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 글을 쓰다니, 참 희한한 생각이네!

밀란 쿤데라 : 글을 쓰다니, 참 희한한 생각이네!

$22.00
Description
“맙소사, 이 쿤데라는 어찌 이리 웃기는가, 삶은 또 왜 이리 슬픈가!” 클로드 루아의 이 말만큼 쿤데라의 기구한 삶을, 작가 쿤데라를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삶의 절반 이상을 타향인 프랑스에서 열혈 독자들에 둘러싸여 지냈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고향인 체코의 브루노를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사람. 일찍이 자신의 작품 뒤로 사라진 채, 어떤 칸에도 갇히길 거부하면서 그저 “나는 소설가”라고 말했던 사람, 밀란 쿤데라.
이 책은 〈르몽드〉 기자이자 작가인 저자가 오로지 작품으로 자신의 삶을 얘기한 작가 밀란 쿤데라를 찾아 그의 작품 속으로 떠난 문학 산책이다. 저자가 쿤데라의 작품에서 뽑아낸 텍스트들이며 그와 나눈 대화 조각들, 그와의 추억들, 그의 자취를 찾아 떠난 보헤미아 여행 수첩, 많은 사진과 데생 등을 이 책에 모은 목적은 단 하나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 우리의 꿈과 거짓말이 어떤 농담을 먹고 자라는지를 부단히 제시해온 이 아이러니와 환멸의 거장을 발견하고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돕는 것.
저자

프롤랑스누아빌

저자:플로랑스누아빌
신문기자,소설가,전기작가.1994년에프랑스일간지<르몽드>에입사하여,이신문의문학증보판‘책들의세계’담당기자로일했으며,현재이일간지의외국문학책임자로일하고있다.
2007년에첫소설《증여》를시작으로,《집착》(2012),《사랑받는다는미친환상》(2016),《도박중독자의고백》(2018)등네편의소설을발표했고,전기로는폴란드출신노벨문학상수상자아이작바셰비스싱어의삶을다룬《아이작바셰비스싱어》(2003)로‘2004년전기작품상’을받았고,딸과함께쓴《니나시몬》(2019)으로‘시몬베이유상’을수상했다.

역자:김병욱
프랑스사부아대학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고성균관대학교에서학술연구교수로일했다.현재성균관대초빙교수로재직중이며,옮긴책으로밀란쿤데라의《불멸》《느림》《배신당한유언들》,피에르바야르의《읽지않은책에대해말하는법》《여행하지않은곳에대해말하는법》《망친책,어떻게개선할것인가?》《누가로저애크로이드를죽였는가?》,로맹가리의《게리쿠퍼여안녕》《징기스콘의춤》,가스통바슐라르의《불의정신분석》《촛불》《물과꿈》,앙투안콩파뇽의《보들레르와함께하는여름》《파스칼과함께하는여름》등이있다.

목차


_밀란쿤데라:“글을쓰다니,참희한한생각이네!”009
_감사의말385
_옮긴이의말391

출판사 서평

오로지작품으로자신의삶을얘기한작가,밀란쿤데라의
‘삶의길,소설의길’을되짚어보다

이책이프랑스에서출간된건2023년7월에밀란쿤데라가타계하기불과한달여전이다.쿤데라부부와오랫동안우정을쌓아온저자가‘작별’이라는말을차마쓰지못했을뿐,실제로는쿤데라삶의거의마지막순간까지안부를나누며마무리한책이다.쿤데라는생의마지막시기에이르러,더는자기자신이무슨일을하는지모르는사람이되었다.
어느날이책의저자가쿤데라부부를방문하여얘기를나누던중,호기심이발동한쿤데라가저자에게무슨일을하느냐고묻는다.
“저기,밀란,난글을써요….”
그가놀란시선으로바라본다.재미있어하는표정도엿보인다.그러곤길게뜸을들이고나서말한다.
“글을쓰다니,참희한한생각이네!”
밀란쿤데라의부인베라쿤데라는이책의한국어판제목도원제목의이말과같기를원했다.

<르몽드>기자이자소설과전기여러편을발표한저자는밀란쿤데라의삶의궤적을그의작품들을중심으로되짚어본다.저자는“밀란쿤데라가나를신뢰한것은내가작품을작가와구별하려들지않으리라고생각해서다.삶은다른곳에있다고?그의책들아닌다른어디에도없다”고말한다.저자는쿤데라의조각들은그를닮은주인공들속에분산되어있다는걸누구보다잘파악했다.그래서도쿤데라를제대로만나려면그의작품속을산책해봐야한다고생각한다.
전기로여러상을수상한작가임에도저자는쿤데라에관한이책을일반적인전기방식으로구성하지않았다.개인의삶을앞으로내세우는대신,그의작품속문장을찾아인용하고그것에작가의삶을대입시켰다.기구하고도슬픈삶의많은이야기가그의책속에있고,때로는글이실제삶보다앞서나가기도했다.저자가마치산책이라도하듯,과거와현재를부단히오가며쿤데라의삶과작품을이리저리넘나드는이책곳곳에서우리는인간쿤데라와그의작품에대한저자의깊은애정을느끼게된다.
저자는쿤데라의그늘을굳이들춰보려고하지않는다.그런것보다는,뼛속까지세계문학·영화·음악·연극·그림·예술의역사로빚어진그가유럽의지적쇠퇴,문화의포기,메말라가는예술에대한갈증,추醜의범람,미美의망각등을다른누구보다깊이느끼는그방식에관해얘기하고자한다.“쿤데라와비슷한사람은쿤데라뿐이다.쾌활함과우수가섞이고,명쾌함과모호함이섞이고,조롱과공감이섞이고,단순함과복잡함이섞이는이런혼합은사실누구도흉내낼수없다”고판단하기때문이다.그리고,쿤데라가유쾌하고따뜻한사람이었음을,우정을매우소중히생각했음을추억한다.

“쿤데라에게삶의무게를갖는유일한삶은작품에의해‘굴절된’삶이다.”
예술과지식이1순위였던집안에서태어나음악가였던아버지의지도하에작곡을배웠고,대학진학을계기로문학으로진로를바꿔시를쓰고희곡을집필했으나소설에집중하게된,그로부터시작된실총失寵과유배와망명의삶.“체코어를쓰는프랑스작가.”전세계에서번역되어읽히는작가임에도정작체코인들은그의작품을체코어로읽을수없게된작가.그어느곳보다프랑스에서최고의환대와지적풍요를누렸으나삶의마지막순간까지고향브루노를그리워하며고독했던사람.“뭐라설명하기어려운고독의아우라를두른”작가.
여기까지는이런저런매체를통해우리가대략알고있는쿤데라의삶이다.1980년대중반부터그는어떤대외적발언도,어떤인터뷰도하지않았다.문학사에서많은작가가자신의작품뒤로사라지고자애썼으니,그자신을지워버리고자했던쿤데라가아주특별한사례는아닐수있다.그런데밀란쿤데라는좀더멀리나갔다.그는후세사람들에게아예살지않았던사람으로여겨지길원했다.왜그렇게까지생각했을까.왜그는자신이떠난뒤엔,자신의책들외에아무것도남지않길원했을까.

저자가밀란쿤데라와개인적친분을맺게된것은<르몽드>에입사하여책분야를담당하면서부터인듯하다.기자로서,기자를싫어하는작가와의만남을어렵사리시도해보았다는데,운좋게허락된그인연은수많은추억을쌓으며쿤데라가세상을떠날때까지계속되었다.덕택에이책에는쿤데라부부와의우정을바탕으로,쿤데라작품에대한깊은경탄과이해가가득담겨있다.
저자는쿤데라의삶은그의소설들의짜임속에통합되어,변형된모습으로갈아넣어져있다고말한다.사람들은그가자신의삶을작품과분리하길원했다고오해하는데,그건천만의말씀이라는것,그의삶의진실은바로소설속에있고,쿤데라에게삶의무게를갖는유일한삶은작품에의해‘굴절된’삶이라는것이다.우리가우리의삶과우리시대를이해하는토대라고믿는‘그신성한가치들’에대한믿음의거부,그순간시작되는쿤데라특유의유머,농담의검은바닥까지내려가기,“단한마디도진지하지않은소설”을쓰고자했던확고한의지,무의미를사랑해야하고그것을사랑하는법을배워야한다는것.독자가그의작품들에서일관성있게발견할수있는쿤데라식삶의방식들이다.

“한예술가의작품이시작되는지점은어디인가?그예술가는언제부터진짜그자신인가?”
쿤데라는자신의작품의범위를엄격히규정했다.그는십대시절,시인네즈발의시에서큰자극을받는다.‘정의의이상’에젖은시인의시에경탄하여열여덟살생일에체코공산당에입당하게되고,시의세계에도동시에입문한다.‘시를통해’조국의새로운세계건설노력에동참하겠노라다짐한그는그로부터10년간공산주의를믿으며,열정적으로시를쓰고발표하여대중적인성공을거둔다.
그러나1958년,서른살생일이막지났을즈음,삶과예술에대한서정적접근을영원히떨쳐버려야겠다고결심한다.그가생각했던공산주의와실제체코공산주의사이의“무한한거리”를포착하고나서다.이제그는천진할만큼친공산주의적이라고판단되는자신의초기시집들을더는좋아하지않는다.심지어,그시들을쓴사람자체와자신을더는동일시하지않는다.그는허물을벗고자,극창작을시도하고,4년사이에두편의극작품을탈고한다.《열쇠의주인들》과《농담들》이다.하지만훗날그는자신의시와마찬가지로이작품들역시자신의최종‘작품’에포함될만한가치가없다고판단하게된다.저자는이를두고“그것들은그의‘작품’이아니기만한게아니라,작품의역사에도속하지않는다.단지그‘전사前史’에속할뿐이다”라고판단한다.
그때부터이른바쿤데라의소설의역사가시작된다.1959년부터쿤데라는《열쇠의주인들》,《우스운사랑들》같은단편소설을쓰며자신만의음색을만들어나간다.이어그의첫장편《농담》을출간한다.1967년의일이다.그해쿤데라는작가로서큰영예를누림과동시에,망명의삶이라는긴역사의출발점에서게된다.그리고그‘농담’이라는주제는향후그의전작품의길잡이가된다.

평생토록소중히여긴중부유럽의정체성,중부유럽의문학
쿤데라는평생토록중부유럽의정체성을강조했다.그가소중히여긴문학은중부유럽의문학이다.체코땅이오래도록속해있던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중부유럽이아니라,새로이독립하여폐허위에서탐구하고혁신하고실험하는중부유럽이다.그는정치적기준으로체코를러시아의영향권으로분류한‘동구권’이라는표현을거부했고,체코를서유럽의전통속에서,그용광로같은문화의심장으로바라볼것을강조했다.
쿤데라가보기에,‘납치된서유럽’은동구에병합되고,흡수되어,소멸한서구다.이납치는러시아가보헤미아지방을빼앗았을때일어났다.그는문화사의관점에서이렇게설명한다.“동유럽,그것은비잔틴세계에닻을내린자기고유의특수한역사를가진러시아다.”반면에보헤미아는―폴란드,헝가리,오스트리아등과마찬가지로―한번도이동유럽에속했던적이없다는것이다.
쿤데라보다조금앞선시대에체코문학계에는로베르트무질,헤르만브로흐,비톨트곰브로비치,프란츠카프카가있었다.평생토록쿤데라는자신이“중부유럽의위대한스타소설가들”이라고부르는이저명한4인방과결부되어있다고느낀다.이책의저자는이위대한네작가에게서네가지공통점을확인한다.첫째,그들모두완전히버려진세계에서자신들의작품을건축한다는것.둘째,그무엇에도현혹되지않는다는것.셋째,조소嘲笑를자신의무기로삼는다는것.넷째,모두절대적으로현대적이고자한다는것이다.그리고,쿤데라에게서도그공통점을확인한다.쿤데라가자신을그들의상속자로느끼며,평생토록중부유럽의정체성을,아이러니와유머로대변되는‘진지하지않음’의정신을작품에담아내고자했다는점에서그렇다.

“작가는살지않은사람이되고자해야한다”
쿤데라의소설《불멸》에는여러번되풀이되는장면이하나있다.아녜스의아버지가,생의마지막에이르러,“거실탁자앞에앉아,찢어진사진더미를내려다보고있는”장면이다.그는가족사진을전부찢어버린다.그주인공처럼,쿤데라본인도말년의몇년동안자신의책과다른사람들의책을낱낱이찢어버려아무것도남기지않고싶어했다.
《농담》의유명한문장,“모든것이잊힐것이다”처럼“모든것이찢길것이다”를손수집행하는쿤데라.그는자신이떠난뒤엔,그의책들외에아무것도남지않아야한다고생각했다.그나머지모든것,미완성원고,사신,통신,수첩,사진등은철저히파괴되었다.“후세사람들에게살지않았던사람으로여겨져야”만한다고했던귀스타브플로베르처럼,쿤데라의생각도같았던듯하다.그래도베라쿤데라가애쓴덕택에,50여개국어로번역된그의모든책,그의자료및그가주고받은편지일부,그리고그의장서藏書가찢김에서살아남았다.그것들은모두작가가그토록그리워했던고향브르노에새로마련된‘밀란-쿤데라도서관’으로옮겨졌다.이제다행히도그의뜻은이루어지지못하게되었다.

밀란쿤데라의어떤문장,어떤말하나가뇌리에아로새겨진이들이얼마나많은가.그의조국은아직쿤데라를온전히받아들이길거부하지만,사실은공산주의자도자유주의자도아니었던사람,어떤칸에도갇히길거부하면서그저“나는소설가”라고말했던사람,밀란쿤데라.
체코와프랑스로두동강난채“프라하를,브르노를잊기.괴로움을줄수있는모든것을잊기”를마음속으로되뇌며산삶이지만,이제그가마침내고향에서안식을찾았길기원한다.밀란쿤데라의마지막두말이었다는“브르노”와“마민카(엄마)”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