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식 먹는 기분 : 정은 산문집

기내식 먹는 기분 : 정은 산문집

$15.00
Description
떨어져서 나를 보려고 비행기 티켓을 산다.
내가 아닌 것을 버리고 정확하게 나를 보려고
2018년 《산책을 듣는 시간》으로 사계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은 작가가 《커피와 담배》에 이어 산문집 《기내식 먹는 기분》을 펴냈다. 작가는 15년 동안 세계 여러 도시에 한두 달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이어왔지만, 흔히들 하는 ‘외국에서 한 달 살아보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 생이 자신의 삶이 아닌 것 같아 유령처럼 서성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숨이 막혀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다가 돈이 떨어지면 되돌아와 최저 시급 생활자가 되어 돈을 모으고 다시 비행기 티켓을 사는 작가의 이야기는 기존의 ‘여행 에세이’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비행기를 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기내식을 기다리다가도 막상 먹으면 그 맛에 실망한 경험들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또 기내식을 기대하고 만다. 작가는 ‘기내식 먹는 기분’의 핵심을 비행기가 멈추면 내 삶도 멈춘다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설명한다. 기내식을 먹고 나면 살아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지상에 두고 온 고민들은 잊게 된다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을 때마다 비행기 티켓을 사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인도와 미국을 여행하고,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살게 해준 서울의 공간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펼쳐진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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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은

대학에서컴퓨터공학과영화를배웠고현재는대학원에서서사창작을공부하고있다.여러편의단편영화제작에참여했다.서점,극장,출판사,고시학원,선거캠프,방송국,드라마편집회사,무인경비회사,비서실,절,식당,카페,문화재보존업체등에서일한적이있다.매년한달이상다른도시에머물면서쓴글과찍은사진을두권의독립출판물로만들어독립서점을통해판매했다.『산책을듣는...

목차

프롤로그

I길의뒷모습
순례자의길K체리를나눠먹은한국사람땅의꿈길의뒷모습고마워요개의순례를돕는사람별들의들판모르는일

II빛의도시
객창감아그라기차안빛의도시손모니호텔타블라바라나시의밤갠지스강옥상바르카타히티프로젝트

III도시의지문
지구의거울연인들도시의지문보이지않는사람들뒤집혀진인간그들은여전히살아있습니다

IV사랑의방
살길5,000원의시간들세번만난손님그책방사랑의방합정동359­33번지
로스트북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길의뒷모습,사람들의진짜모습

그가산티아고로향한건‘순례자의길’을걷고나면작가가될수있다고해서다.악마가걸작을쓰게도와준다면영혼이라도팔고싶은심정이었기에,작가는8백킬로미터에이르는카미노를걷는다.파울로코엘료를원망하며걷던여정은작가가되겠다는열망마저사라지게만들어오직산티아고에도착해이걷기가끝났으면좋겠다는바람하나만남는다.
그길에서작가는많은것을버린다.가방무게를줄이기위해짐들을하나씩버리다자신이누구인지다시생각해본다.끝까지포기못한수동카메라와필름과책과노트덕에우리는작가의시선으로잡아낸멋진사진들과마치내가겪은것처럼생생한이야기들을마주하게되었다.결국모든것을버리고남은이것들이정은작가를구성하는요소였다.
작가는카미노에서여러사람을만난다.자기자신을사랑하고대접할줄알아야한다는것을깨닫게해준방송작가K,불문율인데도직업을묻지않을수없었던전국회의원,전기도화장실도없지만음식만큼은영혼을담아내놓은알베르게의주인,불편한몸으로구걸을하며순례길여비를마련하는진짜순례자들,경멸의눈으로그들을바라보며불쾌해하는고급등산화를신은사람들….그리고에리히.

지상에서가장아름다운이야기

《기내식먹는기분》엔로맨스소설보다더달콤하고가슴아픈사랑이야기가가득하다.작가가함께순례길을걷고싶었던유일한외국인의이름은에리히(작가는산티아고에서돌아오자마자프랑스어를배우지만프랑스에에리히라는이름이없다는걸알고좌절한다).그는군인복장을하고복스라는개와함께움직인다.선한눈빛과개에게쏟는애정에끌려어설픈영어와몸짓으로열심히대화를이어나가지만,결정적인순간에프랑스어를유창하게하는미국여자애에게기회를빼앗기기도한다.설레는마음으로사랑을확인하기도전에그가보낸관심과배려가‘혼자있는외롭고불쌍한소녀’에대한연민이었음을깨닫지만또다시마주치면산티아고까지같이걷자고제안하기로한다.운명의장난처럼두갈래갈림길이나타나고잘못된선택을한작가는산티아고여정이끝날때까지결국그를만나지못한다.재미있는사실은작가에겐아직도떠올리면저릿저릿한통증처럼다가오는그가다른이들에겐그저‘냄새나는군인아저씨’였다는것.

산티아고에서못만나면살아생전에다시볼가능성이없어서,산티아고를떠나면서조금울었다.사진한장안찍고연락처주고받을생각을미처못한게너무아쉬웠다.그렇지만전생애를통틀어단한시간정도만마주볼수있는인연이었다면,그시간을사진찍는데낭비하지않아서오히려다행이기도하다.그눈빛과마음을기억하는것만으로도충분하다.아직도떠올리면마음깊숙한곳에서통증이오듯저릿저릿한에리히,그런아름다운사람이아름다운개와함께이지구위에살고있다.(70쪽)

긴여행을앞두고는소개팅같은걸하지말라.상대가아무리맘에들어도다시만나자는약속은하지말자.정은작가가전하는조언이다.여행이끝나면다른사람이되어돌아온다는걸모르는사람만이소개팅같은걸하고,그주인공은역시나작가다.작가는소개팅상대로부터선물받은‘객창감’이란단어에가슴설레며두달간의일정으로인도로떠난다.인도를여행하고나면전세계어디든갈수있다는말에이끌려서.하지만처음배낭여행을떠난젊은이에게“타국에서혼자머무는방창문으로스며들어오는어스름한달빛같은”객창감을느낄만한안락한숙소는주어지지않았다.그래서작가는새로이다른사랑에빠지고만다.

달빛이들지않는밤이쓸쓸해서그랬는지나는객창감을잃고인도여행중에만난사람한테첫눈에반하고말았다.외로움때문인지,낯선도시가주는흥분때문인지모르겠다.나는그것을여행탓으로돌렸었다.여행이,이도시가나를다른사람으로바꾸어놓아서그랬다고.(108쪽)

빛의도시에쌓이는소리

작가에게인도는시간위로쌓이는소리들이모여만들어지는공간으로기억된다.타지마할은사랑에관한소리의겹이쌓여응축된에너지가모인우주의별같은곳이고(<아그라>),바라나시의옥상들엔여인들의이야기가숨어있다(<옥상>).빛의도시바라나시에는성과속이함께존재한다.갠지스강의성스러움과여행자거리로불리는뱅갈리토라의세속성은뗄수없는하나의고리와도같다.작가는섬세한촉수로사람들과오토바이,소들이뒤섞인골목길의먹먹한소리를감각한다.
그러다가마음을끌어당기는북소리에홀려‘타블라’라는악기를배우기도한다.아니,타블라의스피릿만.보름치경비로악기를구입하고일주일남은일정을타블라배우는데헌신한뒤커다란북을짊어지고한국에돌아와한번도연주하지못하고몇년뒤에다시바라나시에가서타블라를또일주일배우고온다.작가는고백한다.타블라악기점에오랜시간쌓여온그소리들이만들어내는고유한소리,아름다운침묵이좋았노라고.그리고빼놓을수없는공간,손모니호텔.작가는누가화장터옆에호텔을지어놨나호기심에투숙하고,방에서시체타는광경을내려다보고시체타는냄새를맡는다.그냄새에에로틱한기분에휩싸여도저히잠을이룰수없을지경에이르러사흘만에체크아웃한이야기는소설보다더소설같아그호텔에서묵고싶은기분마저들게한다.

먼땅에두고온거울하나

미국의피츠버그에몇달머무르면서는여행의본질에대해생각한다.

‘연인’이란단어의유래는‘거울을들고있는사람’에서비롯되었다.이에대한근거는없다.왜냐하면내가방금만든말이기때문이다.하지만연인이란단어에그런뜻이없다는게더이상하다.거울을들고있는사람을뜻하는단어를연인을뜻하는말로도쓰고있는사람들이지구위어딘가엔분명히있을것만같다.(169쪽)

작가가만들어낸연인이란단어의유래는그럴싸해서진심으로그렇게믿고싶어진다.서로거울을들고비춰주는관계에있는사람들은발전할수밖에없듯이여행역시나를성장시킨다.그건“여행을다녀오는일이먼땅에거울을하나만들어두고오는일”이기때문이다.작가가보기에미국의무인탐사선보이저호는지구인이우리스스로를더잘알기위해쏘아올린거울이다.그리고보이저호가그랬던것처럼우리역시떨어져서나를정확히보기위해여행을떠난다.
작가에겐단기아르바이트로매번다른일을하며사는삶이연극이고외국의낯선도시에서최소한의소비만하며한달머무르는것이진짜삶처럼여겨지는시절이있었다.작가가보기엔그런사람들이있다.지상에서발이조금떠있는상태로,유령처럼서성이는마음으로사는존재들.자신이그런사람인줄너무잘알기에오랜시간을세상의낯선도시에출몰하며지냈다.그게유일한‘살길’이었다.

존재하지않는고향을찾아서

그런그가드디어땅에발을딛고조금씩뿌리를내려강하고단단해지는공간을만난다.바로‘커피발전소’라는카페이다.작가는커피를마실때만느낄수있는,존재하지않는고향에대해이렇게말한다.

낯선도시에이방인으로있을때처음보는카페에들어가커피를시키고커피잔을앞에두면세상의입장권이잠시생긴기분이었다.네가누구든이커피한잔을마시는동안은이곳에있을자격이있다고커피가말해주는것같았다.내가누군지,내가이곳에있어도되는지,내가행복할자격이있는지,이렇게살아도되는지,그런고민을잠시내려놓아도괜찮을것같았다.잔에커피가남아있는동안에는다괜찮아졌다.(231-232쪽)

이건작가가세계의낯선도시를여행하는것과같은이치이다.커피발전소직원으로10년가까이일하면서그는《산책을듣는시간》으로작품활동을시작하고,《커피와담배》를펴내고,꾸준하게작품을쓰는작가가되었다.그건카페사장님이건넨무언의지지와응원,그공간이주는환대덕이다.
커피발전소라는공간역시작가에게는그공간에축적된소리들로기억된다.사람들의이야기나누는소리와음악들이쌓여공간이깊어지고,그공간은특별한힘을갖게되었다.그래서작가는비로소이곳에서마음이편해지고용기가나서많은것을해냈다.
공간이주는편안함이있다면,그건그공간의구성원이자신의것을나눠주기때문이라고작가는말한다.그래서공간은하나의삶을더사는것과같고,우리가삶의지루함을이겨내고버티는것처럼공간의삶도마찬가지라고.

강건너를갔다오고난날밤엔유독많이울었다.모든매혹스러운지점은지극히개인적이고은밀해서,그순간을공유하지않은이에게매혹을이해시키는건불가능하다.자주매혹당하는이들은비밀이점점많아지고,비밀이많은이들은갈수록외로워진다.그러니타인의매혹에대해서함부로말하지말자.그건애초에말해질수없는영역에서생겨나니까.(127-128쪽)

《기내식먹는기분》을통해독자가짐작하는작가는아마이런모습이아닐까.그는풍경에,사람에,공간에매혹당하고개인적이고은밀한비밀마저우리에게솔직하게내비친다.그래서독자는기꺼이작가의이야기에매혹당하고작가가비춰주는거울에제모습을비춰보고싶어진다.더정확히‘나’를보기위해.작가는후회와부끄러움속에서‘내가왜여기서이러고있지?’외치며남들이가지않는,낯선곳을향해용감하게걸어갔다.그의순수함,엉뚱함,통찰력이빚어내는매혹은직접찍은사진들과함께기내식먹는기분을제대로느끼게해준다.그것이바로먼길을돌아깨달은진짜삶이기도하다.작가는이책으로스스로를믿고한발내딛는용기를가져보라며다정하게말을건넨다.

좋은하루를쌓아나가는게삶이라는것,거창한목표를위해하루하루를갈아넣고희생하는게아니라하루하루를만족스럽게완성하는것,나를잘먹이고잘재우고주변을잘가꾸는것,그리고운좋게누군가와함께식사를하거나산책할기회가생긴다면최선을다해서그순간을즐기고고맙게여기는것.그하루하루에진짜삶이있다는것을이제는안다.누구라도나를떠올릴때알아서잘지내고있겠지싶어지고마음이편해지는것,그것이어려운목표라는것을이제는안다.(39-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