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윤덕
20년전그림책『시리동동거미동동』작업을위해제주를처음찾았다.제주의바다,돌담,자연,아이와해녀의모습을생생하게담아많은이들에게사랑받았다.제주와의인연은그이후로도계속이어져전시와강연을하기도하고,제주4·3사건을담은책『나무도장』을2016년펴냈다.2019년과2021년에는‘세계자연유산마을,그림책을품다’프로젝트를위해제주에머물며함덕초등학교선인분교어...
전쟁이각인한기억,몸으로나타나는아픈기억들그림책속인물,용맹호씨는매일아침정비소로출근합니다.온종일자동차일곱대를수리하고소금땀으로범벅이된정비복을벗고서퇴근합니다.용맹호씨는파월장병으로불리는베트남전쟁참전군인이며지금은딸도아내도기억에서만꺼내며혼자살고있습니다.1954년베트남의상황은한반도와비슷했습니다.오랜프랑스식민지배를벗어난기쁨도잠시,제네바협정(휴전협정)에따라남북으로갈라진베트남은2년뒤인1956년통일정부를구성하는총선거를앞두고있었습니다.그러나당시부패한독재로신임을얻지못한남베트남정부가질것이뻔한총선거를거부하고,공산화를우려한미국이1964년직접군사개입하면서베트남전쟁은국제전으로치달았습니다.미국의명분은반공이었으나가장가까운동맹국들조차전쟁참가를거부한상황에서,한국정부는1964년부터1973년까지네차례에걸쳐총4만7,872명(연인원32만여명)을베트남에파병하였습니다.안보를보장받고경제적실익을계산한결정이었습니다.미국외7개국이참가한전쟁에서,한국은미국다음으로가장많은군사를파병하였습니다.용맹호씨도그중한군인으로베트남에갔습니다.용맹호씨가간곳은베트남중남부빈딘성.야자수가자라고바다가보이는곳이지만,곧고엽제(독성제초제)로나무는타들어가고불길에집어삼켜질곳이기도합니다.이그림책은오늘일터에가는평범한노동자용맹호씨를꼬박꼬박그리면서,그의기억이불러낸베트남의환영을중첩하여보여줍니다.출근길횡단보도앞에서있는검정옷의베트남여인과아기,잠자리에들면꿈틀거리며떠오르는짙은정글의생명체들,이국의땅을짓누르는군화와전장을채우는총소리.현실과기억이혼재하는가운데,용맹호씨의몸은점점변해갑니다.귀가셋,가슴이셋,눈이셋,발이셋,부푼몸으로출근버스에오르는용맹호씨는오늘도살아가려출근을하고,그옆으로는죽음의환영들이어른거립니다.또다른용맹호씨를만들지않기위하여베트남전쟁은특히부당한전쟁으로평가받았습니다.오랜식민지에서벗어나독립과통일을앞둔베트남에미국이반공을명분삼아들이댄총검은깊은상처를남겼습니다.종전이후,20세기말을잠식하던냉전질서에근본적인질문이제기되었고,패권주의에대한날선비판들이들어찼습니다.미국사회에서는반전평화운동이거세졌습니다만,한국의분위기는사뭇달랐습니다.베트남전쟁으로가파르게성장한경제앞에서전쟁에대한문제제기는숨어들고,참전군인들은국가의경제를살린주역으로칭송받는분위기에서개인의고통을말할창구를잃어갔습니다.『용맹호』에서용맹호씨또한몸밖으로비어져나오는살생의흔적과극도의긴장을침묵안에가두고열심히출근을합니다.전쟁의직접적인피해자이면서돌봄을받고있지는못합니다.그런그의죄의식에서출몰하는환영은한농가의아침밥상자리이며민간인학살의현장입니다.용맹호씨는가해자이기도합니다.사려깊은마음으로,그러나기억해야하는것권윤덕작가는『용맹호』를그려야비로소『꽃할머니』가마무리된다는마음으로작업을하였습니다.『꽃할머니』에서한국이피해자의입장이라면,『용맹호』에서한국은가해자의입장에서있습니다.무고한베트남민간인과군인들의희생위에걸린베트남전쟁은한국사회의모순을여실히드러냅니다.우리나라가가해자라는불편한과거앞에서,베트남전쟁은외면받고잊혀왔습니다.1968년에처음제기된한국군에의한민간인학살사건은지금도여전히한국정부가인정하지않은사건으로,공식적인사과없이피해자의상처를할퀴고있습니다.작가는활활타는불길로소거된마을옆공터에한사람한사람의고통을삼키며베트남민간인피해자들의얼굴을그려넣었습니다.그곳엔명령에복종하는참전군인용맹호씨의모습도보입니다.국가의동원으로가해자의위치에서게된사람.그런수많은참전군인들이더이상생겨나서는안될것입니다.전쟁을기억하고외면하지말아야할이유입니다.*인증유형:공급자적합성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