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겨울빛

베네치아의 겨울빛

$13.00
Description
시詩는 “우리가 사랑에 이끌려 나오는 순간 눈은 얼마나 천천히 내리는지 기억해두는 것, 우리가 가까운 이에게 사랑을 상기시키는 순간 축축한 아스팔트 위로 깔린 하늘을 기억해두는 것…”이라고 정의한 러시아의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 이 책은 그가 여름의 화려함에서 저만치 물러나 있는, 겨울 안개 가득한 베네치아를 재치있고 지적이며 우아하게 그려낸 에세이다.
서른두 살에 러시아에서 추방당해 미국에 정착한 브로드스키는 그때부터 매년 겨울이면 한 달가량을 베네치아에 머물렀다. 그렇게 열일곱 번의 겨울을 베네치아에서 보내는 동안 그는 그곳의 물길과 골목길, 건축물에서 음식, 정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면면을 살펴보고 그곳의 장려함과 아름다움을 시인의 눈으로 포착한다.
자신의 집이라고까지 불렀던 베네치아와의 인연을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문체로 풀어낸 이 에세이에서 그는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밀물이 이 도시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놀라운 시심詩心으로 반추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브로드스키가 그 자체로 예술품이라고 한 베네치아에 관한 뛰어난 재현再現이자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초상화다.
저자

조지프브로드스키

러시아의시인.1940년에소련레닌그라드(현재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의유대인가정에서태어나열여덟살부터시를쓰기시작했다.그의아버지는소련해군의전문사진작가,어머니는통역가였다.유대인이라는이유로차별과고통속에서어린시절을보낸그는열다섯살에학교를그만둔후다양한직업을거치며독학으로폴란드어와영어를익혔고,해당언어로된시들을러시아어로옮겼다.번역한작품들을비밀리에유통하고지하학술지를통해출간하는등의활동으로인해스물네살에‘사회의기생충’이라는죄목으로강제노동형을선고받았다.1964년에러시아북부에있는아르항겔스크로유형을당했으나국내외문화계인사들의탄원으로감형되어18개월만에석방되었다.
일련의사건과지속적인문학활동으로소비에트전체주의사회에서예술적저항의상징이된그는1972년에소련당국에의해추방되었고빈과런던에잠시머문후미국으로건너갔다.1973년부터미시간대학과퀸스칼리지,스미스칼리지,컬럼비아대학에서주재시인으로객원교수로머물렀고,이후마운트홀리오크칼리지에문학교수로재직했다.1987년에노벨문학상을받았고,1996년1월에뉴욕에서심장마비로세상을떠났다.

지은책으로시선집인《연설한토막》《우라니아에게:시선집》《기타등등》,희곡인《대리석》,산문집인《하나보다작은》《슬픔과이성에관하여》가있다.또한《한시대전:19세기러시아시선집》을편집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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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저온에서드러나는아름다움이‘진짜’아름다움이다.”
러시아의시인조지프브로드스키가차가운밤공기로그린베네치아의초상화
조지프브로드스키.러시아에서태어난시인.서른두살에조국에의해추방된후24년을타국에서보내며,자신의문학의뿌리인시詩는태어나자란러시아어로,산문은새로정착한곳의언어인영어로쓴작가.자의와무관하게두세계에몸담을수밖에없었던사람.미국으로건너간후매년겨울이면베네치아에와머문그는이제영원히베네치아에잠들어있다.32년간살았던러시아,20년넘게살았던미국이아닌,17년동안겨울마다5주를머물렀던베네치아에,그곳을사랑했던수많은이방인과함께.그가또다른집으로여길만큼편안해했던베네치아.베네치아의무엇이그를그토록끌어당겼을까.

발트해에면한도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태어나어린시절을보낸브로드스키는이책에서몇가지에피소드로베네치아와의인연을소개한다.그의문학적멘토였던러시아의시인안나아흐마토바가일찍이그에게“이탈리아는당신이남은평생계속되돌아갈꿈이에요.”라고한말,친구가가져온낡은잡지에서본눈덮인산마르코광장의컬러사진,한창따라다녔던아가씨가자신의할머니가혁명전베네치아로신혼여행을갔다가사온엽서세트를그에게생일선물로줬던것,어머니가어디선가사온싸구려태피스트리에두칼레궁전이그려져있었다는이야기,친구와함께본흑백영화〈베니스에서의죽음〉이특별히맘에들진않았으나주인공이증기선의갑판의자에멋지게앉아있던기나긴오프닝시퀀스는오래도록기억에남았다는등,그리고마침내베네치아여성이등장하자“이도시가어떤식으로든삼차원의가장자리로비틀거리며들어와서서히초점이잡히는것같았다”는이야기까지.

베네치아를좋아했던예술가들가운데괴테,바이런,헨리제임스,헤밍웨이등유독문학작가들이많았던것을보면시인브로드스키가베네치아를좋아한것또한그리특별한일은아니겠으나,17년동안꼬박그것도겨울에만이도시를찾은작가는브로드스키가유일한듯하고,삶이다른계절에비해더생생해보이는겨울베네치아를50가지의개인적인주제들을통해기록했다는점에서,이책은독보적이다.

브로드스키에관한여러자료를참고해보면,시인은추방또는유형을정치적인박해라는인식을넘어또하나의공간의이동으로받아들인듯도하다.위키피디아에의하면그는5년의유형을선고받고옮겨간아르헹겔스크에서는오히려시작詩作에전념할수있었고,겨울베네치아에서는돌이깔린좁은골목길을걷고혼자서동네의작은트라토리아에서식사를하고쓰던책을마무리하고그의말대로‘운이허락한다면’시를쓰며지냈으니,그곳이어디든그에게는일하는곳이자제2의집이었을법하다.그의글에서는때때로고독한개인의사색이짙게드러나지만그렇다고우울해보이지는않는,오히려자발적고독을선택한듯한시인의자의식이느껴진다.그어느곳에서건굳이이방인이라기보다는마치‘떠났다가다시돌아올사람’처럼,오히려고독을두고떠나는것이아쉽다는듯이.

“표면은종종속에든내용물보다더많은이야기를들려준다.”
베네치아는물의도시다.베네치아만灣안쪽의석호潟湖위에흩어져있는118개의섬이약400개의다리로이어져있는곳.여행자가무심코골목끝까지가면막다른길대신바다를만나게되는곳.그곳에서그는물이만들어내는수천가지의이미지를지켜보고,물이이도시의건물에그리는무늬를응시한다.
거리를걷다가본사람들,관광객들의충동구매행태를유심히관찰하고,그것을부추기는것이사람을실루엣으로만들어버리는이도시의경치와멀리보이는풍경들임을간파하고,도시의움직임을이리저리유추하다가이도시의영광과부의역사를떠올리고,온도시에울려퍼지는종소리에잠이깬일요일아침이면창문을통해밀려오는기도소리와실안개에서약간의희망을느끼고,해질녘이면베네치아는밀월여행지보다이혼을위해와야하는도시임을다시한번깨닫는다.점점희미해지는황홀감을느낄배경으로이만한데가없기에.
시종일관조용조용한목소리로마치꿈속에있는듯이도시를환상적으로묘사하다가도,도시자체가예술품인이도시에인간들이가하려는여러가지시도들에대해서는우려의목소리를높이고,점점가라앉는이도시를위해서는그어떤재생보다온전하게보존하는것이최선임을주장한다.

“구겐하임같은곳의수집품과이번세기들어이곳에일상적으로쌓이는그와비슷한물건들의유일한기능은우리가얼마나싸구려에자기주장만하고인색하고일차원적인물건들로변해가는지보여주는것,우리에게겸손함을서서히스며들게하는것이다.율리우스가돌아올기미는보이지도않고,보이는것이라고는바다뿐이어도낮에는천을짜고밤에다풀어버리는페넬로페같은이도시의배경으로다른결과는생각할수가없다.”_132p

영화제에참석차베네치아에온미국의작가수전손택과함께에즈라파운드의연인이었던올가럿지를방문하고나오면서“폰다멘타데글리인큐라빌리FondamentadegliIncurabili(‘불치환자의터’라는뜻)”라는단어를떠올린일화도흥미롭다.

“인간이이루는것들과시간은항상기록되어야할가치가있다.”
아름다운베네치아에서병의고통과함께삶을연명하느니차라리한방의죽음을선택하겠다던시인,겨울안개자욱한골목길을거닐며겨울빛속에서시를쓰고밤의그림자속에서물과시간의아름다움을관조한시인.56세에뉴욕에서심장마비로타계한후영원히베네치아로돌아온그는열일곱번의겨울베네치아에서과연자신의꿈대로살았던것일까.

“이도시에서장기체류를하거나짧게머물렀던그오랜세월동안나는거의같은척도로행복하기도하고불행하기도했던것같다.어느쪽이냐는중요하지않다.이도시에낭만적인목적이있어서가아니라일하기위해,작품을마무리짓고,번역하고,운이허락한다면시두편을쓰기위해,그도아니면그저머무르기위해왔기때문이었다면말이다.”_118p

화려한미사여구없이,간결한표현으로베네치아의다채로운겨울빛을,하루에네번바뀐다는그곳의얼굴을짧고강렬하게묘사한에세이.존재의의미라는보편적인관심사를강력하고사색적인필치로다룬시같기도산문같기도한책.그런관점에서이책은매혹적이고수수께끼같은베네치아를오래바라봐온사람만이그려낼수있는,결코모방할수없는베네치아의초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