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14.00
Description
밀란 쿤데라는 한 시대 프랑스에서 트렌드였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이지만 “자발적 실종자”이기도 하다. 아흔세 살인 현재까지 17권의 책을 발표한 그는 37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철저히 거부해온 탓에 실세계에서 사라져버렸다. 소설 속 그의 등장인물들은 사람들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나, 그는 독자들에게 유령 작가가 되었다. 책을 통해서 살고 책 속으로 사라진 사람, 이미 이야기한 이야기들의 소리 없는 화자가 된 사람. 왜 그는 자기 자신의 실종을 기획했을까. 그가 자신의 삶을 실세계에서 지워버리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 기자로 신문에 작가들에 관한 여러 연재 기사를 발표해온 아리안 슈맹이 밀란 쿤데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이유를 탐구한다. 쿤데라의 삶이 스친 모든 곳을 찾아가고, 그의 부인 베라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시공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취재와 쿤데라에 대한 깊은 이해로 쓴 이 책에서 독자들은 쿤데라 스스로 삶을 봉인해버린 이유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아리안슈맹

ArianeChemin
프랑스언론인이자작가.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인문학을전공했다.〈르몽드〉특파원으로특히작가들에관한여러연재기사를발표했다.지은책으로로맹가리와진세버그를다룬《비밀결혼》이있다.

목차

◆실종 7
◆동토에서온작가 21
◆베라쿤데라 33
◆“엘리트1”,혹은삶은다른곳에 59
◆“렌2”,혹은삶은다른곳에 81
◆파리의소설의아틀리에 103
◆귀화 117
◆프랑스어로소설쓰기 131
◆드보라체크사건 149
◆이별의왈츠 159

◆감사의말 175
◆옮긴이의말 177

출판사 서평

책을통해서살고책속으로사라진작가,밀란쿤데라그의‘내밀한것’을찾아떠난길

체코슬로바키아에서태어나체코어로소설을쓰기시작했고프랑스에정착한후언젠가부터프랑스어로글을쓰는작가밀란쿤데라.독자로서의우리는그의독창적인작품들을기억하고지금도여전히읽고있는데,〈르몽드〉기자인이책의저자아리안슈맹은밀란쿤데라를“자발적실종자”로여긴다.쿤데라를“지난내20년동안의저자”라고말하는슈맹에게쿤데라의삶은‘비극적’인삶이다.

슈맹은동구에서서구로쿤데라의삶과작품의여정을따라가며여러사람을인터뷰하고,쿤데라의부인베라쿤데라와도적극적으로소통하며그야말로‘보물찾기’를한다.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쿤데라를파악하기위해서이제는봉인이풀린옛체코슬로바키아비밀경찰국의쿤데라파일을훑는다.그녀는음악가와작가의길을병행하던20대부터현재까지쿤데라의삶의필름을되돌려본다.작곡가이자음악원교수였던아버지로부터고된수련을받으며음악가의삶을준비하던시절,16세부터마르크스의저작을탐독하며당의청년운동에가담했으나모스크바가기획한프라하사태에전율하여당을떠나게된것,향토색이짙고투사적인시를쓰고아폴리네르의시집을번역하던시절,1960년대에들어서면서결국소설을선택하게된계기,그의단편들이당대프랑스의대표지식인이던사르트르와아라공의눈에띄게된일,그때부터그의프랑스행이예견되었던것등,이후쿤데라의삶의방식을설명해줄열쇠들을살펴본다.

소설같은운명의작가
밀란쿤데라의이력을잠깐알아보자.그는1929년,체코슬로바키아의남부지역에있는브르노시에서태어났다.오스트리아빈으로부터그리멀지않은곳이다.그는작곡가이자피아니스트인아버지에게음악을배우며음악적분위기가가득한환경에서청소년기를보냈다.아버지로부터긴두손과완벽한귀를물려받은쿤데라는당연히음악가의대를이을것으로기대되었으나,그는음표대신말을택했고,서서히문학의길로나아가기시작했다.제2차세계대전후독일로부터독립한신생국체코슬로바키아에1948년공산주의정권이들어서던시기였다.그20년후프라하의봄을경험하기까지,쿤데라는어느시점을계기로집권공산당의밀착감시대상자가된다.체제에서쫓겨났으니당연히일자리도잃는다.프라하영화학교에서의세계문학사강의도불가능해졌고,모든것을도청당하는상태에서가명으로글을쓰며생계를유지한다.체코슬로바키아내에서그의책을출간한다는건낙관하기어려운상황이계속된다.그에게무엇보다중요한건자기일을계속하는것.그와그의작품에관심이많은프랑스지인들이체코를드나들며물심양면으로그를돕는다.
자신때문에부모까지감시를당하는고초를겼던쿤데라는마흔다섯에체코를떠나프랑스를제2의조국으로삼는다.그렇게냉전과철의장막을가로질렀고두세기에걸쳐여러국경을넘나들며살아온그는이제프랑스파리에서그가사랑한유럽이라는환상의해체를바라보며한편의역사처럼살고있다.

프랑스에서‘트렌드’가된작가
기자로서쿤데라를오랫동안탐구했으니많은정보를파악했을것임에도불구하고,이책에서슈맹의글은절제되고사려깊다.쿤데라라는한작가의삶을기자의시각으로파헤치는게아니라,오히려그가세상에모습을드러내지않고사는이유를대신설명해주는것같기도하다.쿤데라의삶을알아갈수록,내밀한것의유출이야말로우리삶의중대한위협이라는그의의식에깊이공감하기때문이리라.
슈맹은쿤데라가과민하리만큼자신의삶을‘봉인’해버린이유중하나일만성적압박상태에빠지기시작한계기가1984년에발표한소설《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이었을것으로본다.체코슬로바키아에서출간되자마자프랑스에서번역본이나온소설《농담》에매료된프랑스지식인그룹은쿤데라에게프랑스로옮겨올것을적극적으로권유했다.갈리마르출판사를비롯한작가그룹,문화부를축으로한문화계,지성인으로서의긍지가높은고위층들이수면위아래에서네트워크처럼움직인다.그러는사이쿤데라는파리에서놓칠수없는‘트렌드’가되었으나,한편으로그들이만들어준아우라가서서히쿤데라를압박하기시작한다.
그러던차에프랑스에귀화하여처음발표한《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이큰성공을거두자,사방에서예찬자들이몰려든다.거리에서도사람들이그를붙잡고,여기저기서불러댄다.쿤데라는사람들을거부해야할지경에이르게되고,미행과도청으로고통을당할때와비슷한삶의압박감을다시느끼게된다.

프랑스어로소설을쓰는체코슬로바키아출신작가
우리는어떻게밀란쿤데라를알게되었던가.‘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이라는,그시대의유행어가되었던제목의소설을통해서였을수도있고,그를‘반체제’작가로그의작품들을이데올로기적인관점으로포장한언론을통해서였을수도있겠다.어떤채널을통해밀란쿤데라라는작가를알게되었든,우리가읽게된그의초기작품의모체는체코어가아닌프랑스어로번역된것이었는데,쿤데라는한사건을계기로자신의작품의‘번역’에완곡한물음표를달게된다.
프랑스어로번역된자신의소설이“번역된”게아니라“개작”되었다고단언한쿤데라는그때부터프랑스어번역본모두를프랑스어로다시옮기는기나긴작업을시작했다.1990년대에는글을쓰는것보다번역에더많은시간을보낼정도였고,급기야는프랑스어로쓴소설을발표한다.쿤데라는프랑스어로작품을쓰면적어도더는번역자들과씨름할일이없어져서좋다고생각했지만,이전까지호평일색이던비평계의기류가바뀌기시작한다.그가체코어로쓸때는그에게갑옷과투구를입혀준프랑스전위문학계가그에게가시돋친말들을던지기시작한것이다.그의작품이그동안번역으로덕을본거라는의견도튀어나온다.언어가표현하는문학성의관점에서였을까,그들이번역을통해접한‘화려’하고‘바로크적’인그의문체가갑자기너무‘간결’하고‘투명’해진탓이었을까.체코슬로바키아에서탈출하여파리에안착한쿤데라의작품이이제프랑스보다다른곳에서더먼저출간되기도한다.

오직문학을통해서만이야기하는작가
사람들은종종체코의대통령이된시인바츨라프하벨과쿤데라를비교하지만,쿤데라는자신의문학이이데올로기로포장되거나정치적메시지로이용되는것을원치않았다.지인들의도움을받아1980년프랑스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소설에관한세미나를시작한것도,강의가천직일만큼잘하지않음에도강의에열중한것도오로지문학을,그의문학을얘기할수있어서였다.십여년넘게진행된세미나에서그는자신이선별한문학위인들에관해서만이야기한다.처음2년간카프카얘기로시작해서,그다음부터는순서없이,2년정도헤르만브로흐,1년정도도스토옙스키를얘기하고,그리고다른작가들로넘어가는식의강의였다고한다.그강의는늘열혈수강생들을유지했고지금도추억될만큼많은전설을낳은모양이다.쿤데라만의독창성과진지함으로미루어볼때충분히짐작되고도남을일이다.

“학생들은그첫강의때그의손이유럽의지도를그린사실을기억하고있다.그가그린경이로운삼각형,즉부다페스트ㆍ비엔나ㆍ프라하를넣은그지도는중앙유럽의문학이라는미지의땅을발견하도록청하는초대다.”_105p

얼마나절실했을까.그는체코라는작은나라에서와‘유명해진’작가로서자신의문학을스스로지키고자한다.그과정에많은오해와억측과비판적평가가따랐지만,그는자신의작품에관한한자신이직접확인하고엄선한작품만세상에서통용되어야한다는신조를굽히지않았다.작가의의도와상관없이작품에그들의사상을입히고,작가의글을멋대로짜깁기하고마음대로묶어내는‘전문가’라는사람들을그가얼마나경계했는지를보여주는일면이다.

문학속으로사라진작가
37년전부터텔레비전출연을일절거부해온쿤데라가자신의신조를깨고언론에모습을드러낸사건이있었다.‘드보라체크’사건이었다.체코인으로서의그의과거삶이부메랑이되어날아온그사건으로,절대자전적인글을쓰지않겠다고했던쿤데라의문학신조에금이간다.자신의삶을작품에끌어들이고싶어하지않았던,자전적소설을쓰는것을무시하던쿤데라아니던가.2008년,전세계의언론이이사건을대서특필하며쿤데라를‘시험대’에올리자,쿤데라부부는큰충격을받는다.
“이번에는정말어떤회귀도불가능하다는걸깨달았어요.동시에,집으로돌아가야겠다는생각도떠올랐죠.숨을수있는곳으로….”쿤데라부인베라쿤데라의말이다.
쿤데라는2007년에체코문학상을받았고,2010년에는그의고향브르노시가그를‘명에시민’으로추대했다.2019년에는체코국적도회복하여이중국적소유자다.하지만그들부부는자신들이진짜체코인도아니고진짜프랑스인도아니라고생각한다.유럽에머물고있을뿐,쿤데라가사랑했던그유럽은이제빛을잃고있다.쿤데라조감도를마무리하며슈맹은“쿤데라는그별의기수였고,그도그별과함께흐릿해지고있다.유럽이이부부에게걸었던마법은이제끝났다”고말한다.

“자신의모국어로책을내서는읽히지않게된작가보다더나쁜경우는아마없을거예요.이제그는먼저프랑스에있지않고서는체코에있을수없는처지가되었죠.그는체코사람들이자기를거부한다는것을알아요.노벨상위원회도그를잊었고,프랑스도그를잔뜩추켜세웠다가등져버렸습니다….”쿤데라의오랜지인이자역사학자인피에르노라의이말만큼현재의쿤데라를잘설명해주는말이또있을까.
슈맹은쿤데라의부인베라를만나고그녀와메시지를주고받으며느끼게된,여전히모라비아의브르노를그리워하는부부의마음을전하며글을맺는다.이책의주제인쿤데라의자발적실종과그이유에대해서는다말하지못한더많은이유가있겠으나,쿤데라의삶을이토록깊이이해한저자덕택에우리는책을읽는내내단락들사이에서쿤데라의삶과작품이부단히공명함을느낀다.이제‘내밀한것’에대한그의예민함을마음에담은채그의소설들을다시읽고싶은욕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