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퍼레이드

$19.80
저자

레이첼 커스크

저자 : 레이철 커스크 (Rachel Cusk)
1967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 후 영국으로 이주, 옥스퍼드 뉴칼리지를 졸업했다. 첫 번째 소설 『아그네스 구하기』를 발표하자마자 휘트브레드 신인소설가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그녀는 이후 세 번째 소설 『시골 생활』로 서머싯-몸 상까지 수상한다. 그 외에 『덧없는 것』, 『운 좋은 사람들』(휘트브레드 소설상 최종 후보작), 『우리에 갇혀』(맨부커 상 후보작)를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아홉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2003년에는 『그란타 매거진』이 선정하는 ‘영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로 뽑혔다. 루퍼트 굴드가 연출하고, 레이첼 커스크가 각본을 쓴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수잔 스미스 블랙번상의 최종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작품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로 오렌지 상 최종 후보작에 이름을 올렸다.
이미 2001년 『생명의 작업』이라는 논픽션에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의 애매모호함, 아이를 돌보면서 겪는 고된 일과와 자아 상실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 그녀는,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보다 깊이 있게 발전시켰다. 이 작품은 여성, 그중에서도 아내-어머니인 여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의 결과물이다. 어머니 역할이 피곤하고 지겨운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여전히 신성 모독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어떻게 애 키우는 엄마가 저럴 수 있나, 하는 폄하 등등), 커스크는 대담하게도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특히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팽배한 문명 안에서 주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여 논쟁을 낳았다.
특히 10년간의 결혼 생활과 이혼의 아픈 경험을 대담하고 솔직하게 담은 그녀의 회고록 『후유증: 결혼과 이혼』은 영국 문단에 큰 파장과 논쟁을 낳았다. 긴 공백 후, 커스크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적 글쓰기를 시도한다.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견해는 피하면서 서사적 관습에서 벗어나 개인적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윤곽 3부작’인 『윤곽』, 『환승』, 『영광』으로 발전했고, 해외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역자 : 김재성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출판 기획 및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주에서 만나요』 『밤에 우리 영혼은』 『우상들과의 점심』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푸른 밤』 『불안한 낙원』 『나의 우울증을 떠나보내며』 『신디 로퍼』 『한 문장의 철학』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 『가을』 등이 있다.

목차


스턴트맨 7
산파 56
다이버 120
스파이 189

출판사 서평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한 사람의 삶은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레이첼 커스크가 2024년에 발표한 『퍼레이드』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퍼레이드』에는 네 개의 이야기가 있다. 서로 다른 장소와 삶의 장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때로 화가이고, 때로 작가이며, 때로 어머니이고, 때로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관찰자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이름이 모두 ‘G’라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인물인 동시에 하나의 인물처럼 보이는 여러 G. 그래서 G라는 이름은 특정 인물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기보다 ‘예술가’ 혹은 ‘자아를 만들려는 인간’의 자리처럼 읽히기도 한다.

커스크는 한 사람에게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삶,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익숙한 소설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 속에서 겹쳐진다. 우리는 각자 다른 얼굴, 다른 욕망, 다른 삶을 가진 G들을 바라보면서, 때로 이해하고, 때로 불편해하고, 때로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원제는 ‘Parade’이다. ‘Parade’라는 단어에는 구경거리·전시·관객·행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제목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예술가가 작품을 전시하는 문제, 인간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연출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또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모든 이름과 역할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레이철 커스크의 『퍼레이드』는 그 질문을 하나의 이야기로 답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퍼레이드』를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여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보다 더 근원적인 곳에 있다. 이 질문은 여성의 삶에서 특히 첨예하게 드러나지만, 특정한 성별이나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가이든 부모이든, 우리는 누구나 사회가 부여한 역할 속에서 자신을 설명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할을 하나씩 벗겨낸다면 마지막에 남는 ‘나’는 과연 무엇일까.

네 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G는 이 질문을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서 반복한다. G는 매번 다른 사람이고, 남성이거나 여성이고, 화가이거나 작가다. 커스크가 인물들의 고유한 이름과 정체성을 지워버린 것도 어쩌면 의도적인 장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네 개의 이야기 각각은 하나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삶과 목소리, 서로 다른 네 명의 G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어머니이면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퍼레이드』에서 특히 날카롭게 드러나는 것은 여성의 삶을 둘러싼 오래된 질문들이다. 어머니가 되는 순간 여성에게는 새로운 이름과 역할이 주어진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사랑의 이름으로 당연한 의무가 되고, 자신의 욕망을 주장하는 것은 때때로 이기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과 타인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무가 충돌할 때, 여성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퍼레이드』는 모성을 찬양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사랑과 의무라는 이름 아래 여성에게 당연하게 요구되어온 것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머니라는 역할을 거부하면 나는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일까? 반대로 그 역할을 받아들이면 나는 나 자신을 잃는 것일까? 레이첼 커스크는 그 틈을 파고든다. 창작하는 나와 사랑하는 나, 돌보는 나와 욕망하는 나. 어느 하나가 진짜이고 다른 하나가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라는 인물조차 해체하는 새로운 소설.

『퍼레이드』가 특별한 것은 이러한 질문을 단지 내용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커스크는 소설의 형식 자체를 흔든다. 명확한 주인공도, 전통적인 의미의 줄거리도, 하나의 시간과 장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안정된 서사도 없다. 네 개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으면서 서로를 비춘다. 그 결과 독자는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대신, 여러 삶의 조각들 사이를 오가게 된다. 그리고 그 낯선 경험 속에서 비로소 질문이 선명해진다. 한 인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 사람 안에도 여러 개의 내가 존재하고, 하나의 삶 안에도 서로 모순되는 욕망과 역할이 공존한다. 레이철 커스크는 그것들을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 앞에 차례로 펼쳐놓으며 마지막까지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맡은 역할을 모두 벗겨낸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퍼레이드』는 여성의 삶과 예술에 관한 소설인 동시에, 한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소설이다. 우리가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해온 ‘나’는 과연 그만큼 단단하고 일관된 존재일까. 레이첼 커스크는 하나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는 대신, 서로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우리 앞에 차례로 펼쳐놓는다. 그 행렬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질문은 타인에게서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누구인가. 모든 역할을 벗겨낸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