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에스테의 언덕길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18.50
Description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파리, 뒤이어 로마로 유학길에 올라 1950년대 말부터 십삼 년간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했던 이탈리아 문학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 스가 아쓰코. 그녀가 《밀라노, 안개의 풍경》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베네치아의 종소리》에 이어 발표했던 에세이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이 책은 그녀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궤적’을 남겼고 작가로서의 삶에 자양분을 안겨준 밀라노에서의 삶을 기록한 것으로, 에세이라는 틀 안에 ‘소설’을 숨기고 있다고도 할 만큼 독창적인 작품이다. 결혼 7년째에 세상을 떠난 남편 페피노와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단단한 골격과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문체에 담겨있고, 이탈리아의 대표적 문호인 움베르토 사바·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등과의 문학적 교감, 사바의 도시인 트리에스테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북부 산간 마을의 이야기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저자

스가아쓰코

저자:스가아쓰코
일본의수필가,번역가.1929년일본효고현에서태어났다.세이신여자대학영문과를졸업하고게이오대학대학원사회학과에진학했으나중퇴하고2년간프랑스파리에서유학했다.귀국후NHK국제국프랑스어반에서일을하다가다시1958년이탈리아로마로유학을떠나,1960년밀라노에서동료들과함께코르시아서점을운영하던주세페리카를만나결혼했다.이후밀라노에정착해근대일본문학작품을이탈리아어로옮기는일에주력했으나1967년남편이급작스레병사하자이탈리아에서의생활을정리하고1971년일본으로돌아왔다.귀국후게이오대학과조치대학,교토대학,도쿄대학등에서이탈리아문학등을가르치고엠마우스활동을시작했다.이후이탈로칼비노,안토니오타부키,움베르토사바등의작품을일본어로옮겼고,1989년조치대학비교문학부교수로재직중,나탈리아긴츠부르그의《만초니가의사람들》번역으로피코델라미란돌라상을수상했다.
1985년부터본격적으로자신의글을쓰기시작해5년간<스파치오>에연재한글을모아1990년《밀라노,안개의풍경》을출간,이듬해여류문학상과고단샤에세이상을수상했다.이후《코르시아서점의친구들》《베네치아의종소리》《트리에스테의언덕길》《유르스나르의구두》《먼아침의책들》등의에세이작품을발표했다.1998년예순아홉살을일기로세상을떠났고,2000년가와데쇼보신샤에서《스가아쓰코전집》(전8권)이간행되었다.

역자:송태욱
연세대학교국문과와같은대학대학원을졸업하고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도쿄외국어대학연구원을지냈으며,현재대학에서강의하며전문번역가로활동하고있다.
지은책으로《르네상스인김승옥》(공저)이있고,옮긴책으로《새로운단어를찾습니다》,《환상의빛》,《눈의황홀》,《잘라라,기도하는그손을》,《살아야하는이유》,《사명과영혼의경계》,《금수》,《밀라노,안개의풍경》,《말의정의》,《사무라이》,《우리는모두집으로돌아간다》,나쓰메소세키소설전집등이있다.

목차

트리에스테의언덕길_007
전찻길_036
히아신스의기억_052
빗속을달리는남자들_069
부엌이바뀐날_088
굴다리너머_106
마리아의결혼_127
세레넬라가필무렵_146
아들의입대_166
힘든산일을마친후처럼_190
새로운집_210
떨리는손_229

부록
오래된연꽃씨앗_254
스가아쓰코에대한노트_278
옮긴이의말_310

출판사 서평

“이책은두세계사이에서번역되지않는슬픔을아는이들에게기어코닿을것이다.”
_김지승,《짐승일기》작가

‘가난’속에서도,
움베르토사바의시를읽어주던남편페피노를,품위를잃지않았던가족을,
자신만의문체를찾고자분투했던십삼년간의밀라노생활을회상하는
스가아쓰코의에세이집.

《밀라노,안개의풍경》을비롯,《코르시아서점의친구들》《베네치아의종소리》로국내독자들에게많은사랑을받은스가아쓰코가첫책《밀라노,안개의풍경》을출간한건육십대초반이었다.밀라노에살던시절이미일본의문학작품을이탈리아어로옮기는일을하고있었으나,뭔가를쓰고싶다는생각을오랜시간벼리다오십대후반부터자신의글을쓰기시작한스가아쓰코.일본오리베티사의홍보지<스파치오>에밀라노에서의생활을자유로운형식으로연2회정도씩연재하게된것이그계기였는데,이렇게해서5년동안모아진글들을책으로출간한것이《밀라노,안개의풍경》과이책《트리에스테의언덕길》이다.그런면에서두작품에는밀라노에서의체험이라는공통된주제가있으나,《트리에스테의언덕길》에수록된글들에는좀더일관된공통점이있다.

그의시선이향하는대상,그시선의온도

《트리에스테의언덕길》에서스가아쓰코는가족에관한이야기를부드러우면서도강인한문체에담아냈다.에세이의형식이지만한편한편이마치짧은소설을읽는것처럼스토리가강하다.이탈리아라는다른문화에서살면서도자신의자리를찾느라분투했던작가로서의내공이논리적인글의골격에단단히박혀있다.

스가아쓰코는학창시절부터관심을가졌던가톨릭사상과이념을따라밀라노로옮겨간후그곳에서당시밀라노식자識者들의명소였던‘코르시아서점’을운영하는남편을만났고그와의결혼으로새로운가족과인연을맺었다.이책에실린열두편의에세이에는여러사람이등장하는데,남편과직계가족외에도친척과친척의가족들,함께한이웃들,여행중에만난사람들도있다.남편에대해서는많이,명확하게얘기하진않지만,이책에는결혼7년차에세상을떠난남편페피노의그림자가짙게깔려있다.

2차세계대전이라는대사건이끼친타격은유럽,특히이탈리아경제에도치명적이었을터.대부분의생활은넉넉지않고때론궁핍했다.가난한철도원이었던시아버지,서점을운영하는남편,적지않은나이임에도가족에걱정을끼치는시동생,그리고그런가족을어떻게든이끌고살아온시어머니로부터느껴진건가난과불행의짙은그림자였으나,스가아쓰코는그들을다감한시선으로바라본다.전후일본에서도유복했던사업가집안에서자랐고1950년대에유럽으로유학을간‘신여성’이결혼으로편입된가난한가정에서감내해야할현실은더욱팍팍했을거라고미루어짐작해보지만,의외로스가아쓰코가그려내는세계의사람들은저마다의품위와고상함을갖고있다.

가족을돌볼줄모르는철도원이었으나창부들의절대적신뢰를받았던시아버지루이지(<굴다리너머>),혼자된아쓰코의시어머니를위로하러낮에집으로찾아와주는마음씨고운창부올가(<굴다리너머>),행실이단정치않아가족의평판을떨어트리는미혼모마리아와결혼하여조용히가정을꾸려가는아다모(<마리아의결혼>),뼛속까지추위가스며드는밀라노의겨울에도맨발에샌들을신고환자들을위로하러다니는수다쟁이수도사루드비코(<전찻길>),손녀가창피해할정도로이상한차림새를하고도일요일마다묘지를찾아지인들묘에성묘하는이바나의러시아인외할머니(<전찻길>),지능지수가낮고사고뭉치지만꽃과작은새를사랑하는거리의꽃장수토니부셰마(<빗속을달리는남자들>),‘저급’하지만구하기어려운술그라파를스가아쓰코에게선물로건넨산사나이그로브레크너(<힘든산일을마친후처럼>).

일반적시선으로보자면한계가먼저보일수있는사람들이지만,이들모두는절하된평가나빠듯한생활속에서도내면의품위를지니고있다.스가아쓰코가가난을개인의문제가아니라사회공동체가함께해결해야할문제라고생각했고,그래서도외부의기준이나잣대보다는그들각자를한세계의주인공으로대했기때문이리라.

《짐승일기》의김지승작가는이책을“삶곳곳에서조우하게되는,한세계에서다른세계로넘어가는언덕길에관한이야기”라고했다.이십대까지산고국이라는세계를떠나타국에서십삼년을살며조우한세계.한세계에서다른세계로넘어가는그언덕길에서스가아쓰코는그동안익숙했던것과결별하는대신다르다는것에관한관심을키웠던것같다.다른세계,다른문화,다른상황…을받아들이는것은필연적으로이중성을내포하게되지만,다르다는것에대한열린시각을견인하기도한다.
이책에서가장많이거론되는가족이야기에서독자가그들의‘가난’을‘궁핍’으로느끼지않는이유는,저자가가난이라는것에관행적인잣대를들이대지않아서일것이다.가난이주는경제적결핍에주목하기보다는,가족에게들이닥친불행의그림자가뭐라고해석할수없는‘가난’으로보이게한것일까를생각하고,가난속에서도꿋꿋하게살아온사람들의내면을바라보는스가아쓰코의시선은글곳곳에서그깊이를발한다.

<부엌이바뀐날>에서시어머니의‘먼지가득한’낡은가구가둘째며느리의신식가구로교체될때,저자는‘자신의’살림이사라지는것에위축되는시어머니의속내에마음을쓴다.이탈리아에서하층민들은우산을갖추지못하고살던그시절,옷깃을부여잡고빗속으로뛰어나가는남자들의공통적인자세를언급하면서도,인텔리인남편과지능지수가낮고사고뭉치인이웃집아들을그저같은자세를취하는남자로만비교하며흥미로워한다(<빗속을달리는남자들>).
일본에서는‘개미취’라불리는꽃을시어머니가철도원관사뒷마당에서한아름따오자,이탈리아에는그것을‘릴리’라고부르는사람과‘세레넬라’라고부르는사람이있음을구별해내고,사람에따라그다름이주는소소한차이가있음도놓치지않는다(<세레넬라가필무렵>).

두세계에서살며자신만의문체를찾아분투했던세월

스가아쓰코는소녀시절부터책의세계에서살아왔고언젠가자신도글을쓰며살고싶다는희망을꽤젊을때부터갖고있었다.이책의표제작인<트리에스테의언덕길>이라는에세이에서,평생흠모했던시인움베르토사바의도시트리에스테를홀로찾아가사바의흔적을두발로느껴보며,스가는그곳까지와서야비로소명확해진생각을피력한다.“사바가서점에붙인이름인‘두세계’에는그런의미도포함되어있었던게아닐까.그리고시인은고통과함께그것을알고있었다.두세계에서살려고하는자는끊임없이불편한생각에시달리는운명에서벗어날수없다는것을.”
이책의마지막부분에수록된<떨리는손>에서도우리는그흔적을찾아볼수있다.일찍부터큰영향을받았고자신이그작가작품의번역자이기도한나탈리아긴츠부르그와의교류를적은대목에서스가아쓰코는다음과같이말한다.“일본의문학작품을이탈리아어로번역하는일을시작한지얼마되지않은무렵이었다.나는여전히모국어로글을쓰기를소망하고있었다.다만주위에이탈리아어만있는곳에서는내안의일본어가생기를잃고시들어버리지나않을까,그것만이마음에걸렸다.”

이책에는특별한글이실려있다.스가아쓰코가일본으로귀국한후부터인연을이어왔던편집자유카와유타카가《트리에스테의언덕길》을주제로스가아쓰코를회상하는노트인데,덕택에우리는작가의삶을좀더명확히포착할수있다.유카와는“스가씨는이중성이복잡하게얽혀있는장소에몸을두고살아온듯한구석이있다.그글이단지기분좋은노스탤지어로채색된회상을훨씬뛰어넘어비할데없는중층성을가지면서도독자에게강력하게다가가는이유의한부분은그점에있는게아닐까”라고요약하며,작가가미처끝내지못한소설작업의뒷얘기를전한다.

십삼년동안타국에서살며모국어로글을쓰기를소망하고,자신의문체를만들고싶어했던작가.에세이임에도마치소설처럼정경을묘사하고,과거의기억만떠올리는것이아니라그것을현재의정경으로만들어내는,뛰어난묘사력이돋보이는스가아쓰코의글.
이렇게유연하면서도단단한시선으로세상을바라본,“등장한순간부터거의대가”였던작가가미완으로남긴첫소설을만나지못하게된것이못내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