을 맞는 듯한 시기인 ‘사춘기’ 독자들은 시에 담긴 심상에 공감하며 위로받고, 시의 행간을 음미하는 ‘시 읽는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

박혜선

1969년경북상주에서태어났다.1992년새벗문학상에동시「감자꽃」,2003년엔푸른문학상에단편동화「그림자가사는집」이당선되어등단했으며,2003년제2회푸른문학상에단편동화「그림자가사는집」이당선되었다.고려대학교대학원에서문예창작을공부했으며,지은책으로는동시집『개구리동네게시판』,『텔레비전은무죄』,『위풍당당박한별』,『백수삼촌을부탁해요』,『쓰레기통잠들다』,『...

목차

1부바람의사춘기
습관|훔치고싶다|언니에게화를내는방법|전문가|야!|집에만있으니|나에게사과하기|관계자외출입금지|지구를위해|저자리|비밀저금통|묻기대장|바람의사춘기|탈출구가필요해|책상서랍|나는세탁소에간다

2부태양이진다
신발장|첫눈내린다|그림자|1교시수업이시작된다|첫여행|창원철물|완전유명한동네되었다|함께|태양이진다|자동문약올리기|땅속지도|의자|꽃피는고물상|학원광고|나쁜버릇|아이들

3부돼지의궁금증
세상의쓴맛|전깃줄|돼지의궁금증|기쁘게나아가시길|식물|쌀눈|이유|지지않는꽃|거위는죽어서|진화|귀의문|분천분교|손님|표지판|햇빛농사|어떤무덤|집으로돌아가는길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종일마음에바람이부는듯한어린이들에게보내는위로

아무것도하기싫다/사과나무가지에누워자고싶다
“오늘은바람이잠잠하네.”/“그러게바람한점없네.”
과수원나온아저씨아줌마가하는말까지/잔소리같아짜증난다
벌떡일어나사과나무한번흔들어줄까하다가관뒀다/그냥다귀찮다
-「바람의사춘기」전문

표제작「바람의사춘기」는지금사춘기한가운데있는독자도,이미그시기를지나온독자도고개를절로끄덕일만한시다.사춘기의마음이그렇다.아무것도하고싶지않으면서동시에무슨일이든저지르고싶다.왜그러느냐고묻는다면딱히이유는없다.이시집에담긴‘찰떡’같은비유는독자를위로한다.어린이당사자만이아니라‘남의집닫힌문엔전문가면서’어린이가닫은‘방문앞에서쩔쩔매(「전문가」)’보았던어른도마찬가지다.그이유는‘사춘기’라는통과의례를가볍게여기지않는시인의시선에있다.
시인은저도모르게방문을세게닫은어린이의마음을‘바람에흔들리던/나무의습관//문이되어서도/버리지못(「습관」)’한문의이야기로감춰주고,누구도몰랐으면하는비밀(「비밀저금통」)과불쑥마음속에자리를차지한존재에대한설렘(「관계자외출입금지」)이공존하는것도당연하다고말한다.
누구나한번쯤겪는시기라고해서모두의마음에같은바람이불리없다.시인은경험자라는이유로‘우위’에서서정의하거나쉬운정답을제시하는것이아니라,겸허하고애정어린시선으로바라본다.가르치지않고소통하려는마음,불안정한시기의어린이들을다독이는마음이모든행간에담겨있다.

어린이마음에가득쌓인말들,시가되다
소리내어말하지않는다고해서하고싶은말이없는것은아니다.누구에게도하기싫은말,차마하지못한말,마음속에간직하고싶은말은저마다그무게도색깔도다르다.『바람의사춘기』는어린이마음속에감춰진말들의다양한결을섬세하게살핀다.

친구들이몰아세울때아무말못해서미안해/계속툭툭치는데도그냥참아서미안해/학교혼자가고혼자오게해서정말미안해/무슨걱정있냐고묻는엄마앞에서/아니라고,아무것도아니라고거짓말해서/정말정말미안해
-「나에게사과하기」중에서

「나에게사과하기」의화자는차마하지못한말들을되짚어본다.그런데타인을원망하거나자신을탓하기보다,나에게사과하고다독이는것이먼저다.또다른화자는‘구겨진마음’을다리고,‘얼룩덜룩묻은눈흘김’을닦아내고,‘달라붙은말먼지’를털어내기위해‘나의세탁소’인노래방을찾는다.(「나는세탁소에간다」)‘고작한살더많으면서/꼬박꼬박나를무시하는언니’의재작년사진을꺼내‘나보다어린게어디서까불어.’따끔하게혼내고(「언니에게화를내는방법」),일상이답답할때는비상구표지판속초록사람에게‘나도같이데려가주세요’(「탈출구가필요해」)하고손내밀어본다.
시속아이들은외로워하고슬퍼하며자신감을잃기도하지만,스스로를탓하지않고억눌린마음을해소할자기만의방법을찾는다.그방법에공감하는독자도,그럴수없는독자도있겠지만그모든과정이‘왜시를읽고쓰는가’에대한시인의대답일것이다.『바람의사춘기』를통해어린이독자들은시속아이의마음과나의마음을가만히들여다본다.그마음을깨끗이비워내고,다시채울나만의방법을찾을수있다.

어린이의눈으로보아야만보이는것들에대하여
『바람의사춘기』에는십여년간어린이들이직접쓴시를읽고,동시교실을운영하며어린이와시로소통해온박혜선시인이‘어린이의시선’으로본세상이담겨있다.그어린이는주변인으로물러서거나대상화되지않은,세상의당당한구성원이다.어른들이구획한일상속에서도자기만의속도로걸으며있는그대로세상을보고,느끼고,기억하는존재다.

학원버스기다리며/편의점에서라면먹는다/파란조끼아저씨/내옆에서라면먹는다/창밖에눈발날리는데4시45분을달리는시계보며라면을먹는다//“예,그럼요.지금몇신데아직점심안먹었을까봐.예예.여기도조금씩날려요.엄마,저운전중이니까나중에전화할게요.”/전화를끊으며면발도끊으며/아직반이나남았는데바삐나간다//창밖,택배트럭이떠나는데/눈이내린다/나를태울수학학원버스가오는데/눈이내린다/빈그릇을치우고뛰어가는데/첫눈이펑펑내린다
-「첫눈내린다」전문

「첫눈내린다」는출간전사계절출판사SNS를통해공개되어독자들의큰관심과공감을얻었다.어린이는사회가함께고민해야할문제에서동떨어져있지않으며,오히려어린이의시선이야말로우리가당연하게여겨야할가치에가까이있다.어린이는커다란마트에밀려난동네철물점간판이내려지는순간을지켜보고(「창원철물」),자동문에밀려떠난경비아저씨의부재를실감하며(「자동문약올리기」),옷속라벨의거위털함유표시에서살아있는거위를떠올릴수있기때문이다(「거위는죽어서」).또한『바람의사춘기』는그러한어린이의시선을뉴스에서흘러나오는핵실험장폐쇄뉴스에(「완전유명한동네되었다」),질곡한역사에의해한국과일본,러시아이름으로불리고도아직고향에돌아오지못한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어떤무덤」),동시대인으로서마땅히세월호희생자들을기억하는누나의노란리본에가닿게한다.(「함께」)시인은우리가미처보지못하거나,보고도지나쳐버리기쉬운존재들을응시함으로써어린이들에게더넓게,더깊이바라보는법을알려주고있다.또한이책은동시대어린이의눈에비친세상을담백하게표현하는것만으로도,어른독자들에게우리가무엇을놓치며살아가고있는지를돌아보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