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 (톨레도, 엘 그레코 미술관)

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 (톨레도, 엘 그레코 미술관)

$13.00
Description
한여름, 유럽에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소설가인 레오노르 드 레콩도는 파리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한다. 마드리드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톨레도에 도착한 후에는 성당 두 곳을 들르고 바쁘게 도시를 탐색한다. 그리고 밤 11시, 드디어 도메니코스를 만나러 엘 그레코 미술관에 도착한다.
프랑스 스톡 출판사는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시리즈를 기획하여, 작가 또는 예술가가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화가 또는 작품들을 모티브로 한 에세이를 쓰게 했다. 이 책의 저자 레오노르 드 레콩도가 오늘 밤 만날 사람은 엘 그레코이다.
1541년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도메니코스와 1976년 파리 12구에서 태어난 레오노르. 그녀는 엘 그레코와의 사이에 놓인 4세기라는 시간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짓누르는 듯한 열기, 어둠에 싸인 미술관, 경비원들의 주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탄복해온 이 화가와 사랑의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한다. 비의秘儀적인 메아리와 시정이 가득하고 가족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고 유령들이 찾아오는 밤에 흥분과 열정을 느끼며. 레오노르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당대에는 특이하게 여겨졌던 이 화가를 열렬히 소환한다. 과연 그가 올까?
저자

레오노르드레콩도

레오노르드레콩도(LeonordeRecondo)
작가이자바이올리니스트.1976년에예술가집안에서태어났다.리브레르상과RTL-리르문학대상을수상한《사랑들Amours》,《피에트라비바PietraViva》,대학생들이뽑은프랑스퀼튀르-텔레라마소설상을수상한《기점Pointcardinal》,《마니페스토Manifesto》등6권의장편소설을썼다.

목차

011미라쿨룸문디
081예르모
151룩스아에테르나
159감사의말

출판사 서평

스페인톨레도의‘엘그레코미술관’.
도메니코스를만나기에얼마나좋은장소인가?

한여름,유럽에더위가기승을부리던때바이올리니스트이자여섯권의소설을펴낸저자레오노르드레콩도는파리에서스페인마드리드로향한다.마드리드에서다시기차를타고톨레도에도착한후에는성당두곳을들르고바쁘게도시를탐색한다.그리고밤11시,드디어도메니코스를만나러엘그레코미술관에도착한다.그가올지확신할순없으나그녀는그곳에서그를만날것을열렬히소망해왔다.오늘이바로그날,그녀는그곳에서그를기다릴것이다.그의그림들속에서.

프랑스스톡출판사는〈미술관에서의하룻밤〉시리즈중하나로스페인의고도톨레도에있는엘그레코미술관을선정했다.오늘그와하룻밤을보낼작가는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한작가레오노르드레콩도이다.그녀는파리에서태어났으나아버지는스페인태생의화가이다.스페인내전당시바스크지방이프랑코의수중에떨어지자그녀의아버지에게스페인은버려진나라가되었다.그러나그녀에게스페인은여전히절반의조국이다.
그녀의부모는레오노르가어릴때부터그녀를온갖미술관에데리고다녔다.엘그레코를비롯해벨라스케스그리고고야라는하늘높이빛나는스페인화가3인방의그림들은수도없이그녀의눈을스쳐가거나때로는그녀를그앞에멈추게했다.

색채의화가이자스페인파의창시자도메니코스테오토코풀로스
일명엘그레코는16세기의가장독창적인예술가중한사람이다.그는1541년그리스크레타섬이라클리오에서태어났다.당시크레타섬은베네치아공화국지배하에있었다.크레타에서비잔틴정교전통에따르는이콘화화가로일했던도미니코스는스물다섯살무렵에새로운그림을그리겠다는일념으로베네치아로떠난다.크레타섬은그가재능을펼치기에는너무작았다.그는고향을떠날필요가있었다.이제까지걸치고있던그리스방식을버리고라틴방식을익히고싶었다.당시의베네치아는모든꿈이향하는도시였고새로운아테네이자새로운로마였다.그러나도미니코스는베네치아에서다시로마를거친후10년만에이탈리아를떠나에스파냐톨레도로향한다.그의재능을,그의새로운기법을알아봐줄사람들을찾아.도미니코스는이렇게해서톨레도의엘그레코,그리스사람화가가되었다.

엘그레코가레오노르의마음에들어온것은오래전소녀시절의일이다.화가인아버지와디자이너인어머니를따라미술관에간어느날,엘그레코의그림한점이시큰둥하던소녀의마음을건드렸다.〈묵시록의다섯번째봉인개봉AperturadelQuintoSellodelApocalipsis〉.주위에함께걸려있는동시대의다른그림들과확연히분위기가달랐던그림,고야나에곤실레나피카소의그림과함께걸려있어도충분히어울릴듯한그림.그그림을그린이상하고기묘하고잘생긴,그러나뭐라고묘사할딱들어맞는형용사가없어보였던화가,엘그레코.
그러나그화가가다시그녀의마음을사로잡은것은아버지가돌아가시고난뒤였다.어느날아버지의유품인수첩에서연필로모사한그림한점을보게되었던것.소년시절부터가족의척박한농장에서일하던아버지는책이라고구한사전을열심히보고그사전에있는그림들을모사하곤했는데,그중엘그레코의그림이있었다.사전속그림들을연필로모사하며화가로의걸음을조금씩내디뎠을소년.그녀는그그림을통해아버지를다시느끼고,언젠가꼭엘그레코를만나볼것을소망했다.

그의작품들이오롯이보관된‘무세오델그레코’.레오노르는15년전에도이미술관에온적이있다.2014년화가서거400주년을맞아정원과이어지는정문이새로단장되었고조금더멋스러워졌다.예전에는미술관입구가유대인구역골목길에면해있었고,정문도작은편이어서누군가의집으로초대받아들어가는기분이었다.이제는그렇지않다.누구나배낭에슬리퍼차림으로,그냥편하게미술관안으로들어가는느낌이다.밤이되었는데도날씨는대낮처럼탈듯이뜨겁다.

크레타섬을떠나며버려야했던것들
레오노르는엘그레코의작품대부분이전시된위층으로곧장올라간다.그녀를처음맞이하는것은열두명의사도를그린초상화이다.그들은도메니코스에관한많은것들을말해주겠노라고약속한다.그녀는넓은전시실바닥에가만히누워어린도메니코스를추억한다.
햇살이따가운크레타의올리브나무들사이를뛰어가는도메니코스,16세기중반,그가그시대를선택한것은아니다.항구근처에서물고기몇마리를잡은도메니코스는정어리열두마리가담긴버들가지바구니를들고집을향해뛰어가다오솔길에서살모사와맞닥뜨린다.순간살모사는요동을치더니갑자기메두사가되었다.그는공포로얼어붙었다.있는힘껏달렸다.덤불속을얼마나달렸을까,정신을차리고보니자그마한교회가보였다.교회로몸을피한그는두무릎사이에머리를숨기고안도했다.그야말로죽음에서가까스로벗어난기분이었다.어떤소리가들렸다.목청높여노래하는남자들의목소리였다.후에톨레도의구불구불한골목길을걸어다닐때도그는그시절의크레타섬을그리워했다.그때의살모사가그를발가벗겼고,그날의음악이자신을꿰뚫었다고회상했다.

베네치아에서화가로서의입지를굳힌엘그레코는그가원했던에스파냐펠리페2세의궁중화가가되었으나펠리페2세는그의화풍을마음에들어하지않았다.그는주로종교화와초상화를그렸고회색빛명암과색채,인체를비정상적으로길쭉하고뒤틀리게묘사하는방식은당시스페인에서는매너리즘미술로평가절하되었다.그는실제모습을있는그대로만그려내는대신종교적열망과희열을표현하기위해형태를왜곡된모습으로그렸다.마치천상을향해열망하는지극한마음을담은것이다.이런화풍은그의사후에도오랫동안제대로평가를받지못했으나19세기이후재평가되어폴세잔을비롯한여러화가에게영향을주었다.특히20세기초독일표현주의가등장하면서그는미술사에서신기원을이룬가장중요한작가로평가되기시작했다.

레오노르는그림이없는벽면에등을기대고앉아도메니코스의청년시절을추억한다.그가크레타섬을떠날때버릴수밖에없었던것들,가족,부모와형제들과함께살던집,그리고그가결국버린것이되어버린사랑하는아리아나.그는쫓겨난것은결코아니었다.그는도망나왔다.그곳에머무르지않기위해서.더이상이콘화화가로살고싶지않았다.그이상을원했다.크레타를떠난지한달만에아리아나가세상을떠났다는연락을받은도메니코스는이제자신이그섬으로돌아가는일은없을거라는걸깨달았다.

그가오로지그자신일수있었던곳
신발을벗은채어두운전시실안을서성거리다레오노르는안쪽벽에걸려있는도메니코스의아들모습을보게되었다.호르헤마누엘,도메니코스가말년에그린〈톨레도조망과지도〉안에그려져있다.그도화가였고,아버지와함께작업을했다.톨레도에서만나사랑을나누었던헤로니마와의사이에서낳은아들이다.헤로니마는아들호르헤를낳은뒤며칠만에산통으로죽었다.도메니코스는그림에아들의모습을자주그려넣었다.그의대표작으로꼽히는〈오르가스백작의매장〉에도아들을어린아이의모습으로그려넣었다.호르헤가태어난해에그린그림이다.
레오노르는호르헤의모습을찬찬히살펴보면서도메니코스에게묻는다.혹시그아이의엄마를남몰래그림속에그려넣고싶었던건아닌가하고.그러나도메니코스는삶에서아리아나나헤로니마의흔적을전혀남겨놓지않았다.

일흔살의도메니코스가새벽에자기아틀리에에서그림을그리고있다.그는창문옆자기의자에,그가자신의은둔처로여기는그구석진자리에앉아있다.그는가장보잘것없는도구인분필이나목탄으로돌아간다.그의예술의토대가거기서,명민한단색의윤곽선끝에서탄생했다.그가거짓말할수없는곳,그가오로지그자신일수있는곳이다.색들의기법,기름과안료로이루어지는그것들의혼합,화폭위에서그것들의구체적인두께가정해지고,그것들의표현력이권리를잃는곳.그는새벽의고요함을좋아한다.그는자주호르헤마누엘에게말했다.
“나는대단한것을배우지못한,그저좋은그림만그리고싶어하는노인이야.내일도비슷하겠지.아침일찍일어나내디세뇨인테르노가여전히같은곳에있는지,내가거기로피신할수있는지확인할거야.호르헤마누엘,모든것이너무나빠르게지나갔구나.나는너를그곳에데려가고싶었어.크레타섬언덕들의잃어버린땅한구석에나의풍경이있단다.”

새벽이다가오는시간,긴기다림끝에서레오노르는텅빈미술관에서바이올린을꺼내바흐를연주한다.자신에게어둠으로부터의교훈이솟아오르도록,준비하고여행하고기도하는시간을선물해준도메니코스를위해.미아모르도메니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