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자원을획득하려는치열한경쟁과
부동산시세차익을향한분주한이동이만나는곳
입시전문가가내부자의시선으로바라본
대치동학원가에관한인류학적탐사기
한국사회에서뜨거운열기가내내사그라지지않는두가지이슈가있다면바로대학입시와부동산이다.수능점수와출신대학이평생을꼬리표처럼따라다니며취업과승진,소득은물론한사람의모든가능성을한정짓는사회에서사람들은대학입시에경쟁적으로매달린다.최고의강사진과수준별입시전략을갖춘사교육시장에비싼값을치르고,불법과탈법사이를아슬아슬하게오가며스펙을쌓는다.동료를밟고올라서는것을자연스럽게여기고,수능문제하나에온사회가달려들어말을보탠다.이뜨거운열기가모이는곳의집값은천정부지로치솟고,자녀의입시를위해이주를감행한사람들은막대한시세차익을얻는다.대학입시와부동산이긴밀하게결합해전국의가정,학교와학원,부동산시장을요동치게하는이곳은바로대치동이다.그복판에이거대한구조를움직이는동력인학원가가있다.
1990년대후반논술강사에서시작해2020년까지대치동학원가에서입시상담가와학원장으로일한저자는한국의대학입시는새로운사회구성원을맞이하는통과의례도,학업의다음단계로넘어가는관문도아니라고말한다.그보다는아주이른시기부터개인의삶을통제하고,나아가사회를자격이있는자와없는자,승자와패자로경계지어불평등과차별을만들어내는거대한카지노라고말한다.당장입시와관련이없는사람도그안팎을살펴야하는이유다.
이쯤되면한국의대학입시란사회과학적탐구의대상이어야한다.어쩌다보니나는생애의상당한시간을대학입시의최전선에서보냈다.학부시절전공인인류학적관점에서보면의도치않게꽤오랜기간현지조사fieldwork를수행한셈이다.탐구자의견지에서볼때,대한민국사교육현장을대표하는공간인대치동은한국인의내밀한욕망의한단면을적나라하게드러내는만화경같은곳이다.……참가자스스로절벽에선듯한느낌을받을정도로불평등과차별의세계를만들어내는거대한카지노.이런대학입시를통과의례라부르는것은허망한일이다.……대학입시를거치며사회구성원들은승자와패자로,상층과하층으로,가능한자와불가능한자로양분된다.대학입시는사회를뚜렷하게경계짓고있다.분리와차별이시작되는지점은사회가해체되는지점일수는있어도(재)구성되는곳일수는없다.우리아이들이선벼랑앞에그간성인식으로여겨졌던대학입시라는통과의례가위태롭게매달려있다.-13~35쪽
이책은대치동학원가를내부자의관점에서,사회과학적시선으로면밀히들여다본첫번째기록이다.저자는자신이이‘욕망의아수라장’의일부였던만큼어떤입장에서서누군가를비판하기보다는제도와정책이개인의욕망과사회구조,시장의논리와언론의호도속에서본래의취지를상실하고기존의모순과불합리를강화하는방향으로좌초해가는모습을담았다.특히나학부모와학생,교사,학원운영진,여러층위의강사들등거의모든행위자와접촉할수있었던학원장이라는위치는독자를그동안쉽게접할수없었던사교육시장가장깊숙한곳까지데려간다.이책은학벌주의의폐해가점차극명해지고있는시점에그차별과불평등의구조를공고히하는데기여하고있는사교육시장의자리에서교육과대학입시,아울러이와떼어놓을수없는부동산문제까지를종합적으로바라볼기회가될것이다.
“수능은이미사교육에분석당하고점령당한시험이다”
계급간힘겨루기의산물,대학입시제도의변천사
대치동이지금의대치동이된데에는대학입시제도의거듭된변화,그중에서도한국대학입시의역사상가장오래된시험인대학수학능력시험(약칭수능)의퇴행이큰영향을미쳤다.수능은본래학력고사가초래한암기위주의교육과획일적서열화를해결하기위해대학별본고사의부활을전제로도입된자격고사였다.그러나대중의반감으로본고사는실시3년만에폐지되었고,수능은애초의취지와달리변별력을확보하기위해지식확인형시험으로변해갈수밖에없었다.학부모의요구,대학의입장,사교육업체의영향력속에서조금씩수선되어온수능은이제더이상새로운유형의문제를내놓지못하고,사교육접근성에좌지우지되는시험이되었다.
사교육업체들은경쟁에서이기기위해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는다.새로운유형의문제를실시간으로수집,분석하여수많은유사문제를만들어낸다.평가원의출제역량은사교육의손바닥을벗어나기어렵다.……수능은이미사교육에분석당하고점령당한시험이다.……그수선의과정은교육열에휩싸인학부모들의통합될수없는욕망으로인해눈치보기의연속이었고,사교육의막대한영향력에짓눌려새로운교육에대한상상력을잃어버린퇴행의시간이었다.눈칫밥으로얼기설기꿰어놓은누더기수능은우리의대입제도와교육현실의거울이자부산물이다.사람들은곧서른을맞는이거적때기같은수능에불안을느낀다.이제수능은변화를요구받는낡은시험이되었다.-53~55쪽
본고사가폐지된상황에서대학별고사의역할을하며급부상한논술전형은이명박정부가들어서면서사교육확대의주범이라는오명을얻고폐지및축소의수순을밟는다.이명박정부는논술을축소하고입학사정관제를도입하는대학들에거액의지원금을주며2008학년도에입학사정관제를본격도입한다.입학사정관제는수능점수로만줄세우지않고다양한재능과적성을가진학생을선발하겠다는좋은취지로도입되었으나학생부를채울‘스펙’을만드는일에학교와학원,학부모들이전부달려들면서경제및문화자본을가진학생과그렇지못한학생간의간격을크게벌렸다.이전형은정부의지지층인유산계급과엘리트계층에게유리한제도였던것이다.
입학사정관제는대중의분노를샀고,2015학년도에그문제점을보완한학생부종합전형(약칭학종)이도입되었으나결과는크게다르지않았다.학교는일종의‘브로커’가되어전문직에종사하는학부모들을통해학생들의비교과활동을주선했고,사교육업체들은학생부에기록가능한활동을찾아제안하는입시컨설팅시장을열었다.이구조에들어갈수없는학생들은상위권학생의들러리역할을하며차별과불평등의시간을묵묵히견뎌야했다.저자는학종은그도입취지와달리계급격차와불평등을학교안으로들여왔다며입시에서일정비율이상증가해서는안된다고주장한다.나아가어떤제도를도입하더라도한국사회의학벌주의가수그러들지않는한계급간힘겨루기속에서제도는모순을드러내고수선을거치다파행을면치못할것이라고말한다.그러면서최근의능력주의비판논의가우리사회에중요한성찰적시각을제공하고있으나,이런현실을정면으로겨냥하지는못하고있다고지적한다.
한국사회에서학벌이취업과승진,명예와명성의취득기회를높이는이유는학벌이능력을보증해주기때문이아니라,학벌이우생학적결정론과연고주의에기반하여작동하는거대한편견과차별의카르텔이기때문이다.좋은머리를타고난자가공부도잘하고,상황파악도잘하고,업무도잘할거라는인간에대한이고정된편견은일종의우생학이다.인간을생물학적으로이미결정된존재로보는뿌리깊은편견에기초하여한번의시험결과를낙인처럼모두의이마에새겨보존하는것이학벌주의다.……학벌은능력(학력)주의를보완하기위해이용된장치처럼보이지만,사실은능력주의의정반대편에서인지적편견에기초한집단주의적차별이문화적악습으로뿌리내린결과일뿐이다.……따라서서구의능력주의비판담론으로학벌주의를비판하고자할때현실적간극이발생한다.우리사회는신입생과신입사원을선발하는과정에서능력주의를제대로실현한적이없기때문이다.전근대적이고연고주의적인편견을넘어서본적이없기때문이다.……반수를하고,재수를하고,삼수를해서라도다시명문대에도전하려는이유는능력주의라고는눈씻고도찾아볼수없는이사회에서아무리노력해도학벌만한영향력을가진스펙을만들방법이없기때문이다.-117~119쪽
대치동특유의효율성과전문성은어떻게만들어지는가
수요자와공급자를넘나드는대치동학원가생태계
이책의가장독보적인부분은대치동이사교육1번지가된역사적과정부터그내부의행위자들이각자의목적을실현하기위해긴밀하게공생하는학원가생태계를밀도있게그려냈다는점이다.1970~1980년대내내계속된명문고교의강남이전과1980년에시행된완전학군제의결과강남지역으로대규모인구가몰려들었다.이들가운데학벌의효용을직접경험한고학력고소득층의주도로임대료가저렴한작은평수의상가에소규모교습소들이들어섰고,이교습소들은1990년대초학원수강이자율화된이후학원으로간판을바꿔달았다.애초부터소규모와높은밀집도를특징으로하던대치동학원가는이후수능도입,논술의부상,입학사정관제와학종으로이어지는대학입시제도의격변속에서어떤유형의문제나전형에도빠르게대응할수있는전문성을갖춰나갔다.그러는가운데집값은100배에서190배까지올랐고,이제대치동으로들어오는사람들이학벌을바라는것인지부동산신화를기대하는것인지를구분하는일은큰의미가없게되었다.
저자는대치동사교육생태계의특징으로수요자와공급자의경계가자주허물어지고,각행위자들이급변하는제도와시장상황에따라새로운정체성으로옷을갈아입는일이끊임없이벌어진다는점을꼽는다.자녀의명문대합격을계기로,대치동카페에모여앉아입시정보를나누는‘카페맘’사이에서영향력을갖게된이른바돼지엄마가대표적인사례다.돼지엄마는학부모커뮤니티와학원운영진사이를오가며학생그룹을만들고,강의를주선하는등학원가에서막강한권력을형성했다.이후입시제도가복잡해지며그가운데상당수는영향력을잃었지만살아남은사람들은학원영업조직으로흡수되거나직접학원을차려컨설턴트로활동한다.대치동학원가에는그밖에도다양한처지의학부모들이오가는데,저자는학원가에서쓰이는은어를빌려이들을대원족(고소득층,전문직출신의대치동원주민),연어족(도곡동,한티역일대의재건축한아파트로회귀한대원족의자녀세대),대전족(대치동전세전입자들),원정족(대치동외부에거주하며주말마다대치동학원가로오는사람들)으로나누고각각의특성과고충을신중하게묘사한다.
다른한편에는학원가사람들이있다.학원장은입시설명회와여러상담공간에서학생과학부모를만나며교육과입시에대해발언하고,교육소비자들이선택할전략을제시하며,사교육비즈니스의구조를설계하는사람들이다.저자는이들의발화가대치동카페맘사이에떠도는정보의원천이되는것은물론전국의학교와학원,정부의입시정책에까지영향을미치는담론의권력구조안에있다고분석한다.이어서이른바1타강사를비롯해대형학원의스타강사,쇼비즈니스마케팅방식으로육성되는아이돌강사,1타강사를꿈꾸며수많은강의를소화하는개인사업자강사등여러유형의강사를소개하고,이들과학부모커뮤니티를연결하며나름대로의입지를확보해이후입시카페컨설턴트로변신한상담실장들의남다른행보를보여준다.
저자가이렇게각행위자의면면을묘사하며‘사람들’에주목하는이유는이들각자가치열하게자기욕망을추구하는과정에서대치동특유의효율성과전문성이만들어졌고,다른한편으로과도한교육열과사회적자원의불평등한분배라는폐해도낳았기때문이다.이구조를적나라하게들여다본후에야개인의욕망과시장의효율성을억압하지않으면서도좀더양질의,다양한교육자원을더많은사람이누릴수있는방법을모색해볼수있으리라는것이저자의생각이다.
“정시확대와입시단순화는퇴행이다”
사교육의자리에서제안하는대학입시와교육의미래
한국사회는오랜기간사교육을사회악으로상정하고국가의개입을통해축소하거나금지하는방향으로관리해왔다.교육당국이나언론에서는사교육을공교육몰락의주범,교육불평등의원인으로꼽기를서슴지않는다.그러나저자는사교육과공교육을대립관계로보아서는어떤문제도해결할수없다며,이런문제들은학벌주의라는사회적모순의결과임을정확히보아야한다고말한다.학벌의영향력을점차강화해가는사회는내버려둔채사교육만내리눌러서는공교육이살아날리도없고,오히려은밀한곳에서고가에거래되는사교육만양산할뿐이라는것이다.공교육은애초의목적인일정정도의지성과사회참여의지를가진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