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사료편찬관

왕국의 사료편찬관

$17.00
Description
1900년대 중반 모로코.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 상태에 놓여있지만 독립을 향한 기운이 한창 무르익은 때, 평범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 소년이 베일에 가린 선발 절차에 의해 왕국의 왕세자와 한 학급에 배정된다. 그렇게 운명에 의해 장차 왕이 될 사람의 측근이 된 자, 그가 자신의 별을 과신하여 야망을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긴 유배의 세월 끝에 부여받은 왕국의 사료편찬관이라는 은총에는 또 무엇이, 어떤 장난이 숨어 있을까.
왕의 말과 글을 담당한 한 남자의 고백이자 모로코의 하산 2세가 되는 남자의 초상을 그린 소설로, 문학가이자 시인이며 역사가인 주인공이 거듭되는 은총과 실총 속에서 신하이자 남자로서 왕과 벌이는 심리전이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2020년 ‘공쿠르상’ 최종심과 ‘프랑스 아카데미 소설 대상’ 최종심에 오른 작품이다.
저자

마엘르누아르

1979년에태어났다.작가,번역가,철학자로활동하며여러권의철학서와소설과역서를출간했다.소설로는특히‘12월상’을수상한『북경오페라의개혁』(2013)이있고,에세이로는『무한기억의조각들』(2016),『라스코동굴에관한메모』(2018),『파리예찬』(2019)등이있다.니체·콘래드·슈니츨러등다수의저자를번역했고,그가번역한플라톤의『연회』는극화되어쥘레에트뎨샹의연출로무대에오르기도했다.이소설『왕국의사료편찬관』은2020년‘공쿠르상’최종심과‘프랑스아카데미소설대상’최종심에올랐다.

목차

제1부 007
2부 067
제3부 127
제4부 195
에필로그 327

출판사 서평

‘왕국의사료편찬관’이라는흥미로운캐릭터를통해
모로코의근현대사를대담하게펼쳐낸소설.

철학교수이자작가인저자마엘르누아르가18세기판版《천일야화》와생시몽의《회상록》을놀라운솜씨로20세기에옮겨놓은이소설은강대국의‘보호령’시대가저물고‘납의시대’가개막하기까지의모로코의역사를한편의드라마처럼다이내믹하게펼쳐낸다.정치적인음모와권력의관계에관한주제로여러권의작품을발표한마엘르누아르는1960년대부터1980년대말까지‘납의시대’라불릴정도로정적을가혹하게탄압한하산2세의시대를문학의소재로예리하게포착했다.
왕궁의백스테이지에서사료편찬관의시선을통해재조명한모로코의근현대사,또는한남자의초상을그린이흥미진진한이야기는주인공이자나레이터인압데라마네엘자립의고백으로시작된다.

“나는왕의총애를받은적도잃은적도많았다.어느경우든대개는그이유를알수없었다.나는열다섯살때콜레주루아얄에서장남왕세자와같은학급에배정되었다.”_9p

아프리카북서부지역에위치하며동북쪽으로는지중해,서쪽으로는대서양에접한아랍-베르베르국가모로코.왕국의화려한역사가강대국의‘보호’하에가려졌다가제2차세계대전종료와함께독립의기운을뿜어내던시기에,평범한부모에게서태어난한소년이장차왕국의왕이될왕세자의동급생으로선발된다.왕세자의아버지인현재의왕은아들을엄격하게키운다.특혜란없다.오히려아들은아버지의기대만큼성적을내지못해유급이거론된다.그가유급한다는것은그의동급생모두의유급을뜻하는것이었으나,주변국들의민감한정치적상황을고려할때그의졸업을지연시키는건적절치않다는판단이우세하다.보호령에서독립국이될긴박한국제정세,호시탐탐왕정을전복하려는국내반대파들사이에서왕세자는운명이언제라도그에게지울책무들을즉시감당해야하므로,다음단계로올라가더갖추고익혀야할것이많으므로.
왕세자의동급생들역시언젠가자신들의동기가왕이되는순간그의부름을받게될거라는암묵적인기대하에,저마다왕국의미래를짊어질준비를향해떠나간다.날이갈수록확실해지는독립에대한전망이그들의머릿속에들어있었고,언젠가왕정이제대로시행되는날,왕세자와고등학교를함께다닌자신들이누구보다먼저국가핵심그룹의단단한핵을구성하는데불려가게될게분명했다.

그렇게운명에의해미래의모로코국왕하산2세의측근이된압데라마네엘자립은권력에가까이있고자한동기생들과달리,아버지왕의은총으로프랑스파리에유학해서정치와는거리를둔채장차문학인으로살아가겠다는꿈을향해공부에매진한다.그가왕세자와함께공부했다는자신의별을과신하여야망에선을긋지않는다면그것은실총으로가는지름길일것이다.그가우등생명부에서번번이왕세자의윗자리를차지한것도이미장차의위험을내포한일이다.

프랑스에서문학과역사학을공부하고조국에돌아온그는독립국이된아버지술탄의왕정에서교육부장관실에기술고문으로배치된다.식민통치의유산인교육제도를수습하고확장하는일은박식한그에게딱맞는일이다.몇년후술탄이서거하고동급생이던왕세자가왕위에오르자,동기생들이속속요직에오르고압데라마네에게도과도한충성발언들이생겨나면서그에게합당할여러직책이거론된다.그러던어느날왕은그에게특별히만들었다는직무를수행하라고명한다.누가보더라도유배나마찬가지인직책이다.이갑작스러운따돌림의동기는무엇인가.여러억측이떠돌았으나,어느것도믿을수없고근거도없다.그가자신의별을과신하여야망을드러낸적이있었던가.왕이그를파멸시키기로작정한것인가,그러기위해왕은어떤이유를짜내었을까.

“무한한공간의영원한침묵”_블레즈파스칼
모로코왕국남서부,광활한사하라사막을마주한작은도시타르파야.그곳에서주인공은체스를두고그지역의아이들에게공부를가르치고,가끔은광대한사하라를바다로개척해모로코를해양대국으로만들겠다는야심찬연구도하며,유배의세월을견딘다.
이제영틀려버린건가?왕은나를잊은건가.실총의7년이흐른어느날,왕은그를다시불러프랑스루이14세때의라신이나루이15세때의볼테르등이맡았던역할,즉왕국의사료편찬관직에임명한다.유배를당할때도다시돌아왔을때도왕에게서는아무런설명을듣지못했으나,이박식한고문으로선기뻐해마지않을은총이다.하지만이은총의이면에는또무엇이,자신을먹이로삼는어떤장난이숨어있을까.정체불명의한젊은여인이그에게다가와왕국에서은밀히조직되고있는반도들의비밀을속삭여줄때,시험대에오른그의충성심은과연어떤결말을맞이하게될까?

우리에게는조금낯선1940~70년대모로코의독특한정치사를배경으로한이작품은우여곡절이많은모로코근현대사를소설이라는멋진장치를통해한편의팩션처럼흥미진진하게펼쳐냈다.소설에는박식한사료편찬관이라는주인공의캐릭터에걸맞게역사적사실외에도문학적수사가곳곳에빼곡하다.
프랑스의고전적인저자들,특히파스칼의말을즐겨인용하다가끔오용하여일을크게만드는왕,알렉상드르뒤마·샤토브리앙·볼테르·프루스트를인용하며상대와대화를주고받는박식한주인공과주변인물들을통해그시절프랑스어문화권의지적풍토도엿볼수있다.역사적사실을철저한조사를거쳐소설로재구성하면서이렇게기발한문학적요소들을풍부하게짜넣으니,저자가한언론과의인터뷰에서언급한대로,“문학은역시더할나위없는문학적자료”임을공감하게된다.
문학가이자시인이며역사가인,그정도의지적능력을갖추고도늘왕의반응에전전긍긍하는‘왕국의사료편찬관’.게다가왕의말과글까지담당해야하는이런캐릭터의인생역정은동서고금을막론하고풍부한이야깃거리임을다시한번확인하게되는작품이다.

책속에서

나에게서그는우리의계급차이를자신의머릿속에설정하는데필요한모든신호를헤아려내고자했던것일까?무슨운명의장난으로자신은왕세자로태어나고나는특권없는평민으로태어났는지가궁금했던걸까?무슨연유로내가그의자리에있지않고그가나의자리에있지않게된것인지를?그는나를어느다른세상에군림하는분신같은존재로보았을까?아니면이세상의아주이상한라이벌,어떤승리를거두든모든승리가그저헛되기만한그런이상한라이벌같은존재로보았을까?_15p

타르파야!사막과대양의변경에자리잡은작은도시,추방자를맞이하여그의마지막야심마저말려버림으로써그의오만에대한대가를치르게하기에이곳보다더좋은곳은이지상어디에도없을것이다._87p

왕은바다를마주하고서걸음을멈추었다.바다를바라보다가,내쪽으로돌아서서는공모의징표처럼여겨지는미소를보이며말했다.“영원한공간의무한한침묵이라….”그러고는뭔가를앙갚음하려는듯,톡쏘는듯한어조로덧붙였다.“이건파스칼이한말이지,그렇지않은가?”지금껏왕이보여준친근한태도에대담해진나는시선을의기양양하게수평선에고정한채,무례임을미처생각지못하고서대답했다.파스칼이한말이분명하지만,단어들의순서가좀다르다고.원래는“무한한공간의영원한침묵”이라고._96p

이제왕과나,우리둘만남았다.왕이말했다.“좀전의일은참놀라운일이라하지않을수없네.마음에깊이새길가치가있는역사란바로이런것이겠지.이보게,압데라마네,내가자네에게큰은혜를입었어.그군인들이나를윽박지르려고했다면말이네.사실그럴가능성도다분했지.하지만왕국의사료에는이모든일에관해한마디도넣지말길부탁하네.하기야아무도믿지도않을걸세.알렉상드르뒤마의소설에나나올법한얘기아닌가.”_170p

나의능력에대한이같은오마주는물론나를안심시키고격려하는것일테지만,이표면적인경의의배후에서나는이유는모르겠으나이완벽한짜맞춤이어쩌면표적조준일수도있겠다는생각이들었다.어떤무기의조준장치에맞춰놓고언제든타격을가할수있는,세심하게고른표적말이다._186p

테라스의드넓은학식과그가내리는판단의섬세함,모로코왕국,특히모로코의건축과예술관련문화유산에관한그의수많은논문의가치를무시한다는건부당한일일테지만,그의관점은어디까지나보호령시대프랑스역사가의관점이었다.우리민족주의자지식인들은그렇게까지준엄하지는않았던것같다.우리는우리자신을알아야하고,우리의위인들을알아야한다고알랄엘파시는말했다.그위인중에물라이이스마엘이있었다.그는우리를굴복시킨이들의눈앞에던져진권력의상징이었다.하지만우리는독립했고,어쩌면이제는좀덜야만적인상징이필요한지도모른다._191p

“왕은자신에게아부하는사람들을경멸하고,자신에게저항하는사람들을싫어해.그와는어떤관계도불가능하지.수준이좀떨어지는신하를대할때는지적으로자신과대등한사람을찾으려안달하지만,정신적으로자신에게전혀밀지지않는사람과함께있을때는그를없애지못해안달하지.누구도감히그에게그늘을드리워서는안되니까말이야.”_208p

폐하,저는좀더간소하고단순하지만,그효과만은뒤지지않을뭔가를생각하고있습니다._32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