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까지 걷기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함께한 긴 산책)

저녁까지 걷기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함께한 긴 산책)

$14.00
Description
뮤진트리에서 펴낸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 세 번째 책.
2014년에 소설 《울지 않기》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 리디 살베르가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살베르는 피카소 미술관에서 홀로 하룻밤을 보내며 떠오르는 영감을 글로 써보라는 출판 기획자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미술관이라는 곳에는 너무 많은 경이로운 것들이 몰려 있어서 싫고, 실컷 멋진 작품들을 봤는데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추한 세상과 다시 부딪혀야 하는 그 급격한 변화가 싫고, 무엇보다도 미술관이 천박한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과 한통속이면서도 우아한 척하는 것이 싫어서다.
그런저런 이유를 나열하며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미련이 남아 있다. 미술관에서 오롯이 마주할 작품이 바로 자신이 오랫동안 열정을 품어온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생 삶의 취약성과 덧없음을 그의 작품의 질료로 삼았던 화가이자 조각가, 자코메티.
살베르는 고민 끝에 〈걷는 사람〉과의 하룻밤을 수락하고 ‘피카소-자코메티’ 전이 열리고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 들어선다. 하지만 그 밤, 〈걷는 사람〉은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실패의 예술, 삶에 밀착한 예술을 실천한 자코메티의 예술을 사랑하는 리디 살베르의 세레나데.
저자

리디살베르

LydieSalvayre
2014년공쿠르상수상작가.1948년프랑스중부의오탱빌에서태어났다.부모는스페인내전후프랑스로망명한공화주의자들이었다.툴루즈근교의오트리브에스파냐난민촌에서성장했다.툴루즈대학교에서현대문학으로학사학위를받고,1969년다시의과대학에서정신과전문의과정을공부하고부크벨레르에서다년간정신과전문의로일했다.
1970년대후반부터본격적으로글을쓰기시작해1990년에발표한첫소설《선언LaDéclaration》으로에르메스첫소설상을받았다.1997년에발표한《유령회LaCompagniedesSpectres》가노방브르상을수상하고문예잡지〈리르〉에서‘올해최고의책’으로꼽혔다.이후벗이자탁월한편집자인베르나르왈레를모델로한소설《BW》(2009,프랑수아비예두상수상)와전설의기타리스트지미핸드릭스를모델로한《찬가Hymne》(2011)를발표하는등실존인물들의초상을그려내는데탁월한솜씨를발휘한다.살베르의작가적역량과인간심리를꿰뚫는정신과의사의능력이결합한산문집《일곱명의여자SeptFemmes》(2013)역시동일선상에있는작품이다.2014년에스페인내전을소재로한소설《울지않기PasPleurer》로프랑스작가에게최고영예인공쿠르상을수상했다.살베르의작품들은많은나라에서연극으로각색되어상연되고있으며,전세계20여개언어로번역출간되었다.

목차

본문 ...........................7
옮긴이의말...............212

출판사 서평

맹렬하게사랑하고맹렬하게싸우는순수주의자리디살베르,
자코메티의〈걷는사람〉과하룻밤을보내다.

스페인독재정권에서벗어나프랑스툴루즈인근의오탱빌에정착한카탈루냐계어머니와안달루시아계아버지슬하에서자란리디살베르는고향을떠나게만든이데올로기의싸움,한때정의를위해싸웠으나집안에선폭군인아버지,평생편안하게느끼지못한프랑스어등자신을둘러싼환경에맞서며쌓인분노와격정을글로다스려온작가이다.평생을몸담아온예술과문학을향해느끼는감정에도애정과증오가양립한다.오랫동안사랑해온자코메티의〈걷는사람〉이있는피카소미술관의하룻밤을독점할기회가주어졌을때마저그녀가보인첫번째반응은강렬한저항이었다.
주위의설득과긴고민끝에〈걷는사람〉과의하룻밤을수락했지만,정작살베르는오롯이마주하게된〈걷는사람〉에게서아무런감흥도얻지못한다.오히려불안감만커질뿐이다.무엇때문인가.

리디살베르는스위스태생으로이십대초에파리에정착한자코메티에게서이주민으로서의동질감을느낀다.예술은모든화려함과풍요로움에맞서저항하는것이라고여긴자코메티에깊이공감하며,그런자코메티의예술을침울한아름다움,아름다움에둘러싸인아름다움이라고생각해왔다.그토록존중하는마음을품었던자코메티의작품과대면하고있는이밤,그러나이상하리만치감동이일지않는다.그청동조각상이자신의눈앞에마치살아있는것처럼밀도높게존재하고있음에도그녀는어떤아찔함도기쁨도영감도느끼지못한다.
살베르는미술관에서의하룻밤을홀로지낸다는,몹시기대했던예술적시도를제대로즐기지못하는데에무력감을느낀다.이귀한시간에자신은왜예술에대해아무관심도,아무욕구도느끼지못하는것인가.그동안의식하지못한예술에대한혐오감이작동하는건가.

예술을향한애증과세상을구원하는실패의아름다움이강렬하게교차하는시간.

지나치게부유하고,모든것이넘치는과포화의시대,21세기의풍요에거부감을느끼는살베르는‘너무많은아름다움과,너무많은천재성과,너무많은우아함으로’점령된미술관이라는곳을좋아하지않는다.게다가그밤의분위기가기대했던것만큼감상적이지않자차츰불안해지기시작한다.그녀는불안을달래는자신만의방식으로,미술관에대한반감,예술이수익좋은최고의투자처로전락한세태에대한독설,더없이천박한승부욕이지배하는세상에대한분노를쏟아낸다.조각상의허약한어깨가세상의야비함에대한환멸을짊어지고있는것처럼보여자신이그토록좋아하는자코메티의〈걷는사람〉이피카소미술관에있는것조차어울리지않는다고생각한다.자코메티는그런세상과조금도발맞추지않고,실패를겁내지않을뿐아니라,오히려실패를창작의조건이자소재로삼은‘겸손한’예술가가아니던가.

“이제나는자코메티가대담때그토록자주말했던그것(무능)을생각했다.왜냐하면작업의어려움을,모델속의존재를드러내는어려움을,움직임없는몸체속에생명의움직임을재현하는(그리스인들이참으로잘해낸것처럼)어려움을,인간을(외적인간과내적인간을)온전히포착해내는어려움을,세상속에서그리고죽음앞에서느끼는지독한고독을표현하는어려움을그보다더잘말한사람은없었기때문이다.자신의작품앞에서느끼는불만족을그보다더잘표현한사람도없었다.”_108p

그밤이후,살베르는〈걷는사람〉의아름다움을마주하고도자신의마음이왜굳게닫혔는지를곰곰이생각한다.감정을토로하려는유혹에저항하는일이글쓰기라고생각하는작가지만살베르는자신을,자신의결핍을,남들에게‘무척겸손한’사람으로비추고야마는그열등감을솔직하게토로한다.프랑스어를제대로쓰지못하는부모밑에서,세련됨을배우지못했던환경에서자란자신이프랑스어로글을쓰며느끼는옹색함을,그사회에서자리를잡아가며부딪쳐야하는그열패감을,그리고초고속리듬의사회에적응하며사는것이실행불가능한천성을.
그런생각의끝에다다르자그녀는그밤의무언가가자신의내면깊은곳에상처를입혔다는걸어렴풋이깨닫는다.무언가가자신에게설명할수없는어떤불안을야기했다는걸,무언가가자신의감동하는능력을마비시켰다는걸.적막과고립속에서〈걷는사람〉을대면하는일이자신의죽음을일깨웠다는걸.

바람과패배에맞서계속걷는다.자코메티처럼,나처럼,우리처럼.

“〈걷는사람〉은나처럼,우리처럼죽음을향해걷고있었다.그는그사실을알았다.안다는사실이그의등줄기를휘게했고,무한히겸손하게만들었다.”_183p

실패할것을알면서도용기를잃지않고열정적으로매달려야한다는걸인식함으로써예술가로존재했던사람,자코메티.무한한겸손,완벽을향한지칠줄모르는긴장,고행같은작업방식,그대가로어떤것도바라지않고오로지열정만으로보상받는사람.살베르는지친회색이아름다운자코메티의얼굴을바라보며그모든면면이그를성자로만들었다고생각한다.그리고도달할수없는것을향한그의팽팽한노력에서삶에대한결연한의지를읽는다.다가오는죽음을마주하고있는자신이그토록품고싶은삶에대한의지를.

살베르의작가적역량과인간심리를깊이들여다보는정신과전문의의경험이다시한번빛을발하며우리로하여금예술의힘과가치에대해생각하게하는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