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트의네가지신화를만나는시간.
“내가찾는건사랑이야,어떤사랑도괜찮아,세상사람모두가하는사랑,하지만진짜여야해.”(I,743)
인문학자앙투안콩파뇽은라디오방송〈프랑스엥테르〉에서여름동안,주중매일몇분씩,위대한작가들의삶과작품에관해얘기해보면어떻겠냐는제안을받는다.그렇게하여그가개시한몽테뉴를필두로,보들레르·파스칼·빅토르위고·호메로스·랭보등위대한작가들에관해이야기를나누고그방송내용을책으로펴낸이“함께하는여름”시리즈는지금까지프랑스에서만85만부가판매되고75개언어로번역되었으며,현재프랑스고등학교의문학교재로쓰이고있다고한다.전문가들의깊이있고다채로운스케치덕택에,〈~와함께하는여름〉은이제연례행사가되어,해마다많은독자가위대한작가들을라디오방송으로뒤이어책으로만나기를고대하는이시리즈를국내에서는뮤진트리가매년여름소개하고있다.
네가지신화를만든작가,콜레트
콜레트탄생150년을맞이하여콩파뇽은《콜레트와함께하는여름》의첫장을‘왜콜레트인가’라는제목으로시작한다.왜콜레트인가.그질문은“콜레트가왜위대한작가인가”라는의미로읽힌다.
“위대한작가란신화들을창조하고,우리의신화를혁신하는작가이기도하다”라고정의하는콩파뇽은,그런기준에서,콜레트를네가지신화를만든작가로드높인다.한두개신화도만들기어려운데네개나되는신화라니,도대체무엇일까.그녀의초기장편소설의여주인공클로딘Claudine의신화,그녀의주요등장인물이된시도Sido의신화,1958년빈센트미넬리가감독한영화에서레슬리카론이열연하여잊을수없는인물이된지지Gigi의신화에,신성한괴물같은위대한국민작가콜레트자체의신화를더해서다.신화의주체가모두여성이고,주목할만한네여성이다.
콜레트는20대에이미파리를뒤흔든히트작을써낸작가였음에도평생수많은직업을거치며끊임없이자기자신을재창조해나가는삶을살았다.그녀는머리로생각해내는것보다는몸으로직접부딪치고자신의온감각으로느낀것들을더중시했다.콜레트에게는문학적상상력으로꾸며낸허구로서의문학작품이거의없으며,그녀의모든작품과글들은그녀의삶과긴밀하게연관되어있다.모든위대한작가에게그렇듯이,콜레트에게도문학과삶은불가분의관계였다.
콜레트의작품세계를연구하여논문을쓴작가르클레지오는“콜레트는곧삶이다.문학이라는것을막알게되었을때,그러니까숙제때문이아니라글이재미있어서읽기시작했을때,그렇게,어느날,우연히,콜레트의작품을만나본사람이라면더는그를잊을수없게된다”라고말하며,콜레트를“이세상에하나뿐인질료의작가”라고예찬했다.프랑스의학생들이그녀의작품으로프랑스어를익혔다는작가,프랑스어자체를그녀이전과이후로바꿔버린작가.이매력적인작가를함축적이고간결한필치로담아낸콩파뇽의글을따라가다보면,“그녀에게문학은픽션fiction이아니라팩션Autofiction임”을수긍하게된다.
작가가되고싶지않았던대작가
콜레트는“나는이름없이뒷구멍으로문학에입문했다.내가이름을드러내지않은채일한그수년의세월은내게겸손을가르쳐주었다”고고백하지만,문학이력을쌓아가는동안,콜레트는작가라는직업은자기취향이아니고자신을문학을불신한다고강조해마지않았다.한페이지한페이지를“지겨운숙제”를하듯썼던데뷔초기의‘고통’때문이었을까.심지어유명언론사에서문학담당위원으로일할때조르주심농을발견하고선그에게글이너무문학적이라며문학을모조리없애버리라고조언했다니,신화를네개나만들어낸위대한작가의이태도를우리는어떻게받아들여야할까.
그녀가남편의이름으로도아니고남편의성을붙인풀네임으로도아닌,오로지자신의성을딴‘콜레트’라는필명으로첫책《청맥》을발표한건그녀나이오십세때였다.
콜레트는어쩌다글을쓰게되었는가?콜레트의얘기에의하면,인생의목표도가늠하지못한이른나이에결혼을한그녀는남편의외도를알게되어심한우울증에빠졌고,남편인윌리가그녀의관심을돌리고자글을써보라고권유한것이그계기였다.당시일종의‘대필작업실’을운영하던남편은콜레트의글을틈틈이훑어보며조언을하기시작했고,그때부터콜레트는남편의지침에따라착한학생처럼글을쓰게된다.그렇게해서탄생한작품이《클로딘의학교생활》이었고,이첫책이큰성공을거두자윌리는계속자신의명의로콜레트의작품을생산해낸다.
그렇게작업실에꼼짝없이틀어박혀원고를생산해내는일이고통스럽다보니문학을좋아하기에는그에들이는노력이너무크다고생각했을수도있겠고,생계를꾸리기위해글을썼기에문학이라는폼의냄새자체가싫었던것일수도있겠다.그녀는환상속에서허구를짜내는작가이기를거부하고온몸으로세상속에뛰어들었고,그리하여삶과있는그대로의세계가일체화된‘팩션’이라는새로운문학형식의발명자가되었으니,앙드레지드의표현대로“지나치다싶을만큼맛깔나는언어”로쓴콜레트문학의다채로움은아이러니하게도그녀의‘반反문학’덕분이라고볼수있다.
여러직업을경험하며
“인간의얼굴이라는거대한풍경을아주많이바라본‘작가
스캔들이꼬리에꼬리를문삶이었지만,그녀는자신의독립을보장받기위해세간의이목을무시하고여러직업을가졌다.두번의전쟁을겪은그녀는생계를꾸려가기위해더욱애를써야했다.하지만다양한직업에서의경험은작가로서의그녀의일에풍부한밑거름이되었다.
1906년에무언극에처음출연한것을시작으로그녀는여러해동안뮤직홀예술가로생계를꾸린다.콩파뇽은그시기콜레트의인기를“콜레트의변태적매력과고양이같은유연함과드러낸맨가슴은객석을사람들로가득채웠다”고표현한다.
콜레트는특히무언극에큰애착을지녔던것같다.그몇년동안콜레트의일상은프랑스전역의여러도시로순회공연을다닐만큼꽉찬일정이었는데,그동안그녀가글쓰기를포기한건아니었다.그녀로서는글쓰기의고독과백지가주는고통을액땜하기위해서도무대에오를필요가있었다.
드러내놓고문학을싫어했던것과는대조적으로,그녀는저널리즘을매우좋아했다.콩파뇽은〈신문기자〉라는장에서,여러매체를가로지르며기자로활약한콜레트의삶을얘기한다.1910년말에프랑스의일간지〈르마탱〉에기자로입사한콜레트는기자의시선으로뿐만아니라사건의구경꾼으로본르포르타주를썼고,전쟁중에도후방에서꾸준히기사를게재했고,남자들의소관이라고여겨지던기사의영역에여성들·아이들·동물들의이야기를들였다.그렇게50여년간천편이훨씬넘는기사를썼고,그글들을묶어여러권의책으로출간했다.1920년대에는한해에50여편의희곡을읽으며신문에연극평론도기고했다.
콜레트는그녀가함께한다른사람들을향한관심도게을리하지않았다.열악한무대뒷면의사람들,불행한여자들,가난한사람들에게애정을가졌고,보잘것없는많은이들을작품에등장시켰다.〈벌이가변변찮은사람들〉이나〈반품된사람들〉,〈굶주린자〉같은글들이그예다.삶과글이뗄수없이얽혀있는콜레트에게삶은곧글의소재이고글은삶을위한도구였다.
콩파뇽은콜레트가저널리즘에새로운스타일을끌어들였다고평가하는데,‘문학적’인것을경멸한콜레트였지만그녀의저널리즘은독보적으로‘문학적’이었음이분명했기때문일것이다.
“사람들은콜레트가‘감각파’였다고말하지만,그것은턱없이부족한말이다.(…)콜레트에게는땅에서나는모든것에대한격정적예찬이있고동물적인모든것에대한숭배가있다”고한르클레지오는자신만의최고의수사로콜레트를예찬한다.“이세상에유일한질료의작가,우리는그런당신을무척사랑한다”
오늘날읽어도조금도늙지않은콜레트의그간결한감각덕분에,그녀의작품들과삶을한편의인생드라마를보듯짜임새있게소개하는콩파뇽의산뜻한스케치덕분에,이제우리는《콜레트와함께하는여름》을읽으며콜레트라는위대한신화를마치놀라운발견처럼만나게되었다.몽테뉴·보들레르·파스칼·빅토르위고·랭보·호메로스…등과함께한여름들에이어,위대한작가콜레트와함께또한계절을보내며,‘문학’에대해다시생각해보는건얼마나즐거운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